필름팀 발제 : 하마구치 류스케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WEBZINE
WEDITOR 조현준
발제일자: 4.11
발제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
참석인원: MJ, EB, DE, CY, HJ, SY, HG, SJ
HJ: 마침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도착했습니다!
EB: 진짜 하마 닮았다 근데 ㅋㅋ.
#1. 이 영화는 액체? 고체? (영화가 어느 지점까지 논리적으로 기획/구성되었는가)
HJ: 첫번째 질문입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액체인가 아니면 고체인가? 이 질문은 뻔하디 뻔한 "이미지는 흐르기 때문에 물과 같다" 이런 걸 묻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고체와 액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영화가 논리적으로 기획/구성되었는가를 묻고자 하는 의도에요. 저는 일단 이 영화가 확실한 고체들을 기둥으로 삼는데, 그 기둥 사이를 잇는 디테일들은 굉장히 액체 같이 구성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분기가 되는 몇몇 이미지나 의도들을 설정해두고, 그 이음새가 되는 영상들은 '이거 좋아보이는데? 넣어야지!' 이런 식으로 삽입되었다는 인상인 거죠. 어쨌든 전반적으로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논리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액체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HG: 저는 이 영화가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중에서는 가장 촘촘하다고 봤거든요? 사실 지금까지 하마구치 영화를 볼 때 주로 저는 각본을 봤었는데 이번 영화는 연출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마지막 부분까지도 연출이 눈에 띄어서 뭔가 저는 오히려 추구하는 방향을 바꾼 것같다는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로 하나하나가 계산이 되어 있다고 저는 봤어요. 카메라를 정말 계산적으로 쓰고, 그러한 계산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자체에 관객이 집중을 하도록 만들고 있죠. 영화의 구조가, 얼핏 봤을 때엔 느슨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결국엔 반복, 대칭, 대치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액체의 탈을 쓰고 있는 고체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EB: 저도 완전 고체라고 봤어요. 이제서야 좀 하마구치 류스케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제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초반의 오프닝 트래킹 숏. 그 부분이 저는 약간 짓궂게 표현하자면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겨냥되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영화가 치밀하게 기획된 고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또 중간중간에 푸티지가 쓰이긴 했죠? 새 날아가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영화에 느슨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치밀한 논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HJ: 감독이 분명 어떤 이미지를 삽입했을 때, 그걸 분명히 '화면에 꼭 담고 싶어서'라는 의도를 갖고 넣긴 했을 거라 봅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소재로 깃털이 있는데, 그 깃털을 두고 '왜 깃털이어야 했나요?'라고 감독에게 묻는다면 그 사람이 그 질문에 대해 논리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점에서 단순히 '예뻐 보였다' 정도의 동기로 이끌어진 이미지들이 영화에 들어간 것 같아서, 딱히 영화가 논리적인 구조물로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HG: 서사가 그렇다는 건가?
HJ: 그걸 '서사'에 딱 좁혀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화면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유기적으로 연결된 의도를 담고 있다고 느끼기엔 좀 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MJ: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에 나오는 모든 이미지들을 철저하게 하는 감독이 애초에 있긴 할까? 애초에 (하마구치 류스케 뿐 아니라) 영화 감독들이 그렇게 모든 걸 논리적으로 계획해가며 창작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이미지 하나하나에 정말 엄정한 의미를 도출해내기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영화가 액체 같다'는 주장을 하긴 어려운 거 같고.
SJ: 저는 '균형',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른다' 등등의 확실한 개념어들을 명확하게 짚어주는 지점들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지점들을 중심으로 다소 뜬금 없다 느낄 수 있는 푸티지들도 '이런 의도로 사용됐겠구나' 하고 윤곽이 확실히 잡힌 거 같아요. 그래서 고체에가깝지 않나.
HJ: 얘기를 듣고보니, 제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액체 같다고 느낀 지점은 서사적인 측면에서 그랬던 것 같아요. SJ가 앞서 말해주었던 것처럼, 확실한 키워드들이 영화 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이 되고 있고, 결말도 워낙 확실하기 때문에 그처럼 확고한 지점들이 영화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근데 그 지점들을 잇는 장면 장면이나 이미지들이 정말 필연적으로 그 이미지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사후적으로 그것들을 보았을 때에는 설득력 있고 말이 된다고 느끼겠지만, '꼭 그 이미지가 아니었더라도 말은 되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버전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필연적으로 그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걸 좀 확실한 기둥들이 있지만 그 이음새는 굉장히 흐물흐물한 영화라고 받아들였던 것같습니다.
EB: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영화에서 모든 것들이 완전히 '기능적으로' 해석이 되긴 어려울 수 있어요. 다만, 하마구치 류스케가 본래 어느 정도 문학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딱 잘라 해석하기 어려운 지점들은 '문학적/시적인 문법'과 '배우들의 수행성' 수준에서의 상호작용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고체이긴 하지만, 완전히 견고하진 않다는 주장에 좀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SY: 저도 액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하신 대로 주제나 하고 싶은 말은 딱 잡혀있는데, 그 이음새가 좀 느슨한 영화라고 느꼈어요. 애초에 본 작품이 영화라기보다는 이시바시 에이코의 뮤직비디오로 출발을 한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주제 의식이 뒤에 끼얹어진 느낌이 들어서, 전작들에 비해서는 약간 틈새가 더 보인다고 느꼈어요.
HJ: 완벽하게 동의.
#2. 이시바시 에이코가 작곡한 OST에 관해
HJ: 일단 음악이 진짜 말도 안되게 좋아요. 개인적으로도 원래 <드라이브 마이 카>의 OST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넘을 만한 음악이나왔다고 생각이 들 정도? 어쨌든... 하마구치 류스케 특유의 우연을 채집하는 방법론, 그리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예측되지 않는 비선형성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명확한 멜로디가 있는게 아니고 다음 선율이 어디에 놓일지 모르는 이시바시 에이코의 앰비언트 음악이 그러한 비선형성의 뉘앙스를 훨씬 증폭시키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드라이브 마이 카>의 경우 어느 정도 확실한 서사 라인이 있는 영화였지만, 그 속에서도 되게 말랑말랑한 구석이 있잖아요. 그때에도 그런 말랑한 숨구멍이 형성되는 데 음악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느꼈는데, 애초에 뮤직비디오에서 출발한 영화이기도 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선 음악의 그런 역할이 완전히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SY: <드라이브 마이 카> 때와는 음악의 역할이 사뭇 달라진 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 때는 음악이 정서를 자아내는 장치로서 주요하게 기능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이 읽히지 않는 중립적인 사운드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도한 것 같았어요.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음악이 딱 끊기기도 하는 그런 연출을 통해, 사운드가 영화에 스며들게 해서 여운을 곱씹게 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HG: 하마구치 류스케는 지금가지 각본을 쓸 때, 인물이 이제서야 좀 이해될 것 같다 싶을 때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게 해서 관객에게 거리감을 만들어내고는 했잖아요. 그 거리감을 만드는 방식이 이전까진 인물의 행동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영화적 연출에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연출적인 충격을 통해 거리를 두는 방식이 결국 소리가 툭툭 끊겨 버리는 음악의 운영 방식에도 영향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3. 카메라(시선)에 관해 / 주인 없는 시선
HJ: 하마구치 류스케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이 누구의 시점에서 바라본 것이냐는 질문에, 특정한 주체의 시선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을 한 바 있습니다.
SY: 자동차 후방 쇼트가 되게 인상적인데, 인터뷰에서 왜 그렇게 찍었냐고 물어봤더라고요. 하마구치 본인은 지금껏 자신의 영화에서 후방 쇼트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 영화에선 눈에 띄게 많이 쓴 것 같다고 답을 했어요. 카메라의 시점을 없앤 게 아니라, 교란시킨것 같아요.
HG: 초반의 트레킹 쇼트도 그렇고, 뭔가 인간의 시선 같은데 인간의 시선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자연스러운 인위성과 자의성이 느껴졌어요. 이질감이 확 와닿을 정도의 리버스 쇼트를 계속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이질적인 카메라 워크를 통해서 '너가 바라보는게 무엇이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는 쪽으로 신경을 써서 연출한 것 같아요.
HJ: 이게 카메라의 시선의 주인이 없다, 혹은 일관된 시선의 교란을 부각시키는 연출들이잖아요. 근데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인간적인 개입을 두드러지게 했어요. 한 차원 더 메타적으로 바라보면 그렇다는 거죠. 어쨌든 영화가 취하고자 하는 것이 '주인 없는 시선'이라고 상정을 하고, 그 이유를 묻는다면 저는 그건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전 작업부터 천착해왔던 예측 불가능성을 이번 작품을 통해 폭발시키고자 한 의도에 있다고 생각해요. 일관성 있는 시선(주인 있는 시선)을 견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예측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지점일텐데, 특정한 주체의 시선을 부정함으로써 일관된 시선에서 오는 일말의 예측 가능성 마저도 분쇄하려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나아가, 이게 소재적으로 자연과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만큼 특정 시선으로부터의 탈피가,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부터의 탈피에 대한 느슨한 은유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B: 저는 개인적으로 '주인 없는 시선'이 좀 무의미할 정도로 말이 안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자연만 주구장창 몇 시간 동안 찍어 대는 그런 의도의 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조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관조적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시선의 주인이 없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익스트림 롱쇼트로 인물을 관조하듯 찍으면 그것도 그냥 주인 없는 시선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영화가 무척 고다르적이라고 느꼈어요. 고다르도 ‘왜 논리 정연한 상태로 숏이 나열돼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곤 했는데, 그 지점이 HJ가 말한 소위 '주인 없는 시선'과 비슷한 뉘앙스로 읽히는 것 같아요.
HG: 완전 동의합니다. 트래킹 쇼트 얘기를 또 하게 되는데, 그 부자연스러운 시선이 굉장히 인위적인 인간의 시선으로 느껴졌거든요. 우리가 특정 인물과 카메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일종의 간극이나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지, 그것을 인물의 시선에 대한 부정이라고 읽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MJ: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어떤 특정한 관성에 의해 자기 나름대로 질서를 조합하고 예측해 가면서 영화를 보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경우 계속해서 그런 관성과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지점들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런 교란을 통해 관객은 몰입이 깨져버리게 되고,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인 자신과는 분리된 세계인 ‘영화’를 관람하고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거겠죠. 초반 글램핑장 개발과 관련해서도, (인간 대 자연이라는 도식을 써서 보자면) 인간의 이야기가 좀 우위에 있는 것 같다가도, 후반 가서는 완전히 그게 무너져버리잖아요. 그것도 영화의 연속성을 깨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의 연장선 상에 있는것 같고요.
HJ: 그렇죠. 시각적으로든, 청각적으로든 끊임없이 감각에 대해 불연속적인 질감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해주고 있어요. 관객이 연속적이라고 느낄 법한 지점에서 계속해서 분절을 일으킴으로써, 영화가 관객에게 불편한 자극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발제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
참석인원: MJ, EB, DE, CY, HJ, SY, HG, SJ
HJ: 마침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도착했습니다!
EB: 진짜 하마 닮았다 근데 ㅋㅋ.
#1. 이 영화는 액체? 고체? (영화가 어느 지점까지 논리적으로 기획/구성되었는가)
HJ: 첫번째 질문입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액체인가 아니면 고체인가? 이 질문은 뻔하디 뻔한 "이미지는 흐르기 때문에 물과 같다" 이런 걸 묻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고체와 액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영화가 논리적으로 기획/구성되었는가를 묻고자 하는 의도에요. 저는 일단 이 영화가 확실한 고체들을 기둥으로 삼는데, 그 기둥 사이를 잇는 디테일들은 굉장히 액체 같이 구성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분기가 되는 몇몇 이미지나 의도들을 설정해두고, 그 이음새가 되는 영상들은 '이거 좋아보이는데? 넣어야지!' 이런 식으로 삽입되었다는 인상인 거죠. 어쨌든 전반적으로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논리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액체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HG: 저는 이 영화가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중에서는 가장 촘촘하다고 봤거든요? 사실 지금까지 하마구치 영화를 볼 때 주로 저는 각본을 봤었는데 이번 영화는 연출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마지막 부분까지도 연출이 눈에 띄어서 뭔가 저는 오히려 추구하는 방향을 바꾼 것같다는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로 하나하나가 계산이 되어 있다고 저는 봤어요. 카메라를 정말 계산적으로 쓰고, 그러한 계산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자체에 관객이 집중을 하도록 만들고 있죠. 영화의 구조가, 얼핏 봤을 때엔 느슨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결국엔 반복, 대칭, 대치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액체의 탈을 쓰고 있는 고체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EB: 저도 완전 고체라고 봤어요. 이제서야 좀 하마구치 류스케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제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초반의 오프닝 트래킹 숏. 그 부분이 저는 약간 짓궂게 표현하자면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겨냥되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영화가 치밀하게 기획된 고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또 중간중간에 푸티지가 쓰이긴 했죠? 새 날아가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영화에 느슨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치밀한 논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HJ: 감독이 분명 어떤 이미지를 삽입했을 때, 그걸 분명히 '화면에 꼭 담고 싶어서'라는 의도를 갖고 넣긴 했을 거라 봅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소재로 깃털이 있는데, 그 깃털을 두고 '왜 깃털이어야 했나요?'라고 감독에게 묻는다면 그 사람이 그 질문에 대해 논리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점에서 단순히 '예뻐 보였다' 정도의 동기로 이끌어진 이미지들이 영화에 들어간 것 같아서, 딱히 영화가 논리적인 구조물로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HG: 서사가 그렇다는 건가?
HJ: 그걸 '서사'에 딱 좁혀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화면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유기적으로 연결된 의도를 담고 있다고 느끼기엔 좀 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MJ: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에 나오는 모든 이미지들을 철저하게 하는 감독이 애초에 있긴 할까? 애초에 (하마구치 류스케 뿐 아니라) 영화 감독들이 그렇게 모든 걸 논리적으로 계획해가며 창작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이미지 하나하나에 정말 엄정한 의미를 도출해내기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영화가 액체 같다'는 주장을 하긴 어려운 거 같고.
SJ: 저는 '균형',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른다' 등등의 확실한 개념어들을 명확하게 짚어주는 지점들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지점들을 중심으로 다소 뜬금 없다 느낄 수 있는 푸티지들도 '이런 의도로 사용됐겠구나' 하고 윤곽이 확실히 잡힌 거 같아요. 그래서 고체에가깝지 않나.
HJ: 얘기를 듣고보니, 제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액체 같다고 느낀 지점은 서사적인 측면에서 그랬던 것 같아요. SJ가 앞서 말해주었던 것처럼, 확실한 키워드들이 영화 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이 되고 있고, 결말도 워낙 확실하기 때문에 그처럼 확고한 지점들이 영화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근데 그 지점들을 잇는 장면 장면이나 이미지들이 정말 필연적으로 그 이미지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사후적으로 그것들을 보았을 때에는 설득력 있고 말이 된다고 느끼겠지만, '꼭 그 이미지가 아니었더라도 말은 되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버전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필연적으로 그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걸 좀 확실한 기둥들이 있지만 그 이음새는 굉장히 흐물흐물한 영화라고 받아들였던 것같습니다.
EB: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영화에서 모든 것들이 완전히 '기능적으로' 해석이 되긴 어려울 수 있어요. 다만, 하마구치 류스케가 본래 어느 정도 문학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딱 잘라 해석하기 어려운 지점들은 '문학적/시적인 문법'과 '배우들의 수행성' 수준에서의 상호작용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고체이긴 하지만, 완전히 견고하진 않다는 주장에 좀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SY: 저도 액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하신 대로 주제나 하고 싶은 말은 딱 잡혀있는데, 그 이음새가 좀 느슨한 영화라고 느꼈어요. 애초에 본 작품이 영화라기보다는 이시바시 에이코의 뮤직비디오로 출발을 한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주제 의식이 뒤에 끼얹어진 느낌이 들어서, 전작들에 비해서는 약간 틈새가 더 보인다고 느꼈어요.
HJ: 완벽하게 동의.
#2. 이시바시 에이코가 작곡한 OST에 관해
HJ: 일단 음악이 진짜 말도 안되게 좋아요. 개인적으로도 원래 <드라이브 마이 카>의 OST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넘을 만한 음악이나왔다고 생각이 들 정도? 어쨌든... 하마구치 류스케 특유의 우연을 채집하는 방법론, 그리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예측되지 않는 비선형성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명확한 멜로디가 있는게 아니고 다음 선율이 어디에 놓일지 모르는 이시바시 에이코의 앰비언트 음악이 그러한 비선형성의 뉘앙스를 훨씬 증폭시키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드라이브 마이 카>의 경우 어느 정도 확실한 서사 라인이 있는 영화였지만, 그 속에서도 되게 말랑말랑한 구석이 있잖아요. 그때에도 그런 말랑한 숨구멍이 형성되는 데 음악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느꼈는데, 애초에 뮤직비디오에서 출발한 영화이기도 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선 음악의 그런 역할이 완전히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SY: <드라이브 마이 카> 때와는 음악의 역할이 사뭇 달라진 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 때는 음악이 정서를 자아내는 장치로서 주요하게 기능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이 읽히지 않는 중립적인 사운드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도한 것 같았어요.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음악이 딱 끊기기도 하는 그런 연출을 통해, 사운드가 영화에 스며들게 해서 여운을 곱씹게 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HG: 하마구치 류스케는 지금가지 각본을 쓸 때, 인물이 이제서야 좀 이해될 것 같다 싶을 때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게 해서 관객에게 거리감을 만들어내고는 했잖아요. 그 거리감을 만드는 방식이 이전까진 인물의 행동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영화적 연출에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연출적인 충격을 통해 거리를 두는 방식이 결국 소리가 툭툭 끊겨 버리는 음악의 운영 방식에도 영향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3. 카메라(시선)에 관해 / 주인 없는 시선
HJ: 하마구치 류스케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이 누구의 시점에서 바라본 것이냐는 질문에, 특정한 주체의 시선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을 한 바 있습니다.
SY: 자동차 후방 쇼트가 되게 인상적인데, 인터뷰에서 왜 그렇게 찍었냐고 물어봤더라고요. 하마구치 본인은 지금껏 자신의 영화에서 후방 쇼트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 영화에선 눈에 띄게 많이 쓴 것 같다고 답을 했어요. 카메라의 시점을 없앤 게 아니라, 교란시킨것 같아요.
HG: 초반의 트레킹 쇼트도 그렇고, 뭔가 인간의 시선 같은데 인간의 시선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자연스러운 인위성과 자의성이 느껴졌어요. 이질감이 확 와닿을 정도의 리버스 쇼트를 계속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이질적인 카메라 워크를 통해서 '너가 바라보는게 무엇이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는 쪽으로 신경을 써서 연출한 것 같아요.
HJ: 이게 카메라의 시선의 주인이 없다, 혹은 일관된 시선의 교란을 부각시키는 연출들이잖아요. 근데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인간적인 개입을 두드러지게 했어요. 한 차원 더 메타적으로 바라보면 그렇다는 거죠. 어쨌든 영화가 취하고자 하는 것이 '주인 없는 시선'이라고 상정을 하고, 그 이유를 묻는다면 저는 그건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전 작업부터 천착해왔던 예측 불가능성을 이번 작품을 통해 폭발시키고자 한 의도에 있다고 생각해요. 일관성 있는 시선(주인 있는 시선)을 견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예측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지점일텐데, 특정한 주체의 시선을 부정함으로써 일관된 시선에서 오는 일말의 예측 가능성 마저도 분쇄하려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나아가, 이게 소재적으로 자연과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만큼 특정 시선으로부터의 탈피가,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부터의 탈피에 대한 느슨한 은유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B: 저는 개인적으로 '주인 없는 시선'이 좀 무의미할 정도로 말이 안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자연만 주구장창 몇 시간 동안 찍어 대는 그런 의도의 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조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관조적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시선의 주인이 없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익스트림 롱쇼트로 인물을 관조하듯 찍으면 그것도 그냥 주인 없는 시선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영화가 무척 고다르적이라고 느꼈어요. 고다르도 ‘왜 논리 정연한 상태로 숏이 나열돼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곤 했는데, 그 지점이 HJ가 말한 소위 '주인 없는 시선'과 비슷한 뉘앙스로 읽히는 것 같아요.
HG: 완전 동의합니다. 트래킹 쇼트 얘기를 또 하게 되는데, 그 부자연스러운 시선이 굉장히 인위적인 인간의 시선으로 느껴졌거든요. 우리가 특정 인물과 카메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일종의 간극이나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지, 그것을 인물의 시선에 대한 부정이라고 읽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MJ: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어떤 특정한 관성에 의해 자기 나름대로 질서를 조합하고 예측해 가면서 영화를 보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경우 계속해서 그런 관성과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지점들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런 교란을 통해 관객은 몰입이 깨져버리게 되고,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인 자신과는 분리된 세계인 ‘영화’를 관람하고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거겠죠. 초반 글램핑장 개발과 관련해서도, (인간 대 자연이라는 도식을 써서 보자면) 인간의 이야기가 좀 우위에 있는 것 같다가도, 후반 가서는 완전히 그게 무너져버리잖아요. 그것도 영화의 연속성을 깨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의 연장선 상에 있는것 같고요.
HJ: 그렇죠. 시각적으로든, 청각적으로든 끊임없이 감각에 대해 불연속적인 질감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해주고 있어요. 관객이 연속적이라고 느낄 법한 지점에서 계속해서 분절을 일으킴으로써, 영화가 관객에게 불편한 자극을 준다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