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사키, 일본 음악계 최초의 랭킹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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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김인산

싫든 좋든, 음악 잡지가 올 타임 베스트 앨범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흔한 관행이다. 이만큼 좋은 마케팅 수단도 없을 뿐더러, 독자적인 랭킹 발행으로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과 철학을 뚜렷이 하기도 한다. 가장 큰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는 1955년부터 빌보드 탑 100을 만들었으며, 전 세계 음악 잡지들은 밥 먹듯이 다양한 테마의 음반 랭킹을 만든다. 하지만 일본의 첫 메이저 잡지사 대중음악 앨범 랭킹[외부 링크]은 롤링스톤 재팬 Rolling Stone Japan이 발행된 시기인 2007년 9월이 돼서야 발표되었다. 지금은 폐간된 이 랭킹을 엮은 ‘베이코쿠 온가쿠米国音楽’ 잡지의 설립자 가와사키 다이스케川崎大助는 랭킹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렇게 지적한다.



“이상하다. 일본 음악업계는 음반 회사를 자극하기 때문에 랭킹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 같다. 하지만 일본 미스터리 문학계에서도 평론가들이 꼽은 베스트 랭킹이라는 개념은 매우 보편적이며 소비자의 가이드가 된다. 일본 록 시장이 미스터리 문학보다 큰 시장인데, 믿을 만한 베스트 랭킹이 없는 것은 의아하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을 바꾸고, 랭킹 매기는 것을 일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보의 평점도 잘 매기지 않는 일본에서 이러한 랭킹은 대담하고 귀하다.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에게 솔직하고 직설적인 평론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가와사키는 일본 음악 잡지사가 청자와 음반 제작사 양쪽 모두가 만족할 만한 글을 쓰려는 풍조가 암묵적 동의를 넘어서 업계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으며, 이것이 지금 일본 록 음악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독자적인 5가지 지표에 따라 ‘완전한’ 랭킹을 만들었다고 한다. 독창성, 근본성, 혁신성, 대중성, 영향성이 그 지표다. 그러나 혁신성이 느껴지지 않는 팝 앨범이 과대평가 되어 있는 것은 불편하다. 하지만 기억하자. 세상에 완벽한 음반 랭킹은 없다. 모든 청중의 취향을 약 100개의 앨범 리스트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되새기며, 일단 순위의 객관성은 차치해 보자. 본 랭킹을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실로 다양한 음악 장르가 포함되어 있다. YMO의 퓨전 테크노, Shoukichi Kina의 오키나와 민족 음악, Shōnen Knife의 카와이 펑크, Boredoms의 퓨전 메탈, Zunō Keisatsu의 아지프로Agitprop 포크 등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음악이 많이 포진해 있다. 이는 일본 대중음악 다양성의 방증이 아닐까.

가와사키가 일본 음악사의 안내서 같은 것을 청중에게 처음 제공한 것에는 큰 의의가 있다. 가와사키는 본 랭킹 탄생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영미권에서는 일단 랭킹이 세상에 나오면 찬반 양쪽이 서로 언쟁하며 의견이 도출되고 무수히 많은 의론이 생긴다. 이렇게 가치에 대해서 평하는 자리에 자기도 참여해 즐기는 것이 영미권의 건강한 문화다”라고. 또한, 미술 작품이 경매에서 값이 매겨져 팔리는 것처럼 음악도 절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세 살짜리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과 다빈치의 작품이 등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절대적인 명반이라는 것이 일본 록 음악에는 없고, 그래서 랭킹이라는 계급도도 없으며 그저 ‘나는 이게 좋아’, ‘나는 이건 좋지 않아’라는 무의미한 상대성만이 퍼지는 것. 불분명한 황야에서 홀로 끙끙대며 명반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랭킹이 있는 편이 훨씬 편하지 않은가? 내가 1위로 지정된 앨범을 듣고 일본 음악에 빠져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현재 일본 취업까지 꿈꾸고 있는 것처럼 본 랭킹은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엄청난 긍정적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가와사키의 철학에 공감하든 공감하지 않든, 그가 만든 랭킹으로 인해 누군가 일본 대중음악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리스너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함께 글을 마친다.


*탑 10위 앨범에 대한 간략한 설명



1위: Happy End의 “Kazemachi Roman” (1971): 일본어로 록을 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증명

2위: RC Succession의 “Rhapsody” (1980): 전설의 록 보컬 Imawano Kiyoshiro의 일본 정신에 입각한 로큰롤

3위: The Blue Hearts의 “The Blue Hearts” (1987): 일본의 청춘에게 선물하는 펑크 록의 진수

4위: YMO의 “Solid State Survivor” (1979): 미래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전자 음악의 향연

5위: Yazawa Eikichi의 “Goldrush” (1978): 일본의 첫 록스타 탄생을 알린 록 대중화의 시작

6위: Shoukichi Kina & Champloose의 “Shoukichi Kina & Champloose” (1977): 소외당한 오키나와의 대변인 Shoukichi Kina가 일본 본섬에 전하는 오키나와의 희노애락

7위: Eiichi Ohtaki의 “A Long Vacation” (1981): 비치 보이스를 동경한 록 거물의 일본식 팝 해석

8위: Fishmans의 “Kuuchuu Camp” (1996):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Fishmans의 대표작

9위: Sadistic Mika Band의 “Kurofune” (1974): 잘 짜인 컨셉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프로그레시브 뮤지컬

10위: Cornelius의 “Fantasma” (1997): 이것저것 섞어 만든 풍미 깊은 시부야계 짬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