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이 왜 이래?
WEBZINE
WEDITOR 곽세현
요즈음 국내 인스타그램에서는 수많은 (자칭) 웹진들과 큐레이션 계정들이 창궐하고 있다-물론 이 글이 업로드되는 플랫폼도 웹진이다-. 평론가의 허들이 인스타그램 큐레이션 덕분에 최근 많이 낮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밈(Meme)을 전문으로 다루는 계정들의 성장 추이가 심상치 않다. “너 그 밈 몰라?”라는 말을 들으면 레이트 어답터가 되는 세상… 2023년 말에는 네임드 밈 계정들이 다수 참여한 <전국 밈자랑 대회> 오프라인 이벤트가 개최되기도 하며 밈 소비의식이 고취된 최근의 동향을 엿볼 수 있었다.
수려한 템플릿과 디자인을 갖추고 양질의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웹진, 또는 위트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함의한 이미지들을 업로드하는 밈 계정들도 충분히 많지만 구색만 대충 갖춘 상태로 굴러가는, 일반화할 수 있을 정도로 ‘양산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 계정들이 허다하다. 이러한 밈 계정들은 주로 디씨인사이드 혹은 X(구 트위터)에서 퍼온 ‘웃긴 이미지’를 그대로 올리거나 혹은 오타쿠를 자처하는 계정의 경우 여타 음지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짤’들을 수집하여 올리는 모습을 보이며, 이미 널리 퍼져있는 밈 이미지에 자의적으로 텍스트를 고쳐 단 이미지를 올리거나, 외국 레딧발 밈을 번역해서 들여오기도 한다. 과연 이런 계정들이 스스로를 ‘아카이브’라는 단어로 올려치기할 만한 수준인가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그저 ‘썰 집합소’나 ‘짤방 집합소’ 정도로 불러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이다
기본적인 포맷만 대충 갖춘 채, 오리지널리티를 결여한 상태로 그저 어떠한 이야기를 맥락없이 싣는 유사언론의 모습은 일반인과 공인의 경계가 흐릿해진 요즘의 온라인 세상에선 신기한 일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프로필 이름 옆에 붙은 인증 배지-파란색 체크 표시-는 신뢰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월정액으로 돈만 지불하면 누구든 이 상징을 갖다쓸 수 있는 세상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는 ‘Meta Verified’, X에서는 ‘X Premium’에 가입하면 만 19세 이상 누구나 월 2만 원 상당의 가격으로 이름 옆에 인증 배지를 달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파란 체크 표시가 붙었다고 그 계정을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양산되는 인스타그램 계정들이 ‘아카이브’나 ‘큐레이션’이라는 수식어를 기꺼이 셀프로 달 수 있는 요즈음의 동향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된다.
굳이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평소 자신의 관심사나 하위문화에 대한 지식을 양껏 표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공론장이 더욱 민주적인 방향으로 변모했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본인 일기장이나 블로그에나 적어도 될 정도의 얄팍한 개인사, 또는 세계가 어떻게 자신에게 감각적으로 현상하는지 중언부언 감상적인 서사를 쏟아내는 작업들이 그들의 수만 단위 팔로워들에게 칼럼 수준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결코 환영할 만한 사실이 아니다. 일상적 덤프(dump)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면서도, 글에서 묻어나는 개인사적인 측면이 여과되지도 않은 정보가 많은 곳에서 과잉 생산되고 있고 그것은 큰 피로감을 촉발한다. 나는 큐레이션과 아카이빙이라는 행위가 특정 누군가에게만 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으나, 내가 왜 이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웹진과 칼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어떠한 데이터가 소비되는 콘텍스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인터넷 세상을 부유하는 자료를 스윽 저장해서 본인의 좋은 미감과 입맛대로 수집하는 것은 스크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이러한 자료들을 한데 모아 업로드하는 행위가 ‘아카이빙’이라 명명하고 숭고성을 부여할 정도로 대단한 행위는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적절한 풍자와 사카즘(sarcasm)은 예로부터 계급사회에서 부르주아를 끌어내릴 수 있는 원동력이자 체제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사람들을 계몽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그러나 어떠한 대상에 대해 심도 깊은 통찰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로 남발되는 냉소와 풍자는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뚝 잘라먹은 형태의 ‘밈적 사고’만을 경험하게 한다. ‘밈적 사고’가 통상적인 사고 과정에 비해 유해한 이유는 타인의 사고에 본인의 이성을 의탁한다는 데에 있다. 줏대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밈으로만 소통하는 것은 개개인이 응당 거쳐야 할 건강한 사고 과정을 건너뛰게 한다. 어떠한 대상에 대한 사유가 A-B-C-D의 도식을 거쳐야 한다고 가정할 때, 밈을 보고 웃는 찰나의 시간 동안 우리는 중간 과정을 전부 생략하고 맨 끝에 웃음만이 남은, 껍데기만 남은 A-D의 사유 도식을 경험하게 된다. 밈은 사고를 보완하는 형태로 존재해야 하지, 사고 과정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또한 이때 발생하는 것은 비단 논리적 비약뿐만이 아니다. 밈적 사고에 절여진 뇌는 감정적으로 고양되고, 논리적 위험과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은 채 냉소적으로 웃음만을 남발하는 관성에 길들여지게 되며, 자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은 회피된다. 밈은 대상의 어떠한 한 특성만을 극대화하여 웃음을 유발하곤 하는데 그렇게 대표성을 띠고 부각된 정보 이외의 부수적인 것들은 말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략된 뒷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웃는 것과 모르고 웃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다. 이렇게 리터러시가 결여된 밈 수용이 계속된다면, 사고회로가 망가진 상태로 밈적인 발화밖에 하지 못하는 문장 자판기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과도한 밈적 사고의 엔딩은 반지성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밈적 사고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해 주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심해지면 D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A, B, C를 굳이 모두 거칠 필요가 없으니 무언가에 대해 제대로 통찰해 보려는 일말의 노력 따위 굳이 할 필요도 없어진다. 누군가가 알아서 메타적인 위치에 자신을 앉혀놓고 조소할 만한 거리들을 떠먹여 주니, 자신은 그저 타인에게 자아를 의탁하고 웃기만 하면 된다. 지식인을 자처하며 누군가를 계몽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저 무언가를 비웃으며 시간을 때울 만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 풍자형 밈을 남발하는 밈 아카이브 계정들은 번영을 누린다. 이는 메타인지의 고취가 아닌 공감 능력의 집단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충분한 지식이 선행되지 않은 얄팍한 위트가 누군가에게 은근히 지적이고 힙하게 어필되기를 바라는, 계정 뒤에 있을 사람의 비대한 자아가 느껴질 때 나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속 빈 강정 같은 큐레이션을 남발하며 뭐라도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자들, 밈 소비와 인스타그램 스토리 공유 혹은 저장을 통해 밈의 특성을 빠르게 편취하려 하는 자들, 그리고 댓글 창에서 벌어지는 열띤 드립 배틀과 줏대 없는 동조… 이런 것들은 공론장이라 부르기도 뭣하다.
수려한 템플릿과 디자인을 갖추고 양질의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웹진, 또는 위트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함의한 이미지들을 업로드하는 밈 계정들도 충분히 많지만 구색만 대충 갖춘 상태로 굴러가는, 일반화할 수 있을 정도로 ‘양산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 계정들이 허다하다. 이러한 밈 계정들은 주로 디씨인사이드 혹은 X(구 트위터)에서 퍼온 ‘웃긴 이미지’를 그대로 올리거나 혹은 오타쿠를 자처하는 계정의 경우 여타 음지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짤’들을 수집하여 올리는 모습을 보이며, 이미 널리 퍼져있는 밈 이미지에 자의적으로 텍스트를 고쳐 단 이미지를 올리거나, 외국 레딧발 밈을 번역해서 들여오기도 한다. 과연 이런 계정들이 스스로를 ‘아카이브’라는 단어로 올려치기할 만한 수준인가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그저 ‘썰 집합소’나 ‘짤방 집합소’ 정도로 불러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이다
기본적인 포맷만 대충 갖춘 채, 오리지널리티를 결여한 상태로 그저 어떠한 이야기를 맥락없이 싣는 유사언론의 모습은 일반인과 공인의 경계가 흐릿해진 요즘의 온라인 세상에선 신기한 일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프로필 이름 옆에 붙은 인증 배지-파란색 체크 표시-는 신뢰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월정액으로 돈만 지불하면 누구든 이 상징을 갖다쓸 수 있는 세상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는 ‘Meta Verified’, X에서는 ‘X Premium’에 가입하면 만 19세 이상 누구나 월 2만 원 상당의 가격으로 이름 옆에 인증 배지를 달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파란 체크 표시가 붙었다고 그 계정을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양산되는 인스타그램 계정들이 ‘아카이브’나 ‘큐레이션’이라는 수식어를 기꺼이 셀프로 달 수 있는 요즈음의 동향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된다.
굳이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평소 자신의 관심사나 하위문화에 대한 지식을 양껏 표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공론장이 더욱 민주적인 방향으로 변모했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본인 일기장이나 블로그에나 적어도 될 정도의 얄팍한 개인사, 또는 세계가 어떻게 자신에게 감각적으로 현상하는지 중언부언 감상적인 서사를 쏟아내는 작업들이 그들의 수만 단위 팔로워들에게 칼럼 수준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결코 환영할 만한 사실이 아니다. 일상적 덤프(dump)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면서도, 글에서 묻어나는 개인사적인 측면이 여과되지도 않은 정보가 많은 곳에서 과잉 생산되고 있고 그것은 큰 피로감을 촉발한다. 나는 큐레이션과 아카이빙이라는 행위가 특정 누군가에게만 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으나, 내가 왜 이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웹진과 칼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어떠한 데이터가 소비되는 콘텍스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인터넷 세상을 부유하는 자료를 스윽 저장해서 본인의 좋은 미감과 입맛대로 수집하는 것은 스크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이러한 자료들을 한데 모아 업로드하는 행위가 ‘아카이빙’이라 명명하고 숭고성을 부여할 정도로 대단한 행위는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적절한 풍자와 사카즘(sarcasm)은 예로부터 계급사회에서 부르주아를 끌어내릴 수 있는 원동력이자 체제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사람들을 계몽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그러나 어떠한 대상에 대해 심도 깊은 통찰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로 남발되는 냉소와 풍자는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뚝 잘라먹은 형태의 ‘밈적 사고’만을 경험하게 한다. ‘밈적 사고’가 통상적인 사고 과정에 비해 유해한 이유는 타인의 사고에 본인의 이성을 의탁한다는 데에 있다. 줏대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밈으로만 소통하는 것은 개개인이 응당 거쳐야 할 건강한 사고 과정을 건너뛰게 한다. 어떠한 대상에 대한 사유가 A-B-C-D의 도식을 거쳐야 한다고 가정할 때, 밈을 보고 웃는 찰나의 시간 동안 우리는 중간 과정을 전부 생략하고 맨 끝에 웃음만이 남은, 껍데기만 남은 A-D의 사유 도식을 경험하게 된다. 밈은 사고를 보완하는 형태로 존재해야 하지, 사고 과정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또한 이때 발생하는 것은 비단 논리적 비약뿐만이 아니다. 밈적 사고에 절여진 뇌는 감정적으로 고양되고, 논리적 위험과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은 채 냉소적으로 웃음만을 남발하는 관성에 길들여지게 되며, 자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은 회피된다. 밈은 대상의 어떠한 한 특성만을 극대화하여 웃음을 유발하곤 하는데 그렇게 대표성을 띠고 부각된 정보 이외의 부수적인 것들은 말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략된 뒷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웃는 것과 모르고 웃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다. 이렇게 리터러시가 결여된 밈 수용이 계속된다면, 사고회로가 망가진 상태로 밈적인 발화밖에 하지 못하는 문장 자판기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과도한 밈적 사고의 엔딩은 반지성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밈적 사고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해 주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심해지면 D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A, B, C를 굳이 모두 거칠 필요가 없으니 무언가에 대해 제대로 통찰해 보려는 일말의 노력 따위 굳이 할 필요도 없어진다. 누군가가 알아서 메타적인 위치에 자신을 앉혀놓고 조소할 만한 거리들을 떠먹여 주니, 자신은 그저 타인에게 자아를 의탁하고 웃기만 하면 된다. 지식인을 자처하며 누군가를 계몽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저 무언가를 비웃으며 시간을 때울 만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 풍자형 밈을 남발하는 밈 아카이브 계정들은 번영을 누린다. 이는 메타인지의 고취가 아닌 공감 능력의 집단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충분한 지식이 선행되지 않은 얄팍한 위트가 누군가에게 은근히 지적이고 힙하게 어필되기를 바라는, 계정 뒤에 있을 사람의 비대한 자아가 느껴질 때 나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속 빈 강정 같은 큐레이션을 남발하며 뭐라도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자들, 밈 소비와 인스타그램 스토리 공유 혹은 저장을 통해 밈의 특성을 빠르게 편취하려 하는 자들, 그리고 댓글 창에서 벌어지는 열띤 드립 배틀과 줏대 없는 동조… 이런 것들은 공론장이라 부르기도 뭣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