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으로 패션 분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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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최재호



Josept Kosuth , 1965, One and Three Chairs

 
(좌) Paris Match Magazine
(우) Greimas, A.J., 1966,  이항대립에 따른 기호사각형 모델



#0

그것은 기호도 이름도 없다. 그것은 나를 꿰뚫지만, 나는 그것이 상륙한 내 자아의 지점을 특정할 수 없다.

-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너는 말하지 않는다. 너는 입을 다물고 있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일까. 강요할 마음은 없어. 비난할 생각도 없고. 어째서 인간은 말을 해야 하느냐고 거꾸로 나에게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지도 몰라. 하지만 너의 그 침묵은, 그대로 두면 죽음으로 이어질 것 같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몇 만 명이나 사는 섬을 상상해봐. 먹을 것도 있고, 입을 옷도 있어. 게임도 있고, 포르노 비디오도 있어. 하지만 사람들은 언어를 잃고, 흐슬부슬 죽어가는 거야.


-  다와다 요코, <지구에 아로새겨진>



#1

기호학은 커뮤니케이션 용어에서 사용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호의 기능, 본성, 법칙, 관계, 표현을 규명하고, 이를 활용한 의미의 생산과 해석, 공유, 소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츠베탕 토도로프는Tzvetan Todorov는 <아메리카 정복: 타자의 문제>라는 저서에서 아스텍 사회가 스페인 군대에 패배한 이유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근거로 들면서 전쟁을 기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보였다.

미국의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는 하나와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를 통해 사물의 본질은 무엇인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실제 의자는 물리적 현실을, 사진은 그 현실의 재현을, 사전적 정의는 언어적 개념을 나타낸다. 기호학에서는 기호, 기표, 기의 세 가지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표는 지각 가능한 물질적, 형식적 표현 요소이고 기의는 기표가 의미하는 내용적 요소, 독자가 떠올리는 개념이며 기호는 기표와 기의의 의미 작용에 의해 생성되어 전달되는 함의이다. 장기를 두려고 하는데 졸이 하나 없는 경우 장기를 두는 사람이 귤껍질을 졸로 약속하는 것으로 예시를 들어보자. 귤껍질은 기표이고 기의는 장기 말이 된다. 그러나 귤껍질과 졸 사이에는 그 어떠한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결합이 없다. 이렇듯 기호는 ‘표시’와 ‘의미’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생기며 표시와 의미 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 내재적 관계도 없다. ‘의미하는 것’과 ‘의미 되는 것’의 기능적 관계일 뿐이다. ‘파리 마치Paris Match’ 잡지의 표지에 인쇄된 사진에서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소년 병사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것의 기표는 프랑스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흑인 소년 병사이지만 기의와 결합하면서 인종차별 없는 위대한 프랑스를 위한 순수한 충성이라는 새로운 기호가 발생한다. 이렇듯 신화는 기표의 기호의 체계로 설명되며 신화 이전에 존재하는 기호학적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패션은 한 사회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기호이며 사회의 세계관, 생활 방식, 개인적 의미, 동시대적 가치관을 함의한다. 패션 기호는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관계에서 나아가, 기표와 기의의 차이, 대립 관계를 토대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데, 이러한 이항 대립적인 기호의 공존으로 신화적인 요소를 만들 수 있다.


#2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인지부조화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거나, 기존의 신념과 다른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불편한 심리 상태를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늘 그런 부조화 상태였다.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상태. 불같은 화염에 휩싸여 있거나, 이상한 화엄에 들어 있는 상태. 살아 있다기엔 너무 많이 죽어 있고, 죽었다기엔 아주 깊은 숨을 쉬고 있는 상태. 해방인 동시에 구속인 상태. 그것들의 연장선에서 내가 좋아하는 패션들도 그러한 패션이었다. 세련되었는데 빈티지한 패션,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만 차갑고 깔끔한 패션. 미니멀하지만 동시에 해체주의적인 패션. 이는 패션 브랜드에서 신화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3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1999 S/S 컬렉션은 대표적인 예시이다. 절제된 컬러, 테일러링의 모던함, 런웨이에서 나오는 규칙적인 음악과 기계의 등장은 이 브랜드의 세련됨을 보여준다. 동시에 로우라이즈 팬츠와 반항적인 퍼포먼스, 헝클어트린 헤어와 화장법은 세련됨과 정반대되는 그로테스크함을 보여준다. 정반대되는 두 가지의 요소의 결합은 알렉산더 맥퀸의 신화를 만든다.

또다른 예시들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아티잔 브랜드인 캐롤 크리스찬 포엘Carol Christian Poell과 아키비오 제이엠 리봇Archivio JM Ribot은 테일러링과 고딕을 결합한 모습을 보인다. 테일러링은 신사의 의복 철학에서 발전된 정제된 기술로 구조적 권위와 장인성의 상징이다. 고딕은 중세적 감성, 죽음과 낭만, 해체와 신비, 어두운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불안과 그림자 등 어둠의 요소들을 상징한다. 테일러링과 고딕을 결합하면서 완벽하면서 동시에 완벽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신화를 만든다.

Post Archive Faction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의 바밍타이거와의 협업 또한 브랜드에서 신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이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인 고급스러움, 세련됨, 개인주의와 정반대의 요소인 양아치, 90년대 빈티지, 집단주의를 연결해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이라는 브랜드만이 가지는 신화를 만든다.

와코마리아Wacko Maria와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의 협업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일본의 청소년 폭주족에서 영감을 얻은 해당 협업은 울 개버딘 소재로 제작한 블레이저와 팬츠를 선보였다. 전체적인 틀은 요지 야마모토의 상위 라인 요지 야마모토 뿌르 옴므Yohji Yamamoto POUR HOMME를 바탕으로 제작했지만 그 안의 디테일적인 부분들은 와코 마리아Wacko Maria의 반항적인 요소들을 담았다. 와코 마리아Wacko Maria의 상징과도 같은 레오파드 패턴을 안감으로 사용하고 ‘天國東京’ 자수로 과거 폭주족의 반항을 담았다.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의 특유의 고급스러움과 불필요한 장식 없이 구조와 실루엣에 집중하는 기존의 방식과 정반대되는 이미지와의 결합으로 신화를 만든다.


#4

만약 고통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삶을 선택할 것인가?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은 늘 견뎌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과 아픔은 시간이 지나서 결국 나만의 매력과 깊이가 되어왔다. 그녀와 했던 모든 일들이 더 없는 행위였음을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 아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이 문장에서 나에게 그녀는 고통과 아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기호학으로 패션을 분석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이 결국 그 브랜드의 신화와 색깔을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만의 신화를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처절히 쌓아 온 시간, 반대되는 여러 경험을 한 인내의 시간에서 온다. 충분히 아파한 당신, 멋진 신화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심심한 위로의 이 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