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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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윤다경

                                       

얼마 전 직장 상사가 “난 아날로그의 시대가 다시 올 것 같아. 이상하게도 그래. 예를 들어 택시 탈 때 요즘처럼 어플로 잡아서 타는 게 아니라 손을 흔들어서 타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 세상이 오는 거지.”라며 농담과 진심이 반쯤 섞인 말을 던졌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어넘겼지만, 나는 속으로 답했다. “저도 정말 그래요.”

나는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갈망한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전송되는 문자보다는 손으로 쓴 편지가, 전자책보다는 사각거리는 종이책이 좋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그 사람의 손길과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필체 하나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이 담기기 마련이다. 종이책을 읽을 때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 책장을 넘길 때의 소리, 책에서 나는 향기 등은 전자책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경험이다. 이처럼 아날로그는 감각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매체다. 더 깊이 몰입하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대상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실 현세대에게 아날로그의 역주행은 이미 진행 중이다. 뉴트로, 영트로 같은 신조어와 솟구치는 가격의 빈티지 옷, 가구들만 봐도 아날로그에 대한 그들의 욕구를 엿볼 수 있다. 챗GPT로 레포트를 쓰고 심지어는 에어드랍으로 고백을 하며, 지문 인식과 페이스 아이디 없이는 못 사는 세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동시에 바이닐과 필름 카메라를 사랑한다. 아날로그 회귀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노스탤지어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의 디지털 피로와 연결된다. 디지털 기술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주의력에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편리함을 제쳐두고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필름 카메라 역시 아날로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필름을 장전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설렘과 현상소에서 사진을 찾아볼 때의 기대감은 디지털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필름 사진은 그 특유의 색감과 질감으로 인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여기 아날로그한 필름 카메라로 눈길을 끄는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들이 있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는 2000년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한 최초의 사진작가이자 비영국 예술가다. 독일 렘샤이트에서 태어나 1985년부터 주변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젊음과 그 하위문화를 매력적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프강 틸만스라는 이름은 생소할 수 있으나,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Blonde’ 앨범 커버는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국내 아티스트와는 밴드 혁오의 ‘사랑으로’ 앨범의 커버를 작업하기도 했다. 그의 사진들은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순간의 현장성을 담아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 특징이다.

틸만스의 사진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작업은 그의 친구들을 찍은 초기 작업물이다.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인데, 대상을 관찰하고 포착하는 그의 섬세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는 “나는 내 눈으로 세상을 본다. 카메라는 아주 잠시 동안 나와 세상 사이에 넣어둘 뿐이다”고 하며,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보다 시각적으로, 기술적으로 대상이나 세상을 이해하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한다. 인쇄된 사진 이미지의 극명한 명확성은 사진에 찍힌 사건의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순간과 보는 순간 사이의 거리를 명백히 암시하는 불연속의 순간에서 발생한다는 뜻이다.



볼프강 틸먼즈 이후 가장 주목받은 포토그래퍼로 평가받는 이가 있는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다. 맥긴리는 야시카 T4, 라이카 R8로 사람과 그 주위의 풍경이 뒤섞이며 눈앞의 그림이 예술의 한 부분이 되는 순간을 촬영한다. 주로 나체로 광활한 자연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청춘들을 담아냄에도, 외설적이거나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비현실적인 풍경과 빛, 색감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그의 사진들은 어딘가 모를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25세의 나이로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한 최연소 예술가라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인정받는 포토그래퍼인지 알 수 있다.



낸 골딘Nan Goldin도 마찬가지로 영향력 있는 저명한 포토그래퍼다. 그녀는 주로 LGBT 하위문화, HIV/AIDS 위기 등 1980년대 뉴욕의 하위문화를 기반으로 극단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까운 지인들과,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주목받는다. 필름 카메라의 스트로보를 사용한 스냅샷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골딘의 사진은 연출되었다기보다 그녀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마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대표작인 성적 종속물에 관한 발라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는 남녀 관계의 불안함과 현실성이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솔직한 감정과 경험을 전달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제7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국내에서는 얼마 전인 15일에 개봉했다.


위 포토그래퍼들의 필름 사진에서 느낄 수 있듯, 아날로그의 매력은 현대 디지털 사회의 한계와 대조적으로 감각적인 경험과 깊이 있는 소통을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디지털 기술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현대인은 아날로그의 감각적 요소를 통해 소중한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아날로그의 느림의 미학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경험하게 만들어, 일상에서 소중한 순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날로그는 현 사회에서의 디지털 피로와 감각적인 경험에 대한 갈망, 그리고 느림의 미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한 선택이다. 이러한 아날로그의 가치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아날로그의 낭만적인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