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라 타르의 유산
WEBZINE
WEDITOR 엄동욱
WEDITOR 엄동욱
<세노테2019>, 오다
카오리
오다 카오리는 가장 잘 알려진 벨라 타르의 제자이다. 사실 타르가 등장한 뒤의 헝가리 영화에서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을 찾기 힘들지만, 그는 은퇴 이후 사라예보에 영화 학교와 프로그램을 설립하면서 몇 명의 제자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방금 소개한 카오리와 <코끼리는 그 곳에 있어(2018)>로 유명한 후 보가 있고, 학교 바깥에서는 조감독을 맡았던 라즐로 네메스가 있다.
그중 카오리는 타르에게서 배운 감각을 가장 독특하게 표현한다. 그녀는 타르의 영화 학교 프로그램의 첫 번째 졸업생으로, 데뷔 장편 <아라가네(2015)>부터 이미 타르도 못 말릴 정도로 자기 스타일을 확고히 굳혀 나간다. <세노테>에서 그녀는 단순히 물 속이나 동굴을 오래 비추는 것이 아니라, 물의 표면 아래에서 시작해 점차 신비한 공간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와, 옛 전설과 집단 무의식의 에테르를 경험한다.
<제리(2002)>, 구스 반 산트
구스 반 산트는 타르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 타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수차례 말해왔었고, 타르의 영화 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지내기도 했었다. 그는 원래 타르와는 정반대인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 확고히 속해 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제리>, <엘리펀트(2003)>, <라스트 데이즈(2005)>로 이어지는 ‘죽음의 삼부작’을 제작하면서 타르의 영향력을 작품 안에 본격적으로 녹이게 되는데, 그중 가장 앞서 제작된 <제리>에서는 특히나 더 그러한 영향력이 묻어 나온다.
이 작품은 두 청년이 광활한 평야 위를 운전하던 도중 멈추고, 북북서쪽으로 끊임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자연과 겹쳐 담아낸다. 그중 고뇌에 빠진 두 청년을 360도 패닝으로 담아내다 먼 산으로 컷하며 이어 패닝하는 쇼트는 두고두고 볼만하고, 카메라가 트래킹하며 다가감과 동시에 조금씩 밝아지는 쇼트는 그들이 걷는 사막 위의 신기루처럼 비친다. 타르도 이 작품을 보고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언어를 지키는 감독이 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황혼(1990)>, 페헤르 기요르기
페헤르 기요르기는 벨라 타르가 가장 친애하는 동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타르의 여러 작품에 참여했었고, <사탄 탱고(1994)>에는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또 반대로 타르는 제작 환경이 열악했던 기요르기의 작품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황혼>을 제작할 때는 자신과 함께했던 촬영 감독, 음악 감독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이 둘은 매우 많은 것을 공유하는 단짝처럼 보인다.
<황혼>은 음산한 안개가 자주 등장하는 영화인데, 기요르기가 한 씬의 조명 세팅에만 하루를 꼬박 보내고, 마음에 드는 안개가 지날 때까지 또 며칠을 기다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런 집요함과 완벽주의는 매우 타르를 닮았다. 또 타르는 기요르기가 배우에게 요구하는 발성 방식을 이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기도 했다. 기요르기도 21세기 헝가리 영화의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타르와 함께 장편을 준비하던 도중 폐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타르는 이후 <런던에서 온 사나이(2007)>의 촬영 직전 공동 제작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을 다시 겪게 된다…
<윈드(1996)>, 마르첼 이바니
마르첼 이바니는 적어도 알려진 바에 따르면 타르와 직접적인 연은 없던 자국 후배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타르의 미학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6분 남짓의 단편 영화고, 오로지 한 컷의 360도 패닝 쇼트로 촬영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단언컨대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영화만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는 한 수업에서 1951년에 촬영된 루시앙 에르베의 사진을 보고 난 뒤 이 작품을 만들었고, 칸 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는다.
그러나 그 역시 안타깝게도 단편의 성공 이후 21세기에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영화 인생을 마감한 채 TV 스크린으로 옮겨간다. 헝가리의 90년대는 사회주의 붕괴로 인해 특히나 영화를 원활히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지금까지도 재임 중인 오르반 빅토르 총리 취임 이후에는 예술 영화에 자금이 끊기면서 상황이 훨씬 어려워졌다. 타르의 은퇴와 폐교도 이 상황의 영향이 클 것이다. 헝가리에서 영화를 만들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오다 카오리는 가장 잘 알려진 벨라 타르의 제자이다. 사실 타르가 등장한 뒤의 헝가리 영화에서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을 찾기 힘들지만, 그는 은퇴 이후 사라예보에 영화 학교와 프로그램을 설립하면서 몇 명의 제자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방금 소개한 카오리와 <코끼리는 그 곳에 있어(2018)>로 유명한 후 보가 있고, 학교 바깥에서는 조감독을 맡았던 라즐로 네메스가 있다.
그중 카오리는 타르에게서 배운 감각을 가장 독특하게 표현한다. 그녀는 타르의 영화 학교 프로그램의 첫 번째 졸업생으로, 데뷔 장편 <아라가네(2015)>부터 이미 타르도 못 말릴 정도로 자기 스타일을 확고히 굳혀 나간다. <세노테>에서 그녀는 단순히 물 속이나 동굴을 오래 비추는 것이 아니라, 물의 표면 아래에서 시작해 점차 신비한 공간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와, 옛 전설과 집단 무의식의 에테르를 경험한다.
<제리(2002)>, 구스 반 산트
구스 반 산트는 타르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 타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수차례 말해왔었고, 타르의 영화 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지내기도 했었다. 그는 원래 타르와는 정반대인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 확고히 속해 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제리>, <엘리펀트(2003)>, <라스트 데이즈(2005)>로 이어지는 ‘죽음의 삼부작’을 제작하면서 타르의 영향력을 작품 안에 본격적으로 녹이게 되는데, 그중 가장 앞서 제작된 <제리>에서는 특히나 더 그러한 영향력이 묻어 나온다.
이 작품은 두 청년이 광활한 평야 위를 운전하던 도중 멈추고, 북북서쪽으로 끊임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자연과 겹쳐 담아낸다. 그중 고뇌에 빠진 두 청년을 360도 패닝으로 담아내다 먼 산으로 컷하며 이어 패닝하는 쇼트는 두고두고 볼만하고, 카메라가 트래킹하며 다가감과 동시에 조금씩 밝아지는 쇼트는 그들이 걷는 사막 위의 신기루처럼 비친다. 타르도 이 작품을 보고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언어를 지키는 감독이 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황혼(1990)>, 페헤르 기요르기
페헤르 기요르기는 벨라 타르가 가장 친애하는 동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타르의 여러 작품에 참여했었고, <사탄 탱고(1994)>에는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또 반대로 타르는 제작 환경이 열악했던 기요르기의 작품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황혼>을 제작할 때는 자신과 함께했던 촬영 감독, 음악 감독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이 둘은 매우 많은 것을 공유하는 단짝처럼 보인다.
<황혼>은 음산한 안개가 자주 등장하는 영화인데, 기요르기가 한 씬의 조명 세팅에만 하루를 꼬박 보내고, 마음에 드는 안개가 지날 때까지 또 며칠을 기다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런 집요함과 완벽주의는 매우 타르를 닮았다. 또 타르는 기요르기가 배우에게 요구하는 발성 방식을 이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기도 했다. 기요르기도 21세기 헝가리 영화의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타르와 함께 장편을 준비하던 도중 폐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타르는 이후 <런던에서 온 사나이(2007)>의 촬영 직전 공동 제작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을 다시 겪게 된다…
<윈드(1996)>, 마르첼 이바니
마르첼 이바니는 적어도 알려진 바에 따르면 타르와 직접적인 연은 없던 자국 후배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타르의 미학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6분 남짓의 단편 영화고, 오로지 한 컷의 360도 패닝 쇼트로 촬영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단언컨대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영화만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는 한 수업에서 1951년에 촬영된 루시앙 에르베의 사진을 보고 난 뒤 이 작품을 만들었고, 칸 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는다.
그러나 그 역시 안타깝게도 단편의 성공 이후 21세기에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영화 인생을 마감한 채 TV 스크린으로 옮겨간다. 헝가리의 90년대는 사회주의 붕괴로 인해 특히나 영화를 원활히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지금까지도 재임 중인 오르반 빅토르 총리 취임 이후에는 예술 영화에 자금이 끊기면서 상황이 훨씬 어려워졌다. 타르의 은퇴와 폐교도 이 상황의 영향이 클 것이다. 헝가리에서 영화를 만들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