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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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김은빈


오늘날의 영화를 구성하는 힘은 사실보다는 확신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한 번도,그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던 사실보다 말이다.

오늘날에서 영화를 본다. 글에서 동시대라는 표현은 오늘날이라는 일상적 표현과 구분할 것임을 밝힌다. 동시대 또한 규격화된 과거를 서술하는 단어이기에. 이 글은 전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의 관점에서 쓰였기에. 우리의 시야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영화들이 있다. ‘상업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와 같은 단어는 규범으로서 영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선결정 짓는다. 그러나 시네필 비평 문화 속에서 규범 바깥의 영화를 만나게 되면 (또는 그 어떤 일용할 정보도 없는 영화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할지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네필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만 머물라는 무언의 요구에 순응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하고 즐거운 요구야말로 탐독이 점점 더 미심쩍어지는 순간일 뿐임을 되뇌인다. 한국에서 살면서 겪어 온 극장 밖 경험은 순전히 ‘수입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차별적인 해적으로서 영화를 먹어 치우는 일들. 또,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변방의 영화들을 알음알음 찾아보았던,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아재-시네필들이 전해 주는 여러 자막과 근저 문화를 먹고 자라나는 것. 나는 극장을 다니지 않기 시작한 순간부터, 한국이라는 영화의 변방이라면 변방인 국가에서 영화를 제대로 독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지금 말하는 것은 순전히 시네필 문화 속에서 경험적으로 벌어지는 일에 관한 것이다. 타르코프스키나 오즈의 영화를 정전으로 대하는 일, 경건한 태도로 수많은 텍스트 속 영화를 보는 것의 역기능적 경우. 시네필들의 향유 대상인 ‘예술 영화’가 되지 못한 영화들, 검색해 봐도 블로그나 한두 개의 영화제에서 간혹 소개되거나 또는 그러지 조차 못 한 영화들을 보았을 때 벌어지는 혼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근래 벌어진 케이스를 들여다보자. 지난 4월 스즈키 세이준의 몇몇 영화가 국내 시네필들에게 소개되었다. 대안적 공간이 아닌 아트하우스에서. 물론 세이준의 경우, 이미 박찬욱을 필두로 이미 컬트적인 애호의 대상이었지만, 분명 몇몇은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예상한다. 세이준 영화가 이렇게까지 열광적으로 소비된다고? 디트릭스 영화 순위에서 각종 독립 영화를 제치고 세이준이 1위를 석권하는 것을 기현상으로 바라본 인간들이 있으리라. 물론 세이준 특유의 일본 팝 미감, 독해가 불가능한 수준의 독단적 미학까지, 그가 열광의 대상이 된 이유는 있었겠으나.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영화들이 섭취되는 방식은 단순하다. 아트하우스에서 세이준 영화가 상영된 2024년 이후로, 세이준은 국내 시네필들에게 한동안 회자될 것이다. 또 다시 프로그래밍 되기까지의 쿨타임이 길다면, 그는 이내 그저 컬트적 애호의 대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내 시네필들이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에릭 로메르, 곧 다시 CGV에서 감독전이 열린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에릭 로메르가 국내 시네필들에게 애호의 대상이 된 데는 그의 작가성보다는 소비지향주의적 취향이 더 많이 작용하는 중이다. 특히 에릭 로메르는 이 경우의 대명사로, 그는 ‘에릭 또메르’로 불리며,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존재가 되었다. 정성일은 이에 대해 모던 시네마가 부재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포드 영화를 경유하지 않고 에릭 로메르만 섭취하는, 일종의 시네필리아가 아닌 네크로필리아적 문화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전의 견고한 행로에서 이탈하는 일은 공들여 만든 집을 부수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시네마테끄는 여기서 행로의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이다. 시네필의 취향이란 잘 쌓여진 벽돌에 붙어있는 담쟁이와 같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모양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그 벽에 붙어있는 형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아트나인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보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풍경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음은 얼마나 감동적인 영화관 경험의 모양인가. 그러나 항상 그렇듯 시네필들은 스스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영화를 보는 존재이다. 시네마테끄의 정신을 체현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이상화된 작가주의 - 소비자들, 스스로 영화의 언어를 번역하고 영화를 빼돌리는 도둑들까지. 프로그램화된 영화의 정전을 소개받는 일을 그만두고 스스로 영화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라나는 모양은 다양하다. 중앙아시아 영화, 호주 익스플로테이션 시네마, 소비에트-포스트 소비에트 영화, 핑크 시네마? 아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영화들이 수두룩할 것이고, 지정학적인 위치가 짐작만 가능하게 된 영화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친숙한 예로 타르코프스키에 대해서는 여러 규격화된 논의를 통해 소련 이민자의 노스탤지어를 국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 파라자노프의 <석류의 빛깔(1969)>(국내 영화광들에게 왜인지 애호의 대상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경로가 조지아의 역사 문화적 탐색이라는 지레짐작으로만 가능할 것이라는 당혹은 두루뭉술한 형태의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만일 그것이 고전이라면? 개인적으로 가지게 되는 가장 큰 불안은 정전이 되지 못한 고전을 마주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두 가지 경우 – 1. 지정학적 문제, NERD EPILOGUE

웹진에 업로드되었던 지아 장 커의 <천주정(2013)> 발제에는 에필로그 토크가 존재한다. 너드 필름 팀은 <천주정>이 우리에게 정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영화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했다. 더하여 개인적으로는 지아 장 커가 의도적으로 미학화를 회피한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천주정>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끝내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는 발견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진술들 때문이다. 먼저 유럽의 진술이다. <천주정>은2013년 카이에 뒤 시네마 탑 10 리스트 중 5위에 오른 영화였으며, 장 미셸 프로동의 2010년대 베스트 탑 10에 들었던 영화였다. 서방의 평론가들이 극찬했다고 ‘외신’으로 전해지는 이 사태는 양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1) “아시아 영화의 매혹들을 한 폭 두루마리에”로 요약되는, 어쩌면 서양의 푸른 눈으로만 감지해 낼 수 있는 미학이 <천주정>에 존재함. 당연하지만 이는 오리엔탈리즘과는 무관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을 시선 권력의 층위에서 작동하는 지배 논리로 바라봄보다는 무의적으로 도출된 가능한 현상, 또는 후술하겠지만 지아 장 커의 함정 내지는 미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2) 지아 장 커가 구축한 장엄할 정도의 작가 세계와 연계했을 때의, <천주정>을 정전화하려는 일종의 옹호였을 가능성 - 이는 정전화의 과정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 반대편에는 엇갈린 북미권의 평가가 있다. <천주정>은 2013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영화이다. <천주정>이 칸 영화제의 각본상에 ‘어울리는’ 영화인가에 대한 단순한 의심은, 로튼 토마토 총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천주정>은 액션 시퀀스의 연출만큼 각본이 우아하지는 않지만, 관객을 (또는 이런 거친 지점들을) 만족시키는 세련된 폭력을 선사해 준다. Its screenplay isn't as graceful as the choreography of its action sequences, but A Touch of Sin offers enough stylishly satisfying violence to muscle past its rough spots.” 할리우드의 본고장에서는 마치 기타노 타케시의 영화를 보듯, <천주정>을 동양의 폭력 액션 영화로 봤다는 기막힌 사실을 이 코멘트가 알려준다. <천주정>의 각본과, 정치성이 포함된 외적 서사를 분리한다면 남는 것은 할리우드식으로 ‘보이는’ 유려한 연출뿐이다. 물론 이를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지만, 여기서는 영화의 내적 서사가 아니라, 영화의 구조 자체에 내재한 외부의 정치성을 경유해야만 도출되는 것들을 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장본인인 지아 장 커의 진술은, 지아 장 커가 ‘다른 태도’로 <천주정>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천주정> 이전까지 그는 자신의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가 오늘날의 리얼리즘 미학을 버리고 할리우드의 행위와 중국 무협의 행위들을 차용하고나서야,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중국 정부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지아 장 커 세계의 핵심을 ‘지하 영화 내에서 리얼리즘의 의지로 이끌어내는, 노출된 현실과 그럼에도 필연적인 영화의 허구, 그리고 그 간극의 구조적 평화’로 요약할 수 있다면, <천주정>은 그 기능이 역이 된 상황이다. 장르적 행위들의 재현은 기묘하게도 리얼리즘의 의지를 강조하게 된다. 실제 사건들의 엉성한 서사적 재구성은, 숨기지 않은 영화의 허구임에도 그것이 현실이라는 끊임없는 복기로 작용한다. 구조적 평화의 완전함을 깨뜨려 외부를 구조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카메라가 현실에 가까울수록 허구와 더 가까워지는 기본적 모순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겨냥하면 된다’는 단순 무식한 영화사적 대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천주정>이 중국 영화라는 것은 너무 강력한 일이다. 이제 리얼리즘의 의지가 제도권 내를 향한다. 지아 장 커라는 급진적인 동시대 미학을 구사했던 작가가 작가의 내적 요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구성되는 외부에 의해 스스로 그 세계를 무너뜨린 것은 지정학적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작가세계를 폭파하면서까지 처절하게 외부에 노출하는 이것은 <천주정>의 미궁이자 함정이다. <천주정>을 액션 영화로 보는 것과, 정치성을 띤 작가의 처절한 국제적 표명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이것의 미학화를 인증하는 것… 그 모든 것이 교차하는 곳 어딘가에서 배회할 영화.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는 기이한 상황 속에 서 있다.




예를 들면 두 가지 경우 – 2. 우리가 그걸 소화하기까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등장한 것은 일종의 계시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예술영화계에 돌연 등장한 태국 작가는 기존 서방세계의 시선으로는 도통 독해해 낼 수 없는 존재에 가까웠다. 서방의 예술 향유층과 비평 그룹이 보기에 몇 가지 짚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일단 그는 기존 영화 문법을 바닥까지 해체하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형식적인 작가였음에도, 그의 영화에는 서방권에서는 연구 없이 이해되지 못할 동양의 윤회 사상과 태국 고유의 신화적 모티프가 공존하고 있었다. 주의할 점은 그가 태국 정글 속에서 강림한 신비한 천재가 아니라, 시카고 예술 대학에서 미국 아방가르드 실험 영화들을 보고 배우며 구조주의 영화의 계보를 따랐다는 점이다. 그가 <엉클분미(2010)>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기까지는 무슨 절차가 필요했던 걸까. 아피찻퐁을 ‘동시대 슬로우 시네마’라고 부른다면, 지아 장 커도 그에 속한 사람이다. 2000년대 중후반에 오늘날 슬로우 시네마의 특징을 결정짓는 개별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하게도 그를 먼저 접한 서방 세계는 그들의 권역 바깥에서 벌어진 이 일, 영화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향성에 대해 고민했다. 물론 이전에도 분명 타르코프스키, 앙겔로폴로스, 벨라 타르로 대표되는 슬로우- 한 영화들은 존재했지만, 2000년대 이후의 ‘동시대 슬로우 시네마’는 근원적으로 그 속성이 다르다. ‘이전’의 슬로우- 한 영화들의 계보를 명백하게 분류하길 원한다면, 오즈나 안토니오니로 아니 어쩌면 초기 영화로 돌아가 버리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 같다. 이전 서방의 슬로우- 한 시네마에는 영화적 믿음에 대한 작가의 야심이 그 동력이었지만, 사실 오늘날의 슬로우 시네마는 영화적 믿음에 대한 상실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이후로 미술관에서 미리 예견했을지도 모르는 영화관의 장소 잃기에 대한 일과 관련되었다는 뜻이다. 기존 비디오 미술 담론에서 기술적 지지체였던 텔레비전과 비디오는 시대적으로 촉발되었다는 우유성(偶有性)을 띄었다. 비디오가 아닌 디지털의 등장 이후, 미술관의 영상은 영화와 혼선의 과정에 놓이게 된다. 영화가 디지털 시네마로의 이행 과정을 거치자, 영화관이라는 장소의 외연도 확장했다.

이 시기에 영화를 만들었던 아피찻퐁은 당연하거나, 전략적이게도 영화의 자장 속에서 (또는 영화의 자장이라고 믿어왔던 것 내에서) 미술관의 문법을 채용한다. 오늘날에는 모두가 알게 되었지만, 아피찻퐁은 진짜 말 그대로 포스트 시네마로의 이행이라는 계시성을 띤 인물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의 수면-열병이 ‘영화로 잠드는 환영’이라는 고전적 조건과 포스트모던 미학의 ‘지루함’이라는 조건 전부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 그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인 자국의 정치가 ‘태생적으로 천착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는 작가적 프로그램보다는 미술관 문법으로서 전략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 독해의 미궁이자 열쇠가 되어주었던, 정치와 기억이 공존하는 정글이 진짜 태국의 정글보다 할리우드에서 재연된 무대장치로서의 정글과 더 닮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날에서는 이런 사후적 관점이 아피찻퐁을 이해하기에 한결 더 적합해진다. 이상화된 작가주의는 사라지고, 자라고 나서야 발견되는 흐름의 모양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년이 지난 지금, 이런 현상은 다시 양식화의 과정에 놓여있다. 미술관과 영화제를 채운 유사 아피찻퐁들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짐작 가능한 함의는 <행복한 라짜로(2018)>와 같이 ‘영화를 뛰어넘는 아피찻퐁적 2부 구성’이 자본주의의 눈물이라는 고전적이고 친화적인 소재로 전환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건가? 와 같은 문제이다. 이건 내가 보기에, ‘가능 세계’라는 개념어가 멀티버스라는 장르로 변용되는 일과 동일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건축과 마찬가지로 기능적인 예술이다.” 영화는 본질보다 그 존재가 선행한다. 개별 영화가 영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매 순간의 쇼트가 나열되고 충돌하는 그 과정이, 그 영화가 어떤 ‘사실’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영화의 기능함-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영화는 정신적으로는 수많은 시공간적 역설이 교차하는 리얼리즘의 연속이며, 육체적으로는 매 순간 그 육체가 소멸될 가능성에 처해있는 기술 지지체의 예술이자, 작가와 소비자 사이에서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교차하고 어긋나는 외교로 기능한다. 본질은 그저 ‘투명한 것과 그 바라봄’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고, 외연을 가늠하기 힘든 존재의 모양은 수많은 층위 속 우유성의 연속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층위에서 경험되는 영화가 오독과 혼란을 오갔던 이유는, 영화가 가진 천연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의 수많은 층위가 시네필들과, 개인의 인식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그것이 영화의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기능을 활성화해 준다는 입증적 작용이 된다. 우리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영화를 보고, 자발적으로 시네마테끄의 정신적 사절단이 된 것은 영화라는 기능적 예술이 존재하는 다차원적 방식의 모양과 닮아 있다는 상상을 투사projection해본다. 우리의 인식적 혼란은 그 모양을 그리며 영화의 또 다른 기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또는 일전에 이루어졌으나, 일개 개인이 이제서야 인식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의 매 순간이 만들어내는 지표적 각인에 맞선다. 이는 규범화 되지 않은 경험의 작용으로, 영화의 드러나지 않은 기능들을 드러내는 ‘확신’의 원천이 된다. 이 ‘확신’들은 복수의 것이 되면 될수록, 더 많은 역설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영화의 모양을 밝혀낼 수 있다. 오늘날에서, 앞서 설명한 혼란들이 성찰로 작용하지 못하게 일부러 멀리 떨어뜨려 놓고, 그저 영화가 비춰주는 섬광의 모양을 유심히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