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착하지 않은 유령을 위한 강령
WEBZINE
WEDITOR 김민솔
WEDITOR 김민솔
며칠 전, 전자음악 공연을 관람하고자 찾은 공연장에서는 한 장발의 남성이 건반을 어깨에 맨 채 기이한 사운드를 연주하고 있었다. "음험하고 때로는 신랄하게 나타나는 전자음악 사운드에 몸을 맡겨주세요."라는 공연 소개 문구처럼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계속되었다. 스산한 소리와 어두운 조명이 맞물리면서 공연장은 마치 유령을 불러내는 강령술의 현장으로 변모했다.【Ironically Confluence】라는 제목으로 ACS에서 열린 공연에는 태국 전자음악의 초기를 다진 Stylish Nonsense의 Pok(Wannarit Pongprayoon), 헤비 음악 엄선가 DJ Backstage, 그리고 토니 아유미(전 장석훈)와 Baked Paint로 이루어진 듀오 둠캣Doomkat이 자리하였다.
신디사이저가 사용되어 온 맥락을 되짚어보면 자연스레 과거에 뉴에이지가 등장했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1970년대에 내면의 영성을 극대화하여 자연/우주/종교적 신을 접촉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인간과 신의 소통을 매개한다고 여겨진 음악, 이른바 뉴에이지가 활개하였다. 그러나 음악 산업이 뉴에이지에서 자본의 가능성을 감지한 이후, 이 음악은 명상 음악으로 상품화되었고 자본에 편입된 뉴에이지의 영성은 점진적으로 희석되어갔다.
뉴에이지 음악과 현대의 실험적 전자음악은 신디사이저를 매개로 루프를 변조해 간다는 형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화성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음향을 지향하는 뉴에이지와 달리, 실험 전자음악은 의도적인 불협화음과 뒤섞인 박자와 혼란스러운 음색을 전면에 내세운다. 실험 전자음악은 의도했든 아니든, 기존 음악의 서사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적 맥락 안에 있다.
우리는 뉴에이지뿐만 아니라, 20세기 중후반 전자음악 전반이 미래의 음향적 전달자로 기대 받았지만 실제로는 미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자음악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아래 레트로로 편입되었고, 새로운 형식을 발명하는 대신 과거의 형식을 재조합하는 데 머물렀다. 미래주의를 품었던 전자음악은 그 역할을 잃고 음악의 순환 구조 안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실험 음악은 포스트모더니티가 불러들인 노스탤지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존 음악의 경계 안에서 아직 음악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소리들을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험 음악 공연에서 펼쳐지는 즉흥적인 잼은 특정한 루프 안에 안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주되는데, 그 과정은 이미 소진된 것들 너머에서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뉴에이지가 찾으려 했지만 끝내 손에 쥐지 못했던, 자본에 의해 지워진 채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유령을 다시 호출하려는 듯이. 마크 피셔의 말처럼,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공통점은 낯선 무엇에 대한 집착이다."
1. Pok

스타일리쉬 넌센스Stylish Nonsense는 태국에서 전자 음악 및 아트 록, 노이즈 음악을 결합한 최초의 밴드 중 하나로, 현재까지도 매 공연에서 순수한 즉흥 연주를 고집해오고 있다. 그 중 이번에 내한한 Pok는 1993년부터 컴퓨터 음악을 만들어 왔으며, 스타일리쉬 넌센스에서는 신디사이저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어깨에 메는 방식의 독특한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드론 루프를 생성해낸다.
Pok는 사전에 준비한 미니멀한 드럼 루프를 컴퓨터로 재생한 뒤, 두 대의 키보드를 활용해 즉흥적으로 루프를 쌓아 올리는 방식의 전자음악 공연을 선보였다. 컴퓨터에서 쿵쿵짝쿵의 미니멀 비트를 흘려보낸 뒤, 건반 연주로 루프를 하나씩 덧붙이고 저장하며 그 위에 다시 새로운 루프를 쌓아 나가는 구조다. Stylish Nonsense가 386dx(윈도우 XP 사양) 컴퓨터로 비디오게임 음악을 작곡하며 출발했던 만큼, Pok의 즉흥 연주에서 비디오게임 음악 특유의 질감이 감지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 월드 게임처럼, 목적지는 없지만 현재 위치한 곳에서 계속해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나아가 Pok의 사운드는 비디오 게임 뿐만 아니라, 포스트 펑크 혹은 빈티지 일렉트릭 펑크로도 분류될 수 있다.
2. DJ Backstage

DJ Backstage는 용녀의 또다른 자아로 뉴메탈과 쥬크 하우스를 혼합하거나 노이즈와 부도츠를 섞는 등 헤비 음악 장르를 엄선하여 플레이한다. 라이브 공연에서는 대부분의 디제이가 시도하기 어려운 4채널 믹싱을 구사하는데, 3대의 턴테이블과 1대의 CDJ를 동시에 운용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Jazkamer의 《Metal Music Machine》에서 Sun Ra의 앨범에 이르기까지 레코드를 무작위로 뽑아 믹스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토록 오싹한 Sun Ra의 곡은 처음 들어봤다.) 눈에 띄는 점은 믹서 내장 기능인 'Roll'을 활용해 음악의 특정 부분을 과할 정도로 반복하는 것이다. 음악의 일부를 수 초 단위로 잘게 뭉쳐 뒤틀면서 노이즈로 변성시키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그가 4채널을 일사분란하게 다루면서, 플레이를 마친 바이닐들을 바닥에 던지는 야마까지가 무대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앨범 《Consume Budots》 역시 고음역대의 사이렌 소리를 샘플로 활용해 즉흥 실험 음악의 문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부도츠 사운드를 해체하여 드론 음악에 가까운 변주로 이끌어낸다. DJ Backstage의 밴드캠프에서 앨범을 들어보거나, CORD Service에서 테이프를 구매할 수 있다.
3. Doomkat
Doomkat의 공연 역시 위의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드론 음악과 유사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특이한 점은, 토니 아유미는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형 신디사이저 EWI(Electronic Wind Instrument)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건반과 달리 호흡을 통해 섬세한 질감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 EWI의 특징이다. 연주 전반에서 EWI와 Baked Paint의 기타는 때로 호응하고, 때로 대립하며 즉흥으로 합을 맞춰 나갔는데, 그 긴장과 이완의 흐름이 이들 공연의 잼을 구성하였다. 플루트 계열 악기를 앰비언트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최근 스트레치 프로모에서 공연한 teh sun과도 비교해볼 수 있다. teh sun이 앞서 언급한 70년대 뉴에이지에 가까운 앰비언트를 선보이는 반면, Doomkat은 불협화음적인 드론 음악에 가깝기 때문이다. teh sun이 실제 플루트 소리에서 모듈레이션을 이끌어내는 방식과 달리, Doomkat의 소리는 더 거칠고 음침하면서도 어딘가 기이한 귀여움을 머금고 있다.
최근 살라만다, HWI, 사이먼 프랭크와 시드 프랭크가 모래내 극락에서 함께한 【돌진 / 突進】이나, ACS에서 영다이, KJP91, 고담 등이 펼쳤던 【LOW TIDE】처럼, 서울 곳곳에서 전자음악 공연이 활발히 열리고 있다.
드론 음악의 창시자 격인 라 몬테 영은 정적인 드론 사운드에서 청자들을 시간과 방향성을 초월한, 고양된 현존과 자각의 상태로 이끌고자 했다. 그는 가변적인 주파수와 지속음의 실험을 통해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그로부터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열리는 실험 음악 공연들은 그 시도를 잇고 있다. 전자음악이 미래주의를 잃기 전에 향하고 있던 것. 그리고 뉴에이지가 만나지 못했던 것. 여전히 유령을 찾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