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존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거지.
WEBZINE
WEDITOR 장태원
영국의 전설적인 개그 듀오 갤러거 형제(Gallagher Brothers)가 남긴 어록이다. 전성기 이후 파국으로 치달았던 오아시스(oasis)는 정말 자기들 맘대로 아무 음악이나 만들었다. 그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었다. 음악은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근 몇 년 동안 럭셔리 패션 신(Scene)의 쇼를 보며 감동을 받았던 순간도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따금씩 이 산업에 로맨스가 남아있는지 회의하기도 한다. 그 사고의 뇌관에 불을 붙인 불씨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퍼렐 윌리엄스(Pharell Williams) 기용이었다. 루이 비통이라는 유서 깊은 레이블이 가수와 손을 잡고 컬렉션을 전개하는 일은 상징성이 크다. 루이 비통이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함께 2019년부터 컬렉션을 함께 해오며 레이블의 색은 크게 변했다. 여성복을 담당하는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 Ghesquière)는 우직하게 우아한 옷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로고 플레잉과 SNS 바이럴 마케팅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옷의 형태와 색채 그리고 만듦새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
20세기 초를 향한 동경이 남아있다. 럭셔리 패션은 철저하게 옷의 아름다움을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감정을 촉발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신의 임무다. 불세출의 디자이너이자 바이어스 재단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와 같은 인물이 가장 이상적인 로맨틱한 럭셔리 패션 디자이너다.(1) 그녀는 미디어의 전면에 나선 동시대의 코코 샤넬(Coco Chanel)과 달리 대중 앞에 서는 것을 피했다. 대신 그녀는 묵묵하게 옷을 만들었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설파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언제나 획기적이었다.(2 ~ 8) 고대 그리스의 복식과 바이어스 재단을 차용함으로써 코르셋이 만연했던 당시의 동향과 다른 새로운 의복과 신체의 아름다움을 제시했다. 패션 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비오네의 옷은 범역사적 아름다움에 관해 탐구하고 사회가 나아갈 사상적 신지평을 연 위대한 작품이다. 미학적 측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부터 고전양식과 입체파의 경향까지 패션에 녹여냈고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kun)과 르 코르뷔지에(Le Corbuisier), 아메데 오장팡(Amédée Ozenfant) 등의 인물에게 영감을 받아 그들의 행위와 창작물에서 도출된 미학적 성과들을 심도 있게 탐구했다.
럭셔리는 심오하다. 수많은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그 아름다움을 찬미해야 한다. 또한 럭셔리는 복잡하고 세밀한 창작에 탐닉하여야 완성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럭셔리는 아름다움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식이다. 극도로 상업주의적인 기업의 경영 방식이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다. 꾸뛰르(Couture) 컬렉션을 발매하지 않는 럭셔리 레이블도 SS RTW, FW RTW, SS Menswear, FW Menswear, Resort, Pre-Fall에 여러 가지 캡슐 컬렉션까지 포함하면 1년에 최소 6번 이상의 컬렉션을 발매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간에 쪼들리는 디자이너들은 머리를 쥐어짜 내 어떻게든 옷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소모적인 산업 구조는 디자이너들이 창작을 지속할 힘을 뺏어간다. 전설적인 꾸뛰리에(Couturier)인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는 지나치게 잦은 쇼를 하는 업계 관례에 “상업주의의 불”이라는 비판을 했다. 그는 무분별하게 컬렉션을 선보이기보단 치밀한 준비 끝에 그가 준비가 되었을 때만 세상에 나타난다. 또한 모든 과정에 그는 직접 관여를 하며 소재와 봉제 그리고 여체(女體)에 관한 깊은 탐구를 통해 가장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보인다.
트렌드와 판매고에 목을 매는 경영 방식 또한 럭셔리의 가치를 저해한다. 발렌시아가(Balenciaga)와 지방시(Givenchy) 모두 래퍼들과 셀러브리티에게 의존하는 쇼를 선보이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현재는 결별한 예(YE)와의 관계를 통해 지방시와 알릭스(1017 ALYX 9SM)로 표상되는 메튜 윌리엄스(Matthew Williams) 사단은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를 중심으로 하는 오피움(OPIUM)에 의존하고 있다.(1 ~ 5) 럭셔리 패션은 하우스 각각이 표방하는 가치와 치밀한 설계로 운용되어야 하지 하입(Hype)을 만들어내는데 지나면 안된다. 이번 FW 2023 컬렉션에서도 역시나 트렌드에 편승한 비슷한 디자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드러났다. 디젤(Diesel)과 베르사체(Versace)도 발렌시아가와 마찬가지로 레이브 웨어(Rave Wear)-레이브 웨어에 관한 비판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6 ~ 7) 레이브 웨어는 문화적으로 흥미롭고 20세기 말엽부터 포스트-펜데믹의 현재까지의 청년들의 시대정신을 담는 방식 중 하나이다-를 표방했다. 맥락이 소거된 채로 단지 고스 닌자 같은 모습을 한 모델들을 보는 일은 고루하다. 어떤 게 더 바이럴이 잘될지 겨루는 것 같은 모습이다. 또 자주 보였던 일관적인 오버사이즈드 실루엣 또한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아직까지 다들 라프 시몬스(Raf Simons)와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그리고 베트멍(Vetements)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8 ~ 10)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나 발렌티노(Valentino)와 같은 유서 깊은 레이블부터 루아르(Luar)와 에크하우스 라타(Eckhaus Latta)와 같은 신생 레이블까지도 무거운 어깨와 지하철에 앉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품의 자켓을 쏟아냈다.(11 ~ 14)
천편일률적인 트렌드만이 문제가 아니다. 디자인적 기조가 존재한다는 건,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외려 지나온 패션의 흐름에 대한 객관화가 완료되었다는 방증이고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더 큰 문제점은 셀러브리티의 범람이다. 전술한 루이 비통의 남성복, 발렌시아가와 지방시를 가장 문제시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디자인적 우수성보다는 셀러브리티의 힘이 비대해지는 작금의 사태는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디자이너들조차 디자이너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이하 CD)라는 직함에 묶이고 시즌 따라 이적하는 축구선수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브랜드의 성격보다는 CD의 색이 중요해지고 그들도 하나의 셀러브리티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54년 동안 펜디(Fendi)에 재직했었고 36년 동안 샤넬(Chanel)에 재직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세웠다. 하지만 현재 많은 레이블들은 유행에 따라 CD를 갈아치우고 있다.
로샤스(Rochas)는 2021년 24세의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을 CD로 기용했다.(1) 로샤스의 FW 2005 RTW 컬렉션이나 FW 2011 RTW 컬렉션을 보면 시크하면서도 이국적인 로샤스만의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2 ~ 3) 이러한 점이 메종(Maison)의 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포인트이다. 하지만 빌모랭이 로샤스를 전담하기 시작한 SS 2022 RTW 컬렉션부터 빌모랭의 색이 지나치게 섞여 들어갔다.(4 ~ 6) 다시금 본래 메종의 색채를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나 현재로서는 그의 팔레트가 지나치게 느껴진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Alessandro Dell’Acqua)가 맡던 로샤스가 이전의 색을 외려 잘 이어오고 있었다.(7 ~ 8) 빌모랭의 디자인은 외려 그의 스승 격인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9)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또한 2022년 루도빅 드 생 세르넹(Ludovic de Saint Sernin)을 새 CD로 임명했다.(1)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앤 드뮐미스터의 쇼는 충격적이었다.(2 ~ 4) 앤 드뮐미스터를 대표하는 시적인 블랙과 탈경계적인 스타일은 여타 다크웨어를 다루는 브랜드와 궤를 달리 한다. 우아하고 부드럽게 흐르지만 약해 보이지 않는 앤 특유의 디자인이 그녀의 레이블이 시대를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1985년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쌓아온 그녀의 아카이브에서는 상징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리본과 깃털, 드레이퍼리한 실루엣과 내밀한 소재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들은 단지 가벼운 상징체로 대해질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세르넹의 접근은 자신의 레이블과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아카이브의 열화판에 불과했다. 단순한 메타포로써 사용된 깃털과 속이 비치는 소재들은 가벼운 감흥만을 남겼다. 이브 생 로랑의 1979년 드레스, 앤 드뮐미스터의 SS 1997 RTW, SS 1998 RTW, FW 2004 RTW 컬렉션 등 단순한 아카이브의 리바이벌만이 떠올랐다.(5 ~ 8) 세르넹이 개인적으로 선보인 FW 2019 Menswear, SS 2020 Menswear 컬렉션에서 보여준 디자인이 앤 드뮐미스터의 색이 아주 조금 들어간 방식으로 활용되었을 뿐 하우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9 ~ 10)
상업적인 옷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성복에서는 잇-백과 신발들이, 남성복에서는 티셔츠와 후드티가 매출을 견인하고 있을 뿐이다. 샤넬이 꾸뛰르 컬렉션에서 아무리 대단한 드레스를 만든다고 한들 세간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백과 대문짝만한 로고가 박힌 스니커즈를 원한다.(1 ~ 5) 아미(Ami)의 SS 2022 RTW 컬렉션은 실로 감동적이었다.(6) 캐주얼웨어와 테일러링에 기반한 옷이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소재와 색채의 너풀거림이 범람하는 아름다운 컬렉션이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결국 팔리는 옷들은 로고가 박힌 니트와 가디건이다.(7) 산업 자체가 로맨스를 잃었다. 레이블의 디자인을 파는 게 아닌 레이블의 이름을 팔 뿐이다.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네 개의 실로 로고를 대체한 건 디자인으로 평가받길 원했기 때문이다.(8) 하지만 OTB 그룹은 그 스티치들을 오히려 로고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아무런 디자인적 요소가 없는 옷에다가 스티치나 붙여서 내보내고 있다.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광기가 담긴 자켓은 아울렛으로 향하고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반팔티와 가디건만이 불티나게 팔린다.
안타깝게도 이 시장의 로맨스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미적 가치는 추락했고 존속을 위한 무분별한 옷들만이 시장을 점령했다. 불가항력이지만 울적해진다. 그렇지만 비극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시장이 홍역을 앓고 있다고 한들 우직하게 신념을 관철하는 디자이너들이 있기에 이 시장과 산업을 아직까지 사랑할 수 있다. 더 로우(The Row)와 같은 레이블이 이 시대가 보여줄 럭셔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1 ~ 3) 올슨 자매(Olsen Sisters)는 할리우드의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렸지만, 현재의 더 로우는 굳이 그들의 후광이 필요한 브랜드가 아니다.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럭셔리를 해석하고 엄선된 원단과 철저한 테일러링하에 컬렉션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J.W. 앤더슨(J.W. Anderson)이 이끄는 로에베(Loewe) 또한 적절한 경계에서 럭셔리의 지평을 다시 쓰고 있다.(1 ~ 3) SS 2023 Menswear 컬렉션에서의 풀로 뒤덮인 신발과 옷은 밈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와 동시에 미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앤더슨이 품고 있는 역동하는 광기와 로에베의 클래식한 면모가 잘 섞여 전통적인 소비자들에게도 신진 소비자들에게도 모두 어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리비에 루스탱(Olivier Rousteing)의 발망(Balmain) 또한 우수한 예시이다. 발망은 2020년과 2021년에는 세상을 관통한 환난과 루스탱의 개인적인 고통으로 인해 다소 혼란을 겪었다. 이내 루스탱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과 발망 특유의 관능미를 살린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SS 2023 RTW(1 ~ 2) 와 SS 2023 Menswear(3 ~ 4) 그리고 SS 2023 Couture 컬렉션(5 ~ 6) 에서는 전체적인 통일감과 압도적인 기술력을 통해 그의 능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극도로 세심하게 조율된 실루엣과 색채는 화려한 럭셔리 패션이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 응당 럭셔리라면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세심함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루스탱의 꾸뛰르 피스는 소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변용하는 방식으로 옷에 대한 탐구를 보였다. FW 2023 RTW 컬렉션에서는 전통적인 현대복을 선보이며 하우스의 건재함을 드러냈다.(7 ~ 8) 단단한 피크드 라펠과 강조된 아워글라스 실루엣은 우리가 사랑했던 기라성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 또한 독창적인 드레이핑은 원론적인 기반 위에 얹는 기교의 교본과도 같은 엄중하면서도 생동하는 형태였다.
시간을 거치며 패션은 지고 떠오른다. 역사의 뒤안켠으로 사라진 어깨 패드의 왕으로 불리던 클로드 몬타나(Claude Montana)와 같은 디자이너가 있는 한편 런던의 총아로 떠오르는 애론 에쉬(Aaron Esh) 와 같은 인물도 있다.(1 ~ 2) 자본이 럭셔리와 패션의 아름다움을 위협하고 있지만 새로운 창작물을 선보이는 이들이, 뚝심 있게 자신만의 미학을 관철하는 이들이 있기에 나는 아직 패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출처 : VOGUE / Elle / wikipidia / LVMH
근 몇 년 동안 럭셔리 패션 신(Scene)의 쇼를 보며 감동을 받았던 순간도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따금씩 이 산업에 로맨스가 남아있는지 회의하기도 한다. 그 사고의 뇌관에 불을 붙인 불씨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퍼렐 윌리엄스(Pharell Williams) 기용이었다. 루이 비통이라는 유서 깊은 레이블이 가수와 손을 잡고 컬렉션을 전개하는 일은 상징성이 크다. 루이 비통이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함께 2019년부터 컬렉션을 함께 해오며 레이블의 색은 크게 변했다. 여성복을 담당하는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 Ghesquière)는 우직하게 우아한 옷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로고 플레잉과 SNS 바이럴 마케팅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옷의 형태와 색채 그리고 만듦새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
20세기 초를 향한 동경이 남아있다. 럭셔리 패션은 철저하게 옷의 아름다움을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감정을 촉발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신의 임무다. 불세출의 디자이너이자 바이어스 재단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와 같은 인물이 가장 이상적인 로맨틱한 럭셔리 패션 디자이너다.(1) 그녀는 미디어의 전면에 나선 동시대의 코코 샤넬(Coco Chanel)과 달리 대중 앞에 서는 것을 피했다. 대신 그녀는 묵묵하게 옷을 만들었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설파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언제나 획기적이었다.(2 ~ 8) 고대 그리스의 복식과 바이어스 재단을 차용함으로써 코르셋이 만연했던 당시의 동향과 다른 새로운 의복과 신체의 아름다움을 제시했다. 패션 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비오네의 옷은 범역사적 아름다움에 관해 탐구하고 사회가 나아갈 사상적 신지평을 연 위대한 작품이다. 미학적 측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부터 고전양식과 입체파의 경향까지 패션에 녹여냈고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kun)과 르 코르뷔지에(Le Corbuisier), 아메데 오장팡(Amédée Ozenfant) 등의 인물에게 영감을 받아 그들의 행위와 창작물에서 도출된 미학적 성과들을 심도 있게 탐구했다.
럭셔리는 심오하다. 수많은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그 아름다움을 찬미해야 한다. 또한 럭셔리는 복잡하고 세밀한 창작에 탐닉하여야 완성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럭셔리는 아름다움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식이다. 극도로 상업주의적인 기업의 경영 방식이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다. 꾸뛰르(Couture) 컬렉션을 발매하지 않는 럭셔리 레이블도 SS RTW, FW RTW, SS Menswear, FW Menswear, Resort, Pre-Fall에 여러 가지 캡슐 컬렉션까지 포함하면 1년에 최소 6번 이상의 컬렉션을 발매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간에 쪼들리는 디자이너들은 머리를 쥐어짜 내 어떻게든 옷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소모적인 산업 구조는 디자이너들이 창작을 지속할 힘을 뺏어간다. 전설적인 꾸뛰리에(Couturier)인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는 지나치게 잦은 쇼를 하는 업계 관례에 “상업주의의 불”이라는 비판을 했다. 그는 무분별하게 컬렉션을 선보이기보단 치밀한 준비 끝에 그가 준비가 되었을 때만 세상에 나타난다. 또한 모든 과정에 그는 직접 관여를 하며 소재와 봉제 그리고 여체(女體)에 관한 깊은 탐구를 통해 가장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보인다.
트렌드와 판매고에 목을 매는 경영 방식 또한 럭셔리의 가치를 저해한다. 발렌시아가(Balenciaga)와 지방시(Givenchy) 모두 래퍼들과 셀러브리티에게 의존하는 쇼를 선보이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현재는 결별한 예(YE)와의 관계를 통해 지방시와 알릭스(1017 ALYX 9SM)로 표상되는 메튜 윌리엄스(Matthew Williams) 사단은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를 중심으로 하는 오피움(OPIUM)에 의존하고 있다.(1 ~ 5) 럭셔리 패션은 하우스 각각이 표방하는 가치와 치밀한 설계로 운용되어야 하지 하입(Hype)을 만들어내는데 지나면 안된다. 이번 FW 2023 컬렉션에서도 역시나 트렌드에 편승한 비슷한 디자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드러났다. 디젤(Diesel)과 베르사체(Versace)도 발렌시아가와 마찬가지로 레이브 웨어(Rave Wear)-레이브 웨어에 관한 비판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6 ~ 7) 레이브 웨어는 문화적으로 흥미롭고 20세기 말엽부터 포스트-펜데믹의 현재까지의 청년들의 시대정신을 담는 방식 중 하나이다-를 표방했다. 맥락이 소거된 채로 단지 고스 닌자 같은 모습을 한 모델들을 보는 일은 고루하다. 어떤 게 더 바이럴이 잘될지 겨루는 것 같은 모습이다. 또 자주 보였던 일관적인 오버사이즈드 실루엣 또한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아직까지 다들 라프 시몬스(Raf Simons)와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그리고 베트멍(Vetements)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8 ~ 10)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나 발렌티노(Valentino)와 같은 유서 깊은 레이블부터 루아르(Luar)와 에크하우스 라타(Eckhaus Latta)와 같은 신생 레이블까지도 무거운 어깨와 지하철에 앉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품의 자켓을 쏟아냈다.(11 ~ 14)
천편일률적인 트렌드만이 문제가 아니다. 디자인적 기조가 존재한다는 건,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외려 지나온 패션의 흐름에 대한 객관화가 완료되었다는 방증이고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더 큰 문제점은 셀러브리티의 범람이다. 전술한 루이 비통의 남성복, 발렌시아가와 지방시를 가장 문제시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디자인적 우수성보다는 셀러브리티의 힘이 비대해지는 작금의 사태는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디자이너들조차 디자이너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이하 CD)라는 직함에 묶이고 시즌 따라 이적하는 축구선수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브랜드의 성격보다는 CD의 색이 중요해지고 그들도 하나의 셀러브리티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54년 동안 펜디(Fendi)에 재직했었고 36년 동안 샤넬(Chanel)에 재직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세웠다. 하지만 현재 많은 레이블들은 유행에 따라 CD를 갈아치우고 있다.
로샤스(Rochas)는 2021년 24세의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을 CD로 기용했다.(1) 로샤스의 FW 2005 RTW 컬렉션이나 FW 2011 RTW 컬렉션을 보면 시크하면서도 이국적인 로샤스만의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2 ~ 3) 이러한 점이 메종(Maison)의 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포인트이다. 하지만 빌모랭이 로샤스를 전담하기 시작한 SS 2022 RTW 컬렉션부터 빌모랭의 색이 지나치게 섞여 들어갔다.(4 ~ 6) 다시금 본래 메종의 색채를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나 현재로서는 그의 팔레트가 지나치게 느껴진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Alessandro Dell’Acqua)가 맡던 로샤스가 이전의 색을 외려 잘 이어오고 있었다.(7 ~ 8) 빌모랭의 디자인은 외려 그의 스승 격인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9)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또한 2022년 루도빅 드 생 세르넹(Ludovic de Saint Sernin)을 새 CD로 임명했다.(1)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앤 드뮐미스터의 쇼는 충격적이었다.(2 ~ 4) 앤 드뮐미스터를 대표하는 시적인 블랙과 탈경계적인 스타일은 여타 다크웨어를 다루는 브랜드와 궤를 달리 한다. 우아하고 부드럽게 흐르지만 약해 보이지 않는 앤 특유의 디자인이 그녀의 레이블이 시대를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1985년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쌓아온 그녀의 아카이브에서는 상징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리본과 깃털, 드레이퍼리한 실루엣과 내밀한 소재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들은 단지 가벼운 상징체로 대해질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세르넹의 접근은 자신의 레이블과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아카이브의 열화판에 불과했다. 단순한 메타포로써 사용된 깃털과 속이 비치는 소재들은 가벼운 감흥만을 남겼다. 이브 생 로랑의 1979년 드레스, 앤 드뮐미스터의 SS 1997 RTW, SS 1998 RTW, FW 2004 RTW 컬렉션 등 단순한 아카이브의 리바이벌만이 떠올랐다.(5 ~ 8) 세르넹이 개인적으로 선보인 FW 2019 Menswear, SS 2020 Menswear 컬렉션에서 보여준 디자인이 앤 드뮐미스터의 색이 아주 조금 들어간 방식으로 활용되었을 뿐 하우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9 ~ 10)
상업적인 옷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성복에서는 잇-백과 신발들이, 남성복에서는 티셔츠와 후드티가 매출을 견인하고 있을 뿐이다. 샤넬이 꾸뛰르 컬렉션에서 아무리 대단한 드레스를 만든다고 한들 세간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백과 대문짝만한 로고가 박힌 스니커즈를 원한다.(1 ~ 5) 아미(Ami)의 SS 2022 RTW 컬렉션은 실로 감동적이었다.(6) 캐주얼웨어와 테일러링에 기반한 옷이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소재와 색채의 너풀거림이 범람하는 아름다운 컬렉션이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결국 팔리는 옷들은 로고가 박힌 니트와 가디건이다.(7) 산업 자체가 로맨스를 잃었다. 레이블의 디자인을 파는 게 아닌 레이블의 이름을 팔 뿐이다.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네 개의 실로 로고를 대체한 건 디자인으로 평가받길 원했기 때문이다.(8) 하지만 OTB 그룹은 그 스티치들을 오히려 로고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아무런 디자인적 요소가 없는 옷에다가 스티치나 붙여서 내보내고 있다.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광기가 담긴 자켓은 아울렛으로 향하고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반팔티와 가디건만이 불티나게 팔린다.
안타깝게도 이 시장의 로맨스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미적 가치는 추락했고 존속을 위한 무분별한 옷들만이 시장을 점령했다. 불가항력이지만 울적해진다. 그렇지만 비극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시장이 홍역을 앓고 있다고 한들 우직하게 신념을 관철하는 디자이너들이 있기에 이 시장과 산업을 아직까지 사랑할 수 있다. 더 로우(The Row)와 같은 레이블이 이 시대가 보여줄 럭셔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1 ~ 3) 올슨 자매(Olsen Sisters)는 할리우드의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렸지만, 현재의 더 로우는 굳이 그들의 후광이 필요한 브랜드가 아니다.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럭셔리를 해석하고 엄선된 원단과 철저한 테일러링하에 컬렉션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J.W. 앤더슨(J.W. Anderson)이 이끄는 로에베(Loewe) 또한 적절한 경계에서 럭셔리의 지평을 다시 쓰고 있다.(1 ~ 3) SS 2023 Menswear 컬렉션에서의 풀로 뒤덮인 신발과 옷은 밈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와 동시에 미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앤더슨이 품고 있는 역동하는 광기와 로에베의 클래식한 면모가 잘 섞여 전통적인 소비자들에게도 신진 소비자들에게도 모두 어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리비에 루스탱(Olivier Rousteing)의 발망(Balmain) 또한 우수한 예시이다. 발망은 2020년과 2021년에는 세상을 관통한 환난과 루스탱의 개인적인 고통으로 인해 다소 혼란을 겪었다. 이내 루스탱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과 발망 특유의 관능미를 살린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SS 2023 RTW(1 ~ 2) 와 SS 2023 Menswear(3 ~ 4) 그리고 SS 2023 Couture 컬렉션(5 ~ 6) 에서는 전체적인 통일감과 압도적인 기술력을 통해 그의 능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극도로 세심하게 조율된 실루엣과 색채는 화려한 럭셔리 패션이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 응당 럭셔리라면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세심함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루스탱의 꾸뛰르 피스는 소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변용하는 방식으로 옷에 대한 탐구를 보였다. FW 2023 RTW 컬렉션에서는 전통적인 현대복을 선보이며 하우스의 건재함을 드러냈다.(7 ~ 8) 단단한 피크드 라펠과 강조된 아워글라스 실루엣은 우리가 사랑했던 기라성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 또한 독창적인 드레이핑은 원론적인 기반 위에 얹는 기교의 교본과도 같은 엄중하면서도 생동하는 형태였다.
시간을 거치며 패션은 지고 떠오른다. 역사의 뒤안켠으로 사라진 어깨 패드의 왕으로 불리던 클로드 몬타나(Claude Montana)와 같은 디자이너가 있는 한편 런던의 총아로 떠오르는 애론 에쉬(Aaron Esh) 와 같은 인물도 있다.(1 ~ 2) 자본이 럭셔리와 패션의 아름다움을 위협하고 있지만 새로운 창작물을 선보이는 이들이, 뚝심 있게 자신만의 미학을 관철하는 이들이 있기에 나는 아직 패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출처 : VOGUE / Elle / wikipidia / LV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