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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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김민솔


*미리 밝히자면, 국힙과 오메가 사피엔의 앨범을 핑계로 ADM을 소개하는 자리다. 나의 사심 채우기 글이다….

힙합이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지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최근에는 힙합에 대한 열기가 그때 만하지 않은데, 방대한 영향을 미쳤던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쇠퇴가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힙합이라는 키워드는 남아 있다. 2010년대까지 발표하는 앨범마다 힙합 씬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칸예 웨스트가, 정작 음악적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든 2020년대에 이르러 한국에서 대규모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든가, 2020년대의 실질적인 트렌드세터인 플레이보이 카티에 대한 호응 역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힙’ 래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예전이라면 음지로 분류되던 래퍼들이 주류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희롱적인 가사 및 다수의 래퍼들을 향한 유희적 디스가 유행하거나(GGM Kimbo)1, 이른바 ‘이대남’을 위한 특정 커뮤니티의 밈을 소화하는 랩이 유행이거나(리치이기), 롯데리아 앞에서 마약을 드랍 받는 아이스 유저의 내러티브를 뜻밖의 감성적인 멜로디로 풀어내는 랩이 유행하기도 한다(이슬림탄탄). 비록 이들이 다루는 요소들은 매우 논쟁적이지만, 강덕구 평론가의 말을 빌려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순수한 오토픽션 형태”를 이루면서 이들을 통해 비로소 한국적인 가사를 마주하기에 이른다. 리치이기의 특정 커뮤니티 화법을 차용한 가사, 서울대입구역 앞 롯데리아라는 구체적 장소가 만들어내는 토포스Topos는 한국어의 사용 여부라는 형식적 기준2이 아니라, 자국 문화와 언어를 내포하는 번역 불가능한 고유성이다. 이들의 가사는 미국 힙합과 소재를 공유하면서도 한국적 로컬리티를 확보했다3.

그러나 이들이 형성하는 음악적 범위가 매우 단조로운 경향이 있다. 내러티브의 고유성과 별개로 음악의 사운드는 좀처럼 갱신되지 못했는데,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2020년대에 들어 뚜렷한 형식적 돌파 없이 관성 안에 머물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새로 발매된 오메가 사피엔의 《Leader》는 더욱 반가운 존재이다. 힙합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머물지 않고 현시대에서 유행하는 아시아 댄스 음악(이하 ADM)을 앨범의 메인 사운드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국힙이 가사의 관점에서 로컬리티를 확보했다면, 《Leader》는 아시아 각지의 댄스 음악을 경유하여 사운드의 관점에서 그것을 모색한다.



《Leader》는 얼터너티브 케이팝이라는 독자적 노선을 걸어온 바밍타이거의 오메가 사피엔이 ADM의 지형을 횡단한 솔로 앨범이다. 필리핀의 부도츠Budots, 인도네시아의 JJ(Jedag Jedug), 인도 남부의 쿠수Kuthu, 태국의 차차차3-cha까지—각기 다른 지리적 좌표에서 발생한 아시아 클럽 음악들이 하나의 앨범 안에 배치된다. ADM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DM)의 형태와 비슷하면서도, 'tiw-tiw'로 불리는 고음역대 신디사이저 후킹, 그리고 휘슬·사이렌·트럭 경적 같은 길거리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샘플링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Leader》에서 ADM이라는 공통분모는 세 명의 메인 프로듀서를 통해 통합된다. 부도츠의 아버지 DJ Love와 otakotak의 멤버 Mulan Theory, 그리고 (한국에서 음악 제일 잘하는) 기나이직이다. 





DJ Love는 부도츠라는 음악 장르를 처음으로 만든 창시자이다. 그가 작업한 'Coca-Cola', 'I Get Money'에는 부도츠의 특징 나아가ADM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군중이 'gogogo'를 외치는 보컬 샘플링, 중독적인 사이렌과 tiw-tiw 신스 훅, 킥-스네어의 단순 반복으로 구축된 드럼 패턴이 그것이다. DJ Love는 다바오의 빈민가에서 지프니 경적, 개 짖는 소리, 이웃의 말다툼까지 워크맨으로 녹음한 뒤 리믹스한다. 부도츠의 tiw-tiw나 사이렌 소리가 전자음처럼 들리지만 실은 다바오 거리의 소리 그 자체인 셈이다. 이 최소한의 요소들은 반복과 축적을 통해 집단적 신체 반응을 유도하는데, 이는 부도츠가 애초에 음악 이전에 춤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상단의 유튜브 링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도츠의 춤과 음악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꽤 선정적이고 노골적이다. DJ Danz는 클럽에서 부도츠를 틀면 쫓겨났던 시기를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도츠의 목적 의식은 단순하다—마사(대중)가 다시 춤을 추게 하는 것. 외부의 시선에서 미개하거나 야만적으로 보였던 다바오 거리의 에너지를 교정하는 대신 그대로 틀어버리는 것이다. 필리핀 영화 감독 존 토레스의 〈토도 토도 테로스(2006)〉에서는 토레스가 라브 디아즈, 카반과 함께 안토니오 피가페타Antonio Pigafetta를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필리핀의 식민지 시대 기록자 피가페타는 필리핀 사람들이 다소 야만적이었지만 모두 행복해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로부터 500년이 지났지만 구도는 비슷하다. 숱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들 혹은 우리는 행복해하고 싶을 뿐이고, 부도츠는 거기에 뽕을 선사한다.





DJ Love가 다바오라는 단일한 거리에서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낸 사람이라면, Mulan Theory는 말레이시아라는 동남아의 교차점에서ADM의 여러 장르를 횡단하는 프로듀서이다. ‘Hajima’의 장르인 JJ는 댕둣Dangdut 음악의 리듬을 헤비 베이스로 표현하고, ‘Krapow’의 장르인 3-cha는 라틴 차차차 댄스를 태국에서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또한, ‘Swag’의 장르인 쿠수Kuthu는 부도츠와 JJ와는 달리 파라이Parai와 우루미Urumee 드럼으로 구현한 3연음이 특징이다. Mulan Theory는 기존 아시아 음악을 ADM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재구성하는 음악가이다. ‘Krapow’에서는 사이렌을 연상시키는 고음역 신스 스텝의 반복 배치로 동남아적 유로댄스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한편, ‘Swag’에서 쿠수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나다스와람Nadaswaram의 음색을 일렉트로닉 신스 리드의 질감으로 치환한 것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부적 장르 분류는 ADM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들 장르의 시퀀싱 구조 자체에 근본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며, 장르를 세분화하는 것은 결국 각 음악이 뿌리내린 국가적 맥락과 그에 결부된 고유한 춤의 양식에 있다. 다시 말해 ADM이란 아시아 각지의 로컬리티가 생성하는 일종의 과잉 에너지, 이른바 '뽕끼'를 음악적으로 형식화한 것에 가깝다.


(재생 전 주의)

이러한 뽕끼는 한국 전자음악가 기나이직의 프로듀싱에서도 크게 작용한다. 포스트-트랜스, 디지털 하드코어, 싱겔리를 횡단하며 독자적인 유포리아를 구축해 온 기나이직은 과격한 사운드 안에서 이질적 장르들을 자기화하는 프로듀서이다. 《Leader》에서 그는 4번 트랙 ‘Hajima’를 제외한 전 곡의 어레인지먼트 혹은 믹싱에 참여하며, 오메가 사피엔과 사실상 공동 프로듀서의 위치에서 앨범을 설계했다. ‘chi’에서는 JJ의 리듬 위에 ADM 특유의 샘플링과 자신의 디지털 하드코어적 질감을 하나로 녹여내고, ‘Saionji Sauna’에서는 오메가 사피엔의 보컬에 노이즈와 디스토션을 적층하여 기나이직만이 구현하는 스크리마 질감을 부여한다. 본격적으로 싱겔리 리듬을 하드코어에 접합시킨 《SADASPOUSE》, 그리고 도블레 파소 등의 변이적 레게톤까지 포괄하는 정규 3집 《GIRL I LOVE YOU》에 이르기까지—기나이직은 포스트-트랜스와 싱겔리로 자신만의 유포리아를 형성하던 궤도 위에 ADM이라는 새로운 좌표를 추가하며 자신만의 ‘뽕끼’를 고도화했다.

《Leader》에서 표현된 다양한 ADM은 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을지로와 충무로 사이에 위치한 ACS의 운영자 시봉새와 안도는 주기적으로 뽕짝 음악을 취급하고 관련 파티를 주최한다. 특히 매년 11월 열리는 퓨처관광메들리4는 '성인메들리'를 재구현하며 전 세계의 ADM 음악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데, 작년에는 ADM의 핵심적인 듀오인 일본의 Soi48, Korean Dugem(인도네시아 스타일의 케이팝 믹스)을 선사한 인도네시아의 Prontaxan, 각설이 영심이를 비롯한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종로 국일관과 ACS를 채웠다. 연남동에 위치한 춘희에서는 기나이직을 비롯한 디지털 하드코어 음악을 즐길 수 있는데, 공간이 내건 슬로건이 그 분위기를 가장 잘 요약할지도 모른다—'지속 가능한 쾌락, 슬픔을 이기는 관능, 혁명적 퇴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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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시점에서 GGM 킴보와 솔쟈의 OTL이라는 곡은 유튜브 조회수 약 160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2] 평론 매체 ‘리드머’는 한국어로 가사를 써야만 ‘한국 힙합’ 혹은 ‘한국 랩’에 속한다는 논리를 펼쳐 왔다. 그런데 리드머가 주장했던 이른바 한영혼용 논리는 그 자신들의 이름인 ‘리드머’가 영어라는 점에서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한국적인 가사는 한국어의 사용 여부라는 형식적 기준으로 환원될 수 없다.

[3] 미국 힙합과 국힙이 총기/마약이라는 소재를 공유하게 되었다. 작년 화제의 소설이었던 데니스 존슨의 『예수의 아들』이 중독과 방황의 서사를 동시대적 리얼리즘으로 포착했듯, 이들 역시 자신을 오토픽션적 내러티브 안에 위치시키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4] 퓨처관광메들리는 시봉새, 안도, 그리고 김재강 분이 함께 만드는 축뽕 파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