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좀비'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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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송혜령
WEDITOR 송혜령
* 〈28년 후〉와 〈28년 후: 뼈의 사원〉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개봉한 〈28년 후: 뼈의 사원(2026)〉(이하 〈뼈의 사원〉)은 다소 부진했던 〈28년 후(2025)〉의 성적을 딛고 북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이어질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에 기대감을 더했다. 사실 나는 〈28년 후〉가 왜 그토록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니 보일이 〈28일 후(2002)〉 이후 23년만에 다시금 제작에 박차를 가해 만든 진정성 있는 속편임을 감안하면, 부진한 성적은 물론 그에 대한 반응들까지 의아한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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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좀비 시리즈 〈워킹 데드(2010-2022)〉의 종영을 끝으로 좀비 장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워킹 데드〉는 좀비에게 위협받는다는 흔한 설정 너머, 아포칼립스 속 생존자들이 일궈내는 커뮤니티와 파벌 다툼, 문명의 재시작을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방향성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워킹 데드〉의 종영 이전에 나온 〈블랙 썸머(2019)〉 시리즈가 장르적 긴장감과 생존자들의 드라마를 적절히 섞어내어 좀비물에 새로운 인상을 더했지만, 결국 시즌 3 제작이 무산되며 이후를 상상하기는 어려워졌다. 이같은 암흑기에 돌아온 〈28일 후〉의 후속작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좀비물은 대체로 사건의 발발과 함께 시작된다. 〈28일 후〉의 경우 동물 실험의 산물인 ‘분노 바이러스’가 그 시작이었다. 인간 사회의 분노와 고통, 폭력을 학습한 원숭이들이 타액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되었고, 이들을 해방시키려던 동물 단체가 그에 감염되어 영국은 그야말로 28일 만에 절멸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모습은 어떨까. 유럽은 섬나라인 영국을 지도 위에서 지워버리듯 봉쇄했다. 그러나 좀비 밭이 된 그 땅에도 생존자들은 존재했다. 이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작은 사회를 재건하고 후손을 양성하고 있었다.
〈28년 후〉의 주인공 스파이크는 이전의 세상을 모르는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대다. 영화는 이 아이를 통해 좀비 영화 특유의 생존기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의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때의 성장은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에서 볼 수 있었던 서사와 매우 유사하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일종의 배경으로 자리하며 소년의 모험 자체가 되어준다는 점은 이전 좀비물에서 찾기 어려웠던 독특한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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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8년 후〉는 아버지로부터 생존을, 어머니로부터 삶을 가르침 받고 모험을 떠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 축약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관객의 호불호를 가르지 않았나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하지만 좀비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아등바등 생존을 도모하는 성인의 이야기가 아닌, 소년의 고난이 중심축인 서사 진행은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아포칼립스화 된 영국이라는 특수한 배경은 죽음이라는 개념을 인물과 한층 더 가깝게 배치하는데, 캐릭터들의 죽음을 거의 확실시하는 좀비물에서 역설적으로 생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서사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좀비물은 텍스트 그 자체로 죽음이 만연한 장르이다. 그런 배경에서 소년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좀비로부터 나온 생을 받아들인다. 거대 판타지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양극의 요소들이 다름 아닌 좀비 영화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때 소년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을 알려주는 멀린이나 간달프, 덤블도어와 같은 존재, 닥터 캘슨의 ‘뼈의 사원’은 특히 속편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스파이크가 속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멀리하는 닥터 캘슨의 ‘뼈의 사원’은 말 그대로 뼈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캘슨은 좀비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시체를 회수해 화장한 뒤, 남은 뼈로 사원을 세워 올린다. 이 구조물은 영화 내에서 시간을 거스르는 것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로 기능한다. 캘슨은 이 땅에 흐른 죽음을 기록하며, 좀비 장르에서 가장 등한시되는 죽음 자체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영화 속에 새겨 넣는다. 속편 〈뼈의 사원〉은 바로 이 캘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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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를 뛰쳐나와 독립하게 된 스파이크. 그는 미숙함이 아물기도 전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라는 위협과 맞닥뜨린다. 사회로 상징되는 인물은 '지미'로, 자신과 똑같은 외양을 한 심복들을 거느린 커뮤니티의 수장이다. 여타 좀비물이 그렇듯, 아포칼립스가 중기에 접어들면 생존자들의 가장 큰 위협은 더 이상 좀비가 아니게 된다. 인류가 거쳐온 역사가 그런 것처럼 결국 인간의 가장 큰 위협은 또 다른 집단, 바로 인간이다. 스파이크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며 그렇게 또 다른 지미가 된다. 이 커뮤니티는 독창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정된 자리는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여야만 차지할 수 있으며 그렇게 강요 속에 얻어낸 자리에서도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지미라는 왕을 모시며 또 다른 지미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스파이크의 행보가 서사적으로는 답답함을 유발할지 모르나, 이는 결국 아포칼립스 이후 생존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이 현재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독립은 결국 또 다른 예속을 의미한다. 자유 의지가 허락되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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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정상적이었던 스파이크의 커뮤니티와 달리 지미의 커뮤니티는 전적으로 컬트를 표방한다. 지미는 종교적 광기에 젖어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기를 택한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정신적 파편화를 겪는 인물이다. 그는 바이러스 사태 이후의 출생자들을 모아 그들 위에 군림하며 다른 커뮤니티의 자원을 약탈한다. 하지만 이런 독재는 의심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지미의 커뮤니티는 공포 정치의 생태와 그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잠깐 그렇다면 닥터 캘슨은 대체 어떤 여지에서 등장한단 말인가.
스파이크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동안, 우리의 닥터 캘슨은 좀비 집단의 우두머리 ‘알파’와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28년 이후 좀비 역시 무리를 이루며 알파의 지휘 아래 생존자들을 사냥하고 얕은 물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개체 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머리가 좋은 이를 우두머리화하여 나름의 집단을 구성한 상태다. 닥터 캘슨은 의학 지식을 통해 알파와 끊임없이 소통할 계기를 만들기 위해 바이러스 자체의 특성을 파악하며 결정적으로 늘 그를 잠재우던 모르핀으로 그 틈을 빚어내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세계관 속 공포의 대명사인 분노 바이러스의 해결책을 영화가 제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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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백신의 제공자가 된 캘슨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일종의 사탄으로 묘사된다. 안타고니스트란 말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그렇게 ‘묘사’된다. 악마를 직접 본 적이 없는 구성원들의 무지함을 이용해 군림하던 지미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아이오딘을 온 몸에 바른 캘슨을 자신의 아버지, 즉 사탄으로 둔갑시켜 의심받던 정당성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스파이크를 제외한 지미의 수하들, 일명 손가락들은 뼈의 탑 앞에서 알파와 춤을 추는 캘슨의 모습을 보고 악마가 실재한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하지만 지미는 어린 시절에 좀비 사태를 겪은 ‘걸쳐진 세대’의 일원으로서, 캘슨의 모습에 어느새 의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우선적으로 캘슨에게 다가가 “네가 정말 사탄이냐” 묻는 장면은 지미 역시 자신의 수하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어린 시절에 체류하고 있는 그의 정신적 상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지미의 협박 앞에 목숨을 위협받던 캘슨은 기어이 사탄의 연기를 하게 되는데,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클라이맥스로 십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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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로 오인받은 천사. 우리는 이 이름을 어딘가 익히 들어보았다. 지옥의 왕 루시퍼는 태초에 천사였으며 그의 교만은 그를 결국 지옥으로 떨어트렸지만, 갖은 창작물에서 그를 묘사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이번 〈뼈의 사원〉에서도 나는 어쩌면 캘슨이 루시퍼로 묘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미의 무리는 좀비 사태가 벌어진 뒤 어떤 무지함이 만들어낸 순수악이다. 특히 지미는 성경을 비롯해 텔레토비 등 아주 적은 이전의 정보 값만을 가지고 있던 세대로, 그런 자신의 얕은 지식으로 사태 이후의 세대를 지배하고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런 지미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것은 캘슨이다. 천국의 생김새를 아는, 즉 지난 세대의 지식으로 현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는 과거의 단어를 기억하고 있는 알파의 모습으로 분노 바이러스가 감염 이후 감염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닌, 그저 타인을 적으로 오인하게 하는 정신병을 유발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이 틈을 알게 된 캘슨이 해독제를 제조하고 알파에게 투약하게 되는데, 그 이후 나체로 다니던 알파가 수치를 알게 되고 무리를 이끌며 생존자들을 사냥하던 자신의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어떠한 상징성에 박차를 가한다.
또한 결말부에 지미를 단순히 처단하는 것이 아닌 역십자가에 걸고 캘슨의 시체를 알파가 수습하게 하는 모습까지 비춘 것을 생각한다면, 영화가 종교적인 측면을 단순 이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캘슨을 사탄의 모습으로서 죽게 하고, 거꾸로 매달린 지미가 알파를 진짜 사탄으로 오인하게 함으로써, 그를 좀비 사태 후 지옥이 되어버린 세상을 다시금 새로운 페이즈로 이끌어 나가도록 설계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알파를 여전히 악마로 오인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지미는 그 경계에 걸쳐진 세대야말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표였을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지점들이 스코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관람한 이들은 모두 알겠지만 〈28일 후〉의 주인공이었던 킬리언 머피의 완전 복귀로 인해 그 기대감이 더욱 높아진 것이겠지만, 결국 과거의 인물이었던 짐에게 스파이크를 데려다 준 것은 캘슨이라는 교가로(橋架路)이다. 나체 상태의 아담, 최초의 인간에게 선악과를 준 것은 루시퍼라는 천사이자 동시에 악마인 인물이다. 그렇게 아담은 전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다. 영화가 과연 알파를 신인류로 규정할 것인지 물론 더 남은 이야기를 들춰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28년 후〉 트릴로지에서는 악마로 규정되던 두 인물을 오히려 새로운 세상의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비 사태 이후의 세대인 스파이크는 진짜 악마였던 과거 세대의 괴물 지미를 넘어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 사실 스파이크의 이야기는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가장 근접한 미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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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8년 후〉는 시간, 즉 세대를 다루고 있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과거의 세대는, 그리고 새로 태어난 세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디로 나아가야 하며 무엇을 등대 삼아야 하는가. 세상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세상을 이루는 인간 그 자체가 아닌가. 좀비라는 장르는 관객에게 확실한 자극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여러 서사에서 보여주었듯 죽음이 아주 가까이에서 걸어 다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살아나감’을 생각하게도 한다. 당신은 지금 좀비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지난주 개봉한 〈28년 후: 뼈의 사원(2026)〉(이하 〈뼈의 사원〉)은 다소 부진했던 〈28년 후(2025)〉의 성적을 딛고 북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이어질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에 기대감을 더했다. 사실 나는 〈28년 후〉가 왜 그토록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니 보일이 〈28일 후(2002)〉 이후 23년만에 다시금 제작에 박차를 가해 만든 진정성 있는 속편임을 감안하면, 부진한 성적은 물론 그에 대한 반응들까지 의아한 측면이 있었다.

장수 좀비 시리즈 〈워킹 데드(2010-2022)〉의 종영을 끝으로 좀비 장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워킹 데드〉는 좀비에게 위협받는다는 흔한 설정 너머, 아포칼립스 속 생존자들이 일궈내는 커뮤니티와 파벌 다툼, 문명의 재시작을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방향성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워킹 데드〉의 종영 이전에 나온 〈블랙 썸머(2019)〉 시리즈가 장르적 긴장감과 생존자들의 드라마를 적절히 섞어내어 좀비물에 새로운 인상을 더했지만, 결국 시즌 3 제작이 무산되며 이후를 상상하기는 어려워졌다. 이같은 암흑기에 돌아온 〈28일 후〉의 후속작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좀비물은 대체로 사건의 발발과 함께 시작된다. 〈28일 후〉의 경우 동물 실험의 산물인 ‘분노 바이러스’가 그 시작이었다. 인간 사회의 분노와 고통, 폭력을 학습한 원숭이들이 타액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되었고, 이들을 해방시키려던 동물 단체가 그에 감염되어 영국은 그야말로 28일 만에 절멸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모습은 어떨까. 유럽은 섬나라인 영국을 지도 위에서 지워버리듯 봉쇄했다. 그러나 좀비 밭이 된 그 땅에도 생존자들은 존재했다. 이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작은 사회를 재건하고 후손을 양성하고 있었다.
〈28년 후〉의 주인공 스파이크는 이전의 세상을 모르는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대다. 영화는 이 아이를 통해 좀비 영화 특유의 생존기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의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때의 성장은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에서 볼 수 있었던 서사와 매우 유사하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일종의 배경으로 자리하며 소년의 모험 자체가 되어준다는 점은 이전 좀비물에서 찾기 어려웠던 독특한 특성이다.

그렇게 〈28년 후〉는 아버지로부터 생존을, 어머니로부터 삶을 가르침 받고 모험을 떠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 축약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관객의 호불호를 가르지 않았나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하지만 좀비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아등바등 생존을 도모하는 성인의 이야기가 아닌, 소년의 고난이 중심축인 서사 진행은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아포칼립스화 된 영국이라는 특수한 배경은 죽음이라는 개념을 인물과 한층 더 가깝게 배치하는데, 캐릭터들의 죽음을 거의 확실시하는 좀비물에서 역설적으로 생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서사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좀비물은 텍스트 그 자체로 죽음이 만연한 장르이다. 그런 배경에서 소년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좀비로부터 나온 생을 받아들인다. 거대 판타지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양극의 요소들이 다름 아닌 좀비 영화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때 소년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을 알려주는 멀린이나 간달프, 덤블도어와 같은 존재, 닥터 캘슨의 ‘뼈의 사원’은 특히 속편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스파이크가 속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멀리하는 닥터 캘슨의 ‘뼈의 사원’은 말 그대로 뼈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캘슨은 좀비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시체를 회수해 화장한 뒤, 남은 뼈로 사원을 세워 올린다. 이 구조물은 영화 내에서 시간을 거스르는 것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로 기능한다. 캘슨은 이 땅에 흐른 죽음을 기록하며, 좀비 장르에서 가장 등한시되는 죽음 자체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영화 속에 새겨 넣는다. 속편 〈뼈의 사원〉은 바로 이 캘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커뮤니티를 뛰쳐나와 독립하게 된 스파이크. 그는 미숙함이 아물기도 전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라는 위협과 맞닥뜨린다. 사회로 상징되는 인물은 '지미'로, 자신과 똑같은 외양을 한 심복들을 거느린 커뮤니티의 수장이다. 여타 좀비물이 그렇듯, 아포칼립스가 중기에 접어들면 생존자들의 가장 큰 위협은 더 이상 좀비가 아니게 된다. 인류가 거쳐온 역사가 그런 것처럼 결국 인간의 가장 큰 위협은 또 다른 집단, 바로 인간이다. 스파이크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며 그렇게 또 다른 지미가 된다. 이 커뮤니티는 독창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정된 자리는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여야만 차지할 수 있으며 그렇게 강요 속에 얻어낸 자리에서도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지미라는 왕을 모시며 또 다른 지미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스파이크의 행보가 서사적으로는 답답함을 유발할지 모르나, 이는 결국 아포칼립스 이후 생존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이 현재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독립은 결국 또 다른 예속을 의미한다. 자유 의지가 허락되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사회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정상적이었던 스파이크의 커뮤니티와 달리 지미의 커뮤니티는 전적으로 컬트를 표방한다. 지미는 종교적 광기에 젖어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기를 택한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정신적 파편화를 겪는 인물이다. 그는 바이러스 사태 이후의 출생자들을 모아 그들 위에 군림하며 다른 커뮤니티의 자원을 약탈한다. 하지만 이런 독재는 의심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지미의 커뮤니티는 공포 정치의 생태와 그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잠깐 그렇다면 닥터 캘슨은 대체 어떤 여지에서 등장한단 말인가.
스파이크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동안, 우리의 닥터 캘슨은 좀비 집단의 우두머리 ‘알파’와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28년 이후 좀비 역시 무리를 이루며 알파의 지휘 아래 생존자들을 사냥하고 얕은 물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개체 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머리가 좋은 이를 우두머리화하여 나름의 집단을 구성한 상태다. 닥터 캘슨은 의학 지식을 통해 알파와 끊임없이 소통할 계기를 만들기 위해 바이러스 자체의 특성을 파악하며 결정적으로 늘 그를 잠재우던 모르핀으로 그 틈을 빚어내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세계관 속 공포의 대명사인 분노 바이러스의 해결책을 영화가 제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렇게 백신의 제공자가 된 캘슨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일종의 사탄으로 묘사된다. 안타고니스트란 말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그렇게 ‘묘사’된다. 악마를 직접 본 적이 없는 구성원들의 무지함을 이용해 군림하던 지미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아이오딘을 온 몸에 바른 캘슨을 자신의 아버지, 즉 사탄으로 둔갑시켜 의심받던 정당성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스파이크를 제외한 지미의 수하들, 일명 손가락들은 뼈의 탑 앞에서 알파와 춤을 추는 캘슨의 모습을 보고 악마가 실재한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하지만 지미는 어린 시절에 좀비 사태를 겪은 ‘걸쳐진 세대’의 일원으로서, 캘슨의 모습에 어느새 의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우선적으로 캘슨에게 다가가 “네가 정말 사탄이냐” 묻는 장면은 지미 역시 자신의 수하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어린 시절에 체류하고 있는 그의 정신적 상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지미의 협박 앞에 목숨을 위협받던 캘슨은 기어이 사탄의 연기를 하게 되는데,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클라이맥스로 십분 이용한다.

악마로 오인받은 천사. 우리는 이 이름을 어딘가 익히 들어보았다. 지옥의 왕 루시퍼는 태초에 천사였으며 그의 교만은 그를 결국 지옥으로 떨어트렸지만, 갖은 창작물에서 그를 묘사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이번 〈뼈의 사원〉에서도 나는 어쩌면 캘슨이 루시퍼로 묘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미의 무리는 좀비 사태가 벌어진 뒤 어떤 무지함이 만들어낸 순수악이다. 특히 지미는 성경을 비롯해 텔레토비 등 아주 적은 이전의 정보 값만을 가지고 있던 세대로, 그런 자신의 얕은 지식으로 사태 이후의 세대를 지배하고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런 지미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것은 캘슨이다. 천국의 생김새를 아는, 즉 지난 세대의 지식으로 현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는 과거의 단어를 기억하고 있는 알파의 모습으로 분노 바이러스가 감염 이후 감염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닌, 그저 타인을 적으로 오인하게 하는 정신병을 유발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이 틈을 알게 된 캘슨이 해독제를 제조하고 알파에게 투약하게 되는데, 그 이후 나체로 다니던 알파가 수치를 알게 되고 무리를 이끌며 생존자들을 사냥하던 자신의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어떠한 상징성에 박차를 가한다.
또한 결말부에 지미를 단순히 처단하는 것이 아닌 역십자가에 걸고 캘슨의 시체를 알파가 수습하게 하는 모습까지 비춘 것을 생각한다면, 영화가 종교적인 측면을 단순 이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캘슨을 사탄의 모습으로서 죽게 하고, 거꾸로 매달린 지미가 알파를 진짜 사탄으로 오인하게 함으로써, 그를 좀비 사태 후 지옥이 되어버린 세상을 다시금 새로운 페이즈로 이끌어 나가도록 설계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알파를 여전히 악마로 오인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지미는 그 경계에 걸쳐진 세대야말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표였을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지점들이 스코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관람한 이들은 모두 알겠지만 〈28일 후〉의 주인공이었던 킬리언 머피의 완전 복귀로 인해 그 기대감이 더욱 높아진 것이겠지만, 결국 과거의 인물이었던 짐에게 스파이크를 데려다 준 것은 캘슨이라는 교가로(橋架路)이다. 나체 상태의 아담, 최초의 인간에게 선악과를 준 것은 루시퍼라는 천사이자 동시에 악마인 인물이다. 그렇게 아담은 전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다. 영화가 과연 알파를 신인류로 규정할 것인지 물론 더 남은 이야기를 들춰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28년 후〉 트릴로지에서는 악마로 규정되던 두 인물을 오히려 새로운 세상의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비 사태 이후의 세대인 스파이크는 진짜 악마였던 과거 세대의 괴물 지미를 넘어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 사실 스파이크의 이야기는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가장 근접한 미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28년 후〉는 시간, 즉 세대를 다루고 있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과거의 세대는, 그리고 새로 태어난 세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디로 나아가야 하며 무엇을 등대 삼아야 하는가. 세상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세상을 이루는 인간 그 자체가 아닌가. 좀비라는 장르는 관객에게 확실한 자극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여러 서사에서 보여주었듯 죽음이 아주 가까이에서 걸어 다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살아나감’을 생각하게도 한다. 당신은 지금 좀비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