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큘라 무덤 파헤치기
WEBZINE
WEDITOR 송혜령
WEDITOR 송혜령
1922년 무르나우의 컬트적 집약체가 세상에 공개됨과 동시에 그와 그의 제작사 프라나 필름Prana Film은 한 차례 소송을 맞게 된다. 무단으로 소설의 내용을 영상화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소설은 작가의 사후까지 전세계적으로 유명새를 떨치지는 못하는 바람에 파생할 아류작들을 경계할 겸 그 저작권이 아내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현재에
이르러선
모두가
알고 있는
『드라큘라』이다. 현재 이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소설들과 명작으로서 그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지만,
1897년 출판 직후 〈노스페라투(1922)〉 공개 당시인
1922년까지
스토커
가에 그다지 많은 돈을 벌어다 주진 못했다. 그로 인해 소송 당시 브람 스토커의 아내 플로렌스
스토커가
대단히
부유한
축은 아니었고, 그것이 그녀를 이 소송에
좀 더 진지하게 임하게 했다. 그녀는 〈노스페라투〉 공개 이후 『드라큘라』를 원작 삼아 만들어진 이 괴물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제작 과정에서
그 어떤 사업적인 손을 내밀지
않았던
무르나우와
프라나 필름 탓에 〈노스페라투〉라는 비쩍 마른 흡혈 괴물은 스크린 속에서 살아나 베를린 관객들에게 충격을 준 작품으로는
남게 되었으나 결국 이 소송으로 제작사는 파산을 맞게 되었다. 7년 간의 법정 공방은 그 어떤 기록물도 남아있지 않지만 한 가지 플로렌스 스토커의 손을 들어줌과
동시에
〈노스페라투〉의 모든 필름을 파기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남기게
되었다. 드라큘라의 심장에 제대로 말뚝이 박힌 셈이었다.
하지만 본래 인간에게서 태어난 것은 선악을 불문하고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않는 법. 이미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노스페라투〉의 사본을 완전히 파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드라큘라』 에 얽힌 저작권 소송이었음에도 불구 영화 제작자들은 정작 자신들이 만든 작품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전국으로 영화가 뻗어나가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할리우드가 『드라큘라』 를 제작하기 위해 정당한 금액을 플로렌스에게 지급하면서 〈노스페라투〉가 가지게 된 아이러니함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드라큘라 영화이지만 사실상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할리우드는 판권 구매 이후 1927년부터 드라큘라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작권상의 첫 드라큘라 영화 타이틀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벨라 루고시의 〈드라큐라(1931)〉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넘어와 우리가 지금 도처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노스페라투〉는 그렇게 유럽 각지를 떠돌던 필름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복원하는 과정을 거친 재조립된 버전으로, 표현주의 미술의 선봉이자 고전 호러 필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결국 두 명작이 오랫동안 남게 되어 그리 나쁘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고도 한다. 역사상 이러한 사건에 휘말려 유실된 작품들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이런 법적 분쟁 외로도 2015년 무르나우의 유해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넷상에는 〈노스페라투〉 이야기가 다시 화두로 오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는 그가 오컬트에 갖고 있었던 지대한 관심사 아래 탄생하게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순 『드라큘라』를 원형 삼아 이미지화된 작품만은 아닌 것이 무르나우의 이런 오컬트적 행보와 더불어 법적 분쟁으로 인해 사라지게 된 프라나 필름은 사실 이러한 특정 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작사이기도 하다. 기운과 생명 에너지를 뜻하는 Prana는 무르나우가 갖고 있던 관심사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며 혹자는 유해 도난 사건 당시 남아 있는 양초와 잔해들을 바탕으로 오컬트적 의식이 연루된 것이 아니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프라나 필름의 공동 설립자 역시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데 그는 이런 무르나우의 관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기도 했다. 프리메이슨, 오컬트 단원, 헤르메스파 등 붙어 있는 수식어만으로도 압도적인 알빈 그라우는 표현주의 미술의 선봉장으로도 불리는 〈노스페라투〉의 미술감독으로 영화를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시각적 요소를 빚어 낸 인물이다. 그의 이런 배경은 실제 〈노스페라투〉 속 건축 모양, 노스페라투의 조형, 실제 고대 언어를 차용한 소품의 디테일, 하물며 그림자를 이용한 연출의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그라우의 미술은 독일 표현주의를 한층 더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 바 있다.
독일 표현주의는 현실의 단순 재현에만 만족하지 말고, 그 이상의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며 나타난 사조이다. 이들에게 사물이나 상황의 단순 재현은 의미를 갖지 못하기에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감정, 가령 당시 독일의 시대를 고려한다면 대중들의 불안과 고립 등을 시각화한다는 공통성을 갖는다. 특히 이 표현주의 사조에서 〈노스페라투〉는 흑백의 양감으로 그림자를 빚어 내고 또 그 그림자로 미지의 존재를 형상화한다는 것에서 의미를 갖는다. 엄밀히 기하학적인 세트를 적극 활용하여 인물의 불안 심리를 나타내고자 했던 표현주의의 특징을 생각한다면, 무르나우는 세트보단 실제 지형과 건물을 활용했기에 몇 가지 특징과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후 독일 표현주의가 <노스페라투>를 기점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됐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실제처럼 보이지만 확연히 실제와는 다른 기형적 세트에 배치된 인물에서 나아가 실제에 해당되나 자연과 건물의 기이함을 부각시켜 오히려 실제 속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하게 된 계기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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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스페라투〉의 그림자로 돌아가서 무르나우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영혼의 시각화’라는 표현을 자주 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에 와서 오컬트가 특정 장르의 일부처럼 취급되는 바 있으나, 표현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1910년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까지 심리학이 대두되며 오컬트는 그러한 심리학의 연장선처럼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흡혈을 하는 노스페라투의 존재는 단순 고대에서 탄생한 괴물이 아닌 바다 건너에서 온 시대의 막연한 불안이자 공포이다. 그는 정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당대의 관심 속에서 탄생한 어둠의 현현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이 형상화되는 순간 그것은 그저 죽일 수 있는 무언가가 될 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기도 한다. 물론 올록 백작이 육지에 도착하게 되기까지 군데군데 인간의 존재가 숨어 있다. 그의 하수인 노크부터 그가 배를 타고 넘어오기까지의 교가가 되어준 토마스로 인해 올록 백작의 존재는 단순 미지의 존재가 아닌 인간이 불러온 무언가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실제 〈노스페라투〉가 단순히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서 출발했을 뿐 아니라 그라우가 전쟁 중 한 농부에게서 아버지가 드라큘라라는 둥, 피를 빨렸다는 등의 야사를 수집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던 것처럼 결국 〈노스페라투〉, 최초의 드라큘라 영화도 인간에게서 탄생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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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라투〉에 얽힌 재미난 몇 가지 사건으로 포문을 열긴 했지만 사실상 시대의 불안이 공포영화로 다시금 스크린 위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다. 전쟁 직후 또는 전쟁 중 경제에 위기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독일 표현주의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한층 더 나아가 현실을 단순히 담아내지 않고 사람들이 품고 있는 그 어둠을 상징화하여 나타내길 원했다. 일그러진 세트, 크리쳐의 등장, 적나라한 비판 등은 최근 공포 영화에서도 역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시대는 다시금 평화를 지나 혼란으로 뻗어 나가는 중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조를 지나온 현재에 와서야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들이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은근한 표현주의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노릇이다. 비틀린 세트는 현실과 닮았으나 왜곡된 세계관으로 시대의 불안을 보여주던 크리쳐는 좀 더 우리의 얼굴로 나타나 겁을 주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의 공포는 그때 당시의 공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이상 연금술을 비롯한 오컬트에 심취한 예술가는 없지만 오늘날엔 상당수의 음모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대의 노스페라투는 과연 무엇일까. 왜 여전히 죽지 않은 채 구천을 떠돌며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이에 대한 답 역시 인간이라는 종이 현존하는 한 내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1922년 태어난 최초의 드라큘라는 다름 아닌 거울이었기 때문에 2025년 파헤친 무덤에는 그 누구도 없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인간에게서 태어난 것은 선악을 불문하고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않는 법. 이미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노스페라투〉의 사본을 완전히 파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드라큘라』 에 얽힌 저작권 소송이었음에도 불구 영화 제작자들은 정작 자신들이 만든 작품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전국으로 영화가 뻗어나가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할리우드가 『드라큘라』 를 제작하기 위해 정당한 금액을 플로렌스에게 지급하면서 〈노스페라투〉가 가지게 된 아이러니함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드라큘라 영화이지만 사실상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할리우드는 판권 구매 이후 1927년부터 드라큘라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작권상의 첫 드라큘라 영화 타이틀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벨라 루고시의 〈드라큐라(1931)〉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넘어와 우리가 지금 도처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노스페라투〉는 그렇게 유럽 각지를 떠돌던 필름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복원하는 과정을 거친 재조립된 버전으로, 표현주의 미술의 선봉이자 고전 호러 필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결국 두 명작이 오랫동안 남게 되어 그리 나쁘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고도 한다. 역사상 이러한 사건에 휘말려 유실된 작품들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이런 법적 분쟁 외로도 2015년 무르나우의 유해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넷상에는 〈노스페라투〉 이야기가 다시 화두로 오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는 그가 오컬트에 갖고 있었던 지대한 관심사 아래 탄생하게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순 『드라큘라』를 원형 삼아 이미지화된 작품만은 아닌 것이 무르나우의 이런 오컬트적 행보와 더불어 법적 분쟁으로 인해 사라지게 된 프라나 필름은 사실 이러한 특정 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작사이기도 하다. 기운과 생명 에너지를 뜻하는 Prana는 무르나우가 갖고 있던 관심사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며 혹자는 유해 도난 사건 당시 남아 있는 양초와 잔해들을 바탕으로 오컬트적 의식이 연루된 것이 아니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프라나 필름의 공동 설립자 역시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데 그는 이런 무르나우의 관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기도 했다. 프리메이슨, 오컬트 단원, 헤르메스파 등 붙어 있는 수식어만으로도 압도적인 알빈 그라우는 표현주의 미술의 선봉장으로도 불리는 〈노스페라투〉의 미술감독으로 영화를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시각적 요소를 빚어 낸 인물이다. 그의 이런 배경은 실제 〈노스페라투〉 속 건축 모양, 노스페라투의 조형, 실제 고대 언어를 차용한 소품의 디테일, 하물며 그림자를 이용한 연출의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그라우의 미술은 독일 표현주의를 한층 더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 바 있다.
독일 표현주의는 현실의 단순 재현에만 만족하지 말고, 그 이상의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며 나타난 사조이다. 이들에게 사물이나 상황의 단순 재현은 의미를 갖지 못하기에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감정, 가령 당시 독일의 시대를 고려한다면 대중들의 불안과 고립 등을 시각화한다는 공통성을 갖는다. 특히 이 표현주의 사조에서 〈노스페라투〉는 흑백의 양감으로 그림자를 빚어 내고 또 그 그림자로 미지의 존재를 형상화한다는 것에서 의미를 갖는다. 엄밀히 기하학적인 세트를 적극 활용하여 인물의 불안 심리를 나타내고자 했던 표현주의의 특징을 생각한다면, 무르나우는 세트보단 실제 지형과 건물을 활용했기에 몇 가지 특징과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후 독일 표현주의가 <노스페라투>를 기점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됐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실제처럼 보이지만 확연히 실제와는 다른 기형적 세트에 배치된 인물에서 나아가 실제에 해당되나 자연과 건물의 기이함을 부각시켜 오히려 실제 속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하게 된 계기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노스페라투〉의 그림자로 돌아가서 무르나우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영혼의 시각화’라는 표현을 자주 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에 와서 오컬트가 특정 장르의 일부처럼 취급되는 바 있으나, 표현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1910년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까지 심리학이 대두되며 오컬트는 그러한 심리학의 연장선처럼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흡혈을 하는 노스페라투의 존재는 단순 고대에서 탄생한 괴물이 아닌 바다 건너에서 온 시대의 막연한 불안이자 공포이다. 그는 정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당대의 관심 속에서 탄생한 어둠의 현현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이 형상화되는 순간 그것은 그저 죽일 수 있는 무언가가 될 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기도 한다. 물론 올록 백작이 육지에 도착하게 되기까지 군데군데 인간의 존재가 숨어 있다. 그의 하수인 노크부터 그가 배를 타고 넘어오기까지의 교가가 되어준 토마스로 인해 올록 백작의 존재는 단순 미지의 존재가 아닌 인간이 불러온 무언가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실제 〈노스페라투〉가 단순히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서 출발했을 뿐 아니라 그라우가 전쟁 중 한 농부에게서 아버지가 드라큘라라는 둥, 피를 빨렸다는 등의 야사를 수집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던 것처럼 결국 〈노스페라투〉, 최초의 드라큘라 영화도 인간에게서 탄생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노스페라투〉에 얽힌 재미난 몇 가지 사건으로 포문을 열긴 했지만 사실상 시대의 불안이 공포영화로 다시금 스크린 위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다. 전쟁 직후 또는 전쟁 중 경제에 위기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독일 표현주의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한층 더 나아가 현실을 단순히 담아내지 않고 사람들이 품고 있는 그 어둠을 상징화하여 나타내길 원했다. 일그러진 세트, 크리쳐의 등장, 적나라한 비판 등은 최근 공포 영화에서도 역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시대는 다시금 평화를 지나 혼란으로 뻗어 나가는 중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조를 지나온 현재에 와서야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들이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은근한 표현주의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노릇이다. 비틀린 세트는 현실과 닮았으나 왜곡된 세계관으로 시대의 불안을 보여주던 크리쳐는 좀 더 우리의 얼굴로 나타나 겁을 주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의 공포는 그때 당시의 공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이상 연금술을 비롯한 오컬트에 심취한 예술가는 없지만 오늘날엔 상당수의 음모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대의 노스페라투는 과연 무엇일까. 왜 여전히 죽지 않은 채 구천을 떠돌며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이에 대한 답 역시 인간이라는 종이 현존하는 한 내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1922년 태어난 최초의 드라큘라는 다름 아닌 거울이었기 때문에 2025년 파헤친 무덤에는 그 누구도 없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