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 자파르 파나히 -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WEBZINE
WEDITOR   이영서


발제 일자: 25.11.06
발제 영화: 자파르 파나히 -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
참석 인원: YS, DU, SY, CY, MS, HR


세상에 거짓말이 너무 많이 오가고 있다, 라는 한탄으로 시작해 볼까 한다.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당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거의 모든 영화가 필연적으로 픽션에 도달한다. 가짜 언어가 껍데기를 표방한다면, 알맹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프레임 내부에서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해서 그게 알맹이가 되는 걸까. 어쩌면 허구를 상정하는 영화 위에서 알맹이는 오히려 보여주지 않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곰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 무서워한다(〈노 베어스〉)'라고 했던 자파르 파나히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의 인생 전체가 속고 속이는 싸움의 연속이니, 어떤 의미에서 그는 사기꾼이 분명하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체제 안에서 나름의 생존법을 희구한 결과일 것이다. 올해 마침내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게 된 그의 행보는 일종의 승리처럼 느껴진다. 감추는 것에 도가 튼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어떨까.

2010년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6년의 징역형과 20년간 영화제작 및 출국 금지 처분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는 가택연금의 상태에서 다시 카메라를 든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자기부정의 명제에서 출발한 가짜 영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건지 가늠조차 어렵다.


내용과 형식의 틈에서



르네 마그리트는 〈이미지의 배반〉에서 파이프라는 사물과 함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으며 말과 이미지가 교차하는 놀이를 펼쳤다. 스케치 속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에서 비롯되는 아이러니는 마그리트 작품 세계의 핵심으로, 예술을 실재와 가공 사이 혹은 그 너머의 것으로 위치시키며 관람자의 주관을 이끌어낸다. 이제까지 회화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유사하게 그리는 데에 집중했다면, 마그리트는 단순한 사물 재현을 넘어서는 회화만의 가능성을 새롭게 살핀 것이다. 푸코는 〈이미지의 배반〉 속 이중으로 묶어 놓은 지시 관계의 분열을 깨어진 동어반복이라고 명명한다. 그렇기에 파이프가 아니라고 말하는 작품은 의도가 명백한 형식 실험이다.

반면, 제목을 빌린 자파르 파나히의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되려 현실을 재현하러 분투한다. 동료 다큐멘터리 감독 모즈타바와 함께 캠코더와 아이폰에 의존하여 찍는 영상의 형식 또한 의도적이라기보다는 강요된 실제의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인다.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이건 영화가 아니지?'라는 물음은 창작을 향한 간절함이 담긴 일종의 말장난이다. 정반대의 목적을 취하는 듯 보이는 그의 작품은 여전히 마그리트의 경계 흐리기와 유사한 효과를 자아낸다.

일반적인 서사 영화가 외부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건넨다면, 자파를 파나히의 영화는 외부의 제약이 내부의 서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형국이다. 가령 〈그저 사고였을 뿐〉에서 단속을 피하고자 불가피하게 타이트한 앵글로 촬영된 오프닝 시퀀스처럼 말이다. 카메라 앞의 공간은 영화 바깥에서의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폐쇄적으로 설정된다.

감독은 연기해야 하는 상황과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차게 촬영장을 벗어났던 〈거울〉 속 소녀를 상기하며, 그동안 찍어온 영화 속 가짜 장면들을 부정하고 비극적인 현실에 묶여있는 자신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아날 수 없다. 그리하여 시끄러운 바깥세상을 애써 쳐다보지 않고, 고립된 채 자기만의 방 안에서 영화가 아닌 영화 찍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DU: 정부의 압제를 받는 상황임에도 통화 너머 "위험하다"라는 말만 있을 뿐, 정부 요원들이 실제로 들이닥치거나 하는 구체적인 위협이 시각화되지 않는다. 관객으로서는 차라리 그냥 집 밖으로 나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 '나갈 수 없음'이 결국 보이지 않는 권력, 영화를 찍을 수 없는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반대로 테이프나 시나리오 낭독만으로 영화를 찍을 가능성을 엿보고 있기도 하다. 이구아나가 책장 사이로 기어다니는 게 영화 쇼트가 될 수 있을까? 두 극단이 충돌하는 게 재밌었다. 압제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장면이다.



MS: 이어서 아이폰으로 촬영 감독을 찍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후반부에 가서야 처음으로 역 쇼트가 등장하는 건데, 거기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기만 한다면 영화가 아니게 되는 건지.
YS: 영화를 대하는 이분법적인 태도를 향한 냉소처럼 보인다. 뭐가 영화고, 뭐가 영화가 아닌지 구분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창작을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묘한 술수를 고안하는 일이 감독의 전문. 종이테이프로 가상의 무대를 그리고, 동선을 따라 장면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읽는 건 꽤 유쾌해 보인다. 물론,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다면 뭐 하러 영화를 만들겠냐고 자문하지만.




CY: 다른 작품에서는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상황인지 헷갈리는 게 있었는데, 이번 영화는 완전히 리얼이다. 그럼 초반에 스크린 없이 말과 행동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겠다, 관객에게 장면을 투영해보겠다 한 걸 밀어붙였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중간에 멈추는 게 좀 아쉬웠다. 괜히 대사가 포즈처럼 느껴졌달까.
MS: 아예 형식을 바꿔서, 영화를 못 찍는다는 상황 설명 없이 가도 재밌겠다. 아무런 단서 없이, 테이프 붙이는 것부터 시작되는 거다.
DU: 오히려 그런 게 고뇌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영화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간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하지만, 집에만 있어야 하는 공간적인 제한이 명백하니까. 그 사이에서 계속해서 가능성을 고민하는 게 재밌었다.

영화로서 재현되는 내부와 무력하게 포착되는 외부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틈, 그 얼개를 쫓아가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조금씩 상상할 수 있게 된다.



SY: 마지막 장면이 불꽃놀이였나? 영화 내내 밖에서 시위라도 하는 줄 알았다.
HR: 그것도 좀 의도가 있지 않았나, 되게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CY: 대놓고 총소리처럼 들렸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일부러 착각하게 만든 것 같다.
DU: 철문 사이로 비치는 불꽃이 해방의 염원을 담은 것처럼 보였다.
YS: 양쪽 의미 둘 다 상징적이었다고 본다. 축제를 위한 불꽃인데도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필름 사보타지

HR: 〈그저 사고였을 뿐〉의 촬영장에 정부 요원들이 기습한 이야기를 봤다. 영화제 출품으로 자기를 기소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남은 분량 편집을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했다고 하더라. 이란에서 할 수가 없으니까. 이런 걸 보면 이 사람이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이 정도면 자기에 대한 관심이 좀 흐지부지할 때까지 기다려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그게 안 됐던 거고, 이런 마음이 이번 영화에서 제일 잘 보였던 것 같다. 소소한 반항이 영화 전체에서 느껴진다.
YS: 대부분의 영화를 숨어서 찍었다. 이쯤 되면 숨는 거에 대한 취미라도 있는 줄 알겠다. 상황이 오히려 창작 욕구를 더 증폭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SY: 〈거울〉에서도 그런 속이고 싶어 하는 의지가 굉장히 잘 보이는 게, 천성인가 싶기도 하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인 걸로 알고 있는데, 촬영 당시에는 소녀의 돌발 이탈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그 영향으로 점차 감독의 색깔이 확립된 건지, 아니면 별개로 원래부터 이런 주제나 형식에 관심이 있던 건지 궁금해졌다. 
MS: 뉘앙스는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YS: 초반 장면에서 보이듯이 감금된 상황에 있으면서 소녀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를 명확히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영화들을 돌아보면서도 연출을 빗겨나가고 꾸며내지 않은 채로 형성된 상황에 집중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감독은 영화를 USB에 담아 케이크에 숨긴 채 칸 영화제에 출품한다. 이로써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 영화 바깥에 존재하게 된다. 감독은 여전히 행방이 불명확한 상태로 야금야금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비극적인 현실을 달콤한 크림으로 숨긴다는 아이디어는 가히 자파르 파나히적이다.



그는 엉망이 된 세상을 그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꾸만 숨기고, 속이고, 뒤집는 전략으로 저항을 시도한다. 폭력적으로 들리던 외부의 폭발음이 사실은 불꽃놀이였던 것처럼, 표정이 안 읽혀 어설픈 배우를 중앙에 배치하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닫았다, 쓰레기를 줍는 청년을 따라가는 연결이 의뭉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까지 찍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에서 알 수 있듯 물리적 제약은 곧 실험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부와 외부의 경계 위의 사보타지가 은닉한 그를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짐작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