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에릭 로메르 -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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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최서윤
WEDITOR 최서윤
발제 일자: 11.07
발제 영화: 에릭 로메르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참석 인원: SY, CY, DW, SJ
1. 감상
CY: 사실 로메르의 다른 영화 중 지금까지 본 게 <해변의 폴린>이랑 <녹색광선>밖에 없거든요. 그 두 영화는 정말 세속적인 내용이라, 어떤 종교적인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각 잡힌 구도의 미사 영상으로 시작되길래, ‘이 사람이 이런 것도 하던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SJ: 저는 로메르 영화들이 다 제목은 들어 봤는데 보기를 미뤄 놨던 것들이었어요. 오늘 이 작품도 처음 봤는데 재밌었어요. 어떤 부분이 재밌었냐면,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다들 해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SY: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직접적으로 나와서, 이게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기선 너무 재미없게 다뤄지지 않아서 저는 괜찮았어요.
DW: 제가 사실 로메르의 대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다른 작품들을 보면 제가 느끼기로는 인물들이 항상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는 전개였어요. 관객이 보기에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을 대화로 푸는 형식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것과 다르게 파스칼의 확률이라든지, 특정한 용어나 구조가 영화의 끝까지 이어지는 게 단순히 대화로만 푸는 다른 작품들보다 독특하게 다가왔어요.
SY: 맞아요. 주축이 되는 논리가 있어서 로메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틀이 잡혀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다른 로메르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2. 로메르라는 대명사
SY: 로메르에 대해 할 이야기를 두 가지 가져왔는데요. 일단 한 측면에서는 영화사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 생각해 봤고,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 시네필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생각해 봤어요.
첫 번째 측면에서는 로메르가 누벨바그 감독들 중에서도 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솔직히 이 영화만 봐도 알겠지만 되게 부르주아적이에요. 등장인물들의 생활 방식도 다 되게 부르주아적인 것이고, 다들 휴양을 가 있다든지 어떤 카페에 가서 대화를 한다든지 일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나눌 수 있는 대화들을 나눈단 말이에요.
그래서 로메르의 배경도 그런 쪽일까, 생각해서 찾아봤어요. 대학에서 역사 전공하고 파리에서 고등학교 교사 하다가 소설 냈다가, 나중엔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 들어가서 비평가로 일해요. 비평을 하던 당시에 감독 생활도 시작을 했나 봐요. 그런데 로메르가 초기에 낸 작품들은 후기에 비해 비교적 유명하지 않거든요. 우리도 잘 모르잖아요, 데뷔작이 뭔지. 그래서 데뷔 초에는 고전하다가 당시 까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이었던 자크 리베트에 의해 퇴출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사람도 역시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았구나, 싶었어요. 나중에 ‘여섯 도덕 이야기’, ‘희극과 격언’, ‘사계절 이야기’ 이런 연작들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커리어가 풀리게 돼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도 여섯 도덕 이야기 중에 하나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로메르는 누벨바그 감독 중에서도 특히나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기도 하고, 대화 중심인 영화들이야 많지만 이렇게까지 대화의 힘에 기대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이랑 비교해 보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해한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요.
첫 번째는 별로 나눌 얘기가 없었지만… 두 번째 측면에서는 한국 시네필에게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 아트하우스에서 유독 자주 상영하는 감독들 있잖아요. 로메르도 있고 지금 떠오르는 건 짐 자무쉬, 왕가위…. 매년 기획전을 여는데, 그래서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CY: 로메르를 접하게 되는 경로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로메르 얘기 나오면 무조건 언급되는 한국 감독이 홍상수잖아요. 그래서 한국 예술영화들을 접하다가 옮겨 가기 쉬운 해외 감독의 사례 중에 하나가 로메르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다루는 이야기가, 내용적으로 와닿는 걸 떠나서 그 형식 자체가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인 것 같기도 하고요.
SY: 로메르를 서치하면 꼭 홍상수가 같이 뜨거든요. 뉴욕 타임즈에서 ‘홍상수는 한국의 로메르다’라고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게 같이 뜬 적도 있고. 개인적으로 둘 다 좋아하지만 다른 점을 찾으려면 무수히 많다고 생각은 해요.
SJ: 저는 로메르를 가장 처음 접하게 된 이유가, 사계절 연작이랑 <녹색 광선> 포스터가 너무 예뻤어요. <녹색 광선>은 풍경을 담은 씬 하나하나가 아름다워서 시네필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친숙한 감독일 것 같아요. 포스터가 예쁘다 보니 소비하기 쉬운 영화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저도 그렇게 접하게 되어서 포스터의 영향도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SY: 포스터를 ‘잘’ 뽑기는 했어요. 포스터 디자인 찾아보면 다 그래요. 그냥 영화 장면에다 단순하게 제목 타이포그래피 넣은 건데, 그것만으로도 예뻐 보이고 그것 자체로 상품이 되니까.
DW: 여담인데 플레이리스트 유튜버 중에 로메르 영화 장면을 배경으로 해서 계속 올리는 채널이 있어요. 구독자가 좀 있더라고요. 아예 영화를 안 보는 사람도 알 정도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SY: 로메르가 살아서 그걸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으면서도 뭔가. 이번 작품은 흑백이라서 덜 느껴지겠지만 다른 영화들 보면 옷을 되게 잘 입어요. 그리고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에서는 옷 색깔을 이용해서 코미디적으로 연출하는 엔딩 씬이 있거든요. 색 활용을 정말 잘하고, 확실히 미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정말 많아요.
DW: (로메르 사진을 보며) 벌써 저 모자랑 스카프부터 멋지네요.
SY: 이 사진이 너무 멋지지 않아요? 그래서 가져왔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로메르 젊었을 때 사진이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다 말년의 사진밖에 없더라고요. 어쨌든 간에 이렇게 멋지게 하고 다녔대요.
사실 저는 로메르를 <녹색 광선>으로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싫어했거든요. 그때의 감상은 ‘그냥 보기 좋은 영화 잘 만든다’ 정도였는데, 보면 볼수록 영화 안에 나름의 철학이 있고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은 저에게 완전히 선입견을 깨 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그저 보기 좋은 거 만드는 감독으로 소비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3. 확률적 딜레마
SY: 영화 얘기로 넘어가서, 일단은 인물에 대해서 먼저 얘기할게요. 다른 로메르 영화들처럼 인물 구성이 단촐하잖아요. 주인공인 ‘장 루이’는 독실한 가톨릭에다가 엔지니어고 심지어 이렇게 양복을 입고 다니고… 고루한 인상이었어요. 그리고 친구에게 수학에 대한 얘기를 자꾸 꺼내잖아요. 15년 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도 내가 요즘 파스칼 책을 읽고 있다, 너 수학에 관심 있냐. 철학 가르치는 친구한테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알면 그 사람과 마주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고.
이 사람에게는 모든 게 확률적으로 결정되고,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쪽에 베팅을 하는 게 당연히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에요. 반면에 장 루이의 친구는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내 인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확률이 적어도 선택을 할 거라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대립이라든지, 장 루이의 가치관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가 궁금했거든요.
CY: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오히려 이런 성격의 사람이 너무 호감이어서.
DW: 저는 영화가 흑백이기도 하고 칼 드레이어나 잉마르 베리만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딱딱한, 종교적인 인물들의 전형이 떠올랐어요. 재밌는 건 장 루이는 대놓고 말을 안 해도 욕구에 대한 내적 갈등을 겪는 게 보였거든요. 제가 언급한 감독들의 영화에서는 외적인 인물들과의 갈등이 주로 드러나는데, 이 영화에서는 대화를 통해서 내적 갈등을 끌어내다 보니까 캐릭터가 로메르식으로 풀릴 수 있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SJ: 저는 저런 사람들을 가끔 실제로 마주치면 내면의 자아가 진짜 뒤틀려 있을 텐데, 이걸 꽁꽁 숨기려고 저렇게 사는구나 생각하거든요. 장 루이도 분명히 뒤틀린 자아가 있을 테고 그게 약간씩 새어나오는 장면들이 많아요.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에서도 주인공이 심한 내적 갈등에 빠지는데, 로메르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딜레마에 빠뜨리고 도덕을 시험하게 하는 것 같아요.
SY: 맞아요. 그런 딜레마가 영화에서 되게 중요한 요소예요. 로메르가 예전에 교사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인지 교훈적인 투가 항상 영화에 있기는 한데, 실제로 자신을 ‘모럴리스트’라고 칭하기도 했어요.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모럴리스트라고 한대요.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도덕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갈등을 겪는지 자체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그걸 주로 다루는 것 같아요. 로메르가 인간의 악한 본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읽히는 건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4. 내재적 모순
SY: 로메르가 <파스칼에 대하여>라는 단편을 찍은 적 있어요. 파스칼에 되게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종교개혁 시기에 카톨릭 중에서도 얀센주의라는 분파가 생겼고, 철저하게 금욕하고 고행까지 하는 신앙생활을 강조했거든요. 그래서 장 루이가 나는 얀센주의자인 파스칼의 금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요. 파스칼은 결혼까지 부정하는데, 결혼은 좋은 건데 왜 그것까지 부정하냐는 얘기를 해요. 한참 뒤에 장 루이와 그 친구, 모드가 함께 식사하는 씬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갖고 있는 모순이 매력적이다’라는, 장 루이를 비꼬는 듯한 대사가 나와요. 로메르가 카톨릭 신자임에도 직접적으로 이런 대사를 넣은 것도 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CY: 저는 이렇게 인물 한 명이 몰리는 대화 장면 있잖아요. 그런 게 보기 힘들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독실하게 뭔가를 생각하고 있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서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듣고 있으면 너무 그렇잖아요. 이런 상황이 <녹색 광선>이나 <해변의 폴린>에서도 꼭 있었던 것 같아서… 저는 이런 게 좀 재밌다 싶으면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에요.
SJ: 신자인 로메르 본인이 내재적 모순에 대해서 제일 잘 알 거예요. 삶에서 무조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흔들리는 과정이 있었을 테니까, 그 장면이 어쩌면 로메르가 스스로 고민했던 것이거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일 것 같기도 해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관되게 갖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SY: 맞아요. 꼭 종교 신자가 아니어도 무언가를 강하게 믿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잖아요.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딜레마가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속으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든지, 그런 내재적 모순은 보편적인 건데 로메르의 관심사가 종교였으니까 여기서는 종교에 적용된 것 같고요. 모럴리스트라는 맥락에서 내재적 모순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 제한된 (시)공간
SY: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이 제목 그대로 모드의 집 안에서 전개되잖아요. 공간이 엄청나게 제한되어 있고, 하룻밤이 주된 사건의 배경이니까 시공간 자체가 제한되어 있어요. 저는 로메르가 이렇게 시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한 집안을 계속 돌아다니기만 하는데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대화 씬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어요.
DW: 저는 오히려 그 시공간이 되게 구조적으로 열려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 영화적 재미라고 느껴지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홍상수랑 로메르랑 굳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면 그런 구조의 열림인 것 같아요. 단순히 대화하고 술 먹고 해서 비슷한 게 아니라, 홍상수도 보면 같은 공간에서 먹는데 다른 시간대거나 아니면 똑같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약간의 차이를 줘서 그걸 반복하잖아요. 시공간을 가지고 장난치는 감독이에요.
이 영화에서도 인물이 금욕 또는 욕구, 도덕 또는 비도덕, 모드 또는 다른 여성을 택했는지에 따라 관객이 여러 경우의 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대화하고 사랑에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것보다도 구조나 시공간적인 부분에 있어서 열림이 있잖아요. 그리고 엔딩에서 바닷가로 걸어가면서 멀어지는 모습도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 두는 열린 느낌을 받았어요.
SY: 이게 물리적으로는 제약이 있는 게 맞는데 구조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는 한 공간에서도 경우의 수가 무수히 파생될 수가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열려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CY: 물리적으로 좁은 구조 자체가 이런저런 가능성을 상상해보게 하는 것 같아요. 만약 구조가 탁 트여 있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진행된다면, 사실 이 순간에 이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거든요. 비디오 게임을 봐도 선택지가 엄청 많은 비디오 게임들은 대체로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단 말이에요.
SJ: 말씀하신 것처럼 가능성을 열어 두는 영화들이 있는데, 어떤 영화들은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결과를 보여 주면서 전개되잖아요. 이 영화는 그러지 않고 텐션을 계속 유지하다가 허무하게 딱 끝나는 느낌.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제가 그 집안에 같이 있다는 몰입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SY: 3명 모두에게 어느 정도 이입을 해볼 수 있을 정도로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진행되니까,생각할 시간이 더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그런 텐션을 유지하는 로메르 나름의 요령도 있다고 느껴지고요. 뜬금없지만 하마구치 류스케도 로메르를 좋아한다고 많이 언급했는데, 하마구치의 <열정> 보면 거기서도 한 여자 집에서 삼각관계인 듯한 세 사람이 진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러다가 갑자기 두 명이 나가서 키스하는 막장스러운 장면이 있는데 이게 너무 생각나더라고요.
6. 그리고 선택
SY: 영화 내용으로 돌아가서, 저는 파스칼 들먹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어차피 우리는 다 어떤 게 합리적인지 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누구나 확률적으로 뭐가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인식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장 루이랑 반대로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냥 당장 현재에 충실한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본 로메르 영화에 한해서는, 장 루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들이 현재에 충실한 선택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례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다른 로메르 영화들에서는 본능대로 선택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쪽은 본능을 따르지 않았는데 후회 비스무리한 걸 하게 된 경우니까. 어쨌든 로메르는 당신이 어느 선택을 하든 간에 100% 만족할 수 없는 게 이치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요. 한쪽으로 교훈을 주지 않는 게.
CY: 중간에 장 루이의 친구가 말하잖아요. 고르키나 레닌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말했듯이, 시대적 상황이 수천 분의 1의 확률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저는 그게 와닿았던 게, 선택의 순간에서 그 길로 가면 내가 불행해질 게 훤히 보이는데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선택지들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SY: 맞아요. 저도 그래서 그 대사가 좋았어요. 모든 게 확률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사실상 로메르의 영화도 필요 없었겠죠.
DW: 초반에 장 루이가 파스칼이 쓴 책을 읽을 때 책 내용을 비추는 장면 있잖아요. ‘이것을 너는 믿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어리석게 될 것이다’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 파스칼 어록 중에 ‘무릎을 꿇어라. 기도문을 읊조려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쉽게 말해서 당신이 믿게 되어서 기도를 하고 기도문을 읽는 게 아니고, 어쩌면 당신이 했던 행동이나 외적인 조건에 따라서 당신이 믿게 된 거라는 얘기잖아요.
장 루이가 주변에 계속 파스칼에 대해 얘기하고 다니는데, 정작 그런 선택의 순간에서는 ‘나는 카톨릭이야’ 단정지어 버리니까. 자신은 그 파스칼이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어리석은 길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SY: 맞아요. 그래서 파스칼의 또다른 말 중에 모드도 언급했던 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거든요. 결국에는 자기가 선택한 신념의 틀이 있고 거기에 자기를 끼워 맞추는 게 삶인 것 같아요. 나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고 청교도니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느낌.
CY: 장 루이가 청년 시절에는 기독교적으로 살지 않았다고 언급되잖아요. 기독교인들에 대한 농담 중에 하나가, ‘기독교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전향한 무신론자다’라고. 그러니까 기독교를 믿다가 거기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더 싫어한다고 하잖아요.
반대로 이 사람은 예전에 비-기독교적인 삶을 너무 오래 살아 왔으니까, 거기서 빠져나왔을 때 기독교를 주장하게 되는 정도가 강해진 거 아닐까 싶었어요.
발제 영화: 에릭 로메르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참석 인원: SY, CY, DW, SJ
1. 감상
CY: 사실 로메르의 다른 영화 중 지금까지 본 게 <해변의 폴린>이랑 <녹색광선>밖에 없거든요. 그 두 영화는 정말 세속적인 내용이라, 어떤 종교적인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각 잡힌 구도의 미사 영상으로 시작되길래, ‘이 사람이 이런 것도 하던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SJ: 저는 로메르 영화들이 다 제목은 들어 봤는데 보기를 미뤄 놨던 것들이었어요. 오늘 이 작품도 처음 봤는데 재밌었어요. 어떤 부분이 재밌었냐면,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다들 해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SY: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직접적으로 나와서, 이게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기선 너무 재미없게 다뤄지지 않아서 저는 괜찮았어요.
DW: 제가 사실 로메르의 대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다른 작품들을 보면 제가 느끼기로는 인물들이 항상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는 전개였어요. 관객이 보기에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을 대화로 푸는 형식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것과 다르게 파스칼의 확률이라든지, 특정한 용어나 구조가 영화의 끝까지 이어지는 게 단순히 대화로만 푸는 다른 작품들보다 독특하게 다가왔어요.
SY: 맞아요. 주축이 되는 논리가 있어서 로메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틀이 잡혀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다른 로메르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2. 로메르라는 대명사
SY: 로메르에 대해 할 이야기를 두 가지 가져왔는데요. 일단 한 측면에서는 영화사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 생각해 봤고,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 시네필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생각해 봤어요.
첫 번째 측면에서는 로메르가 누벨바그 감독들 중에서도 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솔직히 이 영화만 봐도 알겠지만 되게 부르주아적이에요. 등장인물들의 생활 방식도 다 되게 부르주아적인 것이고, 다들 휴양을 가 있다든지 어떤 카페에 가서 대화를 한다든지 일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나눌 수 있는 대화들을 나눈단 말이에요.
그래서 로메르의 배경도 그런 쪽일까, 생각해서 찾아봤어요. 대학에서 역사 전공하고 파리에서 고등학교 교사 하다가 소설 냈다가, 나중엔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 들어가서 비평가로 일해요. 비평을 하던 당시에 감독 생활도 시작을 했나 봐요. 그런데 로메르가 초기에 낸 작품들은 후기에 비해 비교적 유명하지 않거든요. 우리도 잘 모르잖아요, 데뷔작이 뭔지. 그래서 데뷔 초에는 고전하다가 당시 까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이었던 자크 리베트에 의해 퇴출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사람도 역시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았구나, 싶었어요. 나중에 ‘여섯 도덕 이야기’, ‘희극과 격언’, ‘사계절 이야기’ 이런 연작들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커리어가 풀리게 돼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도 여섯 도덕 이야기 중에 하나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로메르는 누벨바그 감독 중에서도 특히나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기도 하고, 대화 중심인 영화들이야 많지만 이렇게까지 대화의 힘에 기대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이랑 비교해 보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해한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요.
첫 번째는 별로 나눌 얘기가 없었지만… 두 번째 측면에서는 한국 시네필에게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 아트하우스에서 유독 자주 상영하는 감독들 있잖아요. 로메르도 있고 지금 떠오르는 건 짐 자무쉬, 왕가위…. 매년 기획전을 여는데, 그래서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CY: 로메르를 접하게 되는 경로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로메르 얘기 나오면 무조건 언급되는 한국 감독이 홍상수잖아요. 그래서 한국 예술영화들을 접하다가 옮겨 가기 쉬운 해외 감독의 사례 중에 하나가 로메르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다루는 이야기가, 내용적으로 와닿는 걸 떠나서 그 형식 자체가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인 것 같기도 하고요.
SY: 로메르를 서치하면 꼭 홍상수가 같이 뜨거든요. 뉴욕 타임즈에서 ‘홍상수는 한국의 로메르다’라고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게 같이 뜬 적도 있고. 개인적으로 둘 다 좋아하지만 다른 점을 찾으려면 무수히 많다고 생각은 해요.
SJ: 저는 로메르를 가장 처음 접하게 된 이유가, 사계절 연작이랑 <녹색 광선> 포스터가 너무 예뻤어요. <녹색 광선>은 풍경을 담은 씬 하나하나가 아름다워서 시네필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친숙한 감독일 것 같아요. 포스터가 예쁘다 보니 소비하기 쉬운 영화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저도 그렇게 접하게 되어서 포스터의 영향도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SY: 포스터를 ‘잘’ 뽑기는 했어요. 포스터 디자인 찾아보면 다 그래요. 그냥 영화 장면에다 단순하게 제목 타이포그래피 넣은 건데, 그것만으로도 예뻐 보이고 그것 자체로 상품이 되니까.
DW: 여담인데 플레이리스트 유튜버 중에 로메르 영화 장면을 배경으로 해서 계속 올리는 채널이 있어요. 구독자가 좀 있더라고요. 아예 영화를 안 보는 사람도 알 정도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SY: 로메르가 살아서 그걸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으면서도 뭔가. 이번 작품은 흑백이라서 덜 느껴지겠지만 다른 영화들 보면 옷을 되게 잘 입어요. 그리고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에서는 옷 색깔을 이용해서 코미디적으로 연출하는 엔딩 씬이 있거든요. 색 활용을 정말 잘하고, 확실히 미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정말 많아요.
DW: (로메르 사진을 보며) 벌써 저 모자랑 스카프부터 멋지네요.
SY: 이 사진이 너무 멋지지 않아요? 그래서 가져왔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로메르 젊었을 때 사진이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다 말년의 사진밖에 없더라고요. 어쨌든 간에 이렇게 멋지게 하고 다녔대요.
사실 저는 로메르를 <녹색 광선>으로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싫어했거든요. 그때의 감상은 ‘그냥 보기 좋은 영화 잘 만든다’ 정도였는데, 보면 볼수록 영화 안에 나름의 철학이 있고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은 저에게 완전히 선입견을 깨 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그저 보기 좋은 거 만드는 감독으로 소비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3. 확률적 딜레마
SY: 영화 얘기로 넘어가서, 일단은 인물에 대해서 먼저 얘기할게요. 다른 로메르 영화들처럼 인물 구성이 단촐하잖아요. 주인공인 ‘장 루이’는 독실한 가톨릭에다가 엔지니어고 심지어 이렇게 양복을 입고 다니고… 고루한 인상이었어요. 그리고 친구에게 수학에 대한 얘기를 자꾸 꺼내잖아요. 15년 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도 내가 요즘 파스칼 책을 읽고 있다, 너 수학에 관심 있냐. 철학 가르치는 친구한테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알면 그 사람과 마주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고.
이 사람에게는 모든 게 확률적으로 결정되고,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쪽에 베팅을 하는 게 당연히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에요. 반면에 장 루이의 친구는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내 인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확률이 적어도 선택을 할 거라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대립이라든지, 장 루이의 가치관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가 궁금했거든요.
CY: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오히려 이런 성격의 사람이 너무 호감이어서.
DW: 저는 영화가 흑백이기도 하고 칼 드레이어나 잉마르 베리만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딱딱한, 종교적인 인물들의 전형이 떠올랐어요. 재밌는 건 장 루이는 대놓고 말을 안 해도 욕구에 대한 내적 갈등을 겪는 게 보였거든요. 제가 언급한 감독들의 영화에서는 외적인 인물들과의 갈등이 주로 드러나는데, 이 영화에서는 대화를 통해서 내적 갈등을 끌어내다 보니까 캐릭터가 로메르식으로 풀릴 수 있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SJ: 저는 저런 사람들을 가끔 실제로 마주치면 내면의 자아가 진짜 뒤틀려 있을 텐데, 이걸 꽁꽁 숨기려고 저렇게 사는구나 생각하거든요. 장 루이도 분명히 뒤틀린 자아가 있을 테고 그게 약간씩 새어나오는 장면들이 많아요.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에서도 주인공이 심한 내적 갈등에 빠지는데, 로메르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딜레마에 빠뜨리고 도덕을 시험하게 하는 것 같아요.
SY: 맞아요. 그런 딜레마가 영화에서 되게 중요한 요소예요. 로메르가 예전에 교사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인지 교훈적인 투가 항상 영화에 있기는 한데, 실제로 자신을 ‘모럴리스트’라고 칭하기도 했어요.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모럴리스트라고 한대요.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도덕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갈등을 겪는지 자체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그걸 주로 다루는 것 같아요. 로메르가 인간의 악한 본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읽히는 건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4. 내재적 모순
SY: 로메르가 <파스칼에 대하여>라는 단편을 찍은 적 있어요. 파스칼에 되게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종교개혁 시기에 카톨릭 중에서도 얀센주의라는 분파가 생겼고, 철저하게 금욕하고 고행까지 하는 신앙생활을 강조했거든요. 그래서 장 루이가 나는 얀센주의자인 파스칼의 금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요. 파스칼은 결혼까지 부정하는데, 결혼은 좋은 건데 왜 그것까지 부정하냐는 얘기를 해요. 한참 뒤에 장 루이와 그 친구, 모드가 함께 식사하는 씬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갖고 있는 모순이 매력적이다’라는, 장 루이를 비꼬는 듯한 대사가 나와요. 로메르가 카톨릭 신자임에도 직접적으로 이런 대사를 넣은 것도 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CY: 저는 이렇게 인물 한 명이 몰리는 대화 장면 있잖아요. 그런 게 보기 힘들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독실하게 뭔가를 생각하고 있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서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듣고 있으면 너무 그렇잖아요. 이런 상황이 <녹색 광선>이나 <해변의 폴린>에서도 꼭 있었던 것 같아서… 저는 이런 게 좀 재밌다 싶으면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에요.
SJ: 신자인 로메르 본인이 내재적 모순에 대해서 제일 잘 알 거예요. 삶에서 무조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흔들리는 과정이 있었을 테니까, 그 장면이 어쩌면 로메르가 스스로 고민했던 것이거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일 것 같기도 해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관되게 갖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SY: 맞아요. 꼭 종교 신자가 아니어도 무언가를 강하게 믿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잖아요.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딜레마가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속으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든지, 그런 내재적 모순은 보편적인 건데 로메르의 관심사가 종교였으니까 여기서는 종교에 적용된 것 같고요. 모럴리스트라는 맥락에서 내재적 모순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 제한된 (시)공간
SY: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이 제목 그대로 모드의 집 안에서 전개되잖아요. 공간이 엄청나게 제한되어 있고, 하룻밤이 주된 사건의 배경이니까 시공간 자체가 제한되어 있어요. 저는 로메르가 이렇게 시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한 집안을 계속 돌아다니기만 하는데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대화 씬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어요.
DW: 저는 오히려 그 시공간이 되게 구조적으로 열려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 영화적 재미라고 느껴지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홍상수랑 로메르랑 굳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면 그런 구조의 열림인 것 같아요. 단순히 대화하고 술 먹고 해서 비슷한 게 아니라, 홍상수도 보면 같은 공간에서 먹는데 다른 시간대거나 아니면 똑같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약간의 차이를 줘서 그걸 반복하잖아요. 시공간을 가지고 장난치는 감독이에요.
이 영화에서도 인물이 금욕 또는 욕구, 도덕 또는 비도덕, 모드 또는 다른 여성을 택했는지에 따라 관객이 여러 경우의 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대화하고 사랑에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것보다도 구조나 시공간적인 부분에 있어서 열림이 있잖아요. 그리고 엔딩에서 바닷가로 걸어가면서 멀어지는 모습도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 두는 열린 느낌을 받았어요.
SY: 이게 물리적으로는 제약이 있는 게 맞는데 구조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는 한 공간에서도 경우의 수가 무수히 파생될 수가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열려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CY: 물리적으로 좁은 구조 자체가 이런저런 가능성을 상상해보게 하는 것 같아요. 만약 구조가 탁 트여 있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진행된다면, 사실 이 순간에 이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거든요. 비디오 게임을 봐도 선택지가 엄청 많은 비디오 게임들은 대체로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단 말이에요.
SJ: 말씀하신 것처럼 가능성을 열어 두는 영화들이 있는데, 어떤 영화들은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결과를 보여 주면서 전개되잖아요. 이 영화는 그러지 않고 텐션을 계속 유지하다가 허무하게 딱 끝나는 느낌.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제가 그 집안에 같이 있다는 몰입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SY: 3명 모두에게 어느 정도 이입을 해볼 수 있을 정도로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진행되니까,생각할 시간이 더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그런 텐션을 유지하는 로메르 나름의 요령도 있다고 느껴지고요. 뜬금없지만 하마구치 류스케도 로메르를 좋아한다고 많이 언급했는데, 하마구치의 <열정> 보면 거기서도 한 여자 집에서 삼각관계인 듯한 세 사람이 진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러다가 갑자기 두 명이 나가서 키스하는 막장스러운 장면이 있는데 이게 너무 생각나더라고요.
6. 그리고 선택
SY: 영화 내용으로 돌아가서, 저는 파스칼 들먹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어차피 우리는 다 어떤 게 합리적인지 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누구나 확률적으로 뭐가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인식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장 루이랑 반대로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냥 당장 현재에 충실한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본 로메르 영화에 한해서는, 장 루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들이 현재에 충실한 선택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례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다른 로메르 영화들에서는 본능대로 선택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쪽은 본능을 따르지 않았는데 후회 비스무리한 걸 하게 된 경우니까. 어쨌든 로메르는 당신이 어느 선택을 하든 간에 100% 만족할 수 없는 게 이치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요. 한쪽으로 교훈을 주지 않는 게.
CY: 중간에 장 루이의 친구가 말하잖아요. 고르키나 레닌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말했듯이, 시대적 상황이 수천 분의 1의 확률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저는 그게 와닿았던 게, 선택의 순간에서 그 길로 가면 내가 불행해질 게 훤히 보이는데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선택지들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SY: 맞아요. 저도 그래서 그 대사가 좋았어요. 모든 게 확률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사실상 로메르의 영화도 필요 없었겠죠.
DW: 초반에 장 루이가 파스칼이 쓴 책을 읽을 때 책 내용을 비추는 장면 있잖아요. ‘이것을 너는 믿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어리석게 될 것이다’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 파스칼 어록 중에 ‘무릎을 꿇어라. 기도문을 읊조려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쉽게 말해서 당신이 믿게 되어서 기도를 하고 기도문을 읽는 게 아니고, 어쩌면 당신이 했던 행동이나 외적인 조건에 따라서 당신이 믿게 된 거라는 얘기잖아요.
장 루이가 주변에 계속 파스칼에 대해 얘기하고 다니는데, 정작 그런 선택의 순간에서는 ‘나는 카톨릭이야’ 단정지어 버리니까. 자신은 그 파스칼이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어리석은 길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SY: 맞아요. 그래서 파스칼의 또다른 말 중에 모드도 언급했던 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거든요. 결국에는 자기가 선택한 신념의 틀이 있고 거기에 자기를 끼워 맞추는 게 삶인 것 같아요. 나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고 청교도니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느낌.
CY: 장 루이가 청년 시절에는 기독교적으로 살지 않았다고 언급되잖아요. 기독교인들에 대한 농담 중에 하나가, ‘기독교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전향한 무신론자다’라고. 그러니까 기독교를 믿다가 거기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더 싫어한다고 하잖아요.
반대로 이 사람은 예전에 비-기독교적인 삶을 너무 오래 살아 왔으니까, 거기서 빠져나왔을 때 기독교를 주장하게 되는 정도가 강해진 거 아닐까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