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됨을 거부할 때
WEBZINE
WEDITOR 석대현
Aeolia는 직물과 기술을 결합하여 옷을 만드는 작은 협력체다. 이들은 “착용할 수 있는 악기”인 첼로 셔츠를 만들어 MIT에서 리허설한 적이 있다. 첼로 셔츠란 스트레치 되는 원단이 사람으로 하여금 첼로를 연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의 원리는 센서가 착용자와 첼로의 공간적 상호 작용을 저주파 피드백으로 변환하여 즉각적으로 스트레치 센서를 작동시키는 원리다. 이처럼 옷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고정관념의 탈피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Audio Ballerinas는 광센서를 이용해 움직임만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댄서 그룹이다. 그들은 앰프, 스피커, 여러 광학 장치가 달린 스커트를 입고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소리를 낸다. 이 스커트는 마치 고전 회화의 무용수들이 입는 튀튀(tutu)와 닮았다. 스커트에는 음성을 녹음하고, 재생하며, 루프를 걸거나 음정을 변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마치 DJ 믹싱 테이블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비단 호기심 많은 공학생의 전유물은 아닐 거다. 옷이라는 관념에서 탈출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옷이 가진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옷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닌 매체가 되고, 우린 한 단계 더 나아간 목적을 말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와도 관련이 깊으며, 예술의 목적성 혹은 옷과 예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기상천외한 작업물을 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위와 같은 시선과 관련이 있다. Hideo Yamakuchi는 일본의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한 후 직물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야마구치에게 있어 옷은 도화지에 가깝다. 하지만 이는 입생로랑이 드레스에 몬드리안 그림을 삽입하고, 패션 브랜드가 예술가와 손잡으며 옷을 만드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야마구치의 이미지는 앞서 말한 대상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권위 없는 이미지에 가까우며, 이러한 이미지를 가두는 데 있어 크게 당위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는 옷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이미지라기보다 옷과 수평인 지위의 수단이 된다. 또한 여러 벌의 옷은 자신으로 하여금 한 벌의 옷이 가지는 소유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며, 결과적으로 앞서 말한 예시들처럼 옷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야마구치의 이미지는 옷을 초월한 대상으로서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옷이 됨을 거부되었다고 해서 옷은 꼭 제자리를 잃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나오던 사례처럼 옷은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띠는 매체일 수 있고, 혹은 야마구치의 사례처럼 그 자체로는 목적을 지니지 않지만, 목적을 지닌 예술의 도움이 있다면 목적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옷과 예술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각기 다르며, 한편으로 옷은 옷이 되기보다 예술의 조력자로 작용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Charles Freger는 프랑스 출신의 인물 사진작가이다. 그는 옷과 더불어 여러 가지 소품을 사용하여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인물을 만들고 기록한다. 시간과 공간을 걷잡을 수 없는 그의 이미지는 대체로 옷에서 시작되며, 옷에 따라 그들의 출생과 배경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이는 August Sander가 사진을 찍는 데 있어 옷을 다루던 방식과 유사하다. 당시 스튜디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적 아우라를 벗기기 위해 잔더는 각종 소품을 포기하고 소박한 옷을 이용했다. 이처럼 옷은 작가가 목표하는 예술의 배후에서 큰 역할을 맡기도 하며 예술을 돕는다.
동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실루엣과 소재 등에 변화를 주며 옷을 디자인한다. 옷이 됨을 거부한다는 건 한편으로 기존의 옷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는 어떠한 세계관을 만들고, 옷은 그 세계관 속에서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 이러한 옷은 우리가 새로운 미의 장에 발을 들이게 한다.
Paolo Carzana는 영국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그가 최근에 보여주던 유례없는 소재 개발과 섬세한 실루엣은 그가 또 다른 세계에서 온 게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의 DAZED에서 진행한 쿨한 인터뷰에서 미루어봤을 때 그가 가진 매력은 옷 그 이상으로 대단하다.
https://www.dazeddigital.com/fashion/article/56960/1/paolo-carzana-london-fashion-week-alexander-mcqueen-john-galliano-ss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