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전쟁이라 말하기엔 두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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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황광민
WEDITOR 황광민
흔히들 사는 건 전쟁과도 같다고 얘기한다. 요즘 난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게 참회하며 살고 있다.
나름 꿈이라는 목표를 찾아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내가 처한 현실과 이상은 모두 전쟁터와 같다. 한 치 앞을 모르며, 내일 어떤 전투가 일어날지 모르는 군인이다. 지휘관의 통제에 따라 명령만 따르는 군인이기도 하며, 병사를 사지로 내몰 수도 있는 어려운 결정을 하는 지휘관일 때도 있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날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가닥을 잡기도 어렵다.
응당 치열한 생사가 달린 필드 위로 등장할 땐, 무엇을 먹고 마실지 입을지에 대한 고민이 무가치하다. 모두 전투의 효율을 위한 생산성과 효율성에 극도로 초점이 맞춰진다. 당신도 그러한가.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날을 살고 있는가. 나는 오늘 전투에서 전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건 우울증과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내가 겪고 있는 이 현상은 마치 이 세계가 '너는 전쟁터에 있다. 살고 싶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처럼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온몸의 신경계가 안다. 네가 숨 쉬는 건 착각이라고. 그렇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거다. 겪고 있지 않지만 겪는 듯한.
매일 벌어지는 전투에서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살아남는다. 동료도, 지원군도 탈출 수단도 아무것도 없다. 적이 점점 다가온다. 총탄과 포탄이 마구잡이로 떨어지다 멈춘다. 숨 막힐듯한 적막이 찾아오면 숨쉬기를 멈춘다. 그늘진 땅굴로 숨어들어 해가 뜨길 기다린다. 해가 뜨는 순간마저 숨 막히지만,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을 테니까.
해가 떴다. 온몸과 마음에 카모플라주Camouflage로 도배를 한다. 위장을 잘해야 들키지 않는다. 매일 다른 위장칠을 한다. 괜찮은 척. 전투가 무사히 끝나 다행인 척. 위장이 벗겨질까 두렵다. 이제 남은 탄환도 얼마 없다. 끝내는 맨손으로 싸워야 하는 그때가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적군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기척을 숨겨야 한다. 이 편지가 내 마지막 유서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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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후회도 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내가 시작했고 스스로 참전했으니까. 탓을 할 수 없다는 건, 좋게 보면 책임감이고 나쁘게 보면 멍청한 거다. 오 그렇다고 내가 자존감이 낮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뭐랄까. 헛웃음이 나올 뿐.
젠장. 어이없는 사실은 내가 전쟁 중이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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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도 또 다른 전투를 치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보시오. 나는 한반도 남쪽 부산이란 곳에서 전투를 신명 나게 치르고 있는 아무개라 하오. 당신이 이 편지를 본다면 아마 나는 여전히 살아남아 전투를 치르고 있을지 모르겠소.
1년 6개월째 전쟁이 계속되는데, 계절은 보란 듯이 바뀌는 게 참 허무하오.
무수히 많은 총알을 쐈지만 과연 내가 맞춘 탄환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소. 옳게 날아갔는지. 아니면 허공에 쏴 버렸는지.
당신은 꼭 이 전쟁을 잘 치르길 바라오. 아무도 다치지 않는 전쟁이 있다면 좋으련만. 만약 다쳐야 한다면 조금만 다치길.
할 말이 많지만 너무 곤하여 여기까지만 쓰겠소. 참호를 만들러 가야 하거든.
탈 없이 살아남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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