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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유다연

                                       


박스와 전개도. 원그레너리(1granary)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이 이목을 끌었다. 그 게시물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 우먼즈웨어 석사과정 조르지아 프레스티(Giorgia Presti)의 졸업 컬렉션이었다. 조르지아 프레스티는 일회용품과 제로 웨이스트 포장에서 영감을 얻어 레이저 커팅으로 바느질도 없이 컬렉션을 제작했는데, 디자인을 기획하고 패턴을 뜨는 일반적인 의류 제작 프로세스와 달리 패턴 자체가 디자인이 되어 의류를 만들어 보인 점이 흥미로웠다. 조르지아 프레스티의 졸업 작품은 세 차례의 재미가 있다. 패턴 실루엣을 보는 1차 재미, 패턴이 조립된 상자와 같은 사물을 보는 2차 재미, 그리고 사람 몸에 덮어지며 만들어진 형태를 보는 3차 재미.


패션의 매력은 직물이 다른 곳이 아닌 사람의 몸에 닿는 순간 완연하게 다른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옷을 입는 사람의 체형과 분위기에 따라 실루엣이 변화하여 각기 다른 양태로 옷이 소화되는 즐거움에 패션을 애호한다. 그래서 직물을 미리 결정된 패턴과 대상 형상에 국한하는 테일러링보다는 가변적인 스타일링이 가능한 옷을 선호한다. 이는 인체 측정과 피팅을 거쳐 완벽한 비스포크(bespoke)를 추구하는 기존 의상 제작 방식에 대한 안티테제로, 여성복, 남성복의 카테고리에 따른 정형적 패턴의 답습이 아닌 즉흥성에 기반한 실험적인 패턴의 제작은 우리에게 의복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옷에 대한 2차원 도면적 접근은 옷 안에 숨겨져 있던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는 것과도 같은 재미를 준다.


2002년, 영국의 디자이너 줄리안 로버츠(Julian Roberts)는 서브트랙션 커팅(Subtraction Cutting)이라는 패턴 커팅 기술을 고안해 냈다. 서브트랙션 커팅이란 패턴 디자인과 드레이핑(Draping)(몸에 직접 직물을 대고 입체적인 모양을 만드는 기법)을 접목한 재단법이며, 패턴 디자인 작업을 과정이 아닌 하나의 창작물로 인식하고 이에 착용자의 스타일링을 덧붙여 최종 디자인을 완성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이는 원단 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패턴 커팅 기법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서브트랙션 커팅으로 제작된 의류는 직물의 크기, 커팅한 구멍의 개수 등에 따라 무한하게 응용할 수 있는, 즉 착용자의 자율성에 의해 가변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특성을 갖는다. 줄리안 로버츠는 이 기법을 설명한 「FREECUTTING」이라는 PDF 파일을 온라인으로 배포 중이다. (하단 링크에서 해당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커팅 기술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PDF 문서의 3페이지를 보면 “이건 단계별 가이드나 강의가 아니에요! 많은 실수를 해보길 바라요.”라고 쓰여 있는데, 이처럼 서브트랙션 커팅은 우연과 실수의 경계에서 만들어지며 시도하는 것 자체로 독창성을 지닌다.

https://drive.google.com/file/d/1dd7BlA7l1DHn54cb87fv-YvZfVSK-LhP/view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는 위에서 언급한 서브트랙션 커팅의 한 유형인 터널 테크닉(Tunnel Technique) 기법의 예시가 되는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터널 테크닉이란 직물 여기저기에 구멍을 내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하여 신체에 위치시키는 기술로, 마치 터널의 입구와 출구를 만들어 주는 작업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 줄리안 로버츠는 몸을 큰 원통형이라 생각하고 직물을 꼬아 커다란 프릴을 만드는 것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레이 가와쿠보는 이전부터 평평한 직물이 입체적인 신체에 어떻게 녹아들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해 왔고, 그로부터 직물이 가진 평면성과 부피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COMME des GARÇONS A/W1983-84 / S/S1988 / A/W1992-93 순


기하학적 구조를 지니는 평평한 직물이 신체에 얹히며 때에 따라 풍선 같은 볼륨을 가지기도 하고, 또는 직물의 직선이 몸의 곡선을 따라 유유히 흐르기도 한다. 특히 세 번째 이미지에서 평면일 땐 스폰지밥의 뚱이  같은 옷이 사람의 몸에 닿으면서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전, 이는 오직 패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다.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는 에코 패션에 주목하여 수많은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의류 제작에서의 관습적인 기능을 따르지 않고 플리츠(Pleats)와 같은 다양한 텍스타일을 개발해 오던 그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폴딩(Folding) 기법을 통하여 평면과 입체의 관계를 탐구했다. 구체적으로 2010년에는 폴딩의 수학적 측면을 의류 제작에 융합한 ‘132.5 ISSEY MIYAKE’라는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종이접기 같은 폴딩 구조를 통해 3D와 2D 사이를 변형시키는 그의 작업물은 위에서 언급한 레이 가와쿠보의 작품처럼 기하학적인 직물을 한순간에 새로운 실루엣으로 변모시킨다.


132.5 ISSEY MIYAKE  Origami Fold /  Building Blocks 순


히로아키 오야(Hiroaki Ohya)는 이세이 미야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일본 문화복장학원 졸업 후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들어간 그는 1996년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했고, 1999년 ‘알파벳 티셔츠’의 발표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알파벳 티셔츠란 평평한 의류를 알파벳의 형상으로 제작한 작업물로, 평면에서의 반듯한 알파벳이 몸에 걸쳐지는 순간 그 형상을 유지하기도, 잃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로우며 동시에 이는 단순한 프린팅 기법을 제외한 패션과 타이포그래피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



Oh! Ya? S/S1999

줄리안 로버츠가 도입한 서브트랙션 커팅 기법을 제외하고는, 패션에서 2차원의 평면성을 깊이 탐구한 작업물은 대부분 일본 디자이너에게서 비롯되었다. 추측하건대 그 이유는 일본의 전통 의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기모노란 본래 직사각형 직물 조각의 집합체로, 입지 않았을 땐 평평한 패브릭에 불과하던 것이 착용자의 몸에 걸쳐지는 순간 유려한 실루엣을 자아내는 의복으로 변모한다는 특성을 보인다. 패션계에 큰 획을 그은 이 작품들은 어쩌면 기모노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기모노 / tricot COMME des GARÇONS A/W1983(sweater) 순

앞서 말했듯, 기하학적인 직물이 유기적인 몸에 닿았을 때 직물의 실루엣은 변화한다. 이것이 직물이 만들어 내는 패션의 가장 큰 매력이고, 이처럼 차원 사이를 넘나드는 변환의 프로세스를 바라보는 과정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또 이는 서브트랙션 커팅처럼 우연적인 패턴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앞서 언급한 세 명의 일본 디자이너들처럼 결과물에 앞서 의도한 평면의 실루엣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디자이너의 창작물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그 패턴을 파악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직물의 변환 프로세스에 담긴 수수께끼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차원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직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패션의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