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역동하는 카메라 : 하라 카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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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최서윤


1.    이중구속이라는 숙명

고리타분한 얘기부터 해 보자.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촬영한 최초의 필름에는 공장을 떠나는 무수한 노동자들의 운집이 담겨 있다. 당시 공장주였던 뤼미에르 형제의 생활 반경에 있는, 가장 밀접하고도 촬영하기 수월한 광경을 담은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 생각이 다소 피상적이라고 여긴 혹자는 다음과 같은 반문을 던지게 된다. 왜 하필 그 어떤 다른 집단도 아닌 ‘노동자'였을까? 한 매체의 태동에 그 어떤 계층도 아닌 노동자 계층이 자리한다는 점은 과연 우연에 지나지 않는 걸까? 영화 바깥의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모습에 이토록 주의를 기울일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지 필름에 새겨져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46초씩이나 이 지나치게 평범한 광경에 집중한다. 무성 영화 시절을 거쳐 이제 영화는 시청각에 오감 전체를 동원해 경험적인 역사와 현격히 다른 종류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영화는 일종의 대안 역사다. 영화는 두툼한 사료 더미 속에 묻힌 희생의 기록을, 사료도 되지 못하고 재로 남은 삶의 터전을, 혹은 멸망한 나라의 노래를 눈앞에 현현시킴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기억한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전설이 된 정성일의 어구처럼, 시네필리아적 감탄은 결국 대안적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영화의 본질에 대한 경이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본질과 가장 밀접히 닿아 있는 장르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영화란, 그 오묘한 이름만큼이나 본질적으로 두 가지의 장르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구속에 처해 있다. 영상예술로서 나름의 미학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투사하는 데 충실한 아카이브로서의 사명감을 다해야 한다. 이를 추상화하자면 픽션 대 리얼리티의 구도로 치환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면 픽션과 리얼리티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관계인가? 양자가 동시에 성립할 수는 없는가? 리얼리티 또한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재구성되므로 사실상 리얼리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혹에까지 가닿을 경우 논의는 끝없이 복잡해진다.

이는 오늘날 사학에서 역사란 무엇인지 바라보는 관점과 맥을 같이한다. 저명한 사학자인 E. H. 카가 일러 주었듯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역사기술은 사실의 단순 나열이 아닌 과거에 대한 해석,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작용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또 그러한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로 여겨진다. 이는 비단 역사가에 한정되는 일이 아니다. 펜 대신 카메라를 잡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의 책무 또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수많은 팩션faction이 범람하고, 픽션과 논픽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같은 감독들이 부상해 왔다. 경계의 교란을 미학적인 전략으로서 차용하는 것은 (지난해 <노 베어스>가 부른 반향처럼 여전히 파격적이지만) 어느 정도 일반적인 것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감독들에게 그러한 전략은 언제까지나 사실 묘사에 충실했을 때에만 허용된다. 사실에 가까이 다가서되,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서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듯, 살갗 아래의 지나치게 내밀한 것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또다시, 그들은 그들이 놓인 이중구속의 상태에 직면한다.


2.    페이크 리얼리스트?

본고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앞선 책무를 얼마나 ‘잘’ 수행해 내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을 둘러싼 구속을 관조하듯 규범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다. 그보다는, 감독들이 본인이 처한 구속을 인식하면서도 어떻게 독자적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지에 주목한다. 그 방식이라 함은 당장 두 갈래로 단순화해 볼 수 있다. ‘살갗 아래’까지 이미지화할 것이냐, 말 것이냐. 예컨대 하룬 파로키는 <꺼지지 않는 불꽃(1969)>에서 베트남전 중 미군의 네이팜탄Napalm bomb에 의해 벌어진 참상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않는다. 네이팜탄의 위력보다 훨씬 약한 담뱃불로 한 남자가 자신의 팔을 지지는 모습을 비추거나, 실험용 쥐가 타들어 가는 이미지로 그것을 대체한다. 만약 당신들이 네이팜탄의 희생자들을 직접 보게 된다면 “눈을 감아 버리고 말 것”이라면서 말이다. 클로드 란츠만 또한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미지 재생산을 거부하며, 9시간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가해자, 목격자의 인터뷰로만 구성된 <쇼아(1985)>를 만들었다. 이에 반해 장 뤽 고다르는 란츠만의 방식이 새로운 사유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제목 그대로 영화사를 다룬 <영화사(1998)>에서 고다르는 이미지-몽타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역사를 자유분방하게 해체하고 재해석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여기 하라 카즈오라는, 후대의 또다른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있다. 앞선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정치적 문제에 천착하지만, 그가 사실을 대하는 방법론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걸어가는 두 가지 방도에서 벗어난 듯 사뭇 달라 보인다. 그는 고다르가 못 미더워할 법하게 더하는 것이 없고, 파로키와 란츠만이 반기를 들 법할 정도로 덜어 내는 것이 없다. 한마디로 자신이 담고자 하는 이미지를 가감 없이 담아 낸다. 뇌성마비 환자들의 분투를 다룬 데뷔작 <사요나라 CP(1974)>를 발표하고, 전 아내인 미유키가 오키나와로 건너가 자발적 미혼모로서 살아 가는 과정을 기록한 <극사적 에로스(1974)>와 뒤이어 발표한 걸출한 작품들 속에서, 그는 줄곧 모든 순간에 집요하리만치 카메라를 들이댄다. 미유키가 홀로 사생아를 출산하는 순간에도(<극사적 에로스>), 주인공이 군 시절 상관을 협박하며 폭력을 가하는 순간과 경찰에게 촬영을 저지당하는 순간에도 말이다(<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1987)>[1]). 인물이 눈물을 흘리든 격분해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든 카메라는 동요하지 않은 채 날것의 감정을 포착한다. 그 집념의 원천이 궁금해질 정도로 사건에 관련된 요소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지점에서 하라 카즈오는 극단적 리얼리스트로 분류되기 쉽다.

<극사적 에로스> ©desistfilm

그러나 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해부해 볼수록, 오히려 리얼리즘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담고자 하는 것은 사실reality이 아닌 진실truth이다. 그 진실을 단순 사건 서술이 아닌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해 나간다는 점에서 카즈오의 다큐멘터리는 독특함을 지닌다. 카즈오에게 다큐멘터리란, 그의 말을 빌려 “찍히는 쪽과 찍는 쪽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사실과 달리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이해관계자가 아니고서야 파악하기도, 외부에 명명백백히 밝혀지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카즈오가 택한 방식은, 촬영에만 8년이 소요된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2016)>이나 15년이 걸린 <미나마타 만다라(2020)>처럼 오랜 기간 진실의 말미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러닝타임도 전자는 3시간에서 후자는 6시간에 달한다. 물론, 두 영화 속 희생자들이 일생 동안 겪어 온 고통에 비하면 제작과 감상에 드는 인고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카즈오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은 기나긴 러닝타임에서 비롯되는가? 끈질기게 카메라를 들이대다 보면 진실은 자연히 발견되는 것인가? 그의 여러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가만히 촬영만 하고 있는 관찰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희한하게도, 그는 영화 내에서 감독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극사적 에로스>야 자전적 다큐멘터리이니 그럴 수 있다 감안해도, 본인과 무관한 사건을 다루는 작품에서도 관찰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듯하다가 프레임 내부에 난입한다. 인터뷰 중 연출적 NG가 난 장면을 그대로 쓰거나, 영화 촬영을 막는 인물들과 직접 대화하거나, 아예 출연진으로서 등장해 영화에 대해 코멘트하기도 한다. 제4의 벽이 깨진 듯한 당혹스러움이 엄습하지만 이런 균열마저도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사투이며 진실성을 더하는 소동으로서 소화된다. 본고에서는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와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두 작품을 중심으로 카즈오의 이러한 독특한 접근 방식을 살펴본다. 각각 1987년작과 2017년작임을 고려할 때 상당한 시간적 낙차가 있지만, ‘찍히는 쪽과 찍는 쪽’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다큐멘터리를 이끌어 나가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대표작이므로 이들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3.    사적 보복, 아니, 사적 아카이브

일본인들은 권력에 더욱 분노해야 한다日本人はもっと力に怒っていい”
– 하라 카즈오, 2018년 마이니치 신문
日新聞과의 인터뷰 중

매 인터뷰마다 카즈오는 얌전한 일본인들에게 사회 문제에 좀 더 목소리를 낼 것을 일갈한다. 카즈오에게 분노란 “그 사람의 살아 온 방식 가운데 가장 소중한 욕망"이며, “자유를 향해 권력자에 맞서 분노하며 부딪치는 일이 가장 소중한 욕망”이기에 그는 분노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카메라를 잡는다.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는 카즈오의 이러한 집념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영화다. 주인공인 실제 인물 ‘오쿠자키 켄조’는 자신만의 신념으로 무장해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쇼와 천황을 파친코 구슬로 저격하고, 포르노 사진에 천황일가를 합성한 전단지를 도심에 뿌리고···. 반정부적 활동과 살인죄, 폭행죄를 포함해 나열하자면 수도 없는 기행으로 일본 사회에서 악명을 떨쳐 왔다. (참고로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 ‘파친코 사건’을 영화화하려다가 무산되었는데, 이후 카즈오가 그를 통해 오쿠자키를 소개받게 된다) 지루한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줄 만한 인물을 찍고 싶었던 카즈오에게 오쿠자키가 가진 추동력은 카메라를 잡을 수밖에 없는 계기였으리라.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BOMB Magazine

영화의 초반부는 오쿠자키의 문제적인 면모를 좇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는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지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휘장을 두른 차량을 몰고 시내를 활보하다가 경찰에게 적발당한다. 경찰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 바로 뒤잇는 것은 오쿠자키가 과거 전사한 동료 병사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는 군 시절 죽은 병사의 시신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묻었음을 고백하고, 어머니를 따라 병사의 묘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병사의 어머니가 부르는, 죽은 아들을 기리는 애처로운 노래를 묵념하며 듣는 그의 모습이 비춰진다. 이때 카메라는 오쿠자키라는 인물이 이중적인 위치에 서 있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그는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닌 동시에, 폭력을 자행하는 자다. 오쿠자키의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폭행은 그를 비롯한 동료 병사들이 당했던 전쟁 폭력의 흔적과 함께 병치된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사한 2명의 병사가 부대장에 의해 사살된 것이라는 사실과 부대 내에서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의 전말이 밝혀지고, 오쿠자키는 과거에 대해 침묵하는 이들에게 분노하며 폭력을 행사한다. "결과가 좋으면 폭력은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사적 보복은 마냥 통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모종의 씁쓸함을 동반한다. 그 폭력 행위의 본질은 결국 수십 년 간 은폐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에 있기 때문이다. 오쿠자키가 매번 그 현장에 병사의 유가족을 동반해 사과를 요구하는 것 또한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후반부에는 실제 유가족이 아닌 오쿠자키의 아내가 대역으로 등장한다. 유족들이 촬영에 점점 부담을 느껴 거절하자 그의 아내가 대신 출연하게 된 것인데, 아내를 동반해 가해자를 찾아간 오쿠자키는 ‘유족이 여기 있는데 죄송하지 않냐’며 상대방에게 소리 지르기도 한다. 카즈오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 “오쿠자키 특유의 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실제 본인이든 대역이든 가해자들에게서 직접 사과를 받아 낼 수 있다면 이 또한 대의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카즈오는 인육 사건을 파헤치는 전개가 오쿠자키 개인의 동기가 아닌 카즈오 본인의 제안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2] 진실만을 담는 것처럼 보였던 카메라는 이렇게 진실과 거짓 사이를 줄타기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 속 어느 지점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지점부터가 거짓인가? 진위를 분간할 수 없다면 오쿠자키의 분투와 가해자들의 사과는 거짓된 것으로 전락하는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것을 진실이자 우리의 역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영화는 실제에 근거한 것만이 진실이라는 전통적 리얼리즘의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한다. 그 반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물만의 독자적인 리얼리즘을 가감 없이 담아 내며 리얼리티와 픽션의 경계에 관한 관념을 비튼다. 역사가 그것을 다시 쓰고자 하는 이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역사의 민주성에 대한 믿음, 이는 다시 말하자면 카즈오 특유의 리얼리즘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으리라.

한편으로 이 영화에는 구태여 말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오쿠자키의 일상이나 그의 생업에 관련된 이야기는 소거되어 있다. 분명 한 인물에 주목하지만 그의 모든 것을 보여 주려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오쿠자키 켄조라는 인물이 왜 자신의 신념을 폭력으로 표출하게 되었는지 그 응축된 분노의 기원을 좇는 데 주력한다. 오쿠자키는 자신만의 절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광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권력형 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으로 참전했으나, 전쟁 중 트라우마를 얻어 강경한 천황제 반대파로 돌아선 군국주의의 피해자다. 살인까지 저지른 인물에게, 또는 한때 일본 제국의 하수인으로서 복무했던 이에게 피해자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더욱 논쟁적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영화가 도출해 내는 진실은, 오쿠자키의 폭력은 부당한 권력에 응징하는 수단이자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 가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그 폭력이 옳거나 그른지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배제하면서도, 결코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그저 그것을 직시한다. 겉보기에 지극히 개별적이고 사적인 이 다큐멘터리는 전쟁 경험이 사회에 남긴 잔흔을 집합적 기억으로 돌려 놓는 보편적 아카이브로 확장된다. 마침내 재건된 역사를 끌어안은 필름은 기존의 역사가 소실한 피해자들의 이름을 그 위에 다시금 새긴다.


4.    카메라는 진군한다, 내부로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가 공개된 지 30년 가까이 흐른 2016년,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이는 카즈오가 10여 년 간 오사카 센난 지역의 석면 피해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내놓은 일종의 ‘르포’였다. 1900년대 초부터 석면 산업으로 부흥한 센난 지역의 공장 노동자들은 유해한 석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수십 년에 걸쳐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대규모 사상 피해가 발생했다. 이 비극은 석면의 위험성을 묵인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배상소송의 발단이 되었다. 영화의 원제인 ‘일본 vs 센난 석면 마을(ニッポン国 vs 泉南石綿村)’은 작중 국가 대 지역 사회의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카즈오의 관심사가 여전히 일본 사회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지만, 전작들과는 대조적으로 특정 인물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그의 카메라는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집단과 공동체, 그리고 시민 사회를 조망한다. 이 역시 권력의 부패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한 인물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로서 다루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중첩시킨다.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특정 인물을 ‘주인공화’ 하지 않는 대신, 인물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사연을 자막으로 삽입해 조명한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그의 이름, 나이, 그리고 석면 피해 사건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사연을 소개하는 식이다. 놀랍게도 후반부에는 감독인 하라 카즈오 본인 또한 자막과 함께 등장해 배상 소송의 원고측 변호사와 사건에 대한 대담을 나눈다. 영화가 종결되지 않았음에도 감독의 존재를 불쑥 드러내는 이 장면은 ‘관찰자’로서 머물지만은 않겠다는 카즈오의 선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가 카메라 밖으로 돌아온 이후 진행하는 센난 주민과의 인터뷰에서도 인터뷰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며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지속된다. 사실상 인터뷰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정도로 카즈오와 그의 카메라, 그리고 인물들 사이에는 연쇄적인 상호작용이 오간다. 카즈오의 말을 다시 빌려 ‘찍히는 쪽과 찍는 쪽’의 상호작용이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에서는 프레임 안팎이라는 선명한 경계를 두고 구현되었다면, 이제는 그 경계를 허물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현실의 일부로 흡수된다.

또다른 주안점은 영화가 인물의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천황 ...> 속 오쿠자키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정당한 폭력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를 시사했다면, <센난 ...>에서는 인물들이 직접 폭력의 정당성을 고민하고 논쟁한다. 피해자들의 길고 고된 법적 투쟁-대법원 승소 판결이 나기까지 9년이 소요됐다-의 과정에는 오쿠자키의 사적 보복과 같은 일말의 통쾌함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법적 절차를 통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자 했으나, 장기화된 소송에 지쳐 폭력적 대응을 시도하려는 이들도 존재했다. ‘센난지역석면피해시민모임’의 대표인 유오카 카즈요시는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면 법적 투쟁을 넘어선 폭력을 동원해야 할 수 있음을 역설하는 한편, 또다른 피해자 유가족인 야마다 테츠야는 ‘분노가 아닌 하나씩 해 가면서 바꿔 나가겠다’고 다른 입장을 취한다. 국가와 시민모임 간 분쟁의 이면에는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발화하는 것과 이성을 유지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즈오의 카메라는 거대한 투쟁 속에서도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리고 그 안에서 제각기 다른 태도로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각 인물들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지 뚜렷이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비로소 포착해 내는 것은 어떠한 행위에 이르기 전 인물들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다. 카즈오가 언젠가 ‘다큐멘터리란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센난 ...>은 사건의 기록물 이상으로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분노, 연대감, 그 모든 감정들을 제3자에게 생생히 전달하는 공적 아카이브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러한 근원적 감정이 어떻게 10년 가까이 지속된 투쟁의 동인이 될 수 있었는지 톺아보는 계기로서 작용한다.


재판이 끝난 후, 피해자인 원고측 변호사들이 승소했음을 알리는 슬로건을 펼치는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각주>

[1]원제는  <ゆきゆきて、神軍(가자 가자, 신군)>이며, ‘신군’은 말 그대로 천황의 군대가 아닌 새로운 군대를 의미한다. 이쪽이 작품의 주제 의식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하나, 표기는 국내 공식 명칭인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로 한다.

[2]2018. 06. 16 서울아트시네마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상영 후 하라 카즈오 감독과의 대화 내용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