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여로 작가와의 대화
아마추어리즘, 영화, 옷과책
아마추어리즘, 영화, 옷과책
대화자: 고혁민, 김민솔, 이여로, 임채윤
8월 초, 이여로 작가와 매거진 너드가 ‘옷과책’에서 나눈 대화.
스스로를 ‘비평적 아마추어’라 소개하는 이여로 작가는 미술 평론과 번역, 글쓰기, 독립 출판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작년부터는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옷과책’ 공간에 ‘읽는 사람’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는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처음으로 텍스트 페어를 준비하던 우리는 많은 질문을 품고 옷과책을 찾았다. 그리고 영화 작가 요나스 메카스, 아마추어리즘, 미국 실험 영화, 인스타 매거진 등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가 떠올리는 아마추어리즘을 꺼내놓은 채, 끊어내고, 밀어붙이고, 가능한 한 멀리 날려보내면서.
‘옷과책’ 운영 및 출판,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단행본 집필 등 꽤나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요새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지, 그리고 본인이 속한 사회 공간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계시는지 간단하게 듣고 싶습니다.
처음에 옷과책 ‘director’라고 자기소개를 적었어요. 관습적으로 적은 건데, 운영자나 기획자라고 말하기 어색하더라구요. 내가 이곳에서 스스로 느끼는 감각을 더 좇아가면서, ‘reader’라고 적기도 했고요. ‘leader’가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읽기가 쓰기이고 쓰기가 읽기이지만, 어느 쪽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면, 지금은 독자성을 말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요.
요새는 ‘carer’ 라고 적고 있어요. 돌봄이라는 말이 지금 시기의 삶을 많이 이해시켜주더라구요. 질문에서 언급해 주신 것들이 다양한 범위의 돌봄인 것 같아요. 옷과책을 통해 텍스트를 소개하고, 행사를 꾸리고, 방문하는 친구들과 교류하는 일도 돌봄의 감각이 강하네요. 청소를 한다든가 운동을 한다든가,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 붙들고서 보고 읽고 쓰는 일은, 자신에 대한 돌봄 같구요. 예술계 성폭력 반대 운동, 작가노조, 얼마 전에는 예술인권리보장법 개정을 위한 인터뷰를 하러 국회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이런 활동들은 좀 더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돌봄이겠죠. 세상이나 생태계에 관한 것이라고 할까.
글쓰기를 통해 이론을 만들고, 출판으로 땅에 발을 딛고, 옷과책을 통해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추상적 세상이 구체적 세계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1. 아마추어리즘
『아마추어리즘』 단행본 제작은 계획대로 잘 진행이 되고 있나요? 혼자 집필하시는 게 아닌 거로 알고 있습니다. 공동 집필의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계획한 타임라인보다 훨씬 미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본인이 그 책을 내놓는 때가 항상 최선인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에서 집필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틈틈이 확보하려는데 어렵네요. 집안일만 해도 하루가 다 가죠. 새벽에 독서모임 하시는 어머님들 생각을 종종 합니다. 각자의 생활은 그 자체로 충만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때로는 바깥에 서는 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것을 매일 조금씩 만들고, 그 순간들이 쌓여 책으로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추어리즘을 이론, 나, 공동체 세 단위에서 포괄하고, 다른 두 글은 한국 포크 음악의 아마추어리즘, 그리고 실험영화에서 시작해 창조성에 내재한 아마추어리즘을 다뤄요.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나오지 않을까…
「아마추어리즘의 사회, 그리고 예술」과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2.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등 많은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아마추어리즘에 대해 이야기해 오셨어요. 그래서 아마추어리즘으로 새로운 단행본을 만드신다고 들었을 때 이전 논의에서 다루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의 어떤 면을 새로 발견하고 싶으신지 궁금했습니다.
문화예술 분야의 당사자 경험, 주로 제도와 맺는 부정적 관계에서 시작해, 과거의 제도비판을 딛고 자기이론을 만들면서,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아마추어리즘 같은데요. 군데군데 남긴 글들 역시 자기예언적이었죠. 근거가 있어서 주장하기보다 주장하고 자기 근거를 만드는 방향이요. 이후 예술 창작과 비평을 병행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요소들로 자신을 생성할 것인가”라는 자기생성체계를 이론화하고 예시할 필요가 있었는데, 하다 보니 문화예술에 한정된 논의가 아니더라고요.
프로/아마와 같은 이분법적 관계가 남성/여성, 이성애/퀴어, 수도/지방, 식민지/피식민지 같은 온갖 관계와 언어를 공유하다 보니, ‘어떻게 식민주의적 언어를 해체할 것인가’라는 주제까지 넘어왔습니다. 이게 1부 이론편이면, 2부에서는 제 고루한 삶을 다시 해석해서 사회에 빼앗긴 시간을 찾아오는 게 목표이고요. 3부에서는 그렇게 만들게 된 옷과책에서 어떻게 아마추어리즘을 나누고 있는지 남기려고 합니다.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하나의 단행본을 계획 중일 정도로 집중하고 계신데, 그 계기가 있을까요? 어떤 구체적인 자격 조건을 염두에 두지 않고 텍스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적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한 생각의 계기, 그리고 그렇게 시작할 당시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한테는 한국 사회의 생애주기 압력에서 처음 벗어나는 일이었어요. 생애주기는 현대 사회의 행위자가 스스로를 이해하게끔 주어진 인식 틀인데, 교육-노동-결혼-은퇴 같은 블록의 이행 유무로 삶의 의미나 정상성이 부여되죠. 한국 남성은 군대도 있겠네요. 하라는 대로 그걸 잘 이행해도, 공허하고 괴로웠어요. 철학이라는 순수하고 거대한 학문을 전공하면 그것이 해결될까 싶었지만, 그것을 내 삶과 연결짓지 못하니 바깥의 의미가 커지고 여전히 내면은 비어 갔고요.
그러다 졸업학년이 다가왔고, 다음 주기인 취업이 눈 앞에 보일 때,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때 처음 정규직 취업도, 도피성 대학원 진학도 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하지 않겠다’는 부정의 힘을 발휘하니까, 오히려 의미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손에 닿는 우연한 일들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집에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꺼내 읽다 보니 번역이 어색해 ‘직접 번역해 볼까’ 싶어 번역을 했고, 번역 원고를 출간할 방법이 없으니 ‘직접 출판해볼까’ 싶어 출판을 했죠.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이었고, 그때 처음 프로페셔널리즘이 제 안에서 극복되었어요. 기존 역자들도 다 어디 교수님이고 전공자인데, 왜 이렇게 누락이나 오역이 많을까? 자격 제도는 그런 퀄리티를 보장하려고 만든 게 아니었나? 역자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빠른 시간 내에 마감을 쳐내야 하고 번역은 학술계의 점수로 쳐주지 않으니 충분한 시간을 들이기 어려운 구조라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국에 나온 모든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아주 짧은 단편 하나를 세 달에 걸쳐 번역해 보니, 텍스트의 가치나 인증은 바깥에서 구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진다는 걸 경험했어요. 그리고 이 가치를 혼자 독단적으로 확신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독자, 타자, 동료들로부터 이해받아야 확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가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당시 출판, 해적번역, 웹진, 블로깅을 하면서 문학계와 미술계에 연결되었는데, 예술이 사회적 자율성을 대표하는 분과이지만 행위자들은 예술계의 제도적 승인을 또 다른 생애주기로 강하게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등단이라든가, 주요하다고 간주되는 공간이나 기획에 참여한다든가. 내가 그걸 안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일인데, 여기와서 또 같은 짓을 해야 하나? 비평을 하면 비평가지, 비평가로 등단해야 비평가가 되는 건가? 그때 당시에 혹자는 ‘아마추어 비평가’ 같은 말도 사용했던 것 같은데, 그건 뭐랄까 ‘준하다’는 의미잖아요. 평론을 쓰지만 제도에서 인증을 못 받았다는 의미고요. 등단하면 아마추어를 떼고 ‘비평가’라고 적겠죠. 뒤집어서 저는 ‘비평적 아마추어를 지향한다’고 썼어요. 아마추어가 프로로 전환되는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것은 아닐까? 수식어가 아니라 주어의 자리에 오면 안 될까? 그걸로 뭘 추구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 좋아 보이는 곳에 나도 끼고 싶은 욕망이 짜증 났던지라, 이제는 내가 있는 곳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키우려고 했어요. 이러한 관점 자체가 비평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아마추어 비평가가 아니라 비평적 아마추어라고 표현하신 부분, 그리고 한국인의 어떤 생애주기 관련해서 얘기해 주신 게 정말 재밌네요. 이게 비단 한국인 일반에 관한 게 아니라 글 쓰는 사람들, 넓은 의미에서 문예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약간 어떤 생애주기 같은 게 있잖아요. 때가 되면 공모전이나 문예지를 통해서 등단을 해야 한다는 인식 같은 거요. 그런데 작가님의 글을 읽었을 때 흥미로웠던 게 처음에 딱히 공모전을 염두에 둔 적도 없었고 생애주기와 관련된 어떠한 자격 조건들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쓰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으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동력의 절반은 저에게 있었고 절반은 환경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혼자 힘으로 가능했던 일은 절대 아니었어요. 당시 비슷한 종류의 제도적 불만을 구심력 삼아 네이버 블로그상에 한국의 블로그스피어가 구성되었는데, 그때 서로가 서로의 활동을 대단하다고 여겨 주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날벌레가 불빛을 쫓듯 사람도 자기가 좋다고 느끼는 걸 좇게 되잖아요. 그런데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게 저 멀리에 있는 게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 이웃새글에 있는 거죠. 그때의 블로그가 제게는 문예지이자 영화 잡지였던 셈이죠. 누구는 시를 올리고, 누구는 평론을 올리니 굳이 돈 주고 잡지를 사 볼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어요.
단순히 ‘글이 좋아서’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것들이 ‘어디 넣었다가 떨어져서’ 올라오는 게 아니라, ‘내가 왜 거기에 목을 매달아? 나는 블로그가 좋은데?’ 라는 느낌으로 처음부터 블로그라는 매체를 독립적으로 여기고 올라왔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의 전환이 가능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혁명적이었죠.
그래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말은 참 묘하게도 누가 처음 썼는지 주인이 없어요.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 행사에서도 아마추어리즘을 이야기할 때 ‘이 말을 어떻게 접했냐’는 질문이 있었거든요. 저는 “A씨가 쓰는 걸 보고 썼다”고 답했는데 A는 또다시 “저는 이여로 씨가 쓰길래 썼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이 말이 말하는 주체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유통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그 당시에 블로그 스피어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네요.
작은 디테일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누가 이 블로그를 방문했는지 볼 수 있는 리스트 기능이 있었는데, 그걸 타고 타고 가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가령 인스타 스토리를 누가 보았는지 다 같이 보는 거죠. 그런 작은 것들로 각자의 머릿속에 가상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어요.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개념이 2020년대 초반과 2026년인 지금 어떻게 다르게 활용되는지 비교해 봐도 재밌을 것 같아요. 예전의 블로그스피어와 지금의 형태가 달라지게 된 원인에는 인스타 플랫폼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스타라는 너무나도 가시적인 영향력이 큰 플랫폼이 등장해 버리니 여기서 어떻게든 셀프 어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죠. 그래서 인스타가 어떻게 보면 모두가 프로가 되고 싶어 하는 플랫폼인데 관점을 살짝 돌리면 그 과정 속에서 아마추어리즘이 발현되는 플랫폼이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이걸 저희(매거진 너드)한테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도 자격 없이 작성한 글을 사람들한테 어필하고 싶어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마추어리즘적인 모습이 발현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90년대생과 2000년대생에게 한국이라는 조건이 다를 것 같아요. 90년대생의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죠. 국가 주도의 중앙집중화로 경쟁력을 생산하고, 그 경쟁 체제는 청년들에게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강박적으로 주입하고, 그러다 보니 기성 제도 바깥의 상상을 하기가 어려웠죠.
그 중앙에 어떻게든 들어가 한 자리를 잡아야 먹고산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저희 세대도 사실 민주화된 정부에서 나고 자랐고, 복지국가화되던 참이어서, 그런 두려움이 강제된 측면도 있어요. 그러니 머리로 불만이 생기고, 비판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비판은 엄격하게는 철학적 용어지만 일상적 의미에서는 ‘A’에 대해 ‘not A’를 말하는 거잖아요. 근데 비판의 한계는 다른 긍정형의 표상을 주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B, C, D, E, F’가 늘어나야지 ‘A’가 아닌 다른 걸 할 수 있는 건데 ‘A에 문제가 있어’라는 것만 반복하면 부정적인 방식으로 종속되는 경향이 있죠. 말씀처럼 인스타 매거진도 엑싯하려고 만든 것들도 있겠지만, 스스로의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이고 이게 특출난 한두 명의 활동이 아니라 어느 정도 보편화된 것 같아요.
예전에 ‘수건과화환’에서 텍스트 페어가 열렸을 때 방문했었는데, 다양한 필자들의 글이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그중에선 인스타 매거진을 하시는 분들의 텍스트, 대담록도 페어에 전시가 되어 있었어요. 거기서 다뤄지는 내용 중에서 인스타 매거진이라는 워딩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거를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전까지는 인스타 매거진이라는 라벨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껴 본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그 글을 읽고 나서부터 이런 이름을 이제 쓰면 안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 후에 다른 블로그 이웃의 글에서 ‘매거진 너드라는 인스타 매거진에서~’라는 말을 볼 때 드는 느낌도 좀 달라졌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인스타 매거진이라는 어떤 시스템에 대해 검토하는 것도 좋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데, 그것을 잘 말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큰 스피커로서 시스템 비판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저처럼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하나의 매체가 일반적 위치를 전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비판을 할 때 내가 전지적인 관점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내 입장을 피력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했어요. 해당 페어에 참여하시기도 했으니까요.
예전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THINK GLOBAL, ACT LOCAL”을 표어로 단체를 만드셨는데, 찾아보니 풀뿌리 운동에서 나온 말이더라고요. 저에게도 이 말이 중요한 기준이었어요. 아는 건 중요하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고요. 근데 내가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도 마치 모르는 듯이 행동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나스 메카스가 동료들 작업을 비평하고 좋음을 말할 때 누군가는 순진하다고 비판했지만, 그 순진성은 의도된 거고 미학적 목표인 거죠. 오히려 그것을 순진하다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그야말로 순진한 거고요.
아마추어리즘과 ‘퀄리티’의 문제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까 해 주신 얘기 중에서 ‘다른 분들의 블로그 글들을 봤을 때 그게 너무 좋게 다가왔다’고 해 주셨는데요, 그 글들이 기성 글보다 실제로 더 좋은 글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마추어리즘과 ‘퀄리티’에 관한 부분이 양립할 수 있을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마추어리즘은 퀄리티 개념을 대체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이 말이 조금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네요. 저를 비롯해 당시 블로그에서 글을 쓰던 분들은 제도적 기준에서도 눈에 띄었기 때문에 미술관이나 문예지 등 여러 장소에서 활동할 수 있었거든요. 그럼 ‘너희도 사실 프로페셔널했던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동일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옳고 그름의 진리 게임이 아니라 이견을 낳으며 다음을 이어가느냐의 문제겠죠.
제작의 관점에서 퀄리티는 높은 기술적 완성도나 깔끔한 마감을 뜻하겠지만, 일상적 의미에서는 결국 ‘좋다/나쁘다’ 중 ‘좋음’의 판단일 거예요. 아마추어리즘으로 고민했던 지점은 바로 그 가치 판단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였는데요. 가치란 결국 ‘내가 그것을 계속 따르고 싶게 만드는 행동’으로 정의되는데,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저희 역시 기성의 지식을 학습하며 불만을 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서구 남성 중심의 이론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기성의 기준에서도 충족되는 측면이 있었던 거겠죠.
독자적 기준을 집단적으로 이어간다면, 고유한 가치 기준이 만들어지죠. 가령 독립적인 활동들을 앞에 두고 ‘기대하고 가 봤더니 별로더라’고 말하는 것 역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타인의 가치 체계를 읽어 낼 기준이 본인에게 부재하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그것을 감지할 의지도 없는 거고요.
왜 우리는 개인의 판단을 굳이 유사 객관성으로 위장하려 할까요?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1976)〉 중에 나무를 비추며 ‘트리, 트리, 트리(Tree, tree, tree)’라고 하이쿠를 읊는 장면이 나와요. 5-7-5 음수율도 맞지 않아 겉보기엔 말장난 같지만, 메카스는 여기에 ‘바보가 쓴 하이쿠’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그 단순한 명명 하나로 기존 하이쿠의 기준을 비껴가며 독자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훌륭한 시가 되는 거죠.
프로페셔널리즘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공통 기준을 능숙하게 수행하는 일이라면, 아마추어리즘은 그 바깥에서 새로운 기준을 늘려 나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바보가 쓴 하이쿠’라는 이름을 붙이듯 아주 단순한 조작으로도 가능해요. 대만의 작가 장원쉬안이 전 세계의 출판 운동을 인터뷰한 책 엑스퍼츠 온 페이퍼(Experts on Paper)에서 페루의 진(Zine) 메이커를 인터뷰한 대목이 떠오르네요. ‘고양이나 일상 이야기만 하는 독립출판에 무슨 미학적 가치가 있냐’는 비판적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해요. ‘언젠가 세상이 변해 이런 일상성이 사라졌을 때, 이 출판물들은 과거의 잃어버린 일상을 증언하는 귀중한 가치가 될 수도 있다’라고요.
결국 텍스트의 가치는 어떤 해석 코드를 투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작업을 손쉽게별로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 그것을 해석할 코드가 없음을 뜻할 뿐입니다. 그러니 대안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기성의 기준을 버리지 않는 보수적 태도일 때도 많아요. 타인의 기준과 선택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설령 지금 온전한 모양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스스로의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게 과제일 뿐입니다.
한 분야의 아마추어가 아마추어리즘을 긍정하는 것이 타인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어떤 면에서 아마추어리즘은 전문가됨을 경유하여 주장할 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요? 주체적인 아마추어리즘과 타자화된 아마추어리즘 사이의 관계에 대 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한편, 프로가 도전적·실험적 태도 없이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얄미웠습니다.)
아마추어리즘으로 저는 전문성과 전문가성을 분리해요. 전문성 개념이 ‘전문가’라는 사회적 인증에 귀속될 때, 각자의 전문성을 말하기 위해 아마추어리즘이 필요했고, 그게 타자화된 아마추어리즘에서 주체적 아마추어리즘으로 이행하는 과정이었겠죠. 어떤 이야기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기제는 매혹인데, 아마추어리즘을 말했던 사람들 각자의 매력과 전문성이 있었고, 그것이 기존 제도의 영역과 겹치거나 아니거나 하면서 활동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인 부분도 있고 반대로 의문시한 부분도 있죠. 그렇게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별 하는 기준들이 무효해질 때까지, 둘 사이를 계속 왕복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그걸 수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을 알고 있더라도) 사실은 자기 일을 할 뿐일 테고요.
어떤 것을 좋아할 때, 아마추어의 시간을 마무리 짓고 전문가로서의 시간에 얼른 입회하기를 바라는 충동이 있습니다. 간혹 어떤 취향의 지속 가능성이 ‘그것을 이어가기에 적합한 직업’과 동치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입회’나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바라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욕망은 남의 것으로 시작해 나의 것이 되어 가는데, 그러려면 그 분야 에서 실질적인 일들을 해 봐야 하는데, 제도화가 강한 분야일수록 자격 등으로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들죠. 그러니까 두 번의 실망이 생겨요. 입회를 못 하는 실망, 입회하면 뭔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네? 라는 깨달음의 실망.
그 욕망은 뭘까요? 돈이라는 물질적 보상과 인정이라는 정신적 보상을 기대하기 쉬운데, 만약 그게 될 만큼 제도가 건강하고 풍족하다면 좋겠지만 대체로 아니죠. 그러니까 지망생이고 그 지망생이 대단하게 바라보는 작가고 선생님이고 다들 인정에 목말라서, 남에게 주기보다 자기가 못 받았다고 생각하기 쉬운 환경이고요.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자기를 조직화하기에 충분하다는 관점을 갖지 못하고, 그것을 구체적 타인과의 상호 인정이 아니라 상징 체계로부터 ‘보상’의 형태로 받고자 할 때부터, 삶이 틀어지는 것 같습니다. 굳이 보상이라면 스탠 브래키지의 말을 빌려 “내가 [영화로부터] 받은 보상은 무언가를 더 보게 된 것”이지 다른 것은 아니죠.
블로그 글 「“문학의 도살장” 같은 것은 없다 (…)」 중 “평론을 써서 평론가가 아니라 평론가 등단을 해야 평론가라고 가스라이팅당한 지망생 여러분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20대 평론가 지망생은 아마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한편으로 는 등단만이 조건이라는 믿음이, 등단을 실제로도 유일한 조건으로 굳히는 것은 아닐까 싶은데요. 고착화된 상황 속에서 제도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가며 비평하는 생활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매거진 너드의 활동이 저에게는 그렇게 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때보다 이런 활동이 가능한 시절이지 않을까. 가령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모든 지능은 평등하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그럼 증명해 보라고 대꾸하거든요. 랑시에르는 이렇게 말해요. 증명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가정함으로써 우리 가 무엇을 하게 되는지가 문제라고요. 그리고 그 가능성은 반대 주장(제도 밖에서는 활동할 수 없다)에 대한 단 하나의 반박, 즉 그렇게 활동하는 단 한 명의 사람을 발견한다거나, 그런 경험을 했던 스스로의 단 한 순간으로도 열리는 것이죠.
스스로 제도를 만들고 다른 이의 제도와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거대하고 조작 불가능한 인프라나 대상으로만 이해하면, 그걸 국소적이고 긴 시간 동안 자기 범위에서 조작해 가고 있는 타인들의 활동이 안 보이는 거죠. 생활의 차원에서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내부자라고 쉽게 떠올려지는 사람들 대부분도 사실은 행사나 교육 등 유관 분야의 일로 돈을 벌고, 충족될 수 없는 인정 욕구를 갖고 부유하는 모습도 자주 보게 돼요. 생활은 어디에서나 스스로 조직해야만 하는 문제이죠.
비제도권과 제도권이라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위치를 모색하고 계신가요?
그러니까 제도가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을 우리가 서로에게 주기 시작하면, 그것이 제도 만들기겠죠. 하지만 실질적인 자본의 격차라든가, 그런 몇몇 지표들이 강한 제도와 약한 제도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이제 저는 비제도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아요. 그래도 굳이 처신이라는 말로 생각해 보면, 왜 우리가 같이 일해야 하는지, 내가 어떤 이유로 필요한지, 지금까지의 작업과 맥락을 상호 이해할 때에만 같이하고 있어요.
그 상대가 때로는 관이나 재단의 담당자인 것이고, 때로는 개인인 것이고, 때로는 표준적인 보수가 책정된 일이고, 때로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일이기도 하죠.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보다 우선이고, 그 사람의 지금보다 그 사람이 보는 곳을 같이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영화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를 번역하셨습니다. 왜 하필 요나스 메카스였고, 그중에서도 이 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요나스 메카스의 많고 많은 텍스트 중에서도 대화집에 가까운 이 책을 번역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 책 역시 제임스 조이스 번역처럼 제가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고, 미디어버스 측에서 제안을 주셨죠. 제가 해 오던 활동의 맥락을 보시고, 요나스 메카스의 궤적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며 제안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미디어버스 역시 제도적 자격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유한 연결을 만들어 가는 곳이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 등을 통해 메카스의 작품이 유통되었는데, 언급되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겠다고 생각해 번역하게 되었어요.
영화 작가에 대한 책이라고 하면 흔히 비평을 묶어낸 평론집 형태를 먼저 떠올리기 쉽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시점 자체가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요나스 메카스를 비평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가 직접 동료들을 인터뷰하는 ‘질문자’로서 등장하니까요. 그러한 시점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하신 데에도 그런 지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비평이나 창작이 특정한 매체에 묶여 있지 않다는 걸 삶으로 보여준 분이고, 매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말씀처럼 비평이 줄글로 쓴 평론에 국한되지 않고, 인터뷰를 하는 행위 자체도 비평이고, 때로는 창작 행위가 즉각적으로 비평이 되기도 하죠.
메카스의 일대기를 보면, 처음에는 난민 커뮤니티를 기록하려고 카메라를 샀다가 〈Guns of the Trees (1962)〉 라는 장편영화를 찍게 돼요. 이후에는 영화 작가 협동조합이나 시네마테크 운동 같은 ‘환경’을 만드는 일에 더 몰두하게 되죠. 장편영화는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을 모으고, 자본을 마련하느라 골몰할 수밖에 없는데, 메카스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환경을 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선택한 거고요. 그래서 매일 사람들을 만날 때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서 몇 초씩 찍고, 그런 파편들이 몇십 년 쌓여 만들어진 것이 일기 영화라는 형식인데, 역자의 말에서 그것을 영화의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제가 지금 ‘옷과책’을 운영하는 일 역시 ‘이여로’라는 개인의 저자성은 점점 옅어지는 방향이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무언가 잃어버리는 과정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타인의 글을 내 글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니 제게는 훨씬 더 큰 기쁨이 되었어요. ‘내가 잊히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 대신요. 메카스의 삶이 그런 시점의 전환을 응원해 준 셈이죠.
메카스는 말년에 영화제에 초청받아도 ‘그럼 음악 공연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할 만큼, 사회가 씌워 둔 ‘공적’이라는 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분이었어요. ‘개인이 제도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친구가 제도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문답과 일화들로 가득 차 있는데요, 지금도 때때로 머리에 맴도는 부분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정 부분보다 비평이 인터뷰나 대담의 형태, 때로는 짧은 농담이나 안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경쾌함을 느꼈습니다. 꼽자면 213쪽부터 이어지는 “스탠 브리키지가 명예로운 예술가들에 대해, 영화 교육에 대해, 그리고 수많은 다른 주제들에 대해 말하다.”라는 연작에서 지금 우리가 나눈 모든 주제가 함축적으로 다뤄져서 추천합니다. 영화를 보는 일이 “문화적 인공물과 마주 앉아 내 걸 지키려면 저걸 비판해야겠다고 강박적으로 느끼는 일”이 아니라, “보기의 역사 전체와 관계 맺으면서 어떤 개인적인 보기를 갖고자” 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메카스는 시인이자 일기 영화의 작가로서 말과 글에 독특한 리듬과 파편성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때, 가장 신경 써서 붙잡고 싶었던 ‘메카스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오히려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이 메카스적인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문득 떠오르네요.
이 텍스트가 친구적이라는 사실을 신경 썼어요. 메카스가 “영화는 친구들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듯, 그런 관계성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심했습니다. 문어체와 경어체 사이 어딘가의 말투로 옮긴 이유도 그래서였고,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영어가 제1언어가 아니다 보니 좀 독특한 부분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한국인인 저에게는 더 친근하기도 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고유명사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 까다로웠어요. 국내 영화제 등에 한 번이라도 소개된 적이 있다면 당시 번역된 공식 제목이나 작가명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워낙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 번역이 활자화되어 출판물로 나오는 순간 이후의 중요한 참조점이 되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고 주변에 많이 물어보며 작업했습니다.
또 당시 작품들은 전부 필름으로 작업한 것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생소한 특수한 편집 기술이나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온라인을 아무리 뒤져봐도 필름 편집의 전체적인 맥락을 모르면 맥을 짚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역자의 말에도 적었듯이 ‘스페이스 셀’의 이장욱 님께 자문을 구하는 등 많은 분들께 여쭤보았는데, 다들 흔쾌히 도움을 주셨어요. 책 뒤편에 실린 감사의 글이 길어질 수밖에 없을 만큼, 동료들의 조력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6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영화들은 적지 않은 영화인들의 의심쩍은 눈길을 받기도 했고, 요나스 메카스는 그에 짐짓 공격적으로 대응한 면도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메카스가 되게 선하고 친절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또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당시 그의 움직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한편 누군가 소수적인 활동을 수행 할 때, 동시에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발적 혹은 전략적으로) 취하게 될 수 있는 공격성, 배타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아울러 작가님께서도 활동 초기에 기성의 권위적인 ‘선생님’들을 강하게 비판하셨다고 했는데, 비판과 협상, 혹은 전투의 경계에서 어떤 생각과 기준을 품고 임하셨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저도 의도치 않은 SNS 바이럴이 초반에 있었네요. 내가 답답하고 화나서 뱉은 말들인데, 그 공격성 또한 의도치 않게 공공화되어 다른 답답함과 분노를 대변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벽에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아 이뤄진 일들이라 생각도 기준도 없었고, 적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데 만나서 물어보시면 알려드릴게요…. 다만 언제까지 내가 무언가를 비판할 입장일까? 내가 비판을 받고 발판이 될 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런 감각을 가진 뒤로는 직접적인 비판을 중단한 것 같아요. A에 대하여 A가 잘못됐다고 말하기보다 B, C, D…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 같고요. 분노나 공격성을 어떻게 발휘할지에 대한 생각은, 아마추어리즘의 맥락보다 스스로의 성폭력 피해를 비롯해 미투 이후 예술계에서 활동하면서 더 고민했던 것 같아요. 막말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근데 다 죽이고 나도 죽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서, 동료를 만들 수밖에 없더라고요.
『주술회전』의 고죠 사토루 생각이 나네요. 공격성을 어떻게 공동체적 차원으로 승화시킬 것이냐, 폭력의 에너지를 보존한 채 어떻게 비파괴적이고 연결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것이냐, 그때 형식과 전략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 글에서 메카스 영화의 단순한 조작에 대한 생각이 흥미로웠는데요. 그의 이런 작업 방식에 흥미를 느끼신 이유가 있을까요? 거대한 제작비나 정교한 비평 대신, 아주 작은 에너지와 사소한 인쇄/메모 작업만으로도 예술적 텍스트를 생산해 내는 방식에 대해 어떠한 미학적 가능성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술을 통해 예술로부터 미학을 떼어 놓기 위함이라 할까요. 현대예술은 전문화된 사회적 분과로서 미학이나 창조성을 과잉대표하고 있기도 하죠. 예술가라는 직종이자 자아 정체성이 자리잡기도 했고요. 미학을 감각에 근거한 인식 체계라고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규범적인 사회적 판단 이전 혹은 이후를 가늠하게 해주고, 결국 각자의 삶을 각자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방식인데요. 메모라든가 낙서라든가 봉제라든가, 그런 시도가 대단한 걸작을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만든다’는 감각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자기조직화의 차원이 자신에게 열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단순한 차원의 미학적 조작과 사용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건 대체로 예술이라 불리기 이전의 일이네요.
해당 책의 역자의 말에서 아래의 구절이 눈에 띄었는데요. “작은 영화관이나 시네마테크 등지에서 20대 내내 걸작이니 실험적이니 하는 작업들을 보아 왔다. 그런데 예술사의 맥락을 벗어나 그것의 가치를 설명해 내려던 말이 있던가, 어렴풋하다.” 그때 당시와 지금, 작가님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들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영화를 볼 때 중요하게 보게 되는 지점에도 변화가 있으신가요? 영화 ‘보기’ 문화에 대해서도 어떻게 시각이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영화 한 편을 단위로 좋음을 판단하기보다, 그 영화의 한 순간, 한 층위, 혹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 영화에서 가치를 보기도 해요. 그건 ‘내가 이걸 좋아해도 되나?’에 대한 확신, 텍스트와 맺는 독립적인 관계에서 가능해진 것 같고요. 1~20대 때에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억지로 보기도 했죠. 10대 때부터 지금은 사라진 시네필 커뮤니티, 음악 커뮤니티들을 이용했는데 돌이켜보면 명암이 뚜렷한 문화였던 것 같아요. 문화 자본이 없는 평범한 한국 가정에서 자라면서, 우연히 접속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낯선 문화를 접하게 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이게 대단한 것’이라고 하니, 뚜렷한 자기 기준이 없던 시절 그들이 추천하는 영화와 음악을 무작정 따라 보았죠. 봐도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하면 모자란 사람이 될까 봐 이해한 척하며 계속 보기도 했고요. 맹목적인 수용 속에서 낯선 무언가를 접하며 발생하는 의미가 분명 있었지만, 그것을 커뮤니티 내부의 언어로만 설명하는 방식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커뮤니티 바깥에 서 있는 나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비평을 만나고 싶었어요. 제도나 역사에 접속된 이들에게는 어떤 말들이 곧장 통하겠지만, 바깥의 관객에게는 그 가치를 풀어줄 다른 언어가 필요했던 거죠. 늘 ‘나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가치를 어떻게 설명하고 건넬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도 그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 덧붙이고 싶은 생각인데요, 오늘날 정전을 해석하고 비평하는 방식 역시 여로 님이 지적하신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심화된 것 같아요. 고전으로 공인된 작품들은 대개 비슷한 비평적 절차를 밟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최근에는 영화사적 맥락에만 갇히지 않고 그 바깥에서 작동하는 비평들도 눈에 띄어요. 영화 〈호프(2026)〉를 둘러싸고 블로그 등지에서 쏟아져 나온 무수한 글들을 보며 그런 생동감을 느꼈거든요. 기존 한국 영화사의 좌표에 위치시키는 글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둘러싼 관객들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현상도 목격하게 돼요. 한쪽에서는 정교한 비평이 오가는 한편, 원색적인 비난만 가득한 SNS 댓글 창도 있었어요. 그 거대한 간극을 보며 고민이 들었습니다. 사실 매거진 너드가 이야기하는 영화들 중에선 누군가에겐 ‘그래서 어쩌라고?’ 싶을 만큼 낯선 작품들도 많거든요. 드 로로나 메카스를 잘 알지 못하거나 영화 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잡지를 구매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우리는 그 양극화된 틈바구니 속에서 낯선 텍스트의 매력을 어떻게 설득하고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듭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이 앞서 이야기한 중앙집중화된 한국 사회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고 봐요.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회라면 남이 어떻게 보든 대수롭지 않게 넘기겠지만, 우리는 옳고 그름을 두고 사생결단하듯 부딪히는 문화잖아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비평을 하기에 오히려 좋은 환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은 그 양극단의 간극을 오가는 작업이니까요. 대중을 향해 ‘너희가 영화를 몰라서 그런다’고 훈계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비평이 아니에요. 오히려 각 반응이 놓인 좌표를 정확하게 매핑하고, 그 자체로 이 텍스트가 어떤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를 밝혀주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죠. 그렇게 맥락을 짚어낼 수 있다면, 원색적인 욕지거리도 유의미한 비평적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비평계가 비록 크지 않은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의 영화사에 길이 남는 정전 자체와 그에 대한 비평에는 ‘뭔가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 식의 권위와 위계가 작동해왔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거대한 스펙터클이나 B급·대중 영화들까지 평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평론가라는 지위 자체가 역사 속에서 꽤나 고답적인 위치에 있어 왔는데, 이런 변화를 보면서 여러모로 양가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평론가라는 지위는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생기고요. 그동안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공간이 정전 위주의 프로그램을 지속해온 것은, 어쩌면 이 작은 영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고전이니까 무조건 고전이다’라는 당위를 공유하며 일종의 핑퐁 게임을 이어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부에서는 공감하기 어렵더라도 우리 세계 내부의 존속을 위해 그렇게 작동해온 측면이 있으니까요. 영화의 바깥과 대화하며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지금까지 이 생태계를 지탱해 온 고유한 토양 역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두 마음이 교차하거든요. 비록 제가 프로그래머나 기획자의 위치는 아니지만, 영화를 사랑하며 지켜보는 관객이자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 두 가지 태도를 어떻게 스스로 균형 있게 조화시키면 좋을까요?
영화라는 매체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해 온 역사적 지위가 시대마다 달랐잖아요. 59년생이신 정성일 평론가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당시에는 ‘영화 같은 걸 뭘 공부하느냐’는 편견이 팽배했기 때문에, 서구의 현대 이론들을 끌어와 무장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그렇게 앞 세대가 닦아놓은 토양 덕분에 영화 비평은 이제 그 자체로 예술적 지위를 인정받았잖아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음에도 고답적인 방식을 계속 반복하는 건, 오히려 새롭게 태동하는 다른 분야나 대안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죠.
말씀대로 평론가나 연구자 모델 또한 함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겠어요.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 더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목표가 아니라, 관객성이나 독자성의 자리에서 다른 언어를 듣는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앞서 〈호프〉와 관련된 SNS나 블로그 상의 여러 파편적인 단상들을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것들을 ‘영화를 모르는 놈들’의 이야기로 들을지, 그 파편 속에서 하나의 언어를 들어낼지는 청취의 역량이죠. 더 잘 발화하라고 따질 게 아니라요. ‘상대에게 고유한 언어가 있다’고 전제한 뒤 그 세계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모델이 앞으로의 비평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걸 기존의 작품 단위에서 다른 바깥의 단위들로 넓혀가면서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영화라는 매체가 이여로라는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극장은 몸과 빛을 결박해서 120도 정도의 고갯짓만 허락하는 공간이잖아요. 그 강력한 제한이 환영을 실재로 만들죠. 그렇게 현실과 잠시 분리되는 시간이 항시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내가 세상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감각에 삶을 투사하고 위탁할 곳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정확히 그 이유로 영화관을 떠났었죠. 동시에 미술관에 가기 시작했어요. 일본 연구자의 책을 읽어보면, 극장의 초기 모델 중에는 벽화를 길게 그려놓고 회랑을 걸어 다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었거든요. 즉 내가 나의 신체로 걷고 느끼는 것과 신체를 결박해 무언가를 보여주는 행위 간의 경쟁에서 후자가 영화의 장소가 된 건데, 저에게 미술관은 다시 걸을 수 있어서 필요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같은 이유로 영화관을 자주 찾고 있습니다. 짝꿍인 희수 감독 말처럼, 살아가려면 다른 세계가 너무나 많이 필요하네요. 〈체인소 맨: 레제편(2025)〉에서 태풍의 악마와 계약하려는 빌런이 “강간하겠다”고 말하는데, 실제 내 옆에서도 누군가 그렇게 죽임을 당하고 있잖아요.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그 일들에 대응해야 하는데, 다른 세계에서는 잠시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필사적으로 영화관을 가죠. 그렇게 보고 듣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처럼 보고 들을 때가 있고… 그 과정에서 이곳과 저곳을 오가면서 ‘다른 곳’을 상상하게 되고요. 그것이 현실과 허구라는 인식론적 구별보다 앞선다는 걸 경험한 순간부터 영화든 예술이든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어요.
최근 실험영화를 둘러싼 움직임을 어떻게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스페이스 셀’의 워크숍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올해 ‘EXiS’의 Lab 프로그램도 스페이스 셀에서 만들어진 작업들을 모아 상영했습니다. ‘로트링겐’의 실험영화 시리즈 상영도 빼놓을 수 없고요. 16mm 필름은 일상과 개인적 기억을 기록하는 매체라는 측면에서 아마추어리즘과 매우 밀접하며, 메카스의 다이어리 영화 역시 16mm를 차용했습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지금의 움직임이 작가님께 반갑게 다가올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이,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를 번역하던 중에 필름 편집 기술과 관련해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정보가 있었는데, 스페이스 셀에서 흔쾌히 자문에 응해주셨어요. 오랫동안 지속되는 셀의 워크숍 또한, 영화 만들기를 각자의 수단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 주는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험’을 장르보다 각자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싶어요. 정성일 씨가 어느 GV에서 모든 영화는 그 영화작가의 실험을 담은 실험영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관점을요.
연장선상에서, 매거진 너드 이번 호에 글을 쓰면서 과거 1950~60년대 실험영화를 하던 분들의 동력이 궁금해 찾아본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기존 영화가 못 하는 것을 부정하며 똘똘 뭉쳤는데, 이후 대학 영화과 교수가 되는 등 점차 제도적 포장도로가 깔렸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국내 독립·실험영화 신에서도 ‘대안성’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매체 특정적인 ‘전문성’으로 좁혀 활동하려는 흐름이 보이는데, 이런 제도화의 과정 속에서 창작의 본래 동력이나 부정성이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궁금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오늘날의 독립이나 실험이라는 감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말씀대로 『영화작가들과의 대화』가 정확히 그 역사적 분절을 모두 다뤄요.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는 할리우드라는 영화 제도 바깥의 길바닥이었고 ‘이게 무슨 영화냐’는 비아냥을 들으며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했죠. 메카스가 미국의 실험영화 작가 마야 데렌과 논쟁을 벌이는 대목도 흥미로운데, 그들은 오히려 당시 비하적 표현으로 쓰이던 ‘홈무비 (Home movie)’나 ‘아마추어리즘’을 자처하며 아방가르드와도 결별을 선언해요. 오히려 그것이 과거 아방가르드의 정신이라는 거죠. 가치에 대한 강한 의심과 부정 속에서도 그걸 실천해 나감으로써 만들어 진 자생적 가치가 ‘실험영화’였고, 그들에게는 영화의 실험과 삶의 실험이 겹쳐 있었죠. 그렇다면 하나의 분과로 전문가 양성이 가능해진 실험영화, 예술적,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된 실험영화란 무엇이 되어버리는 걸까 하는 그들의 염려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도권 안에서 직업적 연계가 이루어지면 계속하고, 아니면 서른까지 해 보고 마는 게 실험인가 하면, 그건 아닐 것 같아요.
3. 옷과책
현재 운영 중이신 옷과책 공간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텍스트 각자의 공간’ 혹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실제 물리적 공간’(옷과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 좋은 서점이 많지만 책이 머물기 어려움이 있다고 느꼈어요. 서점에서 일도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전업서점은 계속 신간을 순환시켜야 하니까 반복적인 입고가 어렵죠. 그런 아쉬움들이 쌓여서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보다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내게 필요한 글을 내가 직접 썼듯이요. 그래서 한번 입고하면 영구적으로 입고하고, 절판되면 아카이브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나머지 절반의 동력이 되었어요. 이태원에서 평생을 나고 자랐는데, 환경을 바꾸 고 독립할 필요를 서른 즈음에 느꼈어요. 본가에서 여자친구인 희수 감독과 같이 사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런데 가게와 작업실과 집을 따로 구할 돈은 당연히 없으니, 셋을 합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동네 철물점이나 문방구 안쪽에 생활공간이 있었듯이요. 옷과책은 실험적인 텍스트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제 생활의 실험이기도 합니다.
옷이랑 책이 만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옷과 책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스타킹과 나일론 폭동’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어요. 옷과책에서 판매하는 옷을 비평 혹은 대담 등의 텍스트와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매우 신선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매거진 너드도 이전에 패션팀이 있었지만 필자 수급에서 어려움을 겪고 잠시 운영 정지한 상태입니다.... 옷에 대해서 텍스트로 풀어내는 것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옷과책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돈이 없으니 옷에 접근할 수 있는 금전적 한계가 있었고, 그러면 옷을 ‘사기’보다 먼저 ‘읽자’는 생각에 옷에 관련된 글들을 많이 봤죠. 그러면서 몇 년전 한국에 빈티지숍들이 많아지면서, 접근 가능한 금액대에서 이런 저런 옷들을 살 수 있게 됐고, 쌓이다 보니 팔아야 겠다고 느꼈죠. 기존 플랫폼(후르츠 등)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만 팔리니까 책을 유통하면서 옷도 유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1인 당근마켓 정도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홀로 하기에 무리가 있어 coknow에게 옷을 부탁했어요. 원래부터 옷에 대한 글을 쓰고 계셔서…. 아직 옷과책에서도 옷과 책은 친구는 아닌 것 같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만 평행선을 그리고 있거나, 그냥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의식하지만 아직 말을 잘 못 거는 정도의 사이인 것 같네요. 조금씩 관계를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옷에 대한 텍스트 생산, 반대로 책에 대한 물성 탐구 같은 교차를 발생시키면서요.
옷과책이 취급하는 텍스트의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최근 옷과책이 직접 출판한 오어진 작가의 책부터 화이트리버, 텍스트프레스 출판물 등을 다루고 계세요. 원고 및 기출판물은 어떤 과정으로 얻고, 출판/발행 혹은 입점까지 이뤄지는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출판 내지는 매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책/저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을까요?)
새로움은 어디에 있을까 하면 개인에게 있는 것 같아요. 출판은 클래식한 매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출판이 필요하고, 그러한 개인의 필요성을 공공의 필요성으로 넓혀가는 것이 출판의 원 뜻 그대로(publishing)인 것 같습니다. 오어진이 번역한 『가쿠레키리시탄』도 턴불 씨의 박사학위 논문이니 어딘가의 학술총서로 나올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개신교 가정에서 나고 자라 예술학교에서 자기 세계가 분열된 사람이, 스스로 연구하기 위해 번역했다는 맥락에서 이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싶었어요. 옷과책을 만들면서 처음에는 저와 비슷하게 활동하고 있는 1인 출판사들을 한 달에 한 곳 정도씩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들고 보니 이제 막 첫 책을 내신 분들의 연락이 많이 왔고, 이 공간이 더 필요시되는 쪽에 먼저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다윤, 위지영의 실험음악 공연과 렉쳐 퍼포먼스, 김은한 님의 일인극 등 다양한 공연도 옷과책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공연을 기획하기 전에 흥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기획을 한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접점이 만들어지는 공동기획에 가까워요. 공연이나 책이나 옷이나 제가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분들을 모시게 되는 것 같아요. 이미 알던 사람이어도 아주 자세히 그 사람의 활동 내역을 알진 못하니까, 동료의 작업을 더 알아가는 계기로 옷과책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여러 스크리닝 행사도 진행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너드의 구성원이 참여했던 적도 있고요. 앞으로도 스크리닝이 포함된 행사나 상영회를 열어볼 생각이 있으신가요?
네, 그럼요. 조만간 또 하지 않을까 싶네요! 지난번에 오셨던 행사에서는 영화를 보기 전에 완독회를 먼저 진행했어요. 완독회는 참가자들이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낭독하는 방식인데요, 단순히 기계적으로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멈춰 서서 글을 쓴 지영 님이 맥락을 덧붙이기도 하고, 저나 다른 참여자들도 인상이나 질문을 자유롭게 나누었죠. 그렇게 완독회를 마치고 나서 스크리닝을 진행한 뒤, 각자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눈 후 행사를 마쳤습니다.
완독회라는 형식이 참 단순하지만 무척 효과적이라고 느꼈어요. 낭독을 통해 먼저 입이 풀리니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훨씬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가시더라고요. 행사 내내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영화 다 보셨으니 이제 질문하세요’라고 하면, 저조차도 어디 가서 입을 떼기가 부담스러워요. 저 역시 다른 행사에 참여했을 때 콘텐츠만 일방적으로 소비하고 그대로 끝나버리면 늘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옷과책에서 실험음악 공연을 기획할 때도 공연 직후 항상 라운드테이블처럼 둘러앉아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관객과 기획자 사이의 분리를 허물기 위한 비슷한 맥락입니다.
옷과책에 어떤 분들이 방문해주시길 바라나요? 지난번에 너드 에디터 민솔이 갑자기 작업하러 방문한 것처럼 정말 작업하러 옷과책에 와도 괜찮나요?
민솔 님이 제가 정말 바라던 케이스였어요. 민솔 님은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분이니까 짧은 글 하나만 보고도 ‘작업하러 가볼까’ 하고 찾아오실 수 있었겠지만, 보통은 그러기 어렵죠.
‘편하게 계세요’라고 말한다고 진짜 편해지지 않고, ‘언제든 오세요’라고 한들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진짜 가도 되나? 여긴 뭐 하는 곳이지?’라는 망설임이 먼저 들잖아요.
옷과책을 카페로 등록해 문턱을 낮춰볼까 고민했을 때, 씬 내부 사람들의 반응은 ‘왜 굳이 카페를 하느냐’며 다들 부정적이었거든요. 순수예술 쪽에선 대중적이어서 대중적인 것을 싫어하는 경향도 있겠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일상적인 진입 통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그래야 예술과 관련 없는 이들도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되니까요. 지금의 옷과책도 워크숍 등을 열면 옷에 관심 있는 분이 책 행사에 참여하는 식의 교류는 생겨나지만, 아예 다른 영역의 대중까지 자연스럽게 유입되게 만들려면 훨씬 더 많은 고민과 품이 들겠죠. 다양한 층위가 섞이는 ‘소셜 믹스’의 공간을 만드는 일 말이에요. 공간이 품은 뜻과 지향이 깊을수록, 오히려 그 뜻을 한 걸음 뒤로 슬쩍 숨겨두어야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지향이 전면에 과도하게 드러나면 문턱이 높아지잖아요.
사실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죠. 그 정치가 좌파냐 우파냐를 따지는 의회정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투쟁들이 녹아들어 있고요. 하지만 그런 배경을 깊이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그저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남겨두는 것, 그 적절한 거리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옷과 책이라는 공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공간 자체 혹은 유통의 규모를 더 키우려는 생각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옷과책을 내 삶과 겹쳐 놓을지 생각했죠. 외부의 영향과 독립해서 먼저 존속해야 하는데, 그게 주거-작업-커뮤니티 공간을 통합하는 것이었어요. 구체적으로는 작업실 공간을 5명이 나눠 썼어요. 저와 희수는 안쪽 공간에서 아예 숙박을 했고요. 처음 1년은 그렇게 단체 생활을 했고, 즐거웠죠. 근데 너무 자족하니까 외부에 오픈할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오픈 안 해도 되지 않을까? 그때 건호 씨가 “여기서 경험한 걸, 여기에 방문하는 사람들과도 나누면 좋겠다”는 말을 했어요. 그게 옷과책의 호스피탈리티가 된 것 같네요. 방문하는 낯선 사람들을 친구의 친구 정도로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이곳이 뭘 하는 곳이고 뭘 할 수 있는 곳인지 충분히 전달을 못 했고, 믿고 맡겨 주신 옷과 책에 유통의 책임을 충분히 지고 있다고 느끼진 않아서, 점차 맞는 리듬과 규모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 막막할 때 유통의 선택지 중에 하나로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희 말고도 유통망 자체가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관계성을 잃지 않는다면, 규모를 키워도 좋겠죠. 몇 분 정도 같이 일할 규모가 되어서 옷과책이 안전한 일터가 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합니다. 또 언젠가는 여러 분야의 단체가 서울 밖에서 함께 자리를 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10년은 걸릴 일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