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루크레시아 마르텔 - <늪>
WEBZINE
WEDITOR   엄동욱

발제 일자: 10.10
발제 영화: 루크레시아 마르텔 <늪(2001)>
참석 인원: DU, CY, HR

평론가의 별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의 영화 문화에서 이상하게도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유독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녀의 근작인 <자마(2017)>는(국내 정식 개봉은 2021년) 전 세계에서 비평적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에서는 이동진 평론가가 별점 5점을 남겼고 평소 작가주의 감독들을 자주 언급하는 이용철, 정성일 등의 평론가들도 높은 별점과 평가를 남긴 작품이다. 그러나 개봉 당시 국내 누적 관객수 천 명조차 넘기지 못한 이 영화는 아무런 ‘담론’을 형성하지 못한 채 ‘비쿠냐 포르토’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가 6년마다 작품 하나를 찍는 꼴인 과작형 감독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그녀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 보면 영화제와 관련된 몇 편의 기사, 짤막한 그녀의 인터뷰, 그리고 짧은 비평 몇 편 정도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또 다른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화감독인 리산드로 알론소는 ‘슬로우 시네마’, ‘리얼리즘’ 등의 키워드로 묶여 조금 더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언급도 별반 다르지 않은 형국이다. 물론 우리에게서 잊히는 걸작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근래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평론가의 별점이 얼마나 한국 관객에게 소중한지 알 수 있는바 마르텔의 사례는 그녀의 영화만큼이나 기이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데뷔작인 <늪>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겠다. 소심한 NERD는 일단 마르텔에 대한 영화적 담론의 장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원대한 꿈은 접어둔 채, 조금은 편한 자세로 담소를 나눠보았다.


0. 들어가며
DU: 오늘 몇몇 분이 안타깝게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감기에 걸린 분이 있다고 하던데?

CY: 요즘 여름이 막 지난 간절기라서 감기를 조심해야 한다.

DU: 지금 얘기 나눌 <늪>을 보셨다면 푹푹 찌는 더위 때문에 감기가 빨리 나을지도…?

…..




1. 권태, 일상
DU: 우선 빨리 물어보고 싶은 것. 다들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추상적인 표현일수록 좋아요. 영화의 만듦새나 형식, 작품성도 좋지만 단순하게 보고 느낀 감정들? 단상? 무엇이든 말해주시길. 저는 귀에 물 먹은 듯한 찝찝한 느낌을 받았어요. 권태와 허무.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느낌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HR: 초반 시퀀스가 굉장히 강렬했어요. 색감이나 구도를 보고 처음에 살짝 에릭 로메르를 떠올렸는데, 뒷부분은 아예 다르더라고요? 아무튼 초반의 오묘한 서스펜스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느낌. 그 시퀀스 때문에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보는 사람은 계속 긴장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CY: 로메르 얘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약간 언캐니한 영화 만드는 사람 하면 떠오르는 그런 감독들 있잖아요. 란티모스 같은? 로메르처럼 대화를 조명하는 스타일보다는 마르텔만의 괴상한 구도, 편집들이 중간 중간 돋보였어요. 보다 보니 멀미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DU: 왜 추상적인 감상평을 물어봤냐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권태’인 것 같았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축축 늘어지는 권태로움을 너무 잘 녹여낸 작품이에요. 우리가 어떤 감독한테 ‘사랑’이라는 키워드나 ‘죽음’, ‘실존’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영화를 한 편 만들어보라고 부탁하면, 감독한테 너무 어려운 과제겠죠? 근데 마르텔은 ‘권태’라는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작품을 만든 느낌?

CY: 권태를 중산층의 일상에 녹여낸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아닐까요?

DU: 사실 영화의 유일하게 이렇다 할 사건이 꼬마 아이의 죽음이잖아요.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끝내 놀지 못하고, 볼리비아로 끝내 여행을 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들리는 소음과 깜빡이는 빛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고… 그런데 그 꼬마의 죽음 바로 다음에 정물화처럼 집 안의 풍경을 보여주는 쇼트들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죽음이라는 가장 확실한 사건조차 별 게 아닌, 권태로운 일상으로 모든 사건들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 느낌.

HR: 아, 그 부분 너무 좋았어요. 듣다 보니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떠오르네요. 약간 비슷하지 않나요? 아이들이 냇가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것도 그렇고.

DU: 소년이 장난감 가지고 노는 평범한 일상 뒤로 수용소의 부지런한 굴뚝을 슬며시 보여주는 것처럼,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얼핏 보면 부유한 가정의 화목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 섬뜩한 폭력이 숨어 있죠. 물론 두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2. 모호
CY: 우선 영화 속 호세라는 남자가 도대체 뭐하는 작자인지 모르겠어요. 러닝타임 내내 웃통 벗고 침대에 누워서 하는 거라곤 전화 몇 통과 잡담인데, 근처의 여자들과 은근히 섹슈얼한 분위기가 형성됨에도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별다른 사건도 없고, 그렇다고 인물들의 캐릭터가 뚜렷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HR: 약간 정보가 차단된 느낌이랄까. 인물에 대한 정보도 그렇고, 인물을 비추는 방식도 그렇고요. 늪에 빠진 소 바로 옆의 꼬마에게 총구를 겨냥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갑자기 컷하는 장면은 저 아이들이 꼬마를 죽인 것인지, 소를 죽인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들잖아요.

DU: 맞아요. 단순히 연출적으로도 거울이나 삼각자에 왜곡되게 인물을 비추는 방식이나 인물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몇몇 컷들이 독특하더라고요.

CY: 계속해서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텔레비전 인터뷰나, 특히 벽 너머의 옆 집 개를 보겠다고 사다리를 오른 꼬마 아이도 그렇고 현실과 그 너머의 무언가의 보려는 욕망이 분명 존재하는데, 근데 그게 자꾸만 좌절되는 느낌.



HR: 왜 유독 남미 문화권의 작품들이 그럴까요? 조도로프스키나 라울 루이즈 같은 칠레 감독들도 그렇고… 구조의 모호성, 현실과 가상의 경계…. 음, 초현실주의? 아무래도 환상 문학의 영향일까요?

DU: 실제로 휴고 산티아고 작품에 보르헤스와 카사레스가 참여하기도 했었고, 흥미롭습니다. 제가 문학 이론은 잘 모르지만, 영화적으로 볼 때는 이탈리아 리얼리즘 감독들이 전후의 처참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남미 감독들은 초현실이라는 다른 세계로 도망을 가버린 게 아닐까요? 도망이라는 표현이 웃기지만, 아무튼 장소를 옮겼다, 뭐 그렇다는 얘기죠. 마술적 리얼리즘? 이렇게 부르더군요.

CY: 이 영화가 말 그대로 환상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모호성을 서스펜스로 끌고 가는 형식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또 새롭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라틴 문화권 작품들에 대한 이미지는 환상이라는 단어를 유희적으로 풀어내거나, 되게 생동감 넘치는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는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진짜 짓눌리는 분위기였거든요.




3. 늪
DU: 영화의 마지막에 첫 장면과 정확히 같은 구도로 “일이 되풀이된다”고 윽박지르던 어른들처럼 태평하게 선베드에 누워 있는 아이들을 보고 아, 우리는 늪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구나, 싶었어요. 끝내 성모 마리아를 보지 못했다는 마지막 대사는 영화의 모호성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무한한 허무의 늪에 빠진 느낌.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혹시 어떤 늪에 빠져 있나요? 아니면 오늘날의 사람들이 빠진 늪에 있다면 그것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이나 가벼운 사례도 괜찮아요.

CY: 저도 영화 속 꼬마 아이들이 자기 몸만 한 장총을 들고 다니며 소를 사냥하고, 인디오는 믿을 게 못 된다며 또래 친구들을 내쫓는 모습을 보고 여타 어른들의 식민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더라고요. 우리 일상에 대체 어느 정도까지 이데올로기적 믿음들이 뿌리내린 걸까 싶은.

HR: 약간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길가다 보면 행색이 좀 이상하신 분들 있잖아요.

DU: 1호선에 자주 등장하는??

HR: 맞아요. 그런 분들이 가까이 오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단 말이죠. 근데 사실 그분들은 단순히 자리를 옮기려고 움직인 걸 수도 있잖아요. 그게 뭐 편견일 수도 있는데, 요즘 너무 많은 범죄 소식들에 노출이 되니까 그런 상황을 보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단 말이에요. 과잉된 정보들이 몸속에 체화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DU: 체화라는 말이 되게 좋은 표현이네요. 낯선 것을 보고 피하는 게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본능인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이념적인 층위가 몸을 덮고 있는 것인지…. 현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느낌이랄까요. 항상 논쟁이 있는 부분이죠.

CY: 이미지나 정보가 들어오는 게 너무 많다 보니까 익숙해져서 언젠가 게슈탈트 붕괴가 오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오늘은 허리케인 뉴스를 보고 왔는데 그런 걸 보고도 ‘아 저기 어디서는 또 난리 나겠구나’, 하고 말게 되죠. 마침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한쪽이 코가 부러질 정도로 피터지게 싸우는 아저씨들을 봤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나이 먹고 왜 저러냐고 혀를 차는 와중에도 그쪽을 괜히 쳐다보기 싫더라고요. 갑자기 이 상황이 진짜가 아니라 가상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미지를 볼 때 그게 뭔가를 가리키는 기호로서만 감각되고 진짜 있는 세계를 감각하는 그런 능력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