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잔 하실래요?
WEBZINE
WEDITOR   엄동욱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맥주 한 잔 하실래요?' 한국어는 평생을 써왔지만 참 어렵다. 이 질문의 속뜻은 무엇일까? 저 사람이 정말 맥주를 나와 한잔하고 싶은 걸까, 단지 아직 낮이어서 맥주 대신 시켰을 뿐인 커피가 맛이 없었던 걸 돌려 말하는 걸까, 인터뷰 같지도 않은 이 대화의 틈새가 어색해서 헛나온 말일까, 자기가 가게 사장님을 잘 안다고 말하려는 걸까.




또 말을 듣고 대답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나는 기자고 상대는 배우님이기 때문에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므로 좋아요'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니면 대낮부터 초면인 사람 앞에서 얼굴이 빨개질 수는 없으니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멋쩍게 손사래를 쳐야 할지. 그런데 질문과 대답보다도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 내 마음이다. 나는 대낮부터 맥주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나는 나의 그러한 선호를 초면인 사람에게 밝히기를 꺼리지 않는가? 또 나는 거절할 때 손사래를 치지 않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가? 거짓말할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봤던가?

결국 문제는 두 가지. 내 진심을 아는 것이 우선 문제요, 그리고 그 진심을 표현하는 것도 문제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진심을 알아가는 방법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그렇기에 차라리 서투른 말을 꺼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대낮의 카페 구석에 앉은 <그녀가 돌아온 날(2026)>의 두 여자도 마찬가지다. 양식적인 제스처와 엇비슷하게 반복되는 주고받는 말들. '아름다우세요’, '좋았어요'와 같은 별 의미 없는 말들이 반복되고, 맥주는 시킬 듯 말 듯, 이혼 얘기도 꺼낼 듯 말 듯 하다.

영화 내내 거의 움직이지도 바뀌지도 않는 화면은 뒷배경이 거의 날아갈 정도로 과노출된 흑백 화면인데, 이 화면 안에서 두 사람이 내뱉는 말들은 그림자가 들지 않아 도망칠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가 강하게 비쳐 더 밝아 보이는 흰 기둥과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창밖 나뭇가지들. 이 과잉된 풍경들과 대낮의 해가 두 여자를 쨍하게 비추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시선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기를 보는 자기의 시선과 앞 사람의 시선도 모자라, 두 사람 사이에서 은밀하게 대화를 엿듣는 녹음기(아마도 잠재적인 독자 혹은 관객이 될)와 어디선가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감독(영화 속 등장인물인 감독과 실제 영화 바깥의 감독 둘다를 가리키는 말이다)이 있다.

인터뷰라는 매우 평범한 형식을 띄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온갖 생각들을 곱씹고 말들을 잘 포장해서 입 밖으로 겨우 꺼내본다. 하지만 말해야 하는 자와 캐묻고 들어야 하는 자 모두 찝찝하게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세 번의 인터뷰가 지나가고, 이제 연기 수업을 들어야 하는 밤의 시간 되자 화면은 촬영을 잘못했나 싶을 정도로 노이즈 낀 화질 깨진 화면으로 넘어가 버린다. 낮 동안 자기가 뱉고 들은 말들이 찌꺼기처럼 다시 모여 또 한 번의 혼란스러운 대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까.



홍상수는 최근 들어 여러 형식적 실험들을 감행해 왔다. <소설가의 영화(2021)>의 결말 부분에서 홈 무비 같은 푸티지를 삽입하는 흑백-컬러의 전환이라든가. <물안에서(2023)>와 <그 자연이 내게 뭐라고 하니(2025)>에서의 아웃 포커스와 흐릿한 질감들.


이번에는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화면의 질감을 다룬다. 낮은 깔끔하지만 너무 과잉되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 화면이고, 밤은 노이즈가 너무 껴서 잘 보이지 않는 화면이다. 이 실험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진실은, 잘 알 수 있다고 믿어 왔던 내 진심의 덩어리들이 종국에는 낮과 밤 그 어느 시간대에서도 온전한 형상으로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심은 가끔 자기 자신을 너무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어 과잉되고, 때로는 가심과 끈적하게 착종되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이 둘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작은 후회와 함께 담배를 태워대는 것뿐이겠다.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연기 수업이 끝난 깊은 밤이 되자, 낮에 자신이 거듭했던 이 질문은 역으로 배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이때 그녀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녀는 너무 좋다고 말하다가 잠시 뭔가가 떠오른 듯 죄송하다고 말한다. 찰나의 순간 동안 마음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전형적인 한국인의 완곡한 거절법일까. 집에 정말 어린 딸이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가봐야 했을까, 낮에 했던 인터뷰들에 기가 빨려서 침대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걸까, 강사가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는 말이 당최 이해가 안 돼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끝까지 그녀는 자기의 마음도, 자기의 표현도 어찌할 줄 모른 채 골목길을 떠나버린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대본을 숙지한 채 빈손으로 스크린 앞에 서게 되었지만, 스크린 바깥에서는 매순간 자기가 직접 써 내려간 '진심 대본'을 출력해 손에 꼭 쥐고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