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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김은빈
최근 들어 영화관에 대한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영화 보기는 영화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닌지 오래되었다. 이는 최근 OTT로 그 헤게모니가 넘어가면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영화관이라는 장소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영화관이 가진 조건들이 우리의 관람 경험을 넘어 영화 매체의 근원적 속성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재고해 보고, 오늘날에도 그것이 유효하기 위한 일종의 레시피를 제시하는 글이다.
영화관이 움직일 수 없는 푹신한 의자를 지닌 이유는 관객이 재생의 흐름에 참여해서 몰입하기를 영화관의 조건으로 상정해 두었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가 상영 도중 화장실에 가는 것을 기피하거나 잠들었을 때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영화관이라는 장소를 지배하는 시간이 ‘영화의 상영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때 영화관이 지정해 주는 상영 시간, ‘시작 15분 후부터는 입장 금지’ 등은 절대적인 조건들이 되고,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등 통상적으로 지켜지는 집중에 대한 의지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조건들이 된다. 이러한 장소의 조건은 타인에게도 확장되어 일명 ‘관크’(관객+Critical)’ -극장에서 휴대폰 사용하기, 좌석 발로 차기, 극장에서 떠들기- 에 대해서도 상당히 불편하고 예민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곧 암묵적인 룰로, 우리에게 작용하는 제한이 된다.
<안녕,용문객잔(2003)>에서 표현된 관크의 사례.
이런 조건과 제한들은 굉장히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에 영화의 내재적 요소들과 연결 지어 생각되는 경우는 잘 없고, 따라서 이는 개인의 ‘영화 감상기’ 자체에도 딱히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아! 뒤에 사람이 너무 시끄러워서 이 영화를 망쳤다.” 라든가, 혹은 유독 그날 다른 생각을 많이 해 영화에서 놓친 부분들이 많아지는 감상은 있지만. 이 정도 선에서는 단지 관객 개인의 경험으로 느껴질 뿐, 영화 매체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검토해 보면 약간 아리송하고도 누구나 할 법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A는 상영관에 15분 늦게 들어와 영화의 오프닝을 놓쳤다. A보다 1분 더 늦게 온 B는 영화관의 ‘상영 시작 후 15분 뒤 입장 금지’ 제한으로 인해 영화 감상의 기회를 놓쳤다. C는 A의 친구로, 소위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영화 관람을 했다. 15분의 러닝타임이 소거된 영화를 즐기고 나온 A는 친구 C와 아무렇지도 않게 감상평을 나누게 된다. A는 15분을 놓쳤지만 영화의 엔딩까지 보고 나온 입장에서 그저 “오프닝 장면이 대박이었는데!” 정도인 C의 말만 듣고 다소 아쉬움을 느끼긴 하겠지만, 자신은 어찌 되었든 영화를 봤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때 A가 본 ‘-15분 판본의 영화’는 도대체 무엇이 된 걸까? 또 B가 경험한 ‘사라진 영화’는 무엇이 된 걸까?
그런데 또 다른 매우 도드라지는 조건을 생각해 보자. 예를 들면 아이맥스. 소위 ‘용아맥’ (용산 아이맥스 상영관) 중독자들은 가뜩이나 비싸진 영화 값의 거진 두 배를 내고도 아이맥스라는 기업의 산업 시스템 속에서 영화를 관람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은 그것이 ‘찐’이라며 아이맥스 영화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기에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지 않은 것은 진짜를 보지 않은 것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앗, 그런데 사실 이 영화 훌리건이 흉흉한 소문 속에서 말고, 실제로 목격된 사례는 나에게 없었다. 다만 이런 자들의 횡포로 아이맥스 경험을 놓치면 영화 자체를 놓치는 경험을 하게 될까 두려움에 빠진 관람자들만 있을 뿐. 혹시 이런 흉흉한 소문은 아이맥스 마케팅 홍보팀이 만들어 낸 상상의 괴물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일부 시민들.
여하튼 매혹적인 아이맥스 영화관의 조건엔 물리적으로 다른 화면비와 자본으로 더 나아진 기술적 여건, 더 화려해진 시각적 스펙터클 등이 있다. 심지어 이런 조건들은 너무 웅장해서 그들이 영화의 내재적 요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정말 아이맥스로 상영되는 영화는 이 영화관의 조건에 따라 기존 영화를 바꿔 놓고 있을까?
만약 이 논리를 따라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려는 참에 아이맥스 버전 영화와 일반 상영관 버전 영화가 다름을, 즉 영화관에서의 한 조건이 영화의 내재적 요소까지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앞서 말한 모든 조건들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15분이 잘린 영화와 16분이 되어 사라진 영화부터 잠들어버려 중간에 구멍이 뚫린 영화, 화장실에 간 사이에 진행된 영화, 순간의 딴 생각으로 인해 빈 구멍이 생겨버린 영화나 각자 다른 눈 깜빡임 사이를 스쳐 지나간 쇼트와 프레임까지, 따지면 끝도 없다. 모든 영화관의 조건과 제한은 개개인이 다른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영화관에서 한 개인의 경험이 제각기 다른 영화를 생산해 낼 수도 있다는 영화의 존재론적 신비함. 기술 복제 시대에 태어난 영화가 가진 숙명적 무한한 이미지 생산의 가능성.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세상의 일부. 거기에 담긴 세상의 이미지들을 접속하고 분배하는 기계적 과정의 수렴(정성일)”. 영화관의 공간적 조건은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경험, 또 영화.
나는 결국 돌고 돌아 우리가 여전히 영화관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피력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물론 나도 OTT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볼 때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나아가 나는 ‘영화 해적질 문화’ 또한 영화가 가진 매체적 특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심지어 이를 긍정하고 좋아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영화관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을 더 강조하고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환상적인 영화관 레시피(Recipe)를 만들어 보았다. 이 레시피는 영화관의 조건들이 만들어 내는 ‘다른 영화 생성 지점’을 임의로 확대시켜 과장하는 레시피다. 실제로 모종의 이유(과제) 때문에 이런 지침을 따라 영화를 보게 되었던 필자는 아주 특별한 극장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 한 번 시도 해보시길. 이 글의 제목처럼 영화관에서 영화를 ‘편집’할 수 있다.
•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되,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보거나, 다른 영화의 사운드를 틀고 본다.
• 안대를 쓰고 사운드만 듣는다.
• 중간중간 나갔다 오거나, 몇몇 씬, 시퀀스를 빼먹고 보며 자체적으로 영화에 구멍을 내본다.
• 영화를 보다 잠에 든다. 계속 시도하다 운이 좋으면 꿈을 꿔서 영화의 내용에 꿈의 내용을 덧입힐 수 있다.
• 컬러 선글라스나 3D안경을 가져가 다른 필터로 덧씌워진 영화를 본다.
영화관이 움직일 수 없는 푹신한 의자를 지닌 이유는 관객이 재생의 흐름에 참여해서 몰입하기를 영화관의 조건으로 상정해 두었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가 상영 도중 화장실에 가는 것을 기피하거나 잠들었을 때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영화관이라는 장소를 지배하는 시간이 ‘영화의 상영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때 영화관이 지정해 주는 상영 시간, ‘시작 15분 후부터는 입장 금지’ 등은 절대적인 조건들이 되고,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등 통상적으로 지켜지는 집중에 대한 의지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조건들이 된다. 이러한 장소의 조건은 타인에게도 확장되어 일명 ‘관크’(관객+Critical)’ -극장에서 휴대폰 사용하기, 좌석 발로 차기, 극장에서 떠들기- 에 대해서도 상당히 불편하고 예민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곧 암묵적인 룰로, 우리에게 작용하는 제한이 된다.
이런 조건과 제한들은 굉장히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에 영화의 내재적 요소들과 연결 지어 생각되는 경우는 잘 없고, 따라서 이는 개인의 ‘영화 감상기’ 자체에도 딱히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아! 뒤에 사람이 너무 시끄러워서 이 영화를 망쳤다.” 라든가, 혹은 유독 그날 다른 생각을 많이 해 영화에서 놓친 부분들이 많아지는 감상은 있지만. 이 정도 선에서는 단지 관객 개인의 경험으로 느껴질 뿐, 영화 매체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검토해 보면 약간 아리송하고도 누구나 할 법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A는 상영관에 15분 늦게 들어와 영화의 오프닝을 놓쳤다. A보다 1분 더 늦게 온 B는 영화관의 ‘상영 시작 후 15분 뒤 입장 금지’ 제한으로 인해 영화 감상의 기회를 놓쳤다. C는 A의 친구로, 소위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영화 관람을 했다. 15분의 러닝타임이 소거된 영화를 즐기고 나온 A는 친구 C와 아무렇지도 않게 감상평을 나누게 된다. A는 15분을 놓쳤지만 영화의 엔딩까지 보고 나온 입장에서 그저 “오프닝 장면이 대박이었는데!” 정도인 C의 말만 듣고 다소 아쉬움을 느끼긴 하겠지만, 자신은 어찌 되었든 영화를 봤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때 A가 본 ‘-15분 판본의 영화’는 도대체 무엇이 된 걸까? 또 B가 경험한 ‘사라진 영화’는 무엇이 된 걸까?
그런데 또 다른 매우 도드라지는 조건을 생각해 보자. 예를 들면 아이맥스. 소위 ‘용아맥’ (용산 아이맥스 상영관) 중독자들은 가뜩이나 비싸진 영화 값의 거진 두 배를 내고도 아이맥스라는 기업의 산업 시스템 속에서 영화를 관람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은 그것이 ‘찐’이라며 아이맥스 영화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기에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지 않은 것은 진짜를 보지 않은 것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앗, 그런데 사실 이 영화 훌리건이 흉흉한 소문 속에서 말고, 실제로 목격된 사례는 나에게 없었다. 다만 이런 자들의 횡포로 아이맥스 경험을 놓치면 영화 자체를 놓치는 경험을 하게 될까 두려움에 빠진 관람자들만 있을 뿐. 혹시 이런 흉흉한 소문은 아이맥스 마케팅 홍보팀이 만들어 낸 상상의 괴물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일부 시민들.
여하튼 매혹적인 아이맥스 영화관의 조건엔 물리적으로 다른 화면비와 자본으로 더 나아진 기술적 여건, 더 화려해진 시각적 스펙터클 등이 있다. 심지어 이런 조건들은 너무 웅장해서 그들이 영화의 내재적 요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정말 아이맥스로 상영되는 영화는 이 영화관의 조건에 따라 기존 영화를 바꿔 놓고 있을까?
만약 이 논리를 따라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려는 참에 아이맥스 버전 영화와 일반 상영관 버전 영화가 다름을, 즉 영화관에서의 한 조건이 영화의 내재적 요소까지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앞서 말한 모든 조건들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15분이 잘린 영화와 16분이 되어 사라진 영화부터 잠들어버려 중간에 구멍이 뚫린 영화, 화장실에 간 사이에 진행된 영화, 순간의 딴 생각으로 인해 빈 구멍이 생겨버린 영화나 각자 다른 눈 깜빡임 사이를 스쳐 지나간 쇼트와 프레임까지, 따지면 끝도 없다. 모든 영화관의 조건과 제한은 개개인이 다른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영화관에서 한 개인의 경험이 제각기 다른 영화를 생산해 낼 수도 있다는 영화의 존재론적 신비함. 기술 복제 시대에 태어난 영화가 가진 숙명적 무한한 이미지 생산의 가능성.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세상의 일부. 거기에 담긴 세상의 이미지들을 접속하고 분배하는 기계적 과정의 수렴(정성일)”. 영화관의 공간적 조건은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경험, 또 영화.
나는 결국 돌고 돌아 우리가 여전히 영화관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피력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물론 나도 OTT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볼 때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나아가 나는 ‘영화 해적질 문화’ 또한 영화가 가진 매체적 특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심지어 이를 긍정하고 좋아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영화관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을 더 강조하고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환상적인 영화관 레시피(Recipe)를 만들어 보았다. 이 레시피는 영화관의 조건들이 만들어 내는 ‘다른 영화 생성 지점’을 임의로 확대시켜 과장하는 레시피다. 실제로 모종의 이유(과제) 때문에 이런 지침을 따라 영화를 보게 되었던 필자는 아주 특별한 극장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 한 번 시도 해보시길. 이 글의 제목처럼 영화관에서 영화를 ‘편집’할 수 있다.
•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되,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보거나, 다른 영화의 사운드를 틀고 본다.
• 안대를 쓰고 사운드만 듣는다.
• 중간중간 나갔다 오거나, 몇몇 씬, 시퀀스를 빼먹고 보며 자체적으로 영화에 구멍을 내본다.
• 영화를 보다 잠에 든다. 계속 시도하다 운이 좋으면 꿈을 꿔서 영화의 내용에 꿈의 내용을 덧입힐 수 있다.
• 컬러 선글라스나 3D안경을 가져가 다른 필터로 덧씌워진 영화를 본다.
!~영화관에서 편집을 하다~? + 몇 가지 매뉴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