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벤자민 크리스텐슨 - <헥산: 마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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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송혜령

발제 일자: 10.10
발제 영화: 벤자민 크리스텐슨 <헥산: 마녀들(1922)>
참석 인원: DU, CY, HR

할로윈을 앞두고 있는 현재 크고 작은 가게들에서 마녀와 관련된 용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대부분 긴 코와 빗자루, 다 그을린 머리와 뾰족한 모자를 쓴 여자들이다. 마녀란 무엇일까? 악마를 숭배하며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여자들? 중세에는 정말 실존했다는 특정 집단? 그럼 왜 현대에 와선 사라진 거지?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그들 역시 힘을 잃게 되었나? 부쩍 다가온 가을의 한복판에서 가게 외벽에 달린 마녀 그림을 보던 중 무수한 질문이 머릿속에 일기 시작했다. 중세의 마녀들은 과연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을까. 이러한 관심 속에서 <헥산: 마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1. 마녀
HR: 어떠셨나요?

CY: 저는 중반부 이후, 스토리가 이어질 때부터 엄청 재밌었어요.

DU: 러프하게 느낀 점을 얘기해 보자면, 약간 페미니즘 영화 같기도 하다고 느꼈어요. 마녀가 결국 다른 사람들이랑 크게 차별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그냥 늙은 여인이거나 가난한 여인이거나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일방적인 박해를 받은 거잖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거의 마지막 장면에 파일럿 복장을 입은 여자가 떠나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었거든요, 그 얼굴이 너무 해맑아 보이는 거예요. 근데 이게 1922년도인가에 제작된 영화니까 더 놀랐던 것 같아요.

HR: 그 파일럿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손 흔들고 있는 장면 전에 그런 문구가 뜨거든요. ‘마녀는 더 이상 빗자루를 타고 옥상 위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 봤을 때는 이게 포크 호러의 시초 같은 영화라고 해서 보러 간 건데, 마녀라는 대주제를 걸고 사실 마녀는 없다고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영화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엄청 놀라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제 여쭤보고 싶은 건 ‘마녀가 뭘까’라고 물어봤을 때 뭐라고 대답하실 거예요?

CY: 마녀 사냥의 임팩트가 커서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HR: 마녀라는게 그냥 어원으로 풀면 그냥 사악한 여자들이잖아요. 저는 이걸 다 보고 나서 생각이 들었던 건,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나 그 희생자들이라는 생각이 되게 컸어요.




2. 시대의 광기
HR: 이 영화는 1부부터 7부까지 나눠져 있어요. 해당 다큐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나눠서 빌드업 하고 설득하는 방식이 정말 참신했거든요.

CY: 여러모로 엄청 선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먼저 마녀와 관련한 자료들을 보여준 뒤에 이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이야기로 재현해서 보여주잖아요. 기존 자료를 다시 쓰는 식이라 할 수 있는데 저는 그게 근래에 와서 엄청 활발하게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카이브를 계속 다시 쓰고 하는 게. 근데 그게 1920년도에 벌써 있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DU: 저도 보면서 이게 22년도에 제작된 것 같지가 않았어요. 저도 솔직히 초반 부분은 그 근처 세대에 무성 영화나 그 시기 사람들, 무르나우나 그리피스 같은 사람들보다 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별거 없는데 나열만 한 것 같고, 와중에 1부 2부 3부 나눠지기만 했다 생각했는데 후반 갈수록 정말 이걸 보여주려고 초반부를 만들어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게 막 대단한 반전도 아니었는데 좋게 다가와가지고. 그리고 혹시 <광기의 역사>라는 책을 혹시 아시나요?

CY: 아, 저도 이 영화가 만약에 진짜 미셀 푸코가 영화를 만들었으면 이렇게 만들었겠다 싶은 생각을 했어요.

DU: 푸코라는 철학자가 있는데, 60-70년대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신이 있냐 없냐 같은 진리 탐구보단 역사를 뒤집어가면서, 문서고를 뒤져가면서 하나하나 찾다가 발견한 한 줄 가지고 끄집어내는 방식을 택했던 학자였거든요. 뭔가 먼지 덮인 역사 위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근데 이 사람의 <광기의 역사>라는 책이 뭐냐면 그냥 딱 한마디로 광기는 원래 없고 그냥 우리가 광기를 보는 시선만 있을 뿐이다 라는 얘기를 하는 책이거든요.

그러니까 중세 시대 때는 광기가 약간 천재처럼 취급됐었대요. 보통 우리가 피카소 같은 사람들을 천재라 얘기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측면보다 비범한 사람한테 부여되는 단어잖아요. 근데 르네상스 고전시대부터 광기를 국가나 집단 차원에서 광인이고 아니고 마녀고 아니고 하는 분류의 기준으로 삼았던 거예요. 그렇게 나누기 시작하면서 광인들을 가두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게 시대별로 보는 방식이 달랐다라는 걸 얘기하거든요.

근데 이 영화를 볼 때 마녀를 광기에 대치해도 별로 문제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분류한 기준으로 그려지잖아요. 정말 재판이랄 게 없는, 그냥 무자비하게 매도하는 와중에 또 그들만의 분류 방식도 있었고요. 그런 부분들이 연결점처럼 느껴졌는데 그 <광기의 역사>라는 책은 60년대 책인데 이게 22년도에 나온 작품인 것도 되게 신기해요.

CY: 동의하는 게, 75년즈음에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나왔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22년도에 나왔고 비슷한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저희가 지금은 미셸 푸코를 대할 때 천재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생각의 기반이나 어떤 아이디어들이 한참 전부터 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얘기 중에 그것도 있잖아요. 광기라고 하는 게 뭘로 하나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이성이라는 개념의 반대인데, 또 이성을 뭘로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광기라는 개념도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중세 시대에는 이성을 종교적인 관념으로 봤었으니까 그 반대인 악마적인 것들이 광기가 되는 거고, 현대에는 이제 법을 이성으로 정의 해뒀으니까 그 반대인 범죄나 아니면 과학이 이성이니까 그 반대인 정신병이나 이런 것들이 광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제나 희생양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셸 푸코가 다루는 주제 중 하나인데 그걸 한참 전부터 다룬 거잖아요 이 영화는. 특히 이 당시 영화는 정말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매체였을 텐데, 이렇게 쉽게 다뤘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3. 악마는 어디에
HR: 엄청 복잡한 말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거든요. 저는 또 인상적이었던 게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악마가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보면서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라는 대사였거든요. 근데 아직도 엑소시즘 영화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실화 바탕도 엄청 많잖아요. 실제로 악마에 씌이기도 하고 그거를 또 신성이 물리치기도 한다는 식의 내용이 많은데, 악마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지금 아직도 엑소시즘 영화가 활발히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사실 요즘 만들어지는 엑소시즘 영화 속 진짜 호러는 악마가 들어간 그 집 딸이 아니라 그 집 딸이 악마에 씌어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피해들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부유한 집도 아니고요. 자식들이 정말 많거나 하는 집에 대체로 악마가 가더라고요. 그런 걸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건 악마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건 시스템의 문제인 거예요. 근데 왜 자꾸 결말부에 가서는 신성으로 자꾸 물리치려고 하는 걸까요. 이들에게 복지가 주어졌다면? 이들에게 적합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됐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 않았을까요?

CY: 진짜 좀 엑소시즘 영화 보면 사회비판적인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실 구조 문제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처럼, 사실은 귀신이 아니라 뭔가 부조리한 노동 구조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지는 거라는 식으로 가게 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귀신은 비유인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이런 영화를 보면 귀신이 등장하는 후반부가 진짜 별로 안 무섭단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악마를 안 무서워하게 된 것 같다던 대사가 저한테는 맞는 얘기거든요. 저는 귀신이나 악마 자체가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게 무서운 거고, 영화 내에서 그 원인은 뭐가 되든 상관이 없는 그런 느낌이에요.

HR: 진짜 좋은 말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무서운 건 지금 벽을 타고 기어오는 악마가 아니고, 내가 잘 알던 사람이 갑자기 엄청 낯설어질 때 그리고 개인의 불행이 정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해질 때. 근데 이제 중세에서는 어떤 개인의 불행이 깊어진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개인이 좀 낯설어지는 것 자체를 악마나 이단으로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4. 헥산의 관객들
DU: 뭔가 이 영화에 계속 드는 생각인데, 컬트 영화라기보다 뭔가 해방적인 영화인 것 같아요. 근데 되게 참신한 게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 이나 또 페미니즘적인 영화 중에 <집안의 주인>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제 기억으로는 각각 26년, 25년도 거든요. 근데 이 영화는 22년도에 나온 영화인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후반부가 너무 인상 깊어서 이것도 뭔가 잊혀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거 소개하시기 전까지 몰랐거든요. 페미니즘 영화의 역사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또 1910년도에도 비슷한 작품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상들이 잘 다뤄진 초기의 작품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HR: 사실 이 영화 소개에 포크 호러의 시초라고 써 있더라고요. 저희가 민담 같은 걸 포크테일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민속학적인 것들이나 로컬적인 것들이 섞인 호러물이라는 건데 추가적으로 초자연적인 것보다 사람들의 신념이랑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장르라고 해요. 그러니까 특정 종교나 민속도 그렇지만 그걸 믿는 사람들의 집단 광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장르인 것 같거든요. 근데 이게 또 종종 그것에 맞서는 순진한 외부인을 다루고 있대요.

물론 이 영화에도 민속 요소 나오죠. 그다음에 뭐 미신, 종교 이런 거 나오죠. 또 마녀 사냥 자체가 종교 관련 사람들의 신념이랑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포크 호러에 부합하지만 이에 맞서는 순진한 외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이거는 다큐멘터리니까 하고서 넘어갔거든요. 근데 저는 어느 순간 이 순진한 외부인이 관객 같았어요. 그냥 마녀들에 대한 얘기구나 하고서 보러 갔다가 강제로 같이 종교 재판에 참여가 되고 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는 경험 자체가요. 근데 마지막에 영화가 화룡점정으로 ‘뭔가 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사실 이 사람들은 마녀가 아닙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 관객이 순진한 외부인 그 자체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