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손을 내려놓기
WEBZINE
WEDITOR   임채윤



1.
질문에 자신 있게 두 손을 다 들었지만, 지목을 받지 못한 그런 상황이라고 하자. 다시 두 손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방법이 없을까?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척을 하거나… 그런데 어쩐지 천천히 내려놓아도 이상하고 너무 툭 떨궈도 어색하다. 움직임의 속도나 궤적 따위를 한번 의식하게 되면 끝까지 자연스럽게 완수해야 할 것 같던데, 한 번도 만족스럽게 그래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몸짓을 유려하게 취해야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고 앞으로 그런 일이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숙련된 동작을 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입스’라고도 불리는, 운동 기억의 오작동이 은퇴와도 직결되는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당장의 점수와 실적도 문제지만, 그 원인인 스트레스와 완벽주의 성향을 추스르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어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게다가 그것은 어느 틈에든 재발할 수 있다고들 한다. 나는 잘은 모르지만 단번의 신체 운동으로 평가받는 일을 가능한 한 멀리하려 노력해 왔고,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무대에 올라야 하는 일은 종종 부지불식간에 찾아오곤 했다. 언젠가 학교 옆을 지나다 중학생들이 담 너머로 공을 되던져달라는 요청을 해 왔을 때가 정확히 그랬다. 돌아보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무리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공을 그대로 1m 앞의 바닥을 향해 내리꽂고 말았다. 팔을 한 바퀴 크게…

이런 곤경은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는 한 동작을 여러 번 시도해 볼 수 있는 배우들도 그렇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에 출연해 아마 평생까진 아니어도 꽤 긴 시간을 따라다닐 오점을 남겼다. 그가 연기한 테러리스트 탈리아 알 굴은 마지막 순간에 배트맨 앞에서 대사를 읊다가(“아버지의 임무는 끝났다”),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숨을 내쉬며/눈을 감으며/고개를 떨군다. 그 아이코닉한 죽음 연기가 큰 파장을 일으키자 4년 뒤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가끔 실수를 할 때도 있잖아요. 거기서 제가 실수를 한 거죠. 때로는 실패가 있기에 마련이니까요. 근데 그 장면을 보면 ‘왜? 왜 하필 저 장면을 그대로 썼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물론 누굴 탓할 수는 없죠. 그래도 그렇지 장면 하나로 알려지는 건 참…”



사람들 말처럼, 제일 나쁜 건 그 컷을 고른 감독인지도 모른다. 그치만 단번에 숨을 내쉬고/눈을 감고/고개를 떨군다는 종합적인 행동이 과연 다른 컷에서라고 다르게 나타났을까? 거기엔 내맡김 이상의 어떤 의식적인 결심이 필요해 보인다. 정말이지 그것은 팔을 내지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결단을 요구한다. 몸에 든 힘을 언제 어느 순서로 풀 것인지? 내가 봤을 때 마리옹 꼬띠아르는 지나치게 정확한 순간에 동시적으로 온몸의 힘을 그것도 너무 빨리 풀었다. 눈꺼풀과 고개와 폐에 들어간 긴장을 동시에 꺼트리며… 마치 시동이 꺼지는 것처럼…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그렇게 죽는 것은 뭔가 한 인간으로서 잘못된 것처럼 보였고, 몸의 힘을 적절한 방식으로 푸는 것이 사람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이 아주 우습게 보이기 십상인 것 같았다. 물론 몸의 힘이 신기하게 풀어진 사람을 보는 것도 그 나름대로 즐거운 구석이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본 Matthew McCreary의 춤이 그렇고, 비디오게임 래그돌의 변천사 같은 것도 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2010년즈음 GTA IV 같은 게임에 적용된 초기 유포리아 엔진의 래그돌이 넘어지는 모습은 십여 년의 시차를 두고 슬랩스틱 비슷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게임의 출시 연도와 장르에 따라 래그돌이 힘을 푸는 방식도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몸을 축 늘어뜨리기 전에 취하는 선행 행동이나 힘이 풀어진 뒤에 몸이 경직된 정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완의 관습이나 제약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요소들은 특유의 장르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 한편 그것이 충족시켜야 할 중요한 조건은, 너무 진짜 같은 신체 이완 묘사를 어느 정도는 피하면서도 그것을 상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게임이 일정한 행위 형식 바깥에서 자칫 무너져버릴 수 있는 그런 내용이라면—또한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아주 실리적인 이유에서—거기엔 어떤 필수적 허구가 개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종의 관습을 따라 방지턱 없이 수용되는 이완 동작이 있는가 하면, 힘을 푸는 속도와 타이밍을 다소 변주하거나 역으로 너무 뭘 건들지 않아서 남에게 웃음이나 불쾌감을 주는… 그런 선택지가 있다. 여기엔 어떤 실질적인 위계도 없다. 그리고 내 생각에 왠지 놀란이라면 마리옹 꼬띠아르의 죽음 연기를 꽤나 좋아했을 것 같다……

(그의 영화에서 (다 본 건 아니지만…) 마술, 책략, 꿈의 일부로 교환되지 않는 개별 죽음이 갖는 위상은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일처럼 사소하게 보인다. 인물의 서사적 도구성이랄지 자주 지적되어 온 놀란 영화의 특징은 인물 장치의 전원이 꺼지는 순간,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가장 두드러지는바… 그들은 정말로 기계 장치를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자신감 있게 든 손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해선 아직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도 아직 알아가고 있는 문제이고,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계속 알아가다 보면 언젠가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에 그런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요령이 없는 채로 이 이상 무슨 얘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우회로를 찾는 게 좋겠다. 차라리 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두 손을 아예 숨겨버리면 어떨까? 양 귀를 어루만진다거나, 잊은 게 있다는 듯 가방을 열어본다거나… 원래 그렇게 하려던 것처럼 시늉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뇌리에 스친 것은 조금 다른 것이다. 그건 바로 권격 영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왕우 감독의 <용호의 결투(1970)>다…



줄거리: 중국 국술을 수련하는 한 도장에 원한에 사로잡힌 조이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가라테에 능한 일본 무도가들과 함께 도장을 초토화시키고 사부와 제자들을 모조리 죽인다. 살아남은 수제자, 레이 밍은 사부로부터 전수받은 가라테 상대법—a)철사장과 b)경공을 홀로 연마하며 복수를 준비하는데…



a. 철사장



생존자 레이 밍이 텅 빈 두




b. 경공



경공은 몸을 가볍게 만들어 높이 뛰어오르는 무공이다. 레이 밍은 납주머니를 달고 높이뛰기 연습을 하면서 그것을 연마한다. 그런데 뛰어오르는 도중에 머무르는 공중이란 공간은 자신을 한없이 취약한 상태에 내맡겨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움직임의 궤도를 도중에 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공중에서 겹칠 때 관객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는 멀쩡히 착지하고, 다른 하나는 큰 상처를 입어 내려온다. 여기서 무슨 물리적인 공수가 이뤄진다기보다는, 마치 뛰어오른 순간에 이미 승부가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술 사부와 가라테 일인자의 한판 승부도 공중에서 판가름 난다. 그런 의미에서 공중은 단도직입의 공간… 단숨에 미래를 탈취해내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며, 수련을 마친 레이 밍은 얼른 끝장을 내고 싶어 조바심이 난 것처럼 때를 가리지 않고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우리로서는 그가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다만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인데, 그의 비약에서 이미 그가 내려오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