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 <일 부코>
WEBZINE
WEDITOR 임채윤
WEDITOR 임채윤
발제 일자: 9.19
발제 영화: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일 부코(2021)>
참석 인원: CY, SY, SJ, DW, YS
프라마르티노의 영화는 말이 없다. 지난여름 나는 그의 장편 영화 <네 번(2010)>의 자막을 찾는 데 한참을 쏟았지만, 어디에서도 한글 자막은커녕 영문 자막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자막을 포기하고 영화를 관람한 나는 곧 그것이 괜한 수고였음을 알게 됐다. 그의 영화에서 말소리는 장작 타는 소리나 바람 소리보다 더 두드러지지 않으며 여기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정도로만 간신히 기능한다(당연히 들리는 말들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일도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 사람과 염소, 염소와 나무가 다를 바 없이 그려지는 그의 영화에서 사람의 음성은 애초에 다종의 소음을 뚫고 나올 특권을 갖지 못한다.
그의 최근작 <일 부코(2021)> 또한 말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구멍’이라는 제목을 달고 1961년의 어느 동굴 탐험을 정직하게 재현하는 본 작품은 언뜻 전작들에 비해 소박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고수하는 말 없는 관조적 태도는 여전히 여러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세워지는 빌딩, 탐험하는 동굴학도 무리, 죽어가는 노인…. 감정 이입의 여지도, 언어적 접합부도 없이 느슨히 결합하거나 충돌하는 이미지들을 두고 무슨 말을 더 얹어 볼 수 있을까? 여름을 (한~참) 지나온 열기가 꺾이기만을 기다리던 초가을 날 우리는 이 묘한 동굴 탐험 영화에 관해 이야기 나누며 더위를 달랬다.
보게 될 것들:
⁃ 다양한 동굴 사진
⁃ 동굴 밝히기의 면면
⁃ 무엇이 다큐멘터리?
⁃ 영화를 보며 놀라움을 느끼는 순간들
1. 동굴 탐험 - 노인의 죽음
CY: 이 영화의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한편에 동굴 아래로 내려가는 젊은 탐험가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 죽어가는 양치기 노인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두 이야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노인의 죽음은 동굴 탐험의 결과일까요?
SJ: 이탈리아에서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던 시대가 배경이니까, 젊은이들은 무언가를 해 내고 노인은 저물어 가는 자연스러운 의미의 세대 변화를 보여 주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어요.
SY: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두 이야기의 병치가,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별것 아닌지 보여준다고 느꼈어요. 동굴 탐험은 어떻게 보면 자연을 정복하려는 시도이잖아요.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남자가 생물학적인 노화에 손쓸 수도 없이 죽어가고. 이 두 이야기를 와이드 숏으로 계속 보다 보니, 일종의 손 쓸 수 없는 섭리를 보여 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DW: 저는 노인의 이야기나 동굴 탐험의 이야기나 다 자연 속에서 하나로 편입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 빛을 재미있게 봤거든요. 의사가 아픈 노인의 귀에 불빛을 비춰 보는 장면이나, 탐험가들이 손전등에 의지해서 탐험하는 장면이나. 이 영화에서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것과 동굴 700m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비슷하게 보였어요.
CY: 그 부분 관해서 감독이 인터뷰한 내용 중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프랑수아 엘렌이라는 프랑스 지질학자가 수감 생활을 할 때 철학을 하는 동료 수감자들과는 달리 환경의 제약으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니까, 자신의 지질학적 연구법으로 자기의 내면을 탐구하는 이상한 실험을 하면서 지구의 내부와 인간의 내부가 어떻게 닮아 있는지 연구했대요. 프라마르티노 감독 왈 그 이야기를 접한 뒤에 인간과 동굴의 이야기를 병치할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2. 순수한 – 착취적인
CY :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결국 탐험가들이 동굴의 끝을 발견하는데요.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좋으면서도 허망한 느낌을 받았어요. 노인의 죽음과 병치되기도 하지만, 동굴이 끝까지 해명되어 버리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과 관련해서 어떤 글이 생각났는데 혹시 SCP 아세요?
SY: SPC밖에 몰라. ㅋㅋ
SJ: 그거 아니에요? 가짜 동물.
CY: 약간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괴수들을 모아놓은 리스트인데요. 얼마 전에 이거 관련해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는데, 그러니까 SCP 리스트에 실린 괴수들은 사실 리스트 만드는 사람들이 창작한 게 아니래요. 누군가가 저화질 호러 사진을 편집해서 만들고 그게 유명세를 타면, SCP에서 얘는 SCP 47번이다 하면서 데려오는 거죠. 그런 식으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나면 괴수가 더 유명해져서 2차 창작물도 나오고 계속 뒷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역사를 계속 부여받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흐릿한 미스터리 괴수 이미지였던 게, SCP에 이름을 올리고 계속 이야기되면서 더 이상 무서워지지 않는 거예요.
<일 부코>에서도 처음에는 외화면에만 존재하던 동굴이 시야에 들어오고 결국 끝까지 모두 내보이게 되어 죽음을 맞는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여러분은 이 동굴 탐험 행위가 어떤 근원을 찾기 위한 순수한 행위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조금은 착취적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했어요.
DW: 저는 착취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고 되게 순수한 이미지로 봤어요. 탐험이 끝나고 동굴 지도가 그려지는 걸 보다 보니까, 이게 사람 내장의 구조 같다는 직관적인 인상을 받았어요. 동굴을 탐사하는 일이 인간을 탐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게 느껴져서, 이 이야기가 문명과 자연의 대립 구도로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YS: 저도 이게 순수한 호기심으로 탐사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이긴 했지만, 순수 악이라고 해야 하나… 이 탐구 자체가 인류사의 측면에서 봤을 때 지배로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탐험가들의 심리 자체가 그렇게 악해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CY: 저는 착취적이라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탐험 중간에 동굴 깊이를 가늠하려고 닉슨이랑 케네디가 그려진 잡지에 불을 붙여서 아래로 던지잖아요. 그 장면에서 노골적이라는 느낌까지 받았거든요.
SY: 그 장면에서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그 뒤에서도 동굴 구조를 스케치한 사진이 갑자기 바람에 휘날리는데, 되게 드라마틱하게 휘날린단 말이에요. 심지어 소들이 뒤에 있는데 자연스럽지 않게 골고루 휘날리고…
CY: 저는 아예 거기서 소들이 종이를 먹으려나 싶었어요.
3. 픽션 – 다큐멘터리
SY: 누군가한테는 중요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좀 무의미해졌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영화적인 게 뭐냐는 질문이랑 똑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무얼 보고 이게 뭐가 영화냐고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너무 영화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게 동시에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YS: SY가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이 영화 초반에 동굴 안에서 랜턴을 켜면 동굴 내부가 확 보이잖아요. 저는 그게 영화 영사 과정에 대한 찬양처럼 보였거든요. 단지 동굴을 통해서 영화 기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싶은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인지 픽션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SY: 그래도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종이들이 휘날리는 장면도 그렇고 분명히 연출된 것 같은 장면들이 이 영화를 픽션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게 픽션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장면들을 넣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CY: 정말 다큐멘터리로만 보기에는 되게 이상한 시선들이 많잖아요. 잡지를 불에 태워서 내려 보냈는데, 이어지는 샷이 떨어지는 불덩이를 아래에서 바라보는 시점이고…. 꼭 결과가 정해진 것처럼 카메라가 사람보다 앞서가 있는 이런 시선은 보통 다큐멘터리에서 나올 수 없으니까요.
DW: 저는 이 영화가 픽션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픽션이냐 다큐멘터리냐 하는 질문과 픽션적이냐 다큐멘터리적이냐 하는 질문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 실제 마을의 주민들과 노동자들이 그대로 담긴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다큐멘터리적인 픽션이 되지 않을까요?
CY: 이것에 관해서 감독이 한 말이 되게 재미있는데요. 1961년의 첫 발견을 재현하는 것이지만 촬영 시점에는 이미 동굴의 구조가 모두 밝혀져 있다 보니, 탐험가 그룹이 동굴 안 우물을 발견했을 때 놀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대요. 그때 프라마르티노는 우물을 보고도 놀란 체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네요.
“저는 우리 그룹이 1961년 탐험가들을 표현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이 영화의 이미지는 표현보다는 존재에 더 가까워요. 이건 다른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1961년의 탐험가인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금한 게, 탐사가 이미 이뤄진 동굴을 두고 탐험가들을 동원해서 탐사를 하게끔 한 다음 그걸 촬영하고 이것이 1961년의 상황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다큐멘터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DW: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실제 삶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니까. 재현의 과정에서는 실제 탐험가를 데려왔다고 해도 그들이 실제와 다른 성격을 부여받잖아요.
SJ: 사실극 같아요.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YS: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명료하게 보이는 부분은, 이 사람이 계속 영화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 영화가 관객 반영이 잘 되어 있는 체험적 영화라고 느꼈어요. 영화적인 이미지들로 관객의 시선을 잡으려고 하고, 극장 안 관객을 고려한 듯이 동굴을 밝히고 깊이 내려가는 행위들… 그런 체험적 영화의 특성들은 픽션 쪽에 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4. 지속 – 끝없음
CY: 이 동굴 탐험의 과정이 여러분께 지속에 가깝게 느껴졌는지, 끝없음에 가깝게 느껴졌는지 궁금해요. 이렇게 정적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게끔 하는 영화를 볼 때 저는 대체로 받는 느낌이 저 둘로 나뉘거든요. 언젠가 끝날 지금이 긍정적으로 지속된다는 느낌이 있고, 진짜 이거 언제 끝나지 싶은 끝없음의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SY: CY는 이거 볼 때 안 지루했어요?
CY: 저는 사실 동굴을 좋아해서… 막 찾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지만.
SY: 그럼 동굴이 아니라 다른 걸 탐험했으면 이 정도로 좋게 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건가?
CY: 동굴이라는 점이 중요했던 것 같긴 한 게, 동굴은 그래도 끝이 있다고 예상하게 되잖아요. 반면 어떤 다큐멘터리들은 누군가 일하는 모습을 10시간씩 가만히 찍는데 그건 조금 끝없다고 느껴지는 것 같고….
SY: 저는 동굴 때문에 그런가 <키메라(2023)>가 계속 생각 났는데, <키메라>는 끝에서 무언가 신성한 걸 발견하는 반면, <일 부코>는 아무것도 없이 끝나서 공허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DW: 저도 결말에서 공허함을 느꼈어요. 이 사람 전작 <네 번>은 순환적으로 끝나거든요. 인간이 연기가 됐다가 재가 됐다가 마지막은 시작과 같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걸로 끝나요. 그 영화를 보고 연기가 흩어져 끝없는 순환을 일으킨다는 감상을 받았는데, 이 영화는 동굴의 끝과 노인의 죽음 같은 완전한 끝을 보여준다는 게 좀 전작과 다르다고 느꼈어요.
SJ: 이 영화 속 많은 행위가 계속 반복되잖아요.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그 과정 자체는 끝없지만 단지 그걸 중단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끝이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도 동굴의 끝을 마주하지만 그걸 끝으로서 의미를 두기에 끝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지 끝없음이라는 말이 조금 더 와닿아요.
SY: 그런데 삶이 반복되기도 하고 삶과 무관하게 자연이 지속된다는 걸 알면 그게 위안이 돼요, 아니면 무서워요? 그러니까 내가 뭔가 애써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런 섭리에 대해서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싶었어요.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YS: <퍼펙트 데이즈(2023)>가 그런 영화였잖아요. 일상이 반복된다는 게 희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되게 지루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고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저는 매일매일 삶이 똑같더라도 큰 위기감이 없는 게 좋은 것 같아요.
SJ: 저는 왠지 삶이 주식 차트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변화 추이를 일 단위로 볼 수도 있고 시간 단위로 볼 수도 있는데, 크게 보면 흐름이 비슷한 거예요. 미시적으로 봤을 때는 왔다 갔다 이벤트가 많아 보이지만 큰 흐름으로 봤을 때는 대세가 있는 거죠.
5. 영화의 스펙터클
CY: 저는 이 영화가 어드벤처 영화로서도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요즘의 어드벤처 영화들이 되게 힘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시각 효과도 2010년에나 신선했지, 요즘은 그런 것들이 놀라움이나 충격을 못 주는 것 같거든요. 그러던 차에 이 영화를 봤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 동굴이니까 잡지를 불태워 구덩이로 떨어뜨리는 장면에서도 깊이를 가늠해 보게 되고…
DW: 저도 크면서 시각 효과로 가득 찬 영화를 잘 안 보게 됐는데, 결국에 저는 옛날 영화로 돌아간 것 같아요. 스펙터클이라는 게 결국엔 장엄하고 대단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람을 비출 때 저에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지 않나 싶어요. 얼굴을 많이 비추는 존 카사베츠의 영화나 필립 가렐의 영화들. 얼굴만 가만히 비추는 데도 거기서 얻어지는 효과들이 있잖아요. 결국 인간이 놀라려면 인간이어야 하지 않나…. 공룡, 외계 문명을 지나서 결국 인간을 놀라게 하는 건 사람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SY: 저도 옛날 영화를 볼 때 스펙터클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새로운 이미지 같은 건 없잖아요, 전부 있는 이미지를 재조합한 거니까. 옛날 영화를 볼 때는 발상 자체, 그러니까 이미지의 근원 자체가 얼마나 독특한지를 보고 새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되게 조악한 이미지가 많은데도, 어떻게 이렇게 또라이 같은 걸 생각해 냈을까 싶을 때….
CY: 저는 어떤 영화가 그 영화 나름대로 구축한 규칙들을 어길 때 놀라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영화는 언제 만들어졌고, 등장인물들은 어떤 인물이고, 영화 내 양식은 어떻고 하는 규칙 내지는 한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거나, 영화 내 양식이 뒤바뀌거나, 이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싶은 장면들이 나올 때, 영화가 앞쪽에서 착착 세워놓은 규칙들이 깨질 때 놀랍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SY: 그건 영화 외적인 이유 때문에 놀라는 거 아냐?
CY: 거기에 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SY: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은 게, 뭐든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재평가받는 경향이 있잖아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작품에 대해 어떤 규칙이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건데, 지금 당장의 영화들은 너무 당장의 영화들이어서 뭔가 우리가 새롭게 분석할 수가 없는 거지.
CY: 또 <던전 앤 드래곤(2023)> 같은 당장의 어드벤처 영화들을 보면, 시각효과는 그 자체로 가능성이 너무 무궁무진하잖아요. 저는 그게 규칙이 없는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뭐든 가능한 상태여서 어길 수 있는 규칙이 없으니 놀라움도 없는 것 같아요.
YS: 아까 나온 이야기처럼 저는 나올 수 있는 이야기나 이미지는 모두 나왔다고 생각해서, 영화라는 매체를 제대로 활용하는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싶어요. 홍상수 영화가 계속 언급되는 지점도 그 경계를 계속 휘두른다는 거잖아요. 갑자기 건물 층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연기를 한다든가. 이제는 좀 터무니없는 경계성을 만들어내는 영화가 매체적으로도 매력적인 것 같아요.
발제 영화: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일 부코(2021)>
참석 인원: CY, SY, SJ, DW, YS
프라마르티노의 영화는 말이 없다. 지난여름 나는 그의 장편 영화 <네 번(2010)>의 자막을 찾는 데 한참을 쏟았지만, 어디에서도 한글 자막은커녕 영문 자막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자막을 포기하고 영화를 관람한 나는 곧 그것이 괜한 수고였음을 알게 됐다. 그의 영화에서 말소리는 장작 타는 소리나 바람 소리보다 더 두드러지지 않으며 여기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정도로만 간신히 기능한다(당연히 들리는 말들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일도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 사람과 염소, 염소와 나무가 다를 바 없이 그려지는 그의 영화에서 사람의 음성은 애초에 다종의 소음을 뚫고 나올 특권을 갖지 못한다.
그의 최근작 <일 부코(2021)> 또한 말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구멍’이라는 제목을 달고 1961년의 어느 동굴 탐험을 정직하게 재현하는 본 작품은 언뜻 전작들에 비해 소박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고수하는 말 없는 관조적 태도는 여전히 여러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세워지는 빌딩, 탐험하는 동굴학도 무리, 죽어가는 노인…. 감정 이입의 여지도, 언어적 접합부도 없이 느슨히 결합하거나 충돌하는 이미지들을 두고 무슨 말을 더 얹어 볼 수 있을까? 여름을 (한~참) 지나온 열기가 꺾이기만을 기다리던 초가을 날 우리는 이 묘한 동굴 탐험 영화에 관해 이야기 나누며 더위를 달랬다.
보게 될 것들:
⁃ 다양한 동굴 사진
⁃ 동굴 밝히기의 면면
⁃ 무엇이 다큐멘터리?
⁃ 영화를 보며 놀라움을 느끼는 순간들
1. 동굴 탐험 - 노인의 죽음
CY: 이 영화의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한편에 동굴 아래로 내려가는 젊은 탐험가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 죽어가는 양치기 노인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두 이야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노인의 죽음은 동굴 탐험의 결과일까요?
SJ: 이탈리아에서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던 시대가 배경이니까, 젊은이들은 무언가를 해 내고 노인은 저물어 가는 자연스러운 의미의 세대 변화를 보여 주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어요.
SY: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두 이야기의 병치가,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별것 아닌지 보여준다고 느꼈어요. 동굴 탐험은 어떻게 보면 자연을 정복하려는 시도이잖아요.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남자가 생물학적인 노화에 손쓸 수도 없이 죽어가고. 이 두 이야기를 와이드 숏으로 계속 보다 보니, 일종의 손 쓸 수 없는 섭리를 보여 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DW: 저는 노인의 이야기나 동굴 탐험의 이야기나 다 자연 속에서 하나로 편입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 빛을 재미있게 봤거든요. 의사가 아픈 노인의 귀에 불빛을 비춰 보는 장면이나, 탐험가들이 손전등에 의지해서 탐험하는 장면이나. 이 영화에서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것과 동굴 700m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비슷하게 보였어요.
CY: 그 부분 관해서 감독이 인터뷰한 내용 중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프랑수아 엘렌이라는 프랑스 지질학자가 수감 생활을 할 때 철학을 하는 동료 수감자들과는 달리 환경의 제약으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니까, 자신의 지질학적 연구법으로 자기의 내면을 탐구하는 이상한 실험을 하면서 지구의 내부와 인간의 내부가 어떻게 닮아 있는지 연구했대요. 프라마르티노 감독 왈 그 이야기를 접한 뒤에 인간과 동굴의 이야기를 병치할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2. 순수한 – 착취적인
CY :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결국 탐험가들이 동굴의 끝을 발견하는데요.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좋으면서도 허망한 느낌을 받았어요. 노인의 죽음과 병치되기도 하지만, 동굴이 끝까지 해명되어 버리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과 관련해서 어떤 글이 생각났는데 혹시 SCP 아세요?
SY: SPC밖에 몰라. ㅋㅋ
SJ: 그거 아니에요? 가짜 동물.
CY: 약간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괴수들을 모아놓은 리스트인데요. 얼마 전에 이거 관련해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는데, 그러니까 SCP 리스트에 실린 괴수들은 사실 리스트 만드는 사람들이 창작한 게 아니래요. 누군가가 저화질 호러 사진을 편집해서 만들고 그게 유명세를 타면, SCP에서 얘는 SCP 47번이다 하면서 데려오는 거죠. 그런 식으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나면 괴수가 더 유명해져서 2차 창작물도 나오고 계속 뒷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역사를 계속 부여받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흐릿한 미스터리 괴수 이미지였던 게, SCP에 이름을 올리고 계속 이야기되면서 더 이상 무서워지지 않는 거예요.
<일 부코>에서도 처음에는 외화면에만 존재하던 동굴이 시야에 들어오고 결국 끝까지 모두 내보이게 되어 죽음을 맞는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여러분은 이 동굴 탐험 행위가 어떤 근원을 찾기 위한 순수한 행위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조금은 착취적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했어요.
DW: 저는 착취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고 되게 순수한 이미지로 봤어요. 탐험이 끝나고 동굴 지도가 그려지는 걸 보다 보니까, 이게 사람 내장의 구조 같다는 직관적인 인상을 받았어요. 동굴을 탐사하는 일이 인간을 탐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게 느껴져서, 이 이야기가 문명과 자연의 대립 구도로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YS: 저도 이게 순수한 호기심으로 탐사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이긴 했지만, 순수 악이라고 해야 하나… 이 탐구 자체가 인류사의 측면에서 봤을 때 지배로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탐험가들의 심리 자체가 그렇게 악해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CY: 저는 착취적이라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탐험 중간에 동굴 깊이를 가늠하려고 닉슨이랑 케네디가 그려진 잡지에 불을 붙여서 아래로 던지잖아요. 그 장면에서 노골적이라는 느낌까지 받았거든요.
SY: 그 장면에서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그 뒤에서도 동굴 구조를 스케치한 사진이 갑자기 바람에 휘날리는데, 되게 드라마틱하게 휘날린단 말이에요. 심지어 소들이 뒤에 있는데 자연스럽지 않게 골고루 휘날리고…
CY: 저는 아예 거기서 소들이 종이를 먹으려나 싶었어요.
3. 픽션 – 다큐멘터리
SY: 누군가한테는 중요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좀 무의미해졌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영화적인 게 뭐냐는 질문이랑 똑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무얼 보고 이게 뭐가 영화냐고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너무 영화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게 동시에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YS: SY가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이 영화 초반에 동굴 안에서 랜턴을 켜면 동굴 내부가 확 보이잖아요. 저는 그게 영화 영사 과정에 대한 찬양처럼 보였거든요. 단지 동굴을 통해서 영화 기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싶은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인지 픽션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SY: 그래도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종이들이 휘날리는 장면도 그렇고 분명히 연출된 것 같은 장면들이 이 영화를 픽션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게 픽션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장면들을 넣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CY: 정말 다큐멘터리로만 보기에는 되게 이상한 시선들이 많잖아요. 잡지를 불에 태워서 내려 보냈는데, 이어지는 샷이 떨어지는 불덩이를 아래에서 바라보는 시점이고…. 꼭 결과가 정해진 것처럼 카메라가 사람보다 앞서가 있는 이런 시선은 보통 다큐멘터리에서 나올 수 없으니까요.
DW: 저는 이 영화가 픽션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픽션이냐 다큐멘터리냐 하는 질문과 픽션적이냐 다큐멘터리적이냐 하는 질문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 실제 마을의 주민들과 노동자들이 그대로 담긴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다큐멘터리적인 픽션이 되지 않을까요?
CY: 이것에 관해서 감독이 한 말이 되게 재미있는데요. 1961년의 첫 발견을 재현하는 것이지만 촬영 시점에는 이미 동굴의 구조가 모두 밝혀져 있다 보니, 탐험가 그룹이 동굴 안 우물을 발견했을 때 놀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대요. 그때 프라마르티노는 우물을 보고도 놀란 체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네요.
“저는 우리 그룹이 1961년 탐험가들을 표현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이 영화의 이미지는 표현보다는 존재에 더 가까워요. 이건 다른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1961년의 탐험가인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금한 게, 탐사가 이미 이뤄진 동굴을 두고 탐험가들을 동원해서 탐사를 하게끔 한 다음 그걸 촬영하고 이것이 1961년의 상황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다큐멘터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DW: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실제 삶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니까. 재현의 과정에서는 실제 탐험가를 데려왔다고 해도 그들이 실제와 다른 성격을 부여받잖아요.
SJ: 사실극 같아요.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YS: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명료하게 보이는 부분은, 이 사람이 계속 영화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 영화가 관객 반영이 잘 되어 있는 체험적 영화라고 느꼈어요. 영화적인 이미지들로 관객의 시선을 잡으려고 하고, 극장 안 관객을 고려한 듯이 동굴을 밝히고 깊이 내려가는 행위들… 그런 체험적 영화의 특성들은 픽션 쪽에 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4. 지속 – 끝없음
CY: 이 동굴 탐험의 과정이 여러분께 지속에 가깝게 느껴졌는지, 끝없음에 가깝게 느껴졌는지 궁금해요. 이렇게 정적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게끔 하는 영화를 볼 때 저는 대체로 받는 느낌이 저 둘로 나뉘거든요. 언젠가 끝날 지금이 긍정적으로 지속된다는 느낌이 있고, 진짜 이거 언제 끝나지 싶은 끝없음의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SY: CY는 이거 볼 때 안 지루했어요?
CY: 저는 사실 동굴을 좋아해서… 막 찾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지만.
SY: 그럼 동굴이 아니라 다른 걸 탐험했으면 이 정도로 좋게 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건가?
CY: 동굴이라는 점이 중요했던 것 같긴 한 게, 동굴은 그래도 끝이 있다고 예상하게 되잖아요. 반면 어떤 다큐멘터리들은 누군가 일하는 모습을 10시간씩 가만히 찍는데 그건 조금 끝없다고 느껴지는 것 같고….
SY: 저는 동굴 때문에 그런가 <키메라(2023)>가 계속 생각 났는데, <키메라>는 끝에서 무언가 신성한 걸 발견하는 반면, <일 부코>는 아무것도 없이 끝나서 공허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DW: 저도 결말에서 공허함을 느꼈어요. 이 사람 전작 <네 번>은 순환적으로 끝나거든요. 인간이 연기가 됐다가 재가 됐다가 마지막은 시작과 같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걸로 끝나요. 그 영화를 보고 연기가 흩어져 끝없는 순환을 일으킨다는 감상을 받았는데, 이 영화는 동굴의 끝과 노인의 죽음 같은 완전한 끝을 보여준다는 게 좀 전작과 다르다고 느꼈어요.
SJ: 이 영화 속 많은 행위가 계속 반복되잖아요.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그 과정 자체는 끝없지만 단지 그걸 중단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끝이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도 동굴의 끝을 마주하지만 그걸 끝으로서 의미를 두기에 끝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지 끝없음이라는 말이 조금 더 와닿아요.
SY: 그런데 삶이 반복되기도 하고 삶과 무관하게 자연이 지속된다는 걸 알면 그게 위안이 돼요, 아니면 무서워요? 그러니까 내가 뭔가 애써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런 섭리에 대해서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싶었어요.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YS: <퍼펙트 데이즈(2023)>가 그런 영화였잖아요. 일상이 반복된다는 게 희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되게 지루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고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저는 매일매일 삶이 똑같더라도 큰 위기감이 없는 게 좋은 것 같아요.
SJ: 저는 왠지 삶이 주식 차트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변화 추이를 일 단위로 볼 수도 있고 시간 단위로 볼 수도 있는데, 크게 보면 흐름이 비슷한 거예요. 미시적으로 봤을 때는 왔다 갔다 이벤트가 많아 보이지만 큰 흐름으로 봤을 때는 대세가 있는 거죠.
5. 영화의 스펙터클
CY: 저는 이 영화가 어드벤처 영화로서도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요즘의 어드벤처 영화들이 되게 힘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시각 효과도 2010년에나 신선했지, 요즘은 그런 것들이 놀라움이나 충격을 못 주는 것 같거든요. 그러던 차에 이 영화를 봤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 동굴이니까 잡지를 불태워 구덩이로 떨어뜨리는 장면에서도 깊이를 가늠해 보게 되고…
DW: 저도 크면서 시각 효과로 가득 찬 영화를 잘 안 보게 됐는데, 결국에 저는 옛날 영화로 돌아간 것 같아요. 스펙터클이라는 게 결국엔 장엄하고 대단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람을 비출 때 저에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지 않나 싶어요. 얼굴을 많이 비추는 존 카사베츠의 영화나 필립 가렐의 영화들. 얼굴만 가만히 비추는 데도 거기서 얻어지는 효과들이 있잖아요. 결국 인간이 놀라려면 인간이어야 하지 않나…. 공룡, 외계 문명을 지나서 결국 인간을 놀라게 하는 건 사람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SY: 저도 옛날 영화를 볼 때 스펙터클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새로운 이미지 같은 건 없잖아요, 전부 있는 이미지를 재조합한 거니까. 옛날 영화를 볼 때는 발상 자체, 그러니까 이미지의 근원 자체가 얼마나 독특한지를 보고 새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되게 조악한 이미지가 많은데도, 어떻게 이렇게 또라이 같은 걸 생각해 냈을까 싶을 때….
CY: 저는 어떤 영화가 그 영화 나름대로 구축한 규칙들을 어길 때 놀라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영화는 언제 만들어졌고, 등장인물들은 어떤 인물이고, 영화 내 양식은 어떻고 하는 규칙 내지는 한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거나, 영화 내 양식이 뒤바뀌거나, 이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싶은 장면들이 나올 때, 영화가 앞쪽에서 착착 세워놓은 규칙들이 깨질 때 놀랍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SY: 그건 영화 외적인 이유 때문에 놀라는 거 아냐?
CY: 거기에 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SY: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은 게, 뭐든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재평가받는 경향이 있잖아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작품에 대해 어떤 규칙이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건데, 지금 당장의 영화들은 너무 당장의 영화들이어서 뭔가 우리가 새롭게 분석할 수가 없는 거지.
CY: 또 <던전 앤 드래곤(2023)> 같은 당장의 어드벤처 영화들을 보면, 시각효과는 그 자체로 가능성이 너무 무궁무진하잖아요. 저는 그게 규칙이 없는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뭐든 가능한 상태여서 어길 수 있는 규칙이 없으니 놀라움도 없는 것 같아요.
YS: 아까 나온 이야기처럼 저는 나올 수 있는 이야기나 이미지는 모두 나왔다고 생각해서, 영화라는 매체를 제대로 활용하는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싶어요. 홍상수 영화가 계속 언급되는 지점도 그 경계를 계속 휘두른다는 거잖아요. 갑자기 건물 층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연기를 한다든가. 이제는 좀 터무니없는 경계성을 만들어내는 영화가 매체적으로도 매력적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