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없는 땅에 태양이 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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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이주은
WEDITOR 이주은
2025년 여름의 망원에서
빵 냄새 나는 봉지를 손목에 걸고 덜렁거리는 청년들과 바퀴 빠진 쇼핑 카트를 분주히 끄는 노인들이 한데 뒤섞인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망원시장 주변으로는 새집 냄새가 여전히 묻어 나는 가게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 사이로 다른 시간을 건너온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 망원은 이렇게 입체적인 시간의 지형을 품고 있는 동네이다.

이러한 망원동에 흐르는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다. 2025년 여름, 망원에선 ‘신통기획’이란 명칭 하의 재개발 산업이 소리 없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는 2년 전 망원동을 민간 재개발단체인 ‘신송통합기획’의 후보지로 조건부 선정했다. ‘망리단길’ 위에 ‘한강뷰’ 고층 아파트 2,000채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해당 사업의 목적이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주거 공간이자 생계 터전인 망원동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원했다. 소통과 합의는 (당연하게) 기대할 수 없었다. 약속했던 주민 설명회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찬반을 묻는 의견 수렴만 강행됐다. 망원동에서 30~50년 넘게 살아온 노년층 주민들의 근심도 깊다. 추가분담금 납부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재개발 추진 시 이들의 선택지는 ‘떠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당연하게, 이들이 어디로 떠날 수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알카라스의 여름>을 읽어 보기

망원시장 바닥에 놓인 주황빛 귤을 보며, 언젠가 스크린에서 마주한 알카라스의 벌건 복숭아들을 떠올려본다.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은 감독 카를라 시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로, 카탈루냐 지방에서 복숭아 농장을 꾸리며 살아가는 대가족의 투쟁을 그린다. 영화는 자본에 맞서 삶의 터전과 일상의 형태를 지키려는 인물들을 비추며, 현대사회에서 대체되고 사라지는 가치를 얘기한다.
키메트의 가족은 지주인 피뇰로부터 땅의 경작권을 넘겨 받아 복숭아 농장을 운영해 왔다. 어느 날 그들은 지주인 피뇰로부터 수십 년 동안 일궈온 땅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경작권을 입증할 계약서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상호 신뢰에 기반한 구두계약은 효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키메트와 가족들에겐 피뇰로부터 땅을 지킬 명분도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과일마저 헐값에 팔려 가는 상황에서 키메트는 농장 노동 인력을 감축하기로 한다. 가족들은 그 빈 자리를 채워 함께 복숭아 수확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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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뇰의 아들은 복숭아 농장 대신 태양전지판 사업으로 생계를 꾸릴 것을 제안하지만, 수십 년 동안 농장을 지켜온 키메트에게 그의 제안은 화를 부를 뿐이다. 그사이 거대한 태양 전지판이 들판 위에 설치되기 시작하고, 그것은 서서히 복숭아 농장을 장악해 간다. 자본과 권력이 삶의 터전을 잠식할 때, 가족들은 지금의 일상을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함께 뭉치기보다 각자도생의 방식을 택한다. 키메트의 동생 가족은 태양 전지판 설치업에 뛰어들고, 키메트는 농부들과 함께 거리 시위에 나선다.
이들의 여름이 저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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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라스의 여름>엔 중심인물이 없다. 대가족 구성원의 시점을 차례로 비추며, 이들이 마주한 여름의 나날을 다각도로 비출 뿐이다. 막내딸 이리스의 천진난만한 시선엔 카탈루냐의 숨 막히는 여름의 전경이, 키메트의 동생 로잘리아의 시선의 끝엔 깊어지는 가족의 균열과 키메트의 통탄이 비친다. 시점의 변화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세대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각 인물이 바라보는 알카라스의 여름은 3세대를 걸쳐 지나왔던 여름에 대해, 그리고 마리오나와 로제르, 이리스가 살아갈 앞으로의 여름을 그려보게 한다.
알카라스의 키메트 가족과 망원의 주민들은 꼭 비슷한 여름을 건너고 있는 듯하다. 배경은 다르지만, 공간을 일궈 온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에 맞서 투쟁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도시 개발을 명목으로 자본과 권력이 토착민의 자리를 지우는 일은 역사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왔다. 짜맞춘 시나리오처럼, 그 과정에서 주민들에 대한 존중과 대화, 이해는 항상 결여된다. <알카라스의 여름> 속 키메트 가족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여느 때처럼 키메트 가족이 다 함께 복숭아잼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중, 오프닝 시퀀스에서 들렸던 스산한 굉음이 가족의 주변을 맴돈다. 이내 거대한 크레인에 의해 가족들의 눈앞에서 복숭아 나무들이 파헤쳐지고 꺾이기 시작한다. 이를 말없이 지켜보는 가족들의 눈빛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성장과 개발은 과거의 기억, 오래된 가치, 당연한 존재를 거부하고 지움으로써 시작되곤 한다. 일상이 파괴된 자리 위로는 누군가의 또 다른 미래가 세워진다. 이것이 단순히 도시의 숙명이라고 여기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새롭고, 거대하고, 높은 것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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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트 가족이 보낸 여름의 끝에서 오늘날 망원동의 여름을 읽어 본다. 이 여름이 지나면 상실될 것들을 떠올려 보면서. 그리고 이들이 보낼 앞으로의 여름을 헤아려 보면서.
빵 냄새 나는 봉지를 손목에 걸고 덜렁거리는 청년들과 바퀴 빠진 쇼핑 카트를 분주히 끄는 노인들이 한데 뒤섞인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망원시장 주변으로는 새집 냄새가 여전히 묻어 나는 가게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 사이로 다른 시간을 건너온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 망원은 이렇게 입체적인 시간의 지형을 품고 있는 동네이다.

이러한 망원동에 흐르는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다. 2025년 여름, 망원에선 ‘신통기획’이란 명칭 하의 재개발 산업이 소리 없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는 2년 전 망원동을 민간 재개발단체인 ‘신송통합기획’의 후보지로 조건부 선정했다. ‘망리단길’ 위에 ‘한강뷰’ 고층 아파트 2,000채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해당 사업의 목적이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주거 공간이자 생계 터전인 망원동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원했다. 소통과 합의는 (당연하게) 기대할 수 없었다. 약속했던 주민 설명회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찬반을 묻는 의견 수렴만 강행됐다. 망원동에서 30~50년 넘게 살아온 노년층 주민들의 근심도 깊다. 추가분담금 납부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재개발 추진 시 이들의 선택지는 ‘떠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당연하게, 이들이 어디로 떠날 수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알카라스의 여름>을 읽어 보기

망원시장 바닥에 놓인 주황빛 귤을 보며, 언젠가 스크린에서 마주한 알카라스의 벌건 복숭아들을 떠올려본다.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은 감독 카를라 시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로, 카탈루냐 지방에서 복숭아 농장을 꾸리며 살아가는 대가족의 투쟁을 그린다. 영화는 자본에 맞서 삶의 터전과 일상의 형태를 지키려는 인물들을 비추며, 현대사회에서 대체되고 사라지는 가치를 얘기한다.
키메트의 가족은 지주인 피뇰로부터 땅의 경작권을 넘겨 받아 복숭아 농장을 운영해 왔다. 어느 날 그들은 지주인 피뇰로부터 수십 년 동안 일궈온 땅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경작권을 입증할 계약서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상호 신뢰에 기반한 구두계약은 효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키메트와 가족들에겐 피뇰로부터 땅을 지킬 명분도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과일마저 헐값에 팔려 가는 상황에서 키메트는 농장 노동 인력을 감축하기로 한다. 가족들은 그 빈 자리를 채워 함께 복숭아 수확에 열을 올린다.

피뇰의 아들은 복숭아 농장 대신 태양전지판 사업으로 생계를 꾸릴 것을 제안하지만, 수십 년 동안 농장을 지켜온 키메트에게 그의 제안은 화를 부를 뿐이다. 그사이 거대한 태양 전지판이 들판 위에 설치되기 시작하고, 그것은 서서히 복숭아 농장을 장악해 간다. 자본과 권력이 삶의 터전을 잠식할 때, 가족들은 지금의 일상을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함께 뭉치기보다 각자도생의 방식을 택한다. 키메트의 동생 가족은 태양 전지판 설치업에 뛰어들고, 키메트는 농부들과 함께 거리 시위에 나선다.
이들의 여름이 저물 때

<알카라스의 여름>엔 중심인물이 없다. 대가족 구성원의 시점을 차례로 비추며, 이들이 마주한 여름의 나날을 다각도로 비출 뿐이다. 막내딸 이리스의 천진난만한 시선엔 카탈루냐의 숨 막히는 여름의 전경이, 키메트의 동생 로잘리아의 시선의 끝엔 깊어지는 가족의 균열과 키메트의 통탄이 비친다. 시점의 변화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세대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각 인물이 바라보는 알카라스의 여름은 3세대를 걸쳐 지나왔던 여름에 대해, 그리고 마리오나와 로제르, 이리스가 살아갈 앞으로의 여름을 그려보게 한다.
알카라스의 키메트 가족과 망원의 주민들은 꼭 비슷한 여름을 건너고 있는 듯하다. 배경은 다르지만, 공간을 일궈 온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에 맞서 투쟁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도시 개발을 명목으로 자본과 권력이 토착민의 자리를 지우는 일은 역사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왔다. 짜맞춘 시나리오처럼, 그 과정에서 주민들에 대한 존중과 대화, 이해는 항상 결여된다. <알카라스의 여름> 속 키메트 가족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여느 때처럼 키메트 가족이 다 함께 복숭아잼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중, 오프닝 시퀀스에서 들렸던 스산한 굉음이 가족의 주변을 맴돈다. 이내 거대한 크레인에 의해 가족들의 눈앞에서 복숭아 나무들이 파헤쳐지고 꺾이기 시작한다. 이를 말없이 지켜보는 가족들의 눈빛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성장과 개발은 과거의 기억, 오래된 가치, 당연한 존재를 거부하고 지움으로써 시작되곤 한다. 일상이 파괴된 자리 위로는 누군가의 또 다른 미래가 세워진다. 이것이 단순히 도시의 숙명이라고 여기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새롭고, 거대하고, 높은 것 투성이다.


키메트 가족이 보낸 여름의 끝에서 오늘날 망원동의 여름을 읽어 본다. 이 여름이 지나면 상실될 것들을 떠올려 보면서. 그리고 이들이 보낼 앞으로의 여름을 헤아려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