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들에 끌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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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정효송

                                       

왜 우리는 ‘나쁜’ 것들에 끌리는가. 여자들은 왜 나쁜 남자에게 또 마음을 뺏기는가. 아이들은 왜 깊숙이 숨겨둔 초콜릿 상자에 손을 대는가. 나에게도 이유를 말할 수 없는 끌림을 주는 ‘나쁜’ 취향이 있다. 애써 눈을 피했는데, 홀린 듯 돌아보게 하는 ‘헤로인 시크’. 세상을 구하는 주인공 히어로 옆에 더 눈길이 가는, 어쩐지 사연 있어 보이는 악당 같은 존재.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잠시 잊고, 한 번 나를 유혹하는 그 매력에 대해 들어보라.

창백한 피부, 움푹 들어간 눈과 그 밑에 길게 드리운 다크서클. 삐쩍 마른 몸과 헝클어진 머리. 마치 마약을 한 것 같은 모습을 한 젊은이들이 1990년대 초 거리를 활보한다. 1980년대 에이즈가 유행하던 시절, 더러운 바늘로 헤로인을 주입하여 많은 사고가 발생하자, 헤로인의 순도를 높여 그 가루를 코로 직접 흡입하는 방식이 등장한다. 예전만큼 마약이 치명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생기는 틈을 타 헤로인은 중상층 사이에 무섭게 퍼진다. 특히 마약은 문화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헤로인 사용과 마약 문화는  <Singles>, <Trainspotting>, <Kids>, <Pulp Fiction>과 같은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여과없이 투영된다. 90년대 초부터 시애틀을 중심으로 그런지 얼터너티브 락 음악과 서브컬처가 유행하는데, 마약에 취한, 심지어 그에 중독된 예술가들의 모습이 매일같이 보도된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헤로인 시크 패션이 떠오른다. 그런지 스타일과도 매우 닮아 있는 헤로인 시크는 패션계의 서브컬처로 자리매김한다.

90년대 유스컬처와 카운터 컬처를 그대로 포착한 사진으로 패션계를 뒤바꾼 포토그래퍼 Corinne Day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어깨패드와 화장’, 모든 게 거짓되었던 80년대 패션을 싫어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1990년 당시 무명이던 Kate Moss를 발굴하여 그녀를 평생 친구이자 뮤즈로 삼는다. 건강하고 볼륨감 있는 몸매로 80년대를 풍미한 Cindy Crawford, Claudia Schiffer 등에 반기를 든 Moss는 금세 주목을 받는다. 그해 7월 The Face에 실린 Day의 8페이지짜리 ‘The 3rd Summer of Love’에는 그녀가 사랑한 16살의 Kate Moss가 온전히 느껴진다. 순간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세상에 내보이는, 그 어린 용기를 그녀는 담아낸다. 상의를 입지 않은 파격적인 사진도 있지만 대중에게 큰 반감을 사지는 않는다. 하지만 1993년 6월 British Vogue ‘Under Exposure’은 달랐다. 란제리 아래로 빼빼 마른 몸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들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거식증과 아동 성착취를 조장한다며 비평가들은 비난하고, 그중 하나였던 기자 Amy Spindler에 의해 ‘헤로인 시크’라는 표현이 탄생한다.



그런 속에서 Calvin Klein은 비주류 잡지에서만 다루던 헤로인 시크 스타일을 처음으로 주류에 들여오는 시도를 한다. 특히 주요 광고 캠페인에 적극 활용했는데, Vincent Gallo가 기획한 Calvin Klein의 향수 ‘Obsession’이 대표적이다. 깡마른 어린 소녀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는 이 사진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는 동시에 전에 없던 자연스러운 Moss만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이 광고를 촬영한, 당시 Moss의 남자친구 Mario Sorrenti도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Moss와 함께 헤로인 시크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간 건 Davide Sorrenti이다(그렇다. Mario의 동생이다.) 처음부터 그가 전문 포토그래퍼였던 건 아니다. 보드를 타고 벽에 낙서를 하며 마약을 하는 젊음을 담는 또 다른 한 젊음일 뿐이었다. 모델이자 포토그래퍼인 어머니 Francesca Sorrenti가 그의 재능을 발견해준 덕에, 그는 95년부터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뛰어든다. 그의 사진 속에서 유명브랜드의 비싼 옷은, 기괴하고 불편한 포즈를 한 앙상한 모델에 걸쳐져 있을 뿐이다.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그의 사진들은 에디터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거의 항상 Kate Moss, Mila Jovovich, Jaime King와 함께 한 그의 작품은 Interview, Detour, Ray Gun, iD 등 거대한 잡지사에 게재된다.



그의 여자친구 배우 Jaime King도 헤로인 시크 모델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Sid Vicious, Kurt Cobain, Jerry Garcia 등 마약중독자들의 사진이 걸린 방 바닥에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는 Jaimie의 사진은 그녀를 단숨에 스타로 만든다. 사진 속 그녀는 씻지 않은 듯한 몰골로 찢어진 옷을 입고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근 SNS에 이 사진을 업로드하며 이제는 그 트라우마를 털어낸 듯 보이나, 당시 그녀는 사진을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떨 만큼 둘은 거센 비난에 시달린다.

역설적이게도 헤로인 시크 트렌드의 마침표를 찍은 것 역시 Davide이다. 1997년 2월 4일. 패션계에 입문한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그는 유전성 지중해 빈혈로 사망한다. 언론은 잦은 마약복용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보도하고 그가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에만 집중한다. 그해 5월 대통령 Clinton은 “….the glorification of heroin is not creative, it’s destructive. It’s not beautiful; it’s ugly. And this is not about art; it’s about life and death.(헤로인을 향한 찬양은 창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파괴적이다. 그것은 아름답지 않다; 추하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라 헤로인 시크를 정면 비판한다. 죽음을 애도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그의 죽음은 더럽혀지고, Francesca는 아들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헤로인 시크 반대운동에 적극 동참한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1999년 6월 Vogue는 Gisele Bündchen 사진과 함께 “The Return of the Sexy Model" 문구를 적은 표지로 헤로인 시크 시대의 종말을 알린다.  

이렇게 10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헤로인 시크는 빠르게 뜨고 진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줄만 알았던 헤로인 시크는  여전히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라지지 못한, 아니 버려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헤로인 시크’가 버려 지길 바란다. 나쁜 걸 ‘시크하다’고 포장해 인간을 농락하는 악마의 꼬임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헤로인 시크(달리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헤로인 시크’는 사회가 만든, (따옴표 없는)헤로인 시크는 처음 의도한 이미지의 스타일을 가리킨다.)가 세상에 나오기를 바란다. 헤로인 시크의 처음은 순수했다. 아니 선하기까지 하다. Day나 Davide는 가식과 장식은 다 걷어낸 솔직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Moss도 당시 현실성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과 반대되는, 어딘가 아슬아슬한 인간미로 사랑을 받는다. 헤로인 시크라 불리게 되는 이 이미지들은 진실한 인간의 본모습을 담고 있다.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게 불편하겠지만, 우리 모두 그런 모습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이를 피하지 않고, 그마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을 알려주고자 용기를 낸다. 그 순수함과 용기를 왜곡한 건 사회다. 미디어는 마약과 아동 포르노그라피, 거식증 등을 조장한다며 이들을 ‘헤로인 시크’라 이름 붙여 매도한다. 기업은 이들이 만들어낸 트렌드에 편승하기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끼워팔기’ 상술로 사용한다. 대중은 이런 이익집단이 생산해낸 이미지만을 맹목적으로 소비한다. 일부는 이들을 무분별하게 비난하고, 나머지, 특히 젊은 세대는, 그 거짓된 이미지를 선망한다. 단순하고 틀에 갇힌 사회는 아직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나 보다.



모든 이미지는 스토리를 가진다. ‘헤로인 시크’가 아닌 헤로인 시크도 그랬을 것이다. 당시 영화나 드라마, 음악에서도 헤로인 시크 스타일이 유행했는데 왜 패션에는 그토록 매정했을까. 다른 예술형식으로는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할 수 있게까지 해주면서 패션은 왜 침묵하게 하냐는 말이다. 패션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더 강하고 깊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새롭고 다르고 그래서 멋진 패션스타일은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하고, 우리는 늘 그것을 추구하고 동경한다. 하지만 패션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 소비를 이끌어내는 사업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뜻을 전하는 예술이다. 영향력이 있는 만큼 책임을 다하되, 표현의 수단으로서 조금은 자율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헤로인 시크 스타일이 이렇게 손가락질만 받고 끝났어야 했던 게 아쉽다. 그 속에 담긴 스토리가 분명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마치 히어로 영화 속 악당처럼 말이다. 조커도, 크루엘라도 다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듯. 이로 인해 그들의 잘못이 결코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잘못이 있어도 사랑할 수는 있으니까. 그래서 고백한다. 내가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너를 사랑할 수 있게 다시 세상에 나와달라고. 사람들이 너의 이야기를 조금은 들어줄 수 있게 이번에는 너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사실 잘 모르겠다. 조금 선을 넘어도, 때로는 말썽을 부려도 모르는 척해줄 수 있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아서라도 편을 들 수도 있겠다. 왜 우리는 나쁜 것들에 끌리는가. 아,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