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질문
WEBZINE
WEDITOR   손유라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너무 식상하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머리를 긁적이며 “아... 그게 말이죠.… 말하기가 곤란하네요”라며 말끝을 흐리고 만다. 그걸 당신 앞에서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명확한 작품 하나를 꺼내야 대화가 흘러갈 것 같은 분위기라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 영화 제목을 바보같이 말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자막도 없이 480p 화질로 본 동유럽 영화의 제목을 꺼내면 대화의 불씨는 자연스럽게 꺼져버릴 것이 아닌가. “재밌게 본 영화가 뭐예요?”도 마찬가지. ‘재밌게 봤다’의 기준이 뭐죠?

진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질문은 곤란하다. 좋아하는 영화가 너무 많거나, … 너무 많거나, 상대방은 모르는 영화인 경우가 있다. 어쩌다 상대방도 알고 있는 영화를 말한다면 이런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왜 좋아해요?” 초면인 사람에게 영화 취향의 이유를 고백하는 것은 애인과의 애정 생활을 부모님 앞에서 서술해야 하는 일만큼 껄끄러운 일이다. 그걸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나쁜 예시]
Q.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A.  <OOO>를 좋아합니다.
Q. (아, 그 영화? 취향이 참 뻔하군) 그렇군요.



유명한 작품이든,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든, 대화가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도적으로 소개팅을 망칠 생각이라면 상관없지만, 당신은 지금 진심이지 않은가! 이렇게 질문해 보면 어떨까?


[좋은 예시]
Q. 어떤 영화를 봐야 당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A.  <OOO>를 보시면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Q.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영화의 지명도와 상관없이 어떤 점이 이 사람과 연결되는지 궁금해진다. 심지어 대화가 잘되면 소개팅은 더 순조롭게 풀릴 것 같은데?

자, 이제 저한테 물어봐 주세요.

Q. 어떤 영화를 봐야 당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A.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1996년 작 <하루ハル>를 보면 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서론이 길었다. 사실 이 얘기 하려고 여기까지 끌었다.

소개팅에서 듣고 싶지 않은 질문으로 글을 시작했는데, 이 영화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도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ハル(하루)>와 <ほし(호시)>는 PC통신 영화동호회 단체방에서 처음 만난다.

시네필 사이에서 유독 영화 자막에 대한 독특한 식견을 피력하는 <ハル>. <ほし>가 그런 <ハル>에게 흥미를 느껴 개인 메일을 보낸 것을 계기로 둘의 대화가 시작된다. 좋아하는 영화로 촉발된 이들의 대화는 일상, 연애, 직장 얘기로 가지를 뻗어 나가고 메일인지 일기장인지 그 내용이 점점 내밀해진다. 홀로 사는 외로운 두 사람에게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주고받는 메일은 컴퓨터를 매일 켜는 이유가 된다. 지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ほし>, 도쿄의 샐러리맨 <ハル>. 마침내 이들은 스크린 너머에 있는 서로의 존재를 직접 느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얼굴도, 연락처도, 진짜 이름도 모른다. PC통신으로만 대화해 온 이들은 어떻게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영화 줄거리만 읊고 있는 나에게 약간 질려 하며 커피를 한 모금 하는 상대방의 모습이 그려진다. 도쿄에 사는 남자와 지방에 사는 여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 그게 바로 포인트다.

<ハル>가 지방 출장으로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경로에 자기 고향 동네를 지나갈 계획을 알게 된 <ほし>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달리는 기차 안과 밖에서 서로를 볼 수 있게 손수건을 흔들고 그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자고. 지금까지 컴퓨터로 대화한 사람이 이 세상에 진짜 존재한다면 저 멀리서 손수건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약속한 그날, <ハル>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가운데 한 사람을, <ほし>는 기차의 작은 창문 안에서 움직이는 한 사람을 촬영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시속 200킬로의 속도로 지나가다니….”
“초등학교 때 동급생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수고스럽고 유별난 몇 초 간의 스쳐 감.  카메라를 들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영상을 <ハル>와 <ほし>는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한다. 이 장면을 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너 사실 이런 걸 하고 싶었지?’하고. 그렇다. 스쳐 가는 걸 이렇게 붙잡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새로운 카페를 발견하려고 일부러 최단 경로를 벗어나 길을 잃어버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필름 사진을 몇 백 장이나 찍고, 좋아하는 사람이 준 선물의 포장지를 버리지 못하고, 한 명이라도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기차 안팎에서 서로를 찾는 <ハル>와 <ほし>의 모습이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뭔가 통할 것 같다.

여기까지의 저의 대답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똑같이 물어볼게요.

Q. 어떤 영화를 봐야 당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장면들이 기차처럼 스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