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김상진 - <주유소 습격사건>
WEBZINE
WEDITOR   박수진

발제 일자: 11.21
발제 영화: 김상진 <주유소 습격사건(1999)>
참석 인원:  SJ, SY, HR, DW, CY


1. 감상
SJ: 어떠셨나요?

DW: 제가 근래 코미디 영화를 잘 안 봤는데, 정말 B급 코미디 같으면서도 시대를 대변하는 골 때리게 웃긴 영화였던 것 같아요.

HR: 저는 캐릭터성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어요. 2000년대 한국 영화들은 마무리를 잘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 영화는 그 당시 청년들이 열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폭력성으로 표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담으려 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블랙 코미디로 느껴졌습니다.

SY: 저는 원래 코미디를 안 좋아해서 큰 기대는 안 하고 봤는데, 정말 한국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불편함조차도 한국적으로 불편한 느낌이랄까요.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유머 코드들이 타겟 관객인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저는 그런 점이 문제적이라고 생각해서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아쉬웠어요.

CY: 저는 지난 학기에 다뤘던 영화 <조용한 가족(1998)>과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두 영화 모두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흥미롭다는 점에서요. 또, 제가 개인적으로 1990~2000년대 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점들이 영화에 온통 녹아들어 있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한편으로는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회상하는 향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들이요.


2. 4인조 무차별 폭력단, 사회의 부산물인가 개인의 특성인가?



SJ: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시계태엽 오렌지(1972)>가 떠올랐어요. 90년대 후반 IMF 위기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는데, 청년들이 방황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영국의 불안정한 사회에서 위태로운 청년상을 그린 시계태엽 오렌지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영화가 그런 컨셉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폭력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궁금했어요.

SY: 이 영화가 개봉한 후 실제로 영화 속 장면을 10대들이 따라 해 체포됐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만큼 영화가 강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단순히 영화로만 보면 비슷한 작품이 꽤 많죠. 예를 들어 <트레인스포팅(1996)> 같은 영화요. 다만, 이 영화는 폭력 강도를 일부러 덜어내고 코믹한 요소를 더한 ‘순한 맛’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HR: 폭력의 정도는 확실히 다르지만, 이들이 결국 항의하고자 한 대상은 한국 사회의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유난히 사장(박영규 분)을 집요하게 괴롭히잖아요. 그가 주유소의 유일한 어른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니까요. 특히 사장에게만 짜장면을 주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어른으로서 적절한 성장 기회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세대의 아이들이지만, 그를 존중하는 모습이 잠시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초반에 얘네들이 왜 주유소를 털었는지가 불분명하게 시작되잖아요. “그냥”이라는 대답으로 정당성을 포기한 채 이야기를 전개하는 느낌이었어요. 이후 주유소가 사회의 하위 계층이 한데 모이는 장소로 그려지는데, 폭주족, 용역 깡패, 배달원 등 다양한 하위 계층 인물이 등장하며 패싸움의 무대를 보여주는 점도 독특했어요. 당시 현찰 거래가 많았던 주유소를 배경으로 설정한 점도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한 것 같아요.

SY: 예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집단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적이 있잖아요. 실제로 그 집단이 저지른 범죄 중에는 정말 흉악한 것도 많았지만, 그 슬로건만큼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처럼 계급적인 출발점이 있나 싶었는데, 사실은 그런 계급 의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어요. 단지 습격의 이유가 "그냥"이라고 하는 점에서, 단순한 오락적 행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SJ: 저도 사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을 보면, 시대 상황이 암울할 수는 있어도 개개인의 서사 자체가 큰 비극이나 강력한 동기를 내포한 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야구부를 했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렸고, 또 어떤 사람은 음악을 했던 정도의 흔한 서사들이잖아요. 이들이 이런 식으로 삐뚤어질 만한 정당화될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리 시대가 안 좋다 해도 이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CY: 저는 그게 오히려 흥미로운 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일관적인 논리로 주유소를 털거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에 안 들면 부수고, 성가시면 때려부수는 식이잖아요. 그런 단순함이 나름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SY: 맞아요. 어떤 영화는 논리가 없어서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있죠. 그런데 이 영화는 논리가 없는 듯하면서도 애매하게 머물러 있어서 좀 아쉬웠어요. 차라리 더 폭력적이고 파격적으로 갔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좀 약했다고 생각합니다.

HR: 저는 이 영화에서 친구들이 보여주는 폭력의 성향이 각자 자신이 경험했던 체벌과 비슷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예를 들어, 노마크(유지태 분)는 "20바퀴 더 돌아" 같은 끝없는 체벌을 재현하고 있잖아요. 사장한테는 전화기를 부수고 고쳐놓고, 또 부수고 고쳐놓는 반복적인 행동이 나오죠. 이런 행동들은 어렸을 때 자신들이 받았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DW: 주유소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계층이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부르주아, 오렌지족, 스포츠카를 몰고 오는 여성 등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나오잖아요. 처음에는 이런 장면들을 보며 권력 구조에 대한 조롱이나 반항으로 해석하려 했어요. 하지만 영화 중반 이후부터는 그런 코드가 점점 배제되면서 단순한 B급 코미디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가벼운 히어로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저는 감독이 아예 의도적으로 그런 코드를 완전히 없앴다고 보진 않아요. 노마크와 친구들이 부모가 없는 설정이라든지, 마지막에 가족사진이 없어서 주유소를 탈출하지 못하는 장면은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죠. 하지만 이 영화가 결국 모든 폭력을 가족의 결핍과 향수로 돌리는 전개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실컷 반항하고 파괴하더니, 결국 가족사진이라는 상징으로 엄마의 품에 돌아가는 식으로 마무리되더라고요. 만약 권력 구조를 깨부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끝까지 혁명적인 시각을 밀어붙였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영화는 "부모가 없어서 이렇게 됐다"라는 결론으로 끝난 것 같아서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느꼈습니다.

CY: 맞아요. 한국 영화에서는 갈등이 벌어지더라도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이 봉합되어 버리는 특징이 있잖아요. 이 영화도 그런 경향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폭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가둬버린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3. 권력, 그리고 주유소



SJ: 알바생들은 처음엔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양아치들과 싸워 승리하면서 권력이 높아지고, 이후에는 그 4명조차 자신들 패거리처럼 행동하잖아요. 개인보다 집단으로 행동할 때 더 과격해진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화 속 철가방(김수로 분) 캐릭터가 맞고 난 후 사람들을 불러 싸우는 장면은 집단 방어기제가 강하게 드러난 사례였어요. 마지막에 세 집단이 서로 싸우며 권력이 계속 옮겨가는 모습, 특히 라이터를 둘러싼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권력이 계속 이동하고 재생산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한다는 인사이트를 얻었어요. 다른 분들은 이런 권력 구조에 대해 어떻게 보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DW: 저는 푸코의 권력 이론과 연결 지어 볼 수 있을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푸코는 권력이 특정 지배층에서 하위 계층으로만 행사되는 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이동한다고 보잖아요. 그런데 영화 속 권력 이동은 여전히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서 푸코가 말한 생산적인 권력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어요. 단순히 깡패나 알바생 같은 캐릭터들 사이에서 권력이 이동했을 뿐, 그것이 부호적 해석이나 새로운 권력의 생산으로 이어지진 않은 것 같아요.

SY: 권력에 대해 논하려면 주유소라는 공간 자체가 가진 상징성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봐요. 주유소는 기름이라는 자원을 다루고, 차를 소유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에요. 특히 주유소에 걸린 가격 변화표는 사회 경제구조를 반영하죠. 외부에서 주유소를 습격하는 이들은 기름이나 차 같은 자산을 가질 수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래서 주유소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권력의 상징적 공간으로 보였어요. 주유소 주인은 부르주아로 해석할 수도 있고요.

HR: SY의 말을 듣다 보니 이 영화가 권력 구조에 박해 있는 친구들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바생들은 윗사람인 3학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그 위에는 용역 깡패들이 있잖아요. 철가방도 혼자 있을 땐 약했지만, 집단에 속하면 강해지는 모습을 보였어요. 등장인물들 모두 권력 구조 안에 묶여 있지만, 4명의 주인공은 그런 구조에서 벗어나 있는 먼치킨 같은 존재로 묘사됐어요. 싸움에서 다른 캐릭터들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데, 주인공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죠. 이 집단 내에서도 권력 차이가 명확하지 않고, 서로 굴복하는 모습도 크게 없어서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CY: 주유소라는 공간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보통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상점털이 영화와 달리, 주유소는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다양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정류장처럼 머물다 떠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이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이 자의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주유소가 본질적으로 권력적인 장소가 아니고, 영화에서 주유소 운영자들을 부르주아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에요.


4.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국영화



SJ: 저는 이 영화를 90년대 후반의 컬트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지 고민됐어요. 비선형적이고 중간중간 서사가 툭툭 이어지는 방식은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어요. 서사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갑작스럽게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짤막하게 설명하는 방식이 독특했어요. 이런 구조가 당시 한국 영화들과는 결이 달랐고, <펄프 픽션(1994)> 같은 외국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여러분은 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어떻게 느끼셨나요? 특이하게 보셨는지, 익숙하게 느끼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HR: 형식적으로 엄청 특이하다는 느낌은 안 들었어요. 당시 한국 영화 중에도 <친구(2001)>, <쉬리(1999)> 등 비슷한 구조의 영화들이 있었거든요. <펄프 픽션>처럼 시점이 급격히 바뀌거나 타임라인이 뒤섞이는 방식과는 다르죠. 이 영화는 한 장소를 중심으로 외부인들이 찾아와 사건이 벌어지는 구조예요. 등장인물 4명의 서사가 군데군데 등장하지만, 결국 주요 무대는 주유소로 한정되어 있어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처음엔 정당성이 없어 보였는데, 점차 이들의 과거 서사가 드러나며 이해가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처음엔 왜 자꾸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 싶었는데, 나중에 그 인물이 노래를 좋아하는 단순한 이유라는 걸 알게 되는 식으로요. 서사가 짧고 간결하게 전달되며 각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SY: 저는 이 영화를 컬트 영화로 부르는 게 맞는지 의문이었어요. 형식이나 구조적으로 보면 오히려 전형적이라고 느껴졌거든요.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성을 충분히 설명해 관객이 공감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은 상업적으로 잘 보완된 구조라고 봤어요. 이름이나 설정도 고의적으로 특이하게 만들어 관객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가 명확했어요.

DW: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들이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하나비(1997)>, <소나티네(2001)> 같은 일본 영화들이 그 시기에 들어오면서 한국 영화의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죠. 하지만 다케시 영화가 보여주는 건조하고 절제된 폭력의 미학과 달리, 한국 영화는 감정과 연출에서 과도한 부분이 많아 비교되기도 해요. 이 영화는 그런 다케시 영화의 이미지만 차용한 느낌이랄까요. 더 깊이 있는 미학적 해석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HR: 다케시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해 보여요. 하지만 처음엔 모방으로 시작했던 한국 조폭 영화들이 나중엔 고유한 장르로 자리 잡았죠. 이 영화도 그 흐름 속에서 전형적인 조폭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후에도 비슷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지금 보면 당시의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