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검정치마 좋아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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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이종천

                                       

혹시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즐겨듣는 노래 있으신가요?”
“저는 요즘 검정치마 즐겨 들어요!”
“아.. 검정치마 좋아하시는구나..”

상대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만 않았을 뿐,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알 수 있다. 금방, 이 사람은 나를 “요즘 전형적으로 검정치마를 듣는 사람”으로 분류하였고, 해당 부류의 사람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취향과 문화가 다원화되고 공동체가 붕괴한 세상이라 하지만, 여전히 견고한 인간의 습성은 정의하고, 평가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편을 가르려는 것이다. 우리는 타자와 자신이 어떤 위계 내에서 누가 높고 낮은지를 구분 지으려는 사회비교의 습성을 가지며, 이는 우리나라와 같이 집단주의적이고 유교적 문화권에 뿌리를 두는 사회에서 더욱 빈번히 일어난다. 대개 목격되는 비교의 종류는 상대가 나보다 열후하고, 내가 우월하다 느끼는 하향비교이다. 이는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이며, 상대방의 가치를 밟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는 자만심이다.

또한, 우리는 매사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도 당연할 것이 인간은 통제 불가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에 불안과 무력감을 느낀다. 통제의 첫걸음은 남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다. 별자리, 혈액형, MBTI의 열풍도 그의 일환이 아닐까.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남이 누구인지 명확히 정의 내리고 싶어 하며, 그에 기반하여 행동하고 말한다.

그렇다면 좀 전의 대화에서 나온 “요즘 전형적으로 검정치마를 듣는 사람”은 어떤 부류인가. 이는 청자가 검정치마류의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인지, 검정치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취향이든 존중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나뉜다.

화자가 검정치마를 즐겨 듣는다 했을 때, 검정치마를 정말 좋아하는 청자의 속마음: “아는 곡은 가장 대중적인 ‘Everything,’ ‘나랑 아니면,’ ‘기다린 만큼, 더,’ 세 곡 뿐이겠지? 가수의 본명이 조휴일이라는 것은 물론, 그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40대라는 것도 모르겠지? 분명, 검정치마를 처음 듣게 된 계기도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서, 혹은 유튜브에 떠도는 ‘우울할 때 듣는 플리’와 같은 제목의 플레이리스트 영상으로부터 접했을 거야. 이번 콘서트 티켓팅은 했으려나? 아니, 가본 적은 있으려나?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말콘 티켓팅 할 건데.”

화자가 검정치마를 즐겨 듣는다 했을 때, 검정치마류의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의 속마음: “저 사람은 ‘인디 음악’의 정의를 제대로 알기나 할까? 설마, 요즘 사람들처럼 적당히 조용한 밴드 사운드로 통칭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요즘 힙스터들은 브레이크비트나 저지 클럽 들어줘야 하는데. 뉴진스 곡들이 UK 개러지 기반인 건 알려나? ‘250’이나 ‘프랭크’는 당연히 못 들어봤을 거고. 난 해외 아티스트들도 많이 아는데. 골드링크도 좋지. 프랭크 오션은 언제쯤에나 복귀하려나. 걔 솔직히 다리 다쳤다고 코첼라 짼 거 너무했다.”

어떤 취향이든 존중하는 사람: 검정치마는 처음 들어봐요! 혹시 추천해주실만한 노래 있나요?




우리는 언제부터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내가 무얼 좋아하든 그건 자연스러운 감상이고 감정이다. 또,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해서 그 대상을 더 좋아한다고 볼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이 그 사람을 잘 알아서일까? 물론, 좋아하면 그 대상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을 수 있으나, ‘지식의 총량’과 ‘좋아하는 마음’은 꼭 비례하진 않으며, 이 둘은 서로의 필요충분조건도 아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에 자격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