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저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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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황윤재

                                       

때는 지난주 목요일 이 모 군을 찾아간 연희동 카페에서였다. 옆자리 이 모 군이 할 일을 어서 마치고 중국집으로 향하기만을 기다리던 그때였다. 어딘가 익숙한 피아노 터치, 축복처럼 떨어지는 베이스와 동시에 바닥에서 울리는 그 익숙한 목소리. 설마. 설마 또 그는 아닐 거야. 그에게 받을 수 있는 은혜는 모두 받은 줄로만 알았던 나는 당황스러운 황홀함에 서둘러 샤잠을 켰다. 이럴 수가. 어김없이 뜨는 그 이름 ‘전람회’. 노래가 진행되며 높아지는 목소리와 커지는 브라스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전람회 2집을 통째로 돌려 듣지 않은 내 잘못을 재빨리 뉘우쳤다. 트랙 중 <J’s Bar에서>부터 <유서>까지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고 나머지 트랙들은 모두 나의 ‘김동률 essentials’ 플레이리스트에 있었으나, 딱 한 곡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트랙은 바로 남은 그 한 조각, <Blue Christmas>. 그는 내게 조금 이른 생일 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내 보였다.


음악 입맛에도 가정교육이 있다. 김동률의 4집 <토로>를 꺼내 들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던 그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차에서 ‘김동률 전공필수’를 선수강할 수 있었고 모르는 사이 그는 친근한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여러 음악을 거치며 그를 잊고 지내던 3년 전, 나의 아저씨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나를 찾아왔다. 익숙한 목소리의 그는 스무 살 여름의 나와 동갑인 소년의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부드러운 피아노와 베이스가 좋았다. 서동욱과 맞춰 입은 검정 스웨터에 하얀 카라가 좋았다. 울컥거리는 목소리가 좋았다. 그의 비쩍 마른 턱에서 처절함을 보았다. 그의 꽁지머리와 날카로운 턱은 잊지 못할 자극으로 남았다. 나는 그때 김동률로 ‘귀향’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아저씨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음악 앱들이 앞다투어 알려준 통계에 따르면 김동률을 올해 총 5,911분(…) 들었다.


* 3분 20초 부근에서 미스터치를 하며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동률을 듣기에 적합한 건조하고 차가운 날씨가 찾아왔다. 사실 그는 어느 계절에 들어도 좋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 겨울 날씨를 페어링한다고 표현해야 좋을 것이다.
<Blue Christmas – 전람회 (Exhibition 2, 1996)> 에 더해 추운 날들에 듣기 좋은 그의 음악 세 개를 소개한다.



1. <잔향 – 김동률 (토로, 2004)>

유학을 다녀온 이듬해 발매한 정규 4집의 수록곡이다. 그는 엔리오 모리코네와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매료되어 버클리에서 영화음악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취미로 삼고 브라스 사운드를 좋아했던 것에 그 영향이 더해져 그의 음악에서는 관현악의 색이 또렷하다. 이 곡 <잔향>은 김동률 음악의 백미라는 설명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동굴처럼 깊은 사랑과 가장 짜임새 있는 관현악단의 연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듣는다면 소리는 두 배로 마음에 엉긴다.





2. <산행(山行) – 베란다 프로젝트 (Day Off, 2010)>

그의 처절함 중 백미인 <이방인 – 전람회 (Exhibition 2, 1996)>을 적으려 했지만, 그러다가는 너무 추운 겨울이 될 것 같아 마음을 바꾸었다. 이 곡은 이상순이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일 때 김동률이 그를 찾아가 함께 만든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그곳이 그려진다. 아이보리 색 나무로 된 베란다 창을 열어두고 가을 직전 4시 정도의 햇살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이 앨범을 만드는 곳. 그 중에서도 이 곡 <산행>은 마음을 한껏 늘려주기에 추웠던 날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듣기 제격이다.





3.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 김동률 (KIMDONGRYUL LIVE 2019 오래된 노래, 2020>

2019년 콘서트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곡. 그의 라이브 앨범에서 일부는 트랜지션을 고려해서 이어 부른 곡이 있어 듣는 재미가 있다. 네 개의 라이브 앨범 중 사실 2008년의 것이 가장 좋다. 더 말하다 보면 주책맞을 것 같아 각설.
이소라의 곡을 그가 부른 버전이다. 이 곡은 원래 김동률의 6집에 수록되기로 했었으나 이후 그가 이소라에게 선물한 곡이다. 내게 이소라는 김동률에 대응되는 존재다. 둘은 모두 처절함의 끝까지 가 보았고 그곳에서의 경험을 노래했다. 건조한 겨울에 이소라가 부른 이 곡을 듣는다면 피부가 찢어질 우려가 있다. 대신 우리는 김동률의 것을 들으면 된다.


이 글을 쓰며 그의 과거 페이스북을 디깅하다 보니 그가 96년 이소라의 <너무 다른 널 보면서> 또한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서운 사실은 당장 어제 영화 <괴물>을 보고 나오는 길에 그 곡이 머리에 맴돌아서 찾아 들었다는 것. 너무 불안하고 두렵다. 이 아저씨의 축복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