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그로테스크, 결국 시선
WEBZINE
WEDITOR 이다현
WEDITOR 이다현
아메리칸 클래식을 대표하는
브랜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시즌
컬렉션 라인과 진즈,
언더웨어, 퍼퓸 라인 등의 캠페인을
비롯해 다양한 패션 이미지를 제작하는, 패션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브랜드다. 2023년, FKA 트위그스FKA Twigs가 출연한 캘빈 클라인의 봄 캠페인에서 그녀는 한쪽 가슴 일부와 엉덩이 라인을 드러냈다. 영국 광고표준협회ASA, 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는 “해당 화보는 의류 광고보다 모델의 신체에 더 집중하게끔 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것이고, 이는 심각한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며 광고를 검열했고, 이후 공개된 제레미 앨런
화이트Jeremy Allen White의 언더웨어 캠페인은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들은 어째서 이중 잣대를
갖고 그녀만을 ‘고정 관념적인 성적 대상’으로 수식했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WtpxD-lOfd8
인간의 몸에는 수많은 권력과 주체로부터 나오는 시선, 그리고 그에 대한 ‘응시Gaze’가 존재한다. 이때 응시는 ‘보여짐’을 의미하는 용어로, 객체의 위치에서 주체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시선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사회문화적 이상미, 에로티시즘, 지위, 동조, 그리고 권력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몸을 장식해 왔다. 사회 속에서 인간의 몸은 생물학적 유기체인 동시에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기호가 내포되고 코드화된 상태로 존재할 뿐 몸 그 자체의 순수한 상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때 몸을 응시하는 시각 언어는 근대적 사회 구조의 인식 틀 내에서 규격화되고, 시각 주체의 정체성은 규격화된 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담론에 의해 조정된다. 이런 이유로 그림이나 사진 등의 이미지는 그들이 재현하는 대상뿐 아니라 이를 보는 방식 자체에까지 영향을 주며, 단순히 재현된 표상을 넘어 시각 양식 그 자체로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이미지는 응시라는 개념을 그 속에 감추고 있으며, 따라서 이미지를 분석하는 행위는 그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주체의 사상이나 의도 등을 탐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라보는 것 자체로 즐거움과 유혹을 안겨 주는 패션 이미지는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주요 텍스트다. 문학, 영화, 페미니스트 연구 교수 다이애나 퍼스Diana Fuss에 따르면 패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이성애자로 상정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며, 따라서 표현된 이미지들은 성적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패션 이미지 또한 분명 시선의 주체가 존재하기에, 이 주체를 기준으로 시선의 의미가 결정되어 이미지의 내용까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캘빈 클라인의 이미지와 관련된 논쟁은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가, 그 시선이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집중되어 왔다.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시선의 주체를 남-여, 권력의 유-무 등으로 나누었고, 이로 인해 FKA 트위그스는 고정 관념적인 성적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곧 제레미 앨런 화이트의 언더웨어 캠페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우리 문화 속 상당히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상호 관계를 고찰해 볼 수 있다. 에로틱한 미술에 있어서 시각적인 욕망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고유한 본능으로 인식되어 왔다. 감상자 혹은 소유자는 대부분 남성이었고, 오브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여성의 성적 역할은 수동적이며 먼저 자신을 능동적인 남성에 대한 성적 욕망의 객체로서 의식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진행된 포스트모던 문화 내에서 권력이 탈중심화되기 시작했고, 보는 주체가 되지 못했던 여성과 동성연애자들이 남성을 에로틱한 대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때 남성에 의해 제작된 남성 누드에서는 벗은 몸의 ‘야만적인’ 인상을 상쇄하기 위해 어떠한 의미를 상징하는 장식을 함께 표상했는데, 그들의 모습은 옷을 벗는 것이 목적 있는 행동으로 묘사되는 상황 속에 배치되어 관객에게 어떠한 성적 환상도 제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못하고 보는 이의 반응을 조정하려 했다. 이러한 금지된 욕망의 환유적 표현이 해소되지 못하고 여전히 대중 심리의 기저에 깔려 있어 캘빈 클라인의 이미지에 표상된 남성의 몸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만큼의 시각 양식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 대중사회가 보인 대중 소비 및 대중심리는 예술이 아닌 사회적 현상, 즉 ‘문화’이고 이는 흔히 유행의 산물이라고 한다. 대중의 ‘자발적 선택’을 통해 무언가가 선도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스스로 사멸해 가는 것이다. 취향이나 기호가 자연발생적이지 않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유행의 본질 역시 대부분의 사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는 이점을 바탕으로 누군가에 의한 모방과 동조 속에서 의도적으로 번져 나가는 데에 있다. 이때 유행은 개인의 고유한 특질로 인정되는 취향 및 기호를 근거로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메커니즘을 비판하려 해도 취향의 생득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우리는 노출을 분석해 온 그동안의 시선들을 답습해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적인 것’은 감성적 인식에 의해 포착된 현상으로서 주체의 의식에 비친 대상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문화의 미학적 의미와 가치의 특이성을 찾아 새롭게 문화예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술과 대중문화의 이분법을 넘어 대중문화만이 갖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야말로 기존의 미학에 새로운 대상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미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브랜드 팔로마 울Paloma Wool은 2023 S/S 컬렉션 쇼에서 사진작가 카를로타 게레로Carlota Guerrero와 함께 여성의 목욕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갤러리 베르트란드 그리몽뜨Galerie Bertrand Grimont 안 짧은 런웨이를 거쳐 갤러리 밖 거리를 통해 작은 실내 욕조가 마련된 장소로 걸어간 여성 모델들은 물에 몸을 적시는데, 이때 서로의 몸을 씻고 씻겨 주며 그들의 몸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해당 퍼포먼스를 시작한 첫 번째 모델은 렌즈를 똑바로 응시함으로써 지켜보고 있는 자를 의식한 후 물에 들어간다. 렌즈의 주인은 카를로타 게레로. 그 렌즈 역시 ‘다른 여성의 눈’이며, 그녀 또한 모델 중 한 명으로 걸어 나와 카메라를 집어 들고 촬영하기 시작한다. 이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카메라의 위치를 설정한 그녀가 모두가 보이는 곳에서 다른 모델들과 뒤섞여 촬영하고 있는 모습은 모델들에게 그들이 안전하고, 그들의 모습이 누군가로부터 훔쳐지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관음, 감시, 단속 등의 도구로 사용되어 온 CCTV 영상과 유사한 영상미를 사용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닫힌 공간에서 소수의 눈이 보는 작은 CCTV 화면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보여주기 위해 계획된 패션쇼장에서 큰 화면으로 방송됨으로써 관음, 감시, 단속과 거리가 멀어진 채 관객에게 닿는다. 몰래 지켜보는 대상, 성적 욕망의 대상, 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도움의 대상 역할에 지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퍼포먼스. 이가 파리 패션 위크에서, 많은 사람이 모인 패션쇼장에서 벌어진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현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만들어 가는 패션은 본질적으로 답습을 거부하는 속성을 가지며 인간의 삶 중심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또한 소수만이 누리던 문화가 유행이라는 말로 대중에게 확산되고 다수가 공유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기회가 부여되기도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중이 온전히 자율적인 존재라고 할 수는 없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 언어와 같이 우리를 지배하고자 하는 사회의 헤게모니와 그 시도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pxD-lOfd8
인간의 몸에는 수많은 권력과 주체로부터 나오는 시선, 그리고 그에 대한 ‘응시Gaze’가 존재한다. 이때 응시는 ‘보여짐’을 의미하는 용어로, 객체의 위치에서 주체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시선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사회문화적 이상미, 에로티시즘, 지위, 동조, 그리고 권력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몸을 장식해 왔다. 사회 속에서 인간의 몸은 생물학적 유기체인 동시에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기호가 내포되고 코드화된 상태로 존재할 뿐 몸 그 자체의 순수한 상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때 몸을 응시하는 시각 언어는 근대적 사회 구조의 인식 틀 내에서 규격화되고, 시각 주체의 정체성은 규격화된 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담론에 의해 조정된다. 이런 이유로 그림이나 사진 등의 이미지는 그들이 재현하는 대상뿐 아니라 이를 보는 방식 자체에까지 영향을 주며, 단순히 재현된 표상을 넘어 시각 양식 그 자체로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이미지는 응시라는 개념을 그 속에 감추고 있으며, 따라서 이미지를 분석하는 행위는 그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주체의 사상이나 의도 등을 탐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라보는 것 자체로 즐거움과 유혹을 안겨 주는 패션 이미지는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주요 텍스트다. 문학, 영화, 페미니스트 연구 교수 다이애나 퍼스Diana Fuss에 따르면 패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이성애자로 상정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며, 따라서 표현된 이미지들은 성적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패션 이미지 또한 분명 시선의 주체가 존재하기에, 이 주체를 기준으로 시선의 의미가 결정되어 이미지의 내용까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캘빈 클라인의 이미지와 관련된 논쟁은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가, 그 시선이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집중되어 왔다.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시선의 주체를 남-여, 권력의 유-무 등으로 나누었고, 이로 인해 FKA 트위그스는 고정 관념적인 성적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곧 제레미 앨런 화이트의 언더웨어 캠페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우리 문화 속 상당히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상호 관계를 고찰해 볼 수 있다. 에로틱한 미술에 있어서 시각적인 욕망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고유한 본능으로 인식되어 왔다. 감상자 혹은 소유자는 대부분 남성이었고, 오브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여성의 성적 역할은 수동적이며 먼저 자신을 능동적인 남성에 대한 성적 욕망의 객체로서 의식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진행된 포스트모던 문화 내에서 권력이 탈중심화되기 시작했고, 보는 주체가 되지 못했던 여성과 동성연애자들이 남성을 에로틱한 대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때 남성에 의해 제작된 남성 누드에서는 벗은 몸의 ‘야만적인’ 인상을 상쇄하기 위해 어떠한 의미를 상징하는 장식을 함께 표상했는데, 그들의 모습은 옷을 벗는 것이 목적 있는 행동으로 묘사되는 상황 속에 배치되어 관객에게 어떠한 성적 환상도 제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못하고 보는 이의 반응을 조정하려 했다. 이러한 금지된 욕망의 환유적 표현이 해소되지 못하고 여전히 대중 심리의 기저에 깔려 있어 캘빈 클라인의 이미지에 표상된 남성의 몸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만큼의 시각 양식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 대중사회가 보인 대중 소비 및 대중심리는 예술이 아닌 사회적 현상, 즉 ‘문화’이고 이는 흔히 유행의 산물이라고 한다. 대중의 ‘자발적 선택’을 통해 무언가가 선도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스스로 사멸해 가는 것이다. 취향이나 기호가 자연발생적이지 않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유행의 본질 역시 대부분의 사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는 이점을 바탕으로 누군가에 의한 모방과 동조 속에서 의도적으로 번져 나가는 데에 있다. 이때 유행은 개인의 고유한 특질로 인정되는 취향 및 기호를 근거로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메커니즘을 비판하려 해도 취향의 생득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우리는 노출을 분석해 온 그동안의 시선들을 답습해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적인 것’은 감성적 인식에 의해 포착된 현상으로서 주체의 의식에 비친 대상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문화의 미학적 의미와 가치의 특이성을 찾아 새롭게 문화예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술과 대중문화의 이분법을 넘어 대중문화만이 갖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야말로 기존의 미학에 새로운 대상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미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브랜드 팔로마 울Paloma Wool은 2023 S/S 컬렉션 쇼에서 사진작가 카를로타 게레로Carlota Guerrero와 함께 여성의 목욕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갤러리 베르트란드 그리몽뜨Galerie Bertrand Grimont 안 짧은 런웨이를 거쳐 갤러리 밖 거리를 통해 작은 실내 욕조가 마련된 장소로 걸어간 여성 모델들은 물에 몸을 적시는데, 이때 서로의 몸을 씻고 씻겨 주며 그들의 몸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해당 퍼포먼스를 시작한 첫 번째 모델은 렌즈를 똑바로 응시함으로써 지켜보고 있는 자를 의식한 후 물에 들어간다. 렌즈의 주인은 카를로타 게레로. 그 렌즈 역시 ‘다른 여성의 눈’이며, 그녀 또한 모델 중 한 명으로 걸어 나와 카메라를 집어 들고 촬영하기 시작한다. 이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카메라의 위치를 설정한 그녀가 모두가 보이는 곳에서 다른 모델들과 뒤섞여 촬영하고 있는 모습은 모델들에게 그들이 안전하고, 그들의 모습이 누군가로부터 훔쳐지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관음, 감시, 단속 등의 도구로 사용되어 온 CCTV 영상과 유사한 영상미를 사용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닫힌 공간에서 소수의 눈이 보는 작은 CCTV 화면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보여주기 위해 계획된 패션쇼장에서 큰 화면으로 방송됨으로써 관음, 감시, 단속과 거리가 멀어진 채 관객에게 닿는다. 몰래 지켜보는 대상, 성적 욕망의 대상, 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도움의 대상 역할에 지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퍼포먼스. 이가 파리 패션 위크에서, 많은 사람이 모인 패션쇼장에서 벌어진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현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만들어 가는 패션은 본질적으로 답습을 거부하는 속성을 가지며 인간의 삶 중심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또한 소수만이 누리던 문화가 유행이라는 말로 대중에게 확산되고 다수가 공유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기회가 부여되기도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중이 온전히 자율적인 존재라고 할 수는 없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 언어와 같이 우리를 지배하고자 하는 사회의 헤게모니와 그 시도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