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팀 발제: 웨스 앤더슨 단편 4부작
WEBZINE
WEDITOR 정하민
발제 일자: 10.12
발제 영화: 웨스 앤더슨 단편 4부작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쥐잡이 사내>, 그리고 <독>
참석 인원: DE, EB, HJ, HM, MJ, SJ, YJ
너드 필름 팀은 격주로 만나 영화를 발제한다. 말이 발제이지, 우리의 발제는 어떤 숙의나 분석 등을 요구로 하지 않는다. 발제자가 지정한 영화를 보고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주 활동이다. 이 모임에서는 그 어떤 금기도, 제약도 없다. 하나의 입에서 십여 개의 귀로 오가는 단어들은 아무런 규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영화에 관한 아홉 개의 정제되지 않은 세상이 약속된 날짜, 약속된 시간에 모이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변태 같고, 짜릿하다. 누구는 언성을 높이고, 누구는 실실 웃고, 누구는 울기도 한다. 미친 인생의 희로애락이 영화 하나를 두고 충돌하며 영화에는 수십 개의 겹이 덧붙여진다. 마치 개미가 굴을 파듯, 우리는 한 영화에 수십 개의 방을 만든다. 필름 팀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시끄러운 심야버스로부터 나를 분리하고 각각의 굴을 드나들며 은신한다. 이 시간이 참 좋다.
시월 십이 일에는 일곱 명의 필름 팀 너드들(둘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최고령자들이니 이해해 주자.)이 용산구에 모였다. 나는 이날 웨스 앤더슨 단편 4부작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 <백조(2023)>, <쥐잡이 사내(2023)>, 그리고 <독(2023)>에 대해 발제했다.
‘색감이 정말 예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로 힙스터들의 전유물이 된 웨스 앤더슨. 스타일리쉬한 그의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의 대주주이자 인스타그램 업로드 및 데이트용 전시의 권위자가 되었다. 이제 웨스 앤더슨을 좋아하는 사람도 힙스터가 되고, 비판하는 이들도 힙스터가 된다. 그는 힙스터론의 중심, 말하자면 뉴진스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웨스 앤더슨이 보탠 건 하나도 없다. 그는 그저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그 맑게 갠 공간의 지평을 잠잠히 넓혀오고 있었다. <개들의 섬(2018)>, <프렌치 디스패치(2021)>,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 그리고 넷플릭스 단편 4부작에 이르기까지의 미친 듯한 작업량과 함께.
후술할 내용은 우리들이 시월 십이 일에 나눈 대화의 간략한 요약이다.
1)
EB은 웨스 앤더슨이 우리가 영화라고 인지할 수 있는 최소 단위를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HJ는 동의했다. 그리고 그의 영화가 마치 영화의 구성 요소들을 사시미 뜨듯 해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웨스 앤더슨의 최근 영화들은 영화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프렌치 디스패치>에는 잡지가, <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연극이, 그리고 이번 단편 4부작에는 책이 공존한다. 그는 여러 매체를 영화 안에 끌어오고 이를 영화와 결합함으로써, 과연 어디까지가 순수 ‘영화’일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전통적인 영화의 구성 요소들을 해체하고 나열하며 ‘어때, 이래도 영화 같아?'라고 묻는다. 나아가 그는 잡지, 연극, 책의 뒷면에도 집중한다. 스크린과 관객, 잡지와 구독자, 무대와 관객, 책과 독자 사이를 부수고 한순간에 모든 매체를 낯설게 만든다. 아주 골 때리는 양반이다.
이번 단편 4부작에서 웨스 앤더슨은 로알드 달의 단편 이야기들을 영화로 엮었다. 책 속 텍스트를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로알드 달(랄프 파인즈 분)을 극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한 편의 오디오 북을 듣는 듯한 효과를 낸다. 대사면 대사, 내레이션이면 내레이션으로 존재해야 하는 텍스트가 그저 책 속 지문처럼 읽어져 내려가고 배우들은 이를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본드 냄새가 날 것 같은 세트장 앞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루퍼트 프렌드를 보고 있자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웨스 앤더슨은 응당 영화가 수행해야 하는 컨벤션들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제한하면서 영화를 해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매체의 이야기를 얹고, 얹고, 또 얹는다. 마치 ‘데블스 플랜(2023)’의 저울 게임과도 같은 거다. (4화 참고) 하나의 추의 무게를 알기 위해 여러 다른 추를 얹어서 방정식을 만들듯, 웨스 앤더슨은 영화라는 추의 무게를 알기 위해 잡지를 얹고, 연극을 얹고, 책을 얹었다. 이 방정식에서 웨스 앤더슨이 잃지 않은 것은 내러티브, 음향, 그리고 영상이다. 미지수의 답, 하나의 추의 무게. 그는 영화에 끊임없이 덧칠하며 도리어 이를 발가벗기고 있는 중이다.
2)
HM은 <독>처럼 초목표를 잃어버리는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HJ는 이게 마치 HM이 제로 콜라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다고 말했다.
<독>은 이불 아래에 있는 자신의 배 위에 분명 우산뱀이 있을 거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해리 포프(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와 그 우산뱀을 잡으려 생난리를 치는 친구 우즈(데브 파델 분)의 17분짜리 똥꼬쇼다. 우즈는 포프를 살리기 위해 간더바이 의사(벤 킹슬리 분)를 부르고, 간더바이는 해리 포프에게 해독제를 놓은 후 이불을 걷어낸다. 그리고 짠. 해리 포프의 배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간더바이는 그런 포프에게 “꿈이라도 꿨나 보죠” 말하고, 민망해진 포프는 간더바이를 향해 천민 주제에 나를 모욕하냐며 소리를 지른다. 이 모든 과정은 우즈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인도계 혼혈 친구의 입을 통해 괜히 인도계 혼혈 의사에게 성을 내고 자빠진 똥 방귀를 뀐 백인을 비꼬는 것이다.
이 통쾌한 이야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고 짠’의 순간, 우산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SJ는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우산뱀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고 하지만, 우즈와 포프 그리고 간더바이는 우산뱀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초목표는 포프가 죽지 않고 우산뱀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차, 그들의 초목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뱀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속삭이며 말했던 모든 순간과 간더바이를 부르러 달려간 한달음, 그리고 해독제까지 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엔딩은 꼭 “인생이란 강물 위를 끝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는 것과 비슷해서,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돌아보니 무의미했던 순간을 유쾌하게 포착한다. 특히 <독>의 허무주의는 꼭 역겨운 차별주의자 해리 포프에게 썩소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아 더욱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HJ는 회식에서 제로 콜라를 시키는 HM을 보고는, HM이 제로 콜라를 좋아하는 것과 <독>의 허무한 엔딩을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콜라는 단맛을 위해 마시는 것인데, 제로 콜라는 그 콜라의 초목표인 단맛이 사라진 허무한 맛이 난다는 논지였다. 하지만 이는 단맛을 위해 콜라를 마시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일 터. 별개의 두 가지 상황을 병렬적으로 엮은 이후 HJ는 그 쾌감에 회식 내내 소리 내어 웃었다.
3)
YJ는 <백조>에서 나쁜 기억을 아름답게 반추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MJ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를 보면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의식을 잊었다. DE은 <쥐잡이 사내> 속 뻔뻔한 모형 쥐를 언급하며 웨스 앤더슨보다 로알드 달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감독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가장 중요했던 이벤트는 웨스 앤더슨 단편 4부작을 각각 본인의 취향으로 줄 세우기였다. 물론 일곱 명의 순위가 모두 달랐다. 어떻게 한 명도 순위가 정확히 겹치지 않더라. YJ는 EB, HM과 함께 <백조>를 1등으로 꼽았다. <백조>는 동네 소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어린 피터 왓슨(루퍼트 프렌드 분)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끝에서 소년들은 피터를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후 라이플총을 쏴 그를 호수로 추락시킨다. 슬프게도 이 이야기를 성장한 피터 왓슨이 서술한다. YJ는 기억이라는 하나의 세트장에서 피터의 모든 순간이 켜켜이 쌓이는 걸 지켜봤다. 또 그 중간을 지나가며 시각적 기억에 함께 마음 아파했다. EB은 영화 초반의 밀밭 세트장 시퀀스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이 시퀀스에서 세트장의 앞과 뒤를 넘나들며 소품을 옮기는 인물들을 그대로 노출시켰는데, EB은 이 낯섦이 즐거웠다. HM은 어른이 된 피터 왓슨이 신고 있는 파란색 컨버스 신발에 마음이 무너졌다. 이는 소년 피터 왓슨이 신던 바로 그 신발이었다. 아직 파란색 컨버스의 시간에 살고 있던 피터 왓슨은 과거의 기억을 마주했고, 로알드 달은 그 어린 백조에게 추락이 아닌 비행을 선물해 집 뒤뜰에 내려앉게 한다. 추락한 백조는 사실 훨훨 날아오른 히어로였다고 위로한다.
MJ와 HJ가 고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에는 이야기 속 이야기 속 이야기가 존재한다. HJ는 이 점을 좋아했다. 이야기가 액자 속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들어갈 때마다 영화 속 실제 화자도 함께 바뀐다. 첫 번째 화자는 헨리 슈거(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의 이야기를 적은 로알드 달(랄프 파인즈 분), 두 번째 화자는 임다드 칸(벤 킹슬리 분)의 노트를 발견한 헨리 슈거, 그리고 마지막 화자는 이 노트를 기록한 의사 차터지(데브 파텔 분)다. 세 개의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게 연결될 때마다, MJ는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감각을 잊을 정도로 몰입했다. 무엇보다 MJ와 HJ가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를 본인의 최애로 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빅 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베니’를 30분 동안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DE와 SJ는 조금 발칙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SJ는 조악하게 등장한 쥐 모형에 마음을 빼앗겼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뻔뻔하게 등장한 외계인처럼,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는 귀여운 이물감이 느껴진다. 사실 그 조악한 쥐가 랄프 파인즈의 목소리에 싱크를 맞춰 입을 움직일 때는 별로 귀엽지 않았다. DE는 <쥐잡이 사내>의 애매하게 싱거운 끝이 마음에 들었다. 엔딩 자체가 싱거운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 쥐잡이 사내는 쥐를 잡기 위해 독이 든 귀리를 뿌렸지만, 쥐들은 이 귀리를 먹지 않는다. 알고 보니 쥐가 사람의 시체를 먹어 이미 배가 불렀던 것이다. 이 잔인한 끝이 DE에게 싱겁게 느껴졌던 이유는 웨스 앤더슨이 모든 잔인함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고딕적이고 살벌한 이미지에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결말은 생각만 해도 DE를 웃게 했다.
발제의 마지막에 다다라 우리는 공통의 최종 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2, 3, 4순위의 선정 과정에서는 서로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과정을 어찌저찌 거칠 수 있었지만, 각자의 1순위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더라.
발제 영화: 웨스 앤더슨 단편 4부작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쥐잡이 사내>, 그리고 <독>
참석 인원: DE, EB, HJ, HM, MJ, SJ, YJ
너드 필름 팀은 격주로 만나 영화를 발제한다. 말이 발제이지, 우리의 발제는 어떤 숙의나 분석 등을 요구로 하지 않는다. 발제자가 지정한 영화를 보고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주 활동이다. 이 모임에서는 그 어떤 금기도, 제약도 없다. 하나의 입에서 십여 개의 귀로 오가는 단어들은 아무런 규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영화에 관한 아홉 개의 정제되지 않은 세상이 약속된 날짜, 약속된 시간에 모이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변태 같고, 짜릿하다. 누구는 언성을 높이고, 누구는 실실 웃고, 누구는 울기도 한다. 미친 인생의 희로애락이 영화 하나를 두고 충돌하며 영화에는 수십 개의 겹이 덧붙여진다. 마치 개미가 굴을 파듯, 우리는 한 영화에 수십 개의 방을 만든다. 필름 팀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시끄러운 심야버스로부터 나를 분리하고 각각의 굴을 드나들며 은신한다. 이 시간이 참 좋다.
시월 십이 일에는 일곱 명의 필름 팀 너드들(둘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최고령자들이니 이해해 주자.)이 용산구에 모였다. 나는 이날 웨스 앤더슨 단편 4부작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 <백조(2023)>, <쥐잡이 사내(2023)>, 그리고 <독(2023)>에 대해 발제했다.
‘색감이 정말 예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로 힙스터들의 전유물이 된 웨스 앤더슨. 스타일리쉬한 그의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의 대주주이자 인스타그램 업로드 및 데이트용 전시의 권위자가 되었다. 이제 웨스 앤더슨을 좋아하는 사람도 힙스터가 되고, 비판하는 이들도 힙스터가 된다. 그는 힙스터론의 중심, 말하자면 뉴진스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웨스 앤더슨이 보탠 건 하나도 없다. 그는 그저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그 맑게 갠 공간의 지평을 잠잠히 넓혀오고 있었다. <개들의 섬(2018)>, <프렌치 디스패치(2021)>,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 그리고 넷플릭스 단편 4부작에 이르기까지의 미친 듯한 작업량과 함께.
후술할 내용은 우리들이 시월 십이 일에 나눈 대화의 간략한 요약이다.
1)
EB은 웨스 앤더슨이 우리가 영화라고 인지할 수 있는 최소 단위를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HJ는 동의했다. 그리고 그의 영화가 마치 영화의 구성 요소들을 사시미 뜨듯 해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웨스 앤더슨의 최근 영화들은 영화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프렌치 디스패치>에는 잡지가, <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연극이, 그리고 이번 단편 4부작에는 책이 공존한다. 그는 여러 매체를 영화 안에 끌어오고 이를 영화와 결합함으로써, 과연 어디까지가 순수 ‘영화’일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전통적인 영화의 구성 요소들을 해체하고 나열하며 ‘어때, 이래도 영화 같아?'라고 묻는다. 나아가 그는 잡지, 연극, 책의 뒷면에도 집중한다. 스크린과 관객, 잡지와 구독자, 무대와 관객, 책과 독자 사이를 부수고 한순간에 모든 매체를 낯설게 만든다. 아주 골 때리는 양반이다.
이번 단편 4부작에서 웨스 앤더슨은 로알드 달의 단편 이야기들을 영화로 엮었다. 책 속 텍스트를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로알드 달(랄프 파인즈 분)을 극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한 편의 오디오 북을 듣는 듯한 효과를 낸다. 대사면 대사, 내레이션이면 내레이션으로 존재해야 하는 텍스트가 그저 책 속 지문처럼 읽어져 내려가고 배우들은 이를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본드 냄새가 날 것 같은 세트장 앞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루퍼트 프렌드를 보고 있자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웨스 앤더슨은 응당 영화가 수행해야 하는 컨벤션들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제한하면서 영화를 해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매체의 이야기를 얹고, 얹고, 또 얹는다. 마치 ‘데블스 플랜(2023)’의 저울 게임과도 같은 거다. (4화 참고) 하나의 추의 무게를 알기 위해 여러 다른 추를 얹어서 방정식을 만들듯, 웨스 앤더슨은 영화라는 추의 무게를 알기 위해 잡지를 얹고, 연극을 얹고, 책을 얹었다. 이 방정식에서 웨스 앤더슨이 잃지 않은 것은 내러티브, 음향, 그리고 영상이다. 미지수의 답, 하나의 추의 무게. 그는 영화에 끊임없이 덧칠하며 도리어 이를 발가벗기고 있는 중이다.
2)
HM은 <독>처럼 초목표를 잃어버리는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HJ는 이게 마치 HM이 제로 콜라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다고 말했다.
<독>은 이불 아래에 있는 자신의 배 위에 분명 우산뱀이 있을 거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해리 포프(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와 그 우산뱀을 잡으려 생난리를 치는 친구 우즈(데브 파델 분)의 17분짜리 똥꼬쇼다. 우즈는 포프를 살리기 위해 간더바이 의사(벤 킹슬리 분)를 부르고, 간더바이는 해리 포프에게 해독제를 놓은 후 이불을 걷어낸다. 그리고 짠. 해리 포프의 배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간더바이는 그런 포프에게 “꿈이라도 꿨나 보죠” 말하고, 민망해진 포프는 간더바이를 향해 천민 주제에 나를 모욕하냐며 소리를 지른다. 이 모든 과정은 우즈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인도계 혼혈 친구의 입을 통해 괜히 인도계 혼혈 의사에게 성을 내고 자빠진 똥 방귀를 뀐 백인을 비꼬는 것이다.
이 통쾌한 이야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고 짠’의 순간, 우산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SJ는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우산뱀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고 하지만, 우즈와 포프 그리고 간더바이는 우산뱀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초목표는 포프가 죽지 않고 우산뱀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차, 그들의 초목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뱀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속삭이며 말했던 모든 순간과 간더바이를 부르러 달려간 한달음, 그리고 해독제까지 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엔딩은 꼭 “인생이란 강물 위를 끝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는 것과 비슷해서,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돌아보니 무의미했던 순간을 유쾌하게 포착한다. 특히 <독>의 허무주의는 꼭 역겨운 차별주의자 해리 포프에게 썩소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아 더욱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HJ는 회식에서 제로 콜라를 시키는 HM을 보고는, HM이 제로 콜라를 좋아하는 것과 <독>의 허무한 엔딩을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콜라는 단맛을 위해 마시는 것인데, 제로 콜라는 그 콜라의 초목표인 단맛이 사라진 허무한 맛이 난다는 논지였다. 하지만 이는 단맛을 위해 콜라를 마시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일 터. 별개의 두 가지 상황을 병렬적으로 엮은 이후 HJ는 그 쾌감에 회식 내내 소리 내어 웃었다.
3)
YJ는 <백조>에서 나쁜 기억을 아름답게 반추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MJ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를 보면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의식을 잊었다. DE은 <쥐잡이 사내> 속 뻔뻔한 모형 쥐를 언급하며 웨스 앤더슨보다 로알드 달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감독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가장 중요했던 이벤트는 웨스 앤더슨 단편 4부작을 각각 본인의 취향으로 줄 세우기였다. 물론 일곱 명의 순위가 모두 달랐다. 어떻게 한 명도 순위가 정확히 겹치지 않더라. YJ는 EB, HM과 함께 <백조>를 1등으로 꼽았다. <백조>는 동네 소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어린 피터 왓슨(루퍼트 프렌드 분)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끝에서 소년들은 피터를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후 라이플총을 쏴 그를 호수로 추락시킨다. 슬프게도 이 이야기를 성장한 피터 왓슨이 서술한다. YJ는 기억이라는 하나의 세트장에서 피터의 모든 순간이 켜켜이 쌓이는 걸 지켜봤다. 또 그 중간을 지나가며 시각적 기억에 함께 마음 아파했다. EB은 영화 초반의 밀밭 세트장 시퀀스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이 시퀀스에서 세트장의 앞과 뒤를 넘나들며 소품을 옮기는 인물들을 그대로 노출시켰는데, EB은 이 낯섦이 즐거웠다. HM은 어른이 된 피터 왓슨이 신고 있는 파란색 컨버스 신발에 마음이 무너졌다. 이는 소년 피터 왓슨이 신던 바로 그 신발이었다. 아직 파란색 컨버스의 시간에 살고 있던 피터 왓슨은 과거의 기억을 마주했고, 로알드 달은 그 어린 백조에게 추락이 아닌 비행을 선물해 집 뒤뜰에 내려앉게 한다. 추락한 백조는 사실 훨훨 날아오른 히어로였다고 위로한다.
MJ와 HJ가 고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에는 이야기 속 이야기 속 이야기가 존재한다. HJ는 이 점을 좋아했다. 이야기가 액자 속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들어갈 때마다 영화 속 실제 화자도 함께 바뀐다. 첫 번째 화자는 헨리 슈거(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의 이야기를 적은 로알드 달(랄프 파인즈 분), 두 번째 화자는 임다드 칸(벤 킹슬리 분)의 노트를 발견한 헨리 슈거, 그리고 마지막 화자는 이 노트를 기록한 의사 차터지(데브 파텔 분)다. 세 개의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게 연결될 때마다, MJ는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감각을 잊을 정도로 몰입했다. 무엇보다 MJ와 HJ가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를 본인의 최애로 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빅 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베니’를 30분 동안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DE와 SJ는 조금 발칙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SJ는 조악하게 등장한 쥐 모형에 마음을 빼앗겼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뻔뻔하게 등장한 외계인처럼,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는 귀여운 이물감이 느껴진다. 사실 그 조악한 쥐가 랄프 파인즈의 목소리에 싱크를 맞춰 입을 움직일 때는 별로 귀엽지 않았다. DE는 <쥐잡이 사내>의 애매하게 싱거운 끝이 마음에 들었다. 엔딩 자체가 싱거운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 쥐잡이 사내는 쥐를 잡기 위해 독이 든 귀리를 뿌렸지만, 쥐들은 이 귀리를 먹지 않는다. 알고 보니 쥐가 사람의 시체를 먹어 이미 배가 불렀던 것이다. 이 잔인한 끝이 DE에게 싱겁게 느껴졌던 이유는 웨스 앤더슨이 모든 잔인함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고딕적이고 살벌한 이미지에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결말은 생각만 해도 DE를 웃게 했다.
발제의 마지막에 다다라 우리는 공통의 최종 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2, 3, 4순위의 선정 과정에서는 서로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과정을 어찌저찌 거칠 수 있었지만, 각자의 1순위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