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불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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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박가진


불쾌감에 대해
포크와 나이프가 그릇을 긁는 소리를 들어 보자. 온몸에 소름이 끼칠 것이다. ‘못마땅하여 기분이 좋지 않은 느낌’, 불쾌감. 이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심리학적 관점에서 불쾌감은 위협적이거나 불안함에 대한 감정적 경험이라 정의 내려진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자극을 수용하고 이를 해석한다. 이 해석들은 주관적인 상상일 뿐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주인은 불안함, 불편함,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본인의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불쾌하다’고 느낀다. 사실 그렇게 엄청난 이유일 필요도 없다. 방금 먹은 주먹밥 속에 있어야 할 마요네즈가 없었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불쾌하다.

불쾌감은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무시하고 피한다. 하지만 가끔은 어지럽혀진 캔버스, 깨진 유리 조각, 불협화음 등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가 있다. 괴기스러운 장면에서의 불쾌감은 인간의 본능적 반응을 끌어 내고 심리적 깊이에 대한 탐구를 만들어 낸다. 정신에 깊게 박혀 잠들기 직전 문뜩 떠오르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순간의 자극.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들이 갖고 있는 불쾌감에 시선을 맞춘 사람은 단숨에 얼어붙어 버린다. 불쾌감을 풍기는 객체와 이를 수용하는 주체인 나. 그 둘만이 존재하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주체는 현실에 의해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전달받는다.  

출처 - RICK OWENS FW24 ‘PORTERVILLE’


불쾌감을 이용하자.
릭 오웬스Rick Owens는 미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9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Rick Owens’를 설립한 후 그는 고딕, 펑크, 그런지 같은 반항적인 요소들을 럭셔리 패션과 결합시켜 독창적인 패션 철학을 구축해 왔다. 다크 로맨시티즘 스타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작품들에는 과장된 듯한 비대칭적 실루엣과 기하학적인 라인이 도드라지는 과감한 커팅이 부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자신의 디자인에 불편하거나 비정상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릭 오웬스. 그의 목적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기능적인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지식한 패션 규범의 틀을 부실 수 있는 무기, 즉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유행을 따라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공장형 패션, 사람들의 사고는 그 속에서 점차 굳어 갔다. 그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개념을 넘어서 불편함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그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형태의 미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릭 오웬스Rick Owens의 패션쇼는 단순한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 아트처럼 연출된다. 옷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비정상적인 의상들은 관람자들에게 강렬한 불쾌감을 선사한다. 그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고를 시작하고 또 다른 논쟁을 만들어 간다.

출처 - RICK OWENS FW24 ‘PORTERVILLE’


RICK OWENS FW24 ‘PORTERVILLE’
“푸치니, 바그너, 퍼셀, 슈트라우스의 황홀한 음악에 맞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아버지는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Edgar Rice Burroughs의 문고판을 부드럽게 읽어주었습니다.” 릭 오웬스Rick Owens의 쇼 노트에서. 릭 오웬스Rick Owens 2024년 가을/겨울 컬렉션(FW24), ‘PORTERVILLE’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 캘리포니아 포더빌 Porterville에서 느꼈던 억압과 불관용에 대한 반감과 포용의 필요성을 독특한 소재와 특유의 과장된 실루엣을 이용해 강조했다.

출처 - RICK OWENS FW24 ‘PORTERVILLE’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는 공기 주입식 부츠와 극단적으로 팽창되어 있는 자켓 등, 기묘하게 뒤틀려 있는 의상들은 ‘비인간적 행동’ 즉 사회에 의해 규제된 것들을 상징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가장 실망스러운 인간의 행위에 대해 거의 울부짖는 마음을 반영한 것’ 릭 오웬스Rick Owens는 이 컬렉션에서 ‘현실에 대한 실망’과 ‘마법 같은 세상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고자 했다. ‘포용’이 필요하다. 기이하고 불쾌한 느낌의 케이지 드레스는 반항을 통해 자아를 보호고자 하는 일탈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이 불안정한 시대에서 주류로부터 부정당한 이들의 안식처가 되길 바랐다. 억압적인 환경 속 우리는 쉽게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다. 창의성과 포용을 통해 자아를 지켜 나가며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출처 - Rick Owens, S/S 2025 ‘HOLLYWOOD’


RICK OWENS SS25 ‘HOLLYWOOD’
릭 오웬스Rick Owens 2025년 봄/여름 컬렉션(SS25), ‘HOLLYWOOD’는 자택에서 진행한 전 시즌 컬렉션과 달리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그는 1930년대 프리코드 할리우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컬렉션에서 도덕성과 죄악의 혼재를 녹여냈다. 과거 할리우드의 화려함과 릭 오웬스만Rick Owens만의 반항적인 스타일의 현대적인 결합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과하게 부풀린 어깨라인과 드라마틱한 헤드 드레스, 기괴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그의 의상들에서 소름 끼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또한 이번 컬렉션에서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릭 오웬스Rick Owens의 관심이 두드러졌다. 친환경 공정을 통해 제작된 직조 데님과 유기농 실크, 그리고 채소 기반의 가죽 태닝 기업 등 환경 친화적인 소재를 이용한 그의 디자인은 우리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잠시나마 멀어질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체형의 모델들의 워킹은 포괄성과 다양성을 나타내면서 그가 강조한 ‘단결과 상호 의존성’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출처 - Rick Owens, S/S 2025 ‘HOLLYWOOD’


맛으로 비유하자면 ‘신맛’이라 할 수 있다.
인상을 쓰게 하지만 입맛을 돋울 수 있는 불쾌감. 작품의 불쾌한 외면은 관람자를 더 깊은 내부로 안내한다.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불쾌감을 이용하여 관객이 기존에 갖고 있던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를 느낀 관객은 그 작품 속에서 멈춰 있지 않고 현실로 확장된 불쾌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불쾌감을 통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 규범을 부수고 어떻게 보면 이상하고도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하게 된다.

계획된 불쾌감에는 힘이 있다.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서 끊임없이 불쾌감을 유발해야 한다. 불쾌감이 없다면 우리는 이곳에 영원히 안주해 버릴 것이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나는 당신들이 편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불쾌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