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이사카 사토시 -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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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최서윤


발제 일자: 25.05.08
발제 영화: 이사카 사토시 <포커스(1996)>
참석 인원: SY, HR, MS


히치콕의 <이창(1954)> 이후로 관음 행위는 영화계에서 아이코닉한 소재로 전형화되었다. 히치콕의 존재감을 차치하더라도, 발제자 SY는 은밀한 악취미를 가진 인물에게 유구하게 흥미를 느끼는, 다소 불미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사카 사토시의 데뷔작 <포커스> 속 ‘카네무라’는 SY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관음이 흔히 욕망을 투영한 병적 행위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카네무라의 도청은 사회에서 격리된 존재가 인간성과 접촉하는 경로라는 점에서 예외적이었다. SY를 비롯한 필름팀 너드들은 도청하는 카네무라를 관음하는 방송국 카메라, 또 그 카메라 속 담긴 영상을 관음하는 스스로를 인식하면서 내적인 혼란에 휩싸였다. 그 혼란 탓이었을까. 그들은 73분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과 맞먹는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1> 모큐멘터리 또는 페이크 다큐

SY: 원래는 호불호가 비교적 덜 갈릴 만하거나, 누가 봐도 ‘잘 만든' 영화를 선정하려다가 그냥 제 취향인 걸 해버렸어요. 고른 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주연인 카네무라 역 배우인 아사노 타다노부를 좋아해서 이 사람이 출연한 작품을 꽤 봤어요.
덧붙여서, 이 시절 일본 영화들이 특이한 도전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제가 본 것 중에서는 이런 모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는 이것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모큐멘터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좀 더 흥미롭게 본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보셨나요?

MS: 저는 오히려 모큐멘터리라서 생각 없이 보게 됐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그 사실성에 집중하게 되고, 영화는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었는지를 계속 의식하게 되는데, 모큐멘터리는 그 둘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 보니 생각 없이 보게 됐어요.

HR: 문득 궁금한 건데, 모큐멘터리와 페이크 다큐의 차이가 뭐예요? 같은 건가?

SY: 그것까지는 저도 찾아본 적이 없는데. 지금 찾아보니까 같은데 명칭만 다른 것 같아요.

HR: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를 좋아하니까 그 중에서도 페이크 다큐 장르를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초반에 카네무라에게 도청당하는 어떤 여대생이 언급되는데 그때부터 ‘잼얘’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SY이 말한 것처럼, 일본 영화 중에 이런 게 있었나 하고 생각하면 그건 저도 기억이 안 나네요.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인 <나이트 크롤러(2014)>라는 영화 알아요? 자극적인 사고 영상을 찍어서 방송사에 파는 사람 얘기거든요. 도청하면서 사고가 났다 싶으면 현장에 달려가서 영상을 찍고, 그러면서 그 사람의 인간성이 어떻게 타락하는지에 관한 내용인데, 비슷해서 떠오르더라고요.

SY: 저도 이게 오락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토리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고, 분기점이 되는 사건들이 명확하게 있어요. 사건 전후로 펼쳐지는 내용에서도 자극적인 요소를 한 번씩 넣어주니까 지루할 틈이 확실히 없고요.


<2> 장르적 기믹



SY: 대놓고 페이크 다큐임을 보여주는 인위적 요소들이 있잖아요. 첫 장면부터 카메라 뷰파인더 같은 프레임을 삽입하면서 시작하다가, 영화 타이틀이 등장하면서 스르르 페이드 아웃 되고 일반적인 화면으로 넘어가요. 저는 이 시작부터 좋기는 했어요. 공원에서 카네무라와 PD가 인터뷰하는 장면에서는, 화면 안에 ‘LOW BATTERY’라는 경고 문구가 뜨면서 동시에 배터리 없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컷하고요. 사실 영상에 실제로 뷰파인더의 프레임이 들어가거나, ‘LOW BATTERY’ 같은 경고 문구가 함께 녹화되지는 않잖아요. 그럼에도 굳이 저걸 넣은 게 아주 전형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어요.
결말부에 카네무라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에서도 ‘LOW BATTERY’가 깜빡거리면서 뜨잖아요. 누가 봐도 인위적인 연출이지만 적절히 잘 쓰인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선 인터뷰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컷과 컷 사이를 이어주는 용도로 쓰였다면, 결말에서는 불가해한 공포와 섬뜩함을 자연스럽게 조성하는 역할이어서. 누가 봐도 연출된 장면인데 잘 써서 뭔가 용인이 되는.

MS: 전반적으로 자연스러워서 좋았던 것 같아요. 중간에 몰입이 안 되면 재미가 보통 깨지기 마련인데, 카메라맨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카메라맨한테 베스트 연기상 드리고 싶었어요.

HR: 페이크 다큐에는 늘 그런 기미가 있어요. <블레어 위치(2016)> 보면 적절한 타이밍에서 화면이 보이지 않게 해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니까 있던 시체가 확 사라진다든가. 늘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시켜줘야 돼요. 그래서 <블레어 위치>에서도 그렇고 <알.이.씨(2007)>에서도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과 계속 대화를 한단 말이에요.
그래야 이 뒤에 사람이 있고, 내가 지금 이 찍는 샷이 굉장히 부자연스럽다는 점에 당위성이 부여돼요. 시시각각 샷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되니까 그것 자체가 페이크 다큐의 기믹으로 받아들여져요.


<3> 잠재된 폭력성

SY: 카네무라라는 인물의 비중이 매우 큰데,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의 특성을 보여요. 예전부터 히키코모리가 일본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어 왔던 게, 이들이 은둔하며 살긴 하지만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 외부로 발산될 수도 있잖아요. 카네무라처럼 도청을 하거나 스토킹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극단적으로는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처럼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던 사람이 무차별적 살인을 자행한 사례도 있어요. 카네무라라는 캐릭터를 설정한 것도 사실은 그런 사회상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캐릭터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어요?



MS: 저는 카네무라의 안경이 벗겨지면서 이 사람이 폭발할 것 같다고 예상했어요. (SY: 안경캐 클리셰?) 일부러 너드스러운 이미지를 초반에 가져가면서 후반의 반전에 대한 빌드업을 하는 거죠.

HR: 전반부에서는 PD가 카네무라에게 처음에는 ‘그럴까요?’, ‘그럼 이렇게 해보실래요’, ‘잘하네요’ 이런 식으로 친절하게 말하다가, 점점 목소리가 커지잖아요. 집 보여주기 싫다는데도 촬영하면 안 되겠냐고 여러 번 물어보고. 그러다보니 카네무라가 불편해하기 시작하면서 자의식도 강해지더니 총을 쥐게 되면서 피크를 찍죠. 이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 초반에 그렇게 빌드업을 했구나 싶었어요.

SY: 맞아요. 결국에는 초반의 순진해 보이던 모습과 후반의 폭주하는 모습이 정확히 대조되니까요. HR이 말했듯이 방송국 사람들의 가스라이팅이 점점 누적되는 게 어떤 전조 증상 같았어요.
아,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이런 음침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를 좀 좋아하거든요. 엿듣거나 관음하는 행위를 즐겨 하는 사람들. 물론 현실에서는 마주칠 일이 없지만 영화를 통해서 접할 때는 흥미롭게 느껴져요.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하게 되고.



SY: 초중반에 굉장히 뜬금없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저는 이게 맥거핀인가 싶었어요. 버스에 타서 카네무라를 인터뷰하던 중에 다른 승객인 아저씨가 모르는 남학생에게 칼에 찔리잖아요. 방송국 사람들은 모른 체하고 현장에서 빠르게 빠져나가고요.
이 장면이 삽입된 것도 영화의 분위기랑 잘 어울려서 좋았어요.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은 전부 인과적인 설명이 불가하고, 우발적이고, 예측 가능한 죽음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MS: 이게 ‘남의 폭력’이라고 인식해서 도망친 거잖아요. 사실 같은 버스 안에서 발생한 폭력이면 나의 폭력이 되는 걸 수도 있는데. 이 점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요.

SY: 맞아요. 관객 입장에선 주인공이 악역이든 선역이든 이입해서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게 되잖아요. 여기서는 성공적으로 도망치긴 하는데, 내가 여기서 느낀 안도감이 대체 뭘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HR: 주인공 시점인 경우랑 다르게, 카메라 맨이 찍고 있으니까 관객 입장에서 너무 안전한 거예요. 마음 편하게 관음할 수 있는 거죠. 카메라맨의 존재가 화면이랑 관객 사이에 하나의 레이어처럼 위치하고, ‘내가 보는 게 아니라 이 카메라 맨이 보는 거다’라는 인식이 있는 순간 시선의 주체가 내가 아니게 되니까.

SY: 맞아요. 그냥 이 사람이 카메라를 끄면 되는 일인데, 하면서 책임을 방기할 수 있는 구실이 생기죠.

HR: 주인공 자체가 누군가를 도청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런데 영화가 관객도 이 영화를 관음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어쨌든 관객이 가장 원하는 건 자극이고, 이 영화의 감독도 결국에는 우리에게 당신들도 이거 좋아하지 않냐고 말하는 것 같단 말이죠. 사람들이 자극적이라고 느낄 만한 모든 요소들이 다 나와요. 여자의 나체도 그렇고, 유혈, 폭력, 음침한 취미 생활까지. 그래서 파멸로 가겠다는 게 조금 예고된 느낌이라고도 생각했었어요.



HR: 그 대사가 되게 인상깊었던 게, 카네무라가 이거(도청 행위) 방송에 나가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어차피 사람들은 방송에 나가면 다 연출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하거든요. 그 연출의 영역 안에서 현실을 되려 가짜로 만들어버린다는 그 감각이 되게 짧게 지나가는 장면인데도 이 영화의 본질 같았어요.

MS: <PD 수첩> 같은 것도 떠오르고. 이런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저렇게 찍었을까.


<4> 폭력 그리고 폭력 그리고 폭력...

SY: 카네무라가 총을 쏜 후에 차 안에서 말을 쏟아내잖아요. 그 부분 연기 톤이 너무 좋았어요. 돌변하는 느낌.

HR: 딱 사회 부적응자의 말투 같았어요. 그러니까 많이 대화를 해보지 않았으니까, 막상 마이크 들이대면 말을 잘 못하다가 자기가 외치고 싶었던 말을 하려니까 말이 빨라지는.

SY: 왠지 이 사람이 방 안에서 이런 상상을 하면서 지내 왔을 것 같은 느낌. 언젠가는 자기가 살인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쏴 죽이거나... 그런 상상을 한 번쯤은 해봤는데 막상 현실에 닥치니까 인생 망했다 싶겠죠.

MS: 지금에도 나름 유효한 메시지인 게, 요즘으로 치면 그냥 유튜브 보던 한 청년이 갑자기 총으로 사람을 쏘게 될 수 있다는 것 같아서.

HR: 좋은 말인 것 같아요. 관음하던 사람이 관음의 대상이 돼버린 느낌이네.
그래서 권력 관계에서 일어나는 착취적인 폭력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은 게, 애초에 카네무라 본인도 도청하던 사람이니까. 폭력의 순환성에 좀 더 초점을 두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SY: 사실 언론 권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면 카네무라가 철저히 억눌리는 장면을 더 보여주거나, 방송국 사람들의 더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했어야 될 것 같은데. 사실 뭐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총 쏘는 장면을 기점으로 해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폭력을 다룬다고 느껴졌어요. HR 말대로 어떤 위계보다는 인간이 처할 수밖에 없는 굴레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런 폭력적인 스토리에서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약자로 설정되어 버리면 그때부터 저는 김이 새거든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에 있거나 관계가 계속 역전이 되어야만 재미있는 것 같아요.




SY: 그리고 저는 이 장면 속 공간이 참 불쾌했어요. 일본 영화를 많이 보다보니 불쾌함에 면역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카네무라가 PD랑 조연출에게 성행위를 하라고 시키는데, 시켜놓고 “왜 사람들이 포르노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흥미를 딱히 못 느끼잖아요. 이 점이 또 웃겼어요. 애초에 그걸 왜 시켰을까.

HR: 본인이 아는 인간의 최대 수치인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카메라맨이랑 하는 포르노 찍어 본 적 있냐면서 대화하는 것도 신기하고. 카메라맨이 이 상황에서도 되게 의연하게 대답해요. 너무 아무렇지 않으니까 약간 제4의 벽이 깨진 느낌. 그러니까 우리한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일반적인 전개라면 카네무라가 그 광경을 보고 즐겨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보니 오히려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한테 얘기하고 있는 느낌. ‘이런 장면을 내가 당신들한테 보여줘 봤는데 어때?’

SY: 그쵸. “왜 사람들이 포르노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고 할 때,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면서 그 사람들 안에 관객인 나를 포함시켜버리는 것 같았어요. 어쨌든 성행위에도 딱히 흥미를 보이지 않는 점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내용 전개의 측면에서.
캐릭터 측면에서도 얘기해보면 카네무라가 진짜 인간이랑 접촉을 안 하고 살았구나 싶었던 게, 다짜고짜 성행위를 시키는 게 방 안에 틀어박혀서 미디어로만 사람을 접한 인간이 할 법한 요구 같았어요. 내 눈 앞에 남녀 둘이 있으니 이 둘한테 그 행위를 시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흥분할까. 근데 결국에는 다른 존재인 것만 확인하고 끝나죠.

HR: 갑자기 행동의 주체가 된 것 같아요. 한 번도 이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캐릭터에게 많은 책임이 주어지니까. 그걸 감당하기 어려울 때 찾아오는 패닉 상황을 보여준 것 같아요.

SY: 그래서 카네무라가 바로 뒤에 PD를 총으로 협박하면서 그러거든요. 내가 이것만 있으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5> 최후



SY: 마지막 씬이 인상적이에요. 카네무라가 차창 밖으로 노을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우니까 이거 찍어보라고 강요하잖아요. 갑자기 이걸 찍으라는 것도 또라이 같다... 이러면서 봤는데. 이 난장판의 와중에 노을을 보면서 감상에 잠겨요.

HR: 그게 사실 촬영의 본질 같달까. 사람이 뭔가를 촬영하는 행위는 좋은 순간을 박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본 것 중에 아름다운 것들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 결국에는 우리가 촬영을 하고자 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추락했을까 하는 반문일 수도 있고, 관음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걸 수도 있고.

MS: 저는 진짜 이 장면을 왜 넣었을지 고민했어요. 실마리를 못 찾은 것 같은데, HR 말 들으니까 그런 의도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총을 누가 쐈는지는 안 나오지 않아요?

HR: 그것도 검은 화면으로 처리해요. 돈 써야 되는 장면은 다 블랙이야.
카메라맨이 관음의 끝판왕이었던 게, 시체를 보여주면서 당황해서 카메라가 흔들리거나 해야 하는데 굉장히 스테디하게 시체를 비추고 시체 뒤에 있는 피를 한번 더 보여줘요.

SY: 옆에서 PD는 와중에 방송 멘트를 치려다가 실패하잖아요. 이 상황에 대해서 뭐라고 또 멘트를 말하려다가, 말을 못 잇고 거기서 끝나버려요. 이 마지막 장면까지도 영화가 참 지독하다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