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고레에다 히로카즈 - <환상의 빛>
WEBZINE
WEDITOR 임채윤
발제 일자: 5.23
발제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1995)>
참석 인원: CY, DE, SJ, HJ, HG, EB, SY
1. 환상의 빛
CY: <환상의 빛(1995)>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예요. 원래 자신이 직접 각본을 써서 기획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실현되지 못하던 중에, 같은 회사 프로듀서한테 <환상의 빛>을 연출해 보라는 제의를 받았대요. 마침 고레에다가 복지 행정 관료직에 있다가 자살한 한 관료에 관한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무렵이었는데, 그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초점을 맞췄던 건 그 관료를 떠나보내고 남은 아내의 심정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배경에서 환상의 빛을 연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들 이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SY: 원래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사람이 데뷔작으로 엄청 영화적인 작품을 들고 왔는데, 이걸 이 사람 후기작이랑 대비해 보면 또 성격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한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이 영화가 많이 우울해서 여러 번 볼 엄두가 안 났는데, 이번에 두 번째로 보면서 무거운 소재를 사려 깊게 다룬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더 좋아졌던 것 같아요.
CY: 사실 저는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살짝 의아했던 게, 영화의 원작 소설이랑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원작은 남편을 향한 아내의 독백으로 쭉 진행되는데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내한테서 거리를 둔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소설과 완전히 다른 측면을 다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일반적인 주제 의식으로 봉합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소설에서는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 장면이 없거든요. 애도하는 사람들을 뒤따라가는 이미지도 그렇고 환상의 빛이라는 소재까지, 일반성을 강화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EB: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에 비슷한 장면이 있지 않나요? 저는 사실 이 영화가 되게 슬펐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런 생각도 했어요. 첫 영화에서는 이렇게 다르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소재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고레에다가 후에 다룰 것들이 여기서도 이미 다 나오는 게 좀 있지 않나요?
2. 허우 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CY: 말씀하신 대로 누군가 죽고 그것을 애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재가 이후 작품에서도 반복되는데, 저는 한편으로 <환상의 빛>의 인물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물답지 않게 수동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단적으로는 버스를 탈지 말지 고민하다가 안 타고 머무르는 장면이 있잖아요. 자기 감정의 치유도 결국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어 하니까 이 공동체 속에서의 연대감으로 치유할 수밖에 없겠다고 순응하는 듯한 인물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사실 그의 다른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이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괴물(2023)>에서 미나토가 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라든가, <어느 가족>에서 쇼타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라든가. 확실하게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 이 영화에는 부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SY: 그런 맥락에서 위 작품들 보면 극적인 장면이 꼭 있었잖아요. 의도적으로 클라이맥스 같은 느낌을 주려는 게 느껴질 정도의. 근데 사실 저는 그게 조금 싫었거든요. 그런데 <환상의 빛>은 그런 게 전혀 안 보이고, 오히려 감정을 계속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게 되게 특이하다고 느꼈어요.
EB: 그것 자체가 너무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보면서 슬프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적은데… 근데 방금 말씀하신 미나토와 쇼타 있잖아요. 저는 <환상의 빛>에서 죽은 남편이 비슷한 유형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자살하는 것과 그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는 차원에서요.
HG: 고레에다가 허우 샤오시엔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는데 그래서 그 영향이 아마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는 고레에다의 <괴물>이 정말 좋았지만 사실 진짜 그게 있잖아요. ‘여기서부터 클라이맥스야’ 하는 게 있는데. <환상의 빛>에선 그런 느낌이 없는 것이 허우 샤오시엔의 그늘에 있어서 그랬던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기억이 맞으면 이 영화에 대해 허우 샤오시엔이 한 말을 듣고 고레에다가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을 아예 바꿨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SY: 콘티를 그대로 따랐다고 지적했대요. 그리고 아오야마 신지도 이 영화를 좀 비판했다고 하네요.
CY: 말씀하신 것처럼 고레에다가 이 영화를 만들 때 콘티에 많이 의존했는데요. 허우 샤오시엔이 이 영화를 본 뒤에 다큐멘터리를 찍던 사람이 배우의 연기를 미리 보지 않고 콘티를 그리냐, 연기를 본 다음에 구도를 정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전했대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본인이 원래 하던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으로 <원더풀 라이프(1999)>와 <아무도 모른다(2004)>를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HG: 허우 샤오시엔의 그 말이 되게 좋은 게, 저는 고레에다 감독이 담는 연기가 정말 엄청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도 모른다>도 그렇고 특이 아이가 나오면 이게... 이게 되나? 이 아이들을 데리고 뭘 가르쳤길래... 또 <아무도 모른다>의 배우들은 연기 경험이 없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SJ: 그 눈빛이 어떻게 나오지?
HG: 그래서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촬영 현장에서 연기를 배우는지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B: 저기 슬라이드에 ‘초월성에 의지’라고 적어주신 부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걸 보니까 그게 생각나긴 했어요. 마지막 장례식 장면이 워낙 길잖아요. 한 3~4분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가 슬로우 시네마로 묶이는 건 아니지만 그것의 경향성을 이어받는 영화인 것 같았어요. 물론 같은 방식으로 쓰이지는 않은 것 같고, 감정을 이끌어내는 힘으로 작용하겠죠. 영화의 초월적 스타일? 그거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CY: 사실 그건 아니긴 한데 이 영화가 슬로우 시네마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건 동의해요. 서사의 인과성도 많이 느슨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초월성에 의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받는 비판에 관해 찾아보다가 적어 놓은 거였어요. 구체적인 사회 문제에서부터 이야기를 뻗는 데 반해서 그것에 대해 제시하는 대안이 너무 사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구체적인 사회 문제라면 구체적이고 공적인 대안을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제시하면 좋지 않겠냐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근데 저는 이 영화도 그렇고 그 이후의 영화에서도 비록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능할 수 있게끔 하는 어떤 믿음을 발명하는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3. <환상의 빛> 이후
EB: 어떤 걸 계승하겠다는 의지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담아내는 식인 것 같긴 하죠. 만약 <환상의 빛>과 같은 방식을 고수했으면 허우 샤오시엔의 정신적 계승자 같은 칭호가 붙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이것도 정말 좋아요.
근데 이거 누구예요 혹시?
CY: 젊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입니다.
HG: 뭔가 닮은 듯 되게 안 닮았어.
HJ: 지금이 나으시다.
EB: 인상이 순해지시고.
…
CY: <환상의 빛>에서도 뛰노는 아이들의 이미지를 희망처럼 제시하잖아요. 되게 한결같다고 생각했어요. 보면서 아 이 사람 데뷔작에서부터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그 전에 마지막으로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괴물>이었으니까 <괴물>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서 보게 되면서, 구도만 달라졌지 담기는 건 되게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4. 한국 관객이 수용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CY: 저는 되게 궁금했던 것 중 하나였거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다루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로컬하잖아요. 구체적인 일본 사회 문제에 주목하고 이야기에서도 일본적인 느낌이 많이 묻어나오는데, 그런데도 어떻게 한국에서 이 정도의 티켓 파워를 가질 수 있는지가 조금 궁금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싶은…
EB: 혹시 이동진 선생님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안 되겠죠?
HJ: 필모그래피와 별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에서 어떻게 떴는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지분이 큰 게 맞는 것 같아요. 또 이 사람이 본격적으로 필모그래피를 확장하던 그 시기하고 이동진 평론가가 공중파에서 한창 활동하던 시기하고 같으니까.
EB: 메시지가 보편적이기도 하고요.
SY: 영화 내부적으로 봐도 일본이랑 한국의 정서가 굉장히 비슷한 편이잖아요. 가족 개념을 중시하는 게 한국 정서와 기본적으로 비슷하고, 또 극적인 감동을 주는 면이 한국 관객이 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SJ: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라든지 <태풍이 지나가고(2016)>라든지 이동진 평론가가 활동할 무렵에 떠오른 작품들이, 여러 대안적인 방향을 제시하긴 하지만 사실은 되게 끈끈한 가족의 느낌을 준다는 것. 그게 우리나라의 정상성에 걸맞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HG: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드는 영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공통적으로 울리는 감성과 되게 맞닿아 있다고는 늘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요, 그걸 예쁘게 담아내요.
EB: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 영화처럼?
HG: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 영화 에스테틱처럼 담아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이번에 뉴진스의 ‘Bubblegum’이 나왔을 때 갑자기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가 확 뜨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일본 영화의 어느 정도 고착화된 에스테틱이 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EB: 저는 그 반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에스테틱이 이미 있는데, 고레에다가 그중에서 제일 나은 거죠. <환상의 빛>에서도 수박 먹는 이미지나 할아버지와 손자가 배 위에 누워 있는 이미지나 너무 일본 영화의 풍경 같았어요.
5. 일본 에스테틱…
HG: 근데 일본적인 게 뭐야?
SJ: 고레에다가 담는 이미지가 일본적인 것의 전형이라는 데 동의하긴 하는데, 일본적인 것에 여러 갈래가 있긴 하잖아요. 이것만이 일본 에스테틱은 아니니까.
EB: 근데 저는 그런 일본 에스테틱이라는 게 있다고 봐요. 기타노 다케시를 보고 느꼈는데, 그 사람이 주로 총 쏘는 영화 만드는 사람인데 <키즈 리턴(1996)>도 잘 만들고 <기쿠지로의 여름(1999)>도 잘 만들었잖아요. 일본 여름 영화 느낌의 전형인데…
HG: 또 뭐가 있지? 일본 여름 영화.
SJ: 토토로가 진짜 그런 느낌의 전형이기도 하고요.
HJ: 에반게리온.
SJ: 근데 토토로의 에스테틱과 에반게리온의 에스테틱은 진짜 전혀 다른 걸 향하고 있고…
HG: 릴리 슈슈도 약간 일본 여름 영화잖아요. 근데 릴리 슈슈의 여름과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여름은 너무너무 다른 존재야.
SJ: 아예 상층부랑 하층부잖아요.
HG: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적이라고 한다면 고레에다보다 이와이 슌지가 먼저 떠올라요. 고레에다는 조금 더 보편적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고레에다가 해외 촬영 요청을 많이 받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일본 영화 특유의 찝찝하고 음침한 느낌은 슌지가 아닌지… 저한테는 그게 조금 더 일본스럽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SJ: 일본 에스테틱으로 그것도 꼽히잖아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2006)>. 그곳도 일본 에스테틱으로 들어가게 되는 하나의 길이란 말이죠. 음침으로 더 파고들면 그 친구 아니면 <헬터 스켈터(2012)>도 있잖아요.
HG: 고레에다는 그런 음침함이 별로 없잖아.
HJ: 자기 파괴적인 꿉꿉함을 애초에 넣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일본 영화를 떠올릴 때 우리가 곧장 떠올리는 어떤 작품들의 이미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기 파괴적인 이미지들이 분명히 있단 말이죠. 근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들을 볼 때 그게 주된 것으로 작동한다고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 사람이 애초에 그런 걸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EB: 본인이 약간 건강한 사람인가 봐요. 그런데 <괴물>에서는 교장 선생님 되게 음침하지 않았어요?
HJ: 그것도 약간 인공적인 느낌... 진짜가 아니라. 음침한 사람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HG: <괴물>의 교장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그 음침함이 맥거핀이 되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라서 그랬던 것 같고, 영화 장치로서 필요한 음침함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심지어 그것마저도 탁 트이게 해소되어 버리잖아요.
SJ: 저는 <어느 가족>도 그것처럼 해소되는 면이 강하다고 느꼈어요. 취조실 장면에서 안도 사쿠라가 자신의 심정을 대사로 모두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SY: 근데 저는 <어느 가족>에서 느꼈던 음침함이 성적인 요소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어요. 왜 이렇게 비쳤지 싶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나오잖아요. 저는 사실 그게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느꼈거든요.
EB: <어느 가족>은 이야기 자체가 거부감을 가질 만한 소재에서 시작하잖아요? 사실상 유사 유괴가… 저는 쇼타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도 굉장히 파격적이었어요. 애가 갑자기 뛰어내리고 오렌지가 팍 터지잖아요. 저는 영화 보면서 아이가 죽는 것처럼 묘사되는 장면을 그때 처음 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궁금했던 건, 고레에다는 꽤 건강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자꾸만 자살을 이야기하잖아요. 또 이유도 없이 충동적으로 자살한다거나 확 뛰어내린다거나.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러는 걸지 궁금했어요.
HJ: 그것의 슬픔에 너무 과몰입하지 않고 관조하는 것 아닐까요.
CY: 이 감독이 감정을 드러내는 걸 경계하는 것 같긴 해요.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가 죽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에 아이들이 우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고레에다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래요. 아이들 옆에 있어 주되 안아주고 싶지는 않다고, 그게 아이들이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보여줄 방법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발제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1995)>
참석 인원: CY, DE, SJ, HJ, HG, EB, SY
1. 환상의 빛
CY: <환상의 빛(1995)>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예요. 원래 자신이 직접 각본을 써서 기획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실현되지 못하던 중에, 같은 회사 프로듀서한테 <환상의 빛>을 연출해 보라는 제의를 받았대요. 마침 고레에다가 복지 행정 관료직에 있다가 자살한 한 관료에 관한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무렵이었는데, 그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초점을 맞췄던 건 그 관료를 떠나보내고 남은 아내의 심정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배경에서 환상의 빛을 연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들 이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SY: 원래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사람이 데뷔작으로 엄청 영화적인 작품을 들고 왔는데, 이걸 이 사람 후기작이랑 대비해 보면 또 성격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한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이 영화가 많이 우울해서 여러 번 볼 엄두가 안 났는데, 이번에 두 번째로 보면서 무거운 소재를 사려 깊게 다룬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더 좋아졌던 것 같아요.
CY: 사실 저는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살짝 의아했던 게, 영화의 원작 소설이랑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원작은 남편을 향한 아내의 독백으로 쭉 진행되는데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내한테서 거리를 둔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소설과 완전히 다른 측면을 다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일반적인 주제 의식으로 봉합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소설에서는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 장면이 없거든요. 애도하는 사람들을 뒤따라가는 이미지도 그렇고 환상의 빛이라는 소재까지, 일반성을 강화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EB: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에 비슷한 장면이 있지 않나요? 저는 사실 이 영화가 되게 슬펐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런 생각도 했어요. 첫 영화에서는 이렇게 다르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소재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고레에다가 후에 다룰 것들이 여기서도 이미 다 나오는 게 좀 있지 않나요?
2. 허우 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CY: 말씀하신 대로 누군가 죽고 그것을 애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재가 이후 작품에서도 반복되는데, 저는 한편으로 <환상의 빛>의 인물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물답지 않게 수동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단적으로는 버스를 탈지 말지 고민하다가 안 타고 머무르는 장면이 있잖아요. 자기 감정의 치유도 결국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어 하니까 이 공동체 속에서의 연대감으로 치유할 수밖에 없겠다고 순응하는 듯한 인물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사실 그의 다른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이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괴물(2023)>에서 미나토가 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라든가, <어느 가족>에서 쇼타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라든가. 확실하게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 이 영화에는 부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SY: 그런 맥락에서 위 작품들 보면 극적인 장면이 꼭 있었잖아요. 의도적으로 클라이맥스 같은 느낌을 주려는 게 느껴질 정도의. 근데 사실 저는 그게 조금 싫었거든요. 그런데 <환상의 빛>은 그런 게 전혀 안 보이고, 오히려 감정을 계속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게 되게 특이하다고 느꼈어요.
EB: 그것 자체가 너무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보면서 슬프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적은데… 근데 방금 말씀하신 미나토와 쇼타 있잖아요. 저는 <환상의 빛>에서 죽은 남편이 비슷한 유형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자살하는 것과 그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는 차원에서요.
HG: 고레에다가 허우 샤오시엔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는데 그래서 그 영향이 아마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는 고레에다의 <괴물>이 정말 좋았지만 사실 진짜 그게 있잖아요. ‘여기서부터 클라이맥스야’ 하는 게 있는데. <환상의 빛>에선 그런 느낌이 없는 것이 허우 샤오시엔의 그늘에 있어서 그랬던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기억이 맞으면 이 영화에 대해 허우 샤오시엔이 한 말을 듣고 고레에다가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을 아예 바꿨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SY: 콘티를 그대로 따랐다고 지적했대요. 그리고 아오야마 신지도 이 영화를 좀 비판했다고 하네요.
CY: 말씀하신 것처럼 고레에다가 이 영화를 만들 때 콘티에 많이 의존했는데요. 허우 샤오시엔이 이 영화를 본 뒤에 다큐멘터리를 찍던 사람이 배우의 연기를 미리 보지 않고 콘티를 그리냐, 연기를 본 다음에 구도를 정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전했대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본인이 원래 하던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으로 <원더풀 라이프(1999)>와 <아무도 모른다(2004)>를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HG: 허우 샤오시엔의 그 말이 되게 좋은 게, 저는 고레에다 감독이 담는 연기가 정말 엄청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도 모른다>도 그렇고 특이 아이가 나오면 이게... 이게 되나? 이 아이들을 데리고 뭘 가르쳤길래... 또 <아무도 모른다>의 배우들은 연기 경험이 없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SJ: 그 눈빛이 어떻게 나오지?
HG: 그래서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촬영 현장에서 연기를 배우는지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B: 저기 슬라이드에 ‘초월성에 의지’라고 적어주신 부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걸 보니까 그게 생각나긴 했어요. 마지막 장례식 장면이 워낙 길잖아요. 한 3~4분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가 슬로우 시네마로 묶이는 건 아니지만 그것의 경향성을 이어받는 영화인 것 같았어요. 물론 같은 방식으로 쓰이지는 않은 것 같고, 감정을 이끌어내는 힘으로 작용하겠죠. 영화의 초월적 스타일? 그거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CY: 사실 그건 아니긴 한데 이 영화가 슬로우 시네마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건 동의해요. 서사의 인과성도 많이 느슨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초월성에 의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받는 비판에 관해 찾아보다가 적어 놓은 거였어요. 구체적인 사회 문제에서부터 이야기를 뻗는 데 반해서 그것에 대해 제시하는 대안이 너무 사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구체적인 사회 문제라면 구체적이고 공적인 대안을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제시하면 좋지 않겠냐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근데 저는 이 영화도 그렇고 그 이후의 영화에서도 비록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능할 수 있게끔 하는 어떤 믿음을 발명하는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3. <환상의 빛> 이후
EB: 어떤 걸 계승하겠다는 의지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담아내는 식인 것 같긴 하죠. 만약 <환상의 빛>과 같은 방식을 고수했으면 허우 샤오시엔의 정신적 계승자 같은 칭호가 붙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이것도 정말 좋아요.
근데 이거 누구예요 혹시?
CY: 젊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입니다.
HG: 뭔가 닮은 듯 되게 안 닮았어.
HJ: 지금이 나으시다.
EB: 인상이 순해지시고.
…
CY: <환상의 빛>에서도 뛰노는 아이들의 이미지를 희망처럼 제시하잖아요. 되게 한결같다고 생각했어요. 보면서 아 이 사람 데뷔작에서부터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그 전에 마지막으로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괴물>이었으니까 <괴물>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서 보게 되면서, 구도만 달라졌지 담기는 건 되게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4. 한국 관객이 수용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CY: 저는 되게 궁금했던 것 중 하나였거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다루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로컬하잖아요. 구체적인 일본 사회 문제에 주목하고 이야기에서도 일본적인 느낌이 많이 묻어나오는데, 그런데도 어떻게 한국에서 이 정도의 티켓 파워를 가질 수 있는지가 조금 궁금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싶은…
EB: 혹시 이동진 선생님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안 되겠죠?
HJ: 필모그래피와 별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에서 어떻게 떴는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지분이 큰 게 맞는 것 같아요. 또 이 사람이 본격적으로 필모그래피를 확장하던 그 시기하고 이동진 평론가가 공중파에서 한창 활동하던 시기하고 같으니까.
EB: 메시지가 보편적이기도 하고요.
SY: 영화 내부적으로 봐도 일본이랑 한국의 정서가 굉장히 비슷한 편이잖아요. 가족 개념을 중시하는 게 한국 정서와 기본적으로 비슷하고, 또 극적인 감동을 주는 면이 한국 관객이 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SJ: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라든지 <태풍이 지나가고(2016)>라든지 이동진 평론가가 활동할 무렵에 떠오른 작품들이, 여러 대안적인 방향을 제시하긴 하지만 사실은 되게 끈끈한 가족의 느낌을 준다는 것. 그게 우리나라의 정상성에 걸맞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HG: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드는 영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공통적으로 울리는 감성과 되게 맞닿아 있다고는 늘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요, 그걸 예쁘게 담아내요.
EB: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 영화처럼?
HG: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 영화 에스테틱처럼 담아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이번에 뉴진스의 ‘Bubblegum’이 나왔을 때 갑자기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가 확 뜨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일본 영화의 어느 정도 고착화된 에스테틱이 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EB: 저는 그 반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에스테틱이 이미 있는데, 고레에다가 그중에서 제일 나은 거죠. <환상의 빛>에서도 수박 먹는 이미지나 할아버지와 손자가 배 위에 누워 있는 이미지나 너무 일본 영화의 풍경 같았어요.
5. 일본 에스테틱…
HG: 근데 일본적인 게 뭐야?
SJ: 고레에다가 담는 이미지가 일본적인 것의 전형이라는 데 동의하긴 하는데, 일본적인 것에 여러 갈래가 있긴 하잖아요. 이것만이 일본 에스테틱은 아니니까.
EB: 근데 저는 그런 일본 에스테틱이라는 게 있다고 봐요. 기타노 다케시를 보고 느꼈는데, 그 사람이 주로 총 쏘는 영화 만드는 사람인데 <키즈 리턴(1996)>도 잘 만들고 <기쿠지로의 여름(1999)>도 잘 만들었잖아요. 일본 여름 영화 느낌의 전형인데…
HG: 또 뭐가 있지? 일본 여름 영화.
SJ: 토토로가 진짜 그런 느낌의 전형이기도 하고요.
HJ: 에반게리온.
SJ: 근데 토토로의 에스테틱과 에반게리온의 에스테틱은 진짜 전혀 다른 걸 향하고 있고…
HG: 릴리 슈슈도 약간 일본 여름 영화잖아요. 근데 릴리 슈슈의 여름과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여름은 너무너무 다른 존재야.
SJ: 아예 상층부랑 하층부잖아요.
HG: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적이라고 한다면 고레에다보다 이와이 슌지가 먼저 떠올라요. 고레에다는 조금 더 보편적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고레에다가 해외 촬영 요청을 많이 받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일본 영화 특유의 찝찝하고 음침한 느낌은 슌지가 아닌지… 저한테는 그게 조금 더 일본스럽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SJ: 일본 에스테틱으로 그것도 꼽히잖아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2006)>. 그곳도 일본 에스테틱으로 들어가게 되는 하나의 길이란 말이죠. 음침으로 더 파고들면 그 친구 아니면 <헬터 스켈터(2012)>도 있잖아요.
HG: 고레에다는 그런 음침함이 별로 없잖아.
HJ: 자기 파괴적인 꿉꿉함을 애초에 넣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일본 영화를 떠올릴 때 우리가 곧장 떠올리는 어떤 작품들의 이미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기 파괴적인 이미지들이 분명히 있단 말이죠. 근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들을 볼 때 그게 주된 것으로 작동한다고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 사람이 애초에 그런 걸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EB: 본인이 약간 건강한 사람인가 봐요. 그런데 <괴물>에서는 교장 선생님 되게 음침하지 않았어요?
HJ: 그것도 약간 인공적인 느낌... 진짜가 아니라. 음침한 사람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HG: <괴물>의 교장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그 음침함이 맥거핀이 되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라서 그랬던 것 같고, 영화 장치로서 필요한 음침함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심지어 그것마저도 탁 트이게 해소되어 버리잖아요.
SJ: 저는 <어느 가족>도 그것처럼 해소되는 면이 강하다고 느꼈어요. 취조실 장면에서 안도 사쿠라가 자신의 심정을 대사로 모두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SY: 근데 저는 <어느 가족>에서 느꼈던 음침함이 성적인 요소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어요. 왜 이렇게 비쳤지 싶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나오잖아요. 저는 사실 그게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느꼈거든요.
EB: <어느 가족>은 이야기 자체가 거부감을 가질 만한 소재에서 시작하잖아요? 사실상 유사 유괴가… 저는 쇼타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도 굉장히 파격적이었어요. 애가 갑자기 뛰어내리고 오렌지가 팍 터지잖아요. 저는 영화 보면서 아이가 죽는 것처럼 묘사되는 장면을 그때 처음 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궁금했던 건, 고레에다는 꽤 건강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자꾸만 자살을 이야기하잖아요. 또 이유도 없이 충동적으로 자살한다거나 확 뛰어내린다거나.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러는 걸지 궁금했어요.
HJ: 그것의 슬픔에 너무 과몰입하지 않고 관조하는 것 아닐까요.
CY: 이 감독이 감정을 드러내는 걸 경계하는 것 같긴 해요.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가 죽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에 아이들이 우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고레에다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래요. 아이들 옆에 있어 주되 안아주고 싶지는 않다고, 그게 아이들이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보여줄 방법이라고 말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