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으로 정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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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곽세현

                                       

그래픽 디자인 업계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독과점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어도비(Adobe) 사의 간판격 프로그램 포토샵(Photoshop). 포토샵은 디자인을 업으로 삼지 않는 비(非) 디자이너들도 즐겨 사용하는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그 영향력은 우리의 언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사진을 보정한다는 행위를 속된 말로 ‘뽀샵한다’고 하지 않는가.

포토샵은 매우 강력한 이미지 변형 도구이다. 원래는 명도, 채도와 같은 척도를 개선하는 소극적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2020년대에 이른 현재에는 원본 이미지에서 아쉬웠던 지점을 제작자가 능동적으로 얼마든지 없앨 수도 있다. ‘올가미 툴’을 이용하면 이미지에 있는 오브젝트가 자동으로 선택되며, 픽셀 유동화를 사용하면 특정 부분을 늘리거나 비틀 수 있다. ‘마법봉 툴’을 사용하면 요철과 잡티를 자동으로 지워줌과 동시에 주변 영역을 감지하여 깨끗하게 새로 메꿔준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도입되면서 포토샵은 국소 부위의 삭제 혹은 다듬기에 머물지 않고, 선택된 영역을 아예 재창조해버리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위의 사진 두 장은 어도비 사의 공식 블로그에서 포토샵에 새로 추가된 생성형 인공지능 기능을 홍보하는 이미지다. 좌측의 원본 사진을 보면 썩 나쁘지는 않다. 효과가 적용된 우측 사진을 보면 비어있던 하늘에 자동차 모양 구름이 생겨났고, 지면에도 자동차와 웅덩이가 생겼다. 심지어 웅덩이에 반사된 자동차의 모습이 놀랍도록 현실적이라 감탄사가 나온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사진의 중앙부다. ‘원래 하늘에 떠 있던 구름’ 부분을 주목하여 비교해 보자. 원래 있던 구름의 형태마저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가? 보정 전후 과정을 짧게 들여다보았을 때, 원래 있던 구름까지 보정되었으리라고는 쉽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마수는 일부 몇 군데가 아닌 사진 전체에 적용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이제 포토샵은 이제 영역이나 부위의 개념이 아닌 이미지 전체를 송두리째 변형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포토샵을 사용하는 사람은 현실조차도 묻어버릴 수 있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배경은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다. 이 국가의 원수이자 최고 권력자인 빅 브라더는 언론을 통해 진실을 적극적으로 엄폐하고 통제하는데, 언론에 이미 등장한 적 있는 자가 체포되거나 처형되면 기사를 고치거나 사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식으로 수많은 특정인들의 흔적을 삭제한다. 이러한 방식의 언론 통제와 기록 말살 형은 존재의 비가시화를 통해 절대 권력자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정치적 의도를 확산한다. 포토샵으로 인물을 삭제하는 것을 비꼬는 ‘포토촙(photochop)’이라는 신조어도 있을 정도로, 이는 말 그대로 사람을 썰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이토록 오싹한 언론 통제를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단순히 현실의 (유사) 공산주의 국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매 순간 접하는 거의 모든 이미지들은 우리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깨끗하게 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대다수의 이미지들은 생산자(또는 이미지 테크니션)의 의도에 맞게 미미한 부분일지라도 변형되어 있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마주하는 사진들 중 포토샵을 거치지 않은 것은 얼마나 있을까. 매체 속 부유하는 무수한 이미지의 바다 중 ‘진짜’ 원본 이미지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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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의 기록말살형이 현실에 적용된 사례-즉 포토샵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몇 가지 포토촙의 사례를 살펴보자.



좌측의 사진은 1937년 모스크바 운하 옆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중앙에 있는 인물은 스탈린, 그 우측에 서 있는 인물이 니콜라이 예조프다. 그는 공산당 내부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진이나 언론 매체 조작을 통해 정적들의 체포와 처형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1940년에 예조프는 스탈린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그는 숙청당해 처형되었고 우측 사진처럼 기록에서 삭제됐다. 삭제 담당자도 이처럼 순식간에 삭제당할 수 있다.




1976년에는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톈안먼 광장에서 그의 장례식이 열렸는데, 그 당시 촬영한 고위 인사들의 공식 사진에서 소위 ‘4인방’이라고 불린 중국 공산당의 고위급 간부 4인이 온데간데없이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중 한명은 마오쩌둥의 아내이며 ‘4인방’은 마오쩌둥 사후에 공산당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지자 한 달 만에 체포되었고, 말 그대로 ‘삭제’되어버린 것.



마오쩌둥 하면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릴 그의 대표적인 사진. 마오쩌둥은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 무려 71세였다고 한다. 놀랍도록 주름 없이 매끈한 피부와 잘 맞는 좌우대칭, 그리고 광택 있는 검은 머리칼을 고려했을 때 이제는 ‘확실히 뽀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사진은 ‘흠결 없이 자애로운 인상을 풍기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수정하여 탄생한 결과물’이라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의 얼굴이 늙어가기 시작하면 젊은 이미지를 되살리는 데 갖은 노력을 동원해야 한다. 시리아의 공영 통신사에서 보도된 당시 46세였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2012년 사진은 그에게 미소년 같은 매력을 부여하기 위해 가해진 수정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명암도 없이 허여멀겋기만 한 피부 표면에서 ‘뽀샵을 한’ 게 너무 티가 난다! 이 사진을 보정한 자가 누구든, 그는 자연스러운 보정에는 소질이 없다.




포토샵은 정치적 목적으로 존재를 삭제(또는 관념적 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검열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미국 유타 주의 워새치 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의 신체 노출을 가리기 위해 졸업앨범 사진을 검열한 사건이 있었다. 깊게 파인 V넥 상의는 스퀘어넥으로 변모했으며, 원본 이미지의 쇄골 부근에 있던 문신도 온데간데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종교경찰처럼 수작업으로 사진을 하나하나 편집했다고 한다.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케아(IKEA) 웹사이트 메인에 있는 카탈로그에서는 여성들의 모습이 모조리 삭제되었다. 오리지널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케아의 본고장 스웨덴의 웹사이트와 비교해 보면, 나머지는 그대로인데 여성들만 사라졌다. 이 사건이 이슈화되자 이케아 측은 회사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이었다며 뒤늦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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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테크니션은 미처 눈치채지 못할 영역까지 사진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변형해 놓을 수 있다. 이는 매체 생산자와 수용자 간의 격차를 점차 기형적으로 벌릴 것이다. 또한 이 격차는 2차원적인 ‘거리’ 개념이 아닌 3차원적인 개념이기에 생산자와 수용자는 더이상 동일 선상에 놓일 수도 없다. 저차원에 있는 존재가 고차원에 있는 존재를 영원히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한 국소부위의 보정만이 아닌 적극적인 현실 조작을 통해 이미지 생산자는 x, y축뿐만 아니라 z축에도 좌표를 차지하게 된다.

변형된 이미지는 무엇이 좋은가? 켕기는 부분 없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전혀 불편하지도 않다. 흠잡을 데 없이 깔끔히 정제된 이미지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쾌적한 경험인가. 그렇게 그 쾌적함 밑에 본래 모습은 덮어씌워지고 지워진다. 제작자의 의도에 충실(loyal)하기 위해 원본 따위는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좋다. 포토샵으로 보정되고 변형된 이미지 하나하나에 현실의 희생이 깃들어 있다. 기술복제 시대, 이미 복사본으로 가득차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무엇이 원본인지조차도 전혀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