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 데아 클룸베가슈빌리 -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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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ITOR 엄동욱
WEDITOR 엄동욱
발제 일자 : 26.04.02
발제 영화 : 데아 쿨룸베가슈빌리 - <4월(2024)>
참여자 : CY, DU, HG, HM, MS, SE, SY, YS
DU : 데아의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먼저 그녀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하자면, 그녀는 첫 장편 <비기닝(2020)>이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4관왕을 이루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구아다니노도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그는 데아의 두 번째 장편인 <4월>의 제작을 맡았고, 이 작품은 베니스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부국제에도 그녀의 두 장편 모두 초청된 바 있으나 국내에선 그녀에 대한 언급이 부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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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 : 이제 발제할 <4월>로 넘어가자면, 이 작품은 명백히 문제적이다. 표면적으로 조지아의 어린 여성들이 겪는 출산에 관련된 문제를 산부인과 의사인 ‘니나’의 시점에서 표현한다. 그런데 인물들이 겪는 갈등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윤리적인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인물과 배경을 묵묵히 관찰한다. 그렇다고 현대 다큐멘터리나 슬로우 시네마로 그녀의 작품을 묶기에도 쉽지 않은데, 영화 속 니나의 이면이 크리처로 등장하기도 하고, 조지아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여성들의 노골적인 출산, 낙태 장면과 나란히 놓인다. 그렇기에 내가 사전에 관람에 유의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SY : 노골적인 출산 장면이라 하니 처음에는 하라 카즈오의 <극사적 에로스(1974)>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영화에는 자기 집에서 자연 분만하는 과정을 담았는데, 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조심하라고 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HG : 맞다. 출산 장면을 보는 것에 우리가 왜 주의해야 하지? 우리 모두 다 뱃속에서 태어났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그 과정을 겪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 그런데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풍경들 때문인지, 이런 노골적인 장면들도 자연적이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CY : 영화에는 풍경 말고도 니나의 껍데기로 표현되는 징그러운 외형의 크리처가 등장한다. 또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니나의 나체도 숨김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모습들에서 공포나 에로틱함이 느껴지기보다는, 아 그냥 몸이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크리처를 통해 괴물적인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부산물로서 등장하는?
HM : <언더 더 스킨(2013)> 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크리처를 처음 보았을 때는 시각적 충격이 강했는데, 나중에 가서는 그것이 점점 더 현실 같아 보였고 보는 나도 그것에 대해 좀 무감각해졌다.
DU : 맞다. 그런데 여타 영화에서 등장하는 크리처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예컨대 아피찻퐁을 비롯한 현대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크리처나 유령은 대부분 과거, 역사, 경계, 귀환 등의 주제로 풀이된다. 이런 주제들이 다소 남발되는 것 같기도 하고. 데아는 다른 방식을 취하는데, CY가 말해주었듯이 현실의 부산물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나는 크리처가 다른 세계를 표현하는 외부적 존재라기보다, 니나의 소진된 내면이 끝내 터져 흘러나온 껍데기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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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 : 아피찻퐁 같이 상실된, 잊힌 무언가를 불러내는 작업을 이질감 없이 수행하는 것은 감각이 예민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 영화에서는 주된 인물의 내적 상태가 불안인데, 이를 잘 형상화할 수 있는 것도 죽어 있는 형상이나 크리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다룸에 있어서 논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SE : 아무래도 여성 감독이다 보니 출산, 낙태와 같은 민감한 주제나 여성의 신체를 변형한 크리처를 다룰 때 더 적극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기존에 소비되던 여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제 여성의 이미지를 드러내려 한다. 또 계속해서 우리에게 그런 모습들을 직면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카메라가 마냥 똑바로 비추지는 않는다. 얼굴을 타이트하게 잡거나, 낙태 장면에서도 애매하게 하반신이 잘린다.
HG : 계속해서 이 카메라가 누구의 시점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카메라가 누군가의 눈을 경유해서 화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그것이 일관되지 않고 자주 깨진다. 시점 쇼트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시선의 주체인 니나가 대뜸 등장하기도 하고. 이 카메라의 시점은 영화를 보는 우리일까, 아니면 니나일까?
MS : 카메라가 유령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생각도 든다. 영화는 대부분 고정 쇼트를 유지하지만 미세하게 떨림이 있고, 화면 바깥에서는 버거운 숨소리도 들린다.
HM : 카메라가 때로는 숨기도 하지만 또 중요할 때는 전면에 나선다. 그 두 태도가 영화 내내 긴장을 이루고 충돌한다.
SY : 조금 다르게 말해보자면, 감독이 영화 초반부터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고 그래서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 롱테이크와 풍경, 운전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하려는 게 너무 뚜렷하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의도적으로 우회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여성들을 비추는 장면이나 여성들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HM : 나는 오히려 우리가 구체화된 현실을 보면서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회의 작동 방식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 좋았다. 니나 자신을 둘러싼 여러 욕망과 신체에 가해지는 긴장들이 영화 내내 충돌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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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 : 이 영화는 21세기 리얼리즘 시네마 안에서도 조금 다른 곳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에서 SY가 말한 그런 지점은 언제나 숱한 논쟁거리다. 연출적인 게으름 혹은 역량 부족이냐, 아니면 응시냐.
MS : 나는 반대로 이 영화가 버티고 서있는 힘이 강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사건을 움직이지 않은 채 꿋꿋이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버텨내는 힘이 강한 영화다. 그렇기에 한 차례 뼈아픈 현실들이 지나가고 난 뒤 등장하는 조지아의 풍경은 아프지만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그것들이 마치 여성들을 위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DU : 버틴다는 표현이 너무 좋다. 실제로 이 영화는 버티면서 찍어야 했다. 조지아는 검열 압박이 매우 심한 국가인데, 데아와 촬영 스태프들은 작품 촬영 내내 경찰과 당국으로부터 쫓겨 다녀야 했다. 또 그녀가 조지아 여성의 출산과 낙태 문제를 영화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소규모 마을 공동체, 로케이션이었던 실제 병원의 의료진들, 그리고 실제 임산부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YS : 풍경도 버텨내야만 담아낼 수 있지 않았나? 영화 내내 등장하는 풍경들은 대부분 해 뜨기 직전 혹은 해 지기 직전의 블루 아워에 촬영된 것처럼 보인다. 또 출산과 낙태 장면에서도 최소한의 자연광이나 의료 기기만을 광원으로 삼을 뿐이다.
DU : 맞다. 빛도, 카메라도, 구도도, 그 어떤 것도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실 이 영화를 발제하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데아의 시도가 대상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방식의 리얼리즘이나, 또 촬영 대상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져야만 담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수행적 움직임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데아의 영화는 어디에도 쉽게 위치시키지 못하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그녀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녀에 대한 큰 응원의 마음과 함께 가지고 있다. 물론 당분간 국내에서 그녀의 작품이 상영될 일도 없을 것이므로 아무도 관심이 없을 테고, 또 그렇게 오늘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도 우리만의 대화가 되겠지만.
발제 영화 : 데아 쿨룸베가슈빌리 - <4월(2024)>
참여자 : CY, DU, HG, HM, MS, SE, SY, YS
DU : 데아의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먼저 그녀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하자면, 그녀는 첫 장편 <비기닝(2020)>이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4관왕을 이루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구아다니노도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그는 데아의 두 번째 장편인 <4월>의 제작을 맡았고, 이 작품은 베니스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부국제에도 그녀의 두 장편 모두 초청된 바 있으나 국내에선 그녀에 대한 언급이 부재한 상황이다.

DU : 이제 발제할 <4월>로 넘어가자면, 이 작품은 명백히 문제적이다. 표면적으로 조지아의 어린 여성들이 겪는 출산에 관련된 문제를 산부인과 의사인 ‘니나’의 시점에서 표현한다. 그런데 인물들이 겪는 갈등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윤리적인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인물과 배경을 묵묵히 관찰한다. 그렇다고 현대 다큐멘터리나 슬로우 시네마로 그녀의 작품을 묶기에도 쉽지 않은데, 영화 속 니나의 이면이 크리처로 등장하기도 하고, 조지아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여성들의 노골적인 출산, 낙태 장면과 나란히 놓인다. 그렇기에 내가 사전에 관람에 유의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SY : 노골적인 출산 장면이라 하니 처음에는 하라 카즈오의 <극사적 에로스(1974)>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영화에는 자기 집에서 자연 분만하는 과정을 담았는데, 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조심하라고 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HG : 맞다. 출산 장면을 보는 것에 우리가 왜 주의해야 하지? 우리 모두 다 뱃속에서 태어났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그 과정을 겪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 그런데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풍경들 때문인지, 이런 노골적인 장면들도 자연적이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CY : 영화에는 풍경 말고도 니나의 껍데기로 표현되는 징그러운 외형의 크리처가 등장한다. 또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니나의 나체도 숨김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모습들에서 공포나 에로틱함이 느껴지기보다는, 아 그냥 몸이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크리처를 통해 괴물적인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부산물로서 등장하는?
HM : <언더 더 스킨(2013)> 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크리처를 처음 보았을 때는 시각적 충격이 강했는데, 나중에 가서는 그것이 점점 더 현실 같아 보였고 보는 나도 그것에 대해 좀 무감각해졌다.
DU : 맞다. 그런데 여타 영화에서 등장하는 크리처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예컨대 아피찻퐁을 비롯한 현대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크리처나 유령은 대부분 과거, 역사, 경계, 귀환 등의 주제로 풀이된다. 이런 주제들이 다소 남발되는 것 같기도 하고. 데아는 다른 방식을 취하는데, CY가 말해주었듯이 현실의 부산물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나는 크리처가 다른 세계를 표현하는 외부적 존재라기보다, 니나의 소진된 내면이 끝내 터져 흘러나온 껍데기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SY : 아피찻퐁 같이 상실된, 잊힌 무언가를 불러내는 작업을 이질감 없이 수행하는 것은 감각이 예민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 영화에서는 주된 인물의 내적 상태가 불안인데, 이를 잘 형상화할 수 있는 것도 죽어 있는 형상이나 크리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다룸에 있어서 논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SE : 아무래도 여성 감독이다 보니 출산, 낙태와 같은 민감한 주제나 여성의 신체를 변형한 크리처를 다룰 때 더 적극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기존에 소비되던 여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제 여성의 이미지를 드러내려 한다. 또 계속해서 우리에게 그런 모습들을 직면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카메라가 마냥 똑바로 비추지는 않는다. 얼굴을 타이트하게 잡거나, 낙태 장면에서도 애매하게 하반신이 잘린다.
HG : 계속해서 이 카메라가 누구의 시점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카메라가 누군가의 눈을 경유해서 화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그것이 일관되지 않고 자주 깨진다. 시점 쇼트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시선의 주체인 니나가 대뜸 등장하기도 하고. 이 카메라의 시점은 영화를 보는 우리일까, 아니면 니나일까?
MS : 카메라가 유령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생각도 든다. 영화는 대부분 고정 쇼트를 유지하지만 미세하게 떨림이 있고, 화면 바깥에서는 버거운 숨소리도 들린다.
HM : 카메라가 때로는 숨기도 하지만 또 중요할 때는 전면에 나선다. 그 두 태도가 영화 내내 긴장을 이루고 충돌한다.
SY : 조금 다르게 말해보자면, 감독이 영화 초반부터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고 그래서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 롱테이크와 풍경, 운전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하려는 게 너무 뚜렷하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의도적으로 우회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여성들을 비추는 장면이나 여성들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HM : 나는 오히려 우리가 구체화된 현실을 보면서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회의 작동 방식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 좋았다. 니나 자신을 둘러싼 여러 욕망과 신체에 가해지는 긴장들이 영화 내내 충돌하는 것도.

DU : 이 영화는 21세기 리얼리즘 시네마 안에서도 조금 다른 곳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에서 SY가 말한 그런 지점은 언제나 숱한 논쟁거리다. 연출적인 게으름 혹은 역량 부족이냐, 아니면 응시냐.
MS : 나는 반대로 이 영화가 버티고 서있는 힘이 강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사건을 움직이지 않은 채 꿋꿋이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버텨내는 힘이 강한 영화다. 그렇기에 한 차례 뼈아픈 현실들이 지나가고 난 뒤 등장하는 조지아의 풍경은 아프지만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그것들이 마치 여성들을 위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DU : 버틴다는 표현이 너무 좋다. 실제로 이 영화는 버티면서 찍어야 했다. 조지아는 검열 압박이 매우 심한 국가인데, 데아와 촬영 스태프들은 작품 촬영 내내 경찰과 당국으로부터 쫓겨 다녀야 했다. 또 그녀가 조지아 여성의 출산과 낙태 문제를 영화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소규모 마을 공동체, 로케이션이었던 실제 병원의 의료진들, 그리고 실제 임산부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YS : 풍경도 버텨내야만 담아낼 수 있지 않았나? 영화 내내 등장하는 풍경들은 대부분 해 뜨기 직전 혹은 해 지기 직전의 블루 아워에 촬영된 것처럼 보인다. 또 출산과 낙태 장면에서도 최소한의 자연광이나 의료 기기만을 광원으로 삼을 뿐이다.
DU : 맞다. 빛도, 카메라도, 구도도, 그 어떤 것도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실 이 영화를 발제하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데아의 시도가 대상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방식의 리얼리즘이나, 또 촬영 대상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져야만 담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수행적 움직임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데아의 영화는 어디에도 쉽게 위치시키지 못하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그녀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녀에 대한 큰 응원의 마음과 함께 가지고 있다. 물론 당분간 국내에서 그녀의 작품이 상영될 일도 없을 것이므로 아무도 관심이 없을 테고, 또 그렇게 오늘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도 우리만의 대화가 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