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알리체 로르바케르 - <키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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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최하경

                                       

발제일자: 5.23
발제 영화: 알리체 로르바케르 <키메라(2024)>
참석 인원: EB, SY, SJ, HK, MJ, DE, CY




1. 들어가며
HK: 제가 오늘 발제한 영화는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님의 올해 개봉한 <키메라 (2024)> 입니다. 감독님의 네 번째 장편 영화인데요, 벌써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저는 정말 믿기지 않아요.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님에 대해 아주 간단히 소개를 해보자면: 원래 감독님은 연극 음악 작곡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영화에 매료되어서 다큐멘터리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첫 장편 영화 <천상의 육체들 (2011)>로 칸 감독 주간에 초청되면서 감독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후 <더 원더스 (2014)>로 칸 경쟁 부분 심사위원 대상, <행복한 라짜로 (2018)>로 칸 각본상을 받았고, 이 영화, <키메라 (2024)>도 작년 칸 경쟁 부분에 초청되었었어요.
그럼, 본격적인 발제로 넘어가기 전에, 영화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 여러분들이 어떻게 보셨는지 매우 궁금해요.

EB: 전 사실 보면서 약간 이상한 생각을 했어요. 이 사람이 전문가적인 걸 전혀 추구하지 않는 것 같다? 로르바케르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오히려 약간 아마추어가 만든 것 같은 느낌이 가끔 가끔씩 드러날 때가 있는데 물론 그것 자체가 엄청나게 잘 만들었지만 -- <키메라>도 보면서 ‘이거 약간 아마추어 같다’ 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HK: 저는 근데 그게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최근에 저희가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4)>발제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었잖아요 이 영화는 ‘고체’ 같은가 ‘액체’ 같은가. 류스케의 영화는 고체에 가까운, 약간 모범생의 똑똑한 영화 같은 느낌이 많이 드는 반면, 로르바케르 감독의 영화는 정말로 ‘액체’ 같아요. 자유롭고, 가끔 어디로 튈지도 모르겠는, 기만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영화.

SJ: 조쉬 오코너가 정말 그 ‘액체’ 같은 느낌과 잘 어울리는 사람 같아요.




2. 돌아온 이방인, 아르투
HK: 맞아요! 조쉬 오코너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르투 캐릭터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아르투는 명백하게 오르페우스가 많이 연상되는 캐릭터죠. 잃어버린 연인을 찾기 위해 지하 세계를 계속 방황하는 인물. 아르투를 반기고 환영해 주는 곳은 많았지만, 결국 아르투는 계속해서 외톨이 이방인으로 떠돌아요. 왜 자꾸 아르투는 떠나는 것일까요?

EB: 사실 저는 보면서 조금 궁금했던 게, 첫 장면서부터 아르투는 성을 내잖아요. 왜 늘 화가 나 있는 거예요 아르투는?

MJ: 저는 그게 아르투가 너무 이방인적인 캐릭터라서 그렇다고 느껴졌어요. 초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니까 의도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SJ: 신지같네요. 신지 보트에 타라. 

HK: 로르바케르 감독님은 한 인터뷰에서 이 사람이 세상과 등지듯이 살아가는 이유는 이 사람이 오르페우스와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라고요.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 주던 유일한 ‘줄’이었던 연인을 잃고 세상과 다시 연결할 의지를 잃은 인물. 그런데 아르투를 보면 마냥 좌절하고만 있지는 않잖아요. 사실 로르바케르 감독님은 작품에 신화 속 인물을 많이 차용하는데, 전형적으로 시작하다가도 이내 인물의 다층적인 면이 드러나요. 아르투도 마찬가지이고요.
감독님이 예전에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이렇게 설명하시더라고요 : 숭고한 것을 가볍게, 신성한 것을 불경하게. 저는 이게 감독님이 신화를 차용하는 방식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조금은 수더분하고 빈틈이 많은, 우울해하다가도 가끔 친구들과 축제를 즐기고 찰나의 사랑도 하는 오르페우스. 캐릭터가 점지해 주는 어떤 비극적 운명을 따라가더라도 그 안에서 행복과 사랑을 찾아내는, 그런 삶의 유동성을 보여주는 캐릭터라서 저는 아르투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SJ: 사실 저는 <행복한 라짜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저는 <행복한 라짜로>를 굉장히 인간 찬가적인 영화로 봤거든요. 이 인간 찬가라는 것이 숭고하고 무거워지기가 정말 쉬운데, 그렇지 않게 풀어낸다는 점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HK: 저는 로르바케르 감독님 영화의 그런 면모가 정말 좋아요. 이 감독님의 영화에는 늘 기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막상 가장 찬란히 빛나는 순간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 와요. 라짜로도 이름이 점지해 주었듯이 부활을 하지만, 막상 이 부활은 라짜로에게 그 어떤 권능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도 부활한 라짜로에게서 신성함을 보지 않아요. 오히려 <행복한 라짜로>의 기적은 라짜로가 길가에서 식량을 찾아낸 순간, 교회의 음악소리가 라짜로를 따라 움직이는 순간 같이 정말 사소한 순간들에서 발현되는 것 같아요.




3. 도굴꾼, 고미술상, 땅 아래 신성한 것들
SJ: 저는 사실 <키메라>를 보면서 하나 궁금했던 지점이, 원래 이런 유물을 발굴하는 영화는, 클레오파트라 류의 영화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그렇듯이, 엄청 소중한 것을 찾으려 하고, 그것을 찾는 여정이 너무나 중요하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유물을 그렇게 다루지 않는 지점이 독특하게 다가왔어요.

EB: 또 이 ‘톰바롤리 무리’가 하는 행위 자체가 로르바케르가 하는 행위와 정말 닮아있기도 하고요.

SY: 저는 <키메라>가 유물, 땅속의 신성한 것들을 함부로 대하는 게 되려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아까 말씀하신 불가침성을 좀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자세가, 또 아까 이야기한 아마추어적인 연출도 뭔가 이 감독이 기존의 어떤 정석적인 걸 많이 깨뜨리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여기에 많이 반영이 된 느낌이에요.
저는 또 이렇게 유물을 함부로 다루는 게 오히려 과거랑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유물들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된 상태로 보는 것은 직접 소통하는 방법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말 본래의 자리, 지하 세계에 들어가서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저는 과거를 아련하게 노스텔지어처럼 그리는 것보다 많이 와닿았어요.




4. 숭고한 것을 가볍게, 신성한 것을 불경하게
HK: 아까 EB님께서  ‘톰바롤리 무리’가 하는 도굴이 로르바케르 감독이 하는 행위와 닮아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정말 흥미로운 게, 이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사실 옛날 이탈리아 영화가 정말 많이 보이거든요. 특히 펠리니 감독의 영화를 정말 많이 오마주해요. 예컨대 <키메라>에서는 <달콤한 인생 (1960)>의 한 장면이 여신상 운반되는 장면에 오마주 되었고, <로마 (1972)>의 장면도 보이고요. 이렇듯 고전 영화를 많이 가져오는 감독인데, 그와 동시에 톰바롤리처럼 이 작품들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오히려 명작들을 자기가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느낌? 이처럼 숭고한 것을 가볍게, 신성한 것을 자유롭게 다루는 자세가 로르바케르 감독님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시기의 계승자이면서도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감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