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 Neutrality
WEBZINE
WEDITOR 김해민
몸과 정신에 대해 생각한다.
신체는 주로 습관적이고 몸에 밴 것을 담당하므로 다소 사회의 산물 같은 것이다. 정신은 늘 그것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성의 몸을 갖고 태어난 삶의 경우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몸은 언제나 정신으로 온전히 통제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쇠로 된 것으로 허리와 가슴을 조이도록 만들었던 건 뒤틀린 욕망이 아닌 사회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상 신체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 대한 주체의식을 기르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제는 개인적인 노력을 한다. 보호자를 잃은 나의 육체에 대한 애정을 가꾸고 공부해야 한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놓아줘야 하는지를.
여성의 몸을 가진 인류의 거반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으레 혹사시킨다. 먹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며 거울 속 몸에 가학적인 시선을 투영한다. 그 주범은 비현실적인 미적 기준과 신체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하여 우리들에게 주입시키는 미디어와 사회다.
Body Positivity 운동은 외모지상주의를 살찌우는 시스템적인 공작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극도로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허물고, 개인이 가진 다양한 형태의 몸이 모두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굶고 토하고 고통받고 있었으며, 이들을 구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평가가 가득한 사회에서 주체적인 몸의 담론이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이 흐름에 발맞춰 옷의 사이즈를 늘리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기용했다. 분명 순기능적인 변화가 있었다. 신체적인 장애나 결함을 아름다운 것으로 치환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또다시 ‘미의 기준’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여성 또한 덩치와 살집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받는 듯했지만, 그것을 얼마큼 보기 좋게 가지는지, 비율이 어떤지, 충분히 아름다운지 여자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재단했다. 몸은 결코 해방되지 못했다. 따라서 근본적인 물음은 지속된다. 우리의 몸은 인정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여전히 아름다워야 할 대상인가?
‘My body is an instrument, not an ornament.’
‘나의 몸은 장식이 아닌 도구이다.’
Body Neutrality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대안이다. 그 목표는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이상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형적 요소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의 모든 관행을 수정하는 데 있다. 기능과 능력으로 신체를 바라봄으로써 신체가 전시나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다. 모럴이나 관용구 정도로 느껴지는 문장들이 누군가에겐 필사적인 구호가 된다.
몸을 외부의 수많은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법은 간단하다. 몸을 오직 몸으로서 독립시켜 돌봐주는 것이다. 나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닌 어떤 기능과 일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 Body Neutrality는 육체적 활동을 통해 몸에 대한 주체성과 건강한 태도를 실천하길 권한다. 가령 운동을 할 땐 모양새나 미적 요소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닌 운동 중심적이고 역동적인 종류의 스포츠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앉을 때 다리를 오므리거나 꼬도록 하는 미소지니 문화 속에서 운동과 친해지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릴 적 뛰고 공 차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던 나는 언제부턴가 운동에 돌입할 때면 지금의 내가 운동 자체에 끌리는 것인지, 최근에 찐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헷갈리곤 했다. 하지만 의심을 뒤로하고 우선 운동을 시작하면 숨이 차고 힘이 생성되는 기운에 즐겁다. 처음으로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남이 보면 우악스러울 자태로 이리저리 뛰며 땀을 뻘뻘 흘린다. 그러면 정신은 육체와 한 몸이 되어, 나의 몸은 완전한 내 것이 된 기분이다.
패션은 어느 선을 지나면 더 이상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다.* 머리가 크면서 들어차는 것이 생기니 내가 입는 것과 보이는 것에 좀 더 신중해진다. 우습게도 멋이란, 꾸밈이란 무엇일까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특히 나 자신과 몸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 어떤 주관이 생겨나기도 한다. 되도록 나의 심경이나 가치를 반영하는 옷을 입고 싶어진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은 개인이나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다는 믿음을 여전히 품고 있기도 하다. *정세랑의 소설에서
그렇다면 입는 사람의 주체성을 고민하는 옷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나는 그것이 자연을 반영하는 편이여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살과 피부를 존중하는 재료와 디자인, 그리고 환경과 문화에 무해한 옷의 생산. 그것이 가장 기능주의적이고 미래적인 패션이 아닐까. 여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친화적인 디자인들이 있다. 이들은 자연이 그렇듯 포용적이며 조화롭고, 다채로우며 솔직하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진중하기에 오래 바라보아야 할 것들이다.
BASERANGE
Baserange는 부드럽고, 섬세하며 편안한 실루엣을 추구하는 브랜드다. 스포츠 웨어와 란제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언더웨어 제품들로 시작해서, 이제 평상복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바위와 풀의 색을 닮은 부드러운 색조와 몸을 에워싸며 흐르는 옷감의 이미지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몸소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Baserange는 실크나 리넨, 울과 같은 자연 섬유만을 사용하며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리적인 노력을 지속한다.
MOZHDEH MATIN
디자이너 Mozhdeh Matin의 브랜드 MOZHDEH MATIN은 페루 원주민 마을의 여성 장인들과 협업함으로써 오래된 섬유 전통과 기술을 보존하고 부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천천히, 손으로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MOZHDEH MATIN은 늘 색채로 가득하고 하나하나 독보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의 제품들을 선보이는데, 어떠한 유행이나 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주체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옷감 또한 페루 지역 내에서 윤리적으로 생산된 소재들로만 이루어진다.
MAISON CLEO
Maison Cléo의 옷들은 버려지는 옷감들로 만들어지며, 주문 후에 맞춤 제작된다. 몸에 걸친 듯한, 감각적인 컷의 시어 블라우스는 도심 곳곳이든 집안에서든 빛난다. 프랑스의 두 모녀가 운영하는 이 브랜드는 딸 Marie Dewet과 재봉사인 어머니, Cléo의 손으로부터 탄생했다. 이들이 이러한 유일무이한 방식을 선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공식 사이트에서 Marie는 할머니와, 그녀의 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패션의 계보를 이야기한다. 이 브랜드의 공고한 직업 정신과 미적 감각은 대대손손 자식에게 입힐 옷을 지어온 여성들과, 그들이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로부터 설명된다. 특히 Maison Cléo는 소비와 선택을 무디게 만드는 패스트패션에 대항해 무엇보다 투명성을 내세우고, 그로써 환경과 인간성을 존중하는 패션을 보여준다.
종종 내가 입고 두르는 것들이 내 피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옷의 색이 나의 감정을, 질감은 나의 체온을, 실루엣은 나의 ‘타고난’ 신체를 반영함으로써.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때면 이렇게 발가벗은 듯한 자유를 경험한다.
신체는 주로 습관적이고 몸에 밴 것을 담당하므로 다소 사회의 산물 같은 것이다. 정신은 늘 그것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성의 몸을 갖고 태어난 삶의 경우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몸은 언제나 정신으로 온전히 통제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쇠로 된 것으로 허리와 가슴을 조이도록 만들었던 건 뒤틀린 욕망이 아닌 사회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상 신체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 대한 주체의식을 기르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제는 개인적인 노력을 한다. 보호자를 잃은 나의 육체에 대한 애정을 가꾸고 공부해야 한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놓아줘야 하는지를.
여성의 몸을 가진 인류의 거반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으레 혹사시킨다. 먹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며 거울 속 몸에 가학적인 시선을 투영한다. 그 주범은 비현실적인 미적 기준과 신체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하여 우리들에게 주입시키는 미디어와 사회다.
Body Positivity 운동은 외모지상주의를 살찌우는 시스템적인 공작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극도로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허물고, 개인이 가진 다양한 형태의 몸이 모두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굶고 토하고 고통받고 있었으며, 이들을 구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평가가 가득한 사회에서 주체적인 몸의 담론이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이 흐름에 발맞춰 옷의 사이즈를 늘리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기용했다. 분명 순기능적인 변화가 있었다. 신체적인 장애나 결함을 아름다운 것으로 치환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또다시 ‘미의 기준’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여성 또한 덩치와 살집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받는 듯했지만, 그것을 얼마큼 보기 좋게 가지는지, 비율이 어떤지, 충분히 아름다운지 여자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재단했다. 몸은 결코 해방되지 못했다. 따라서 근본적인 물음은 지속된다. 우리의 몸은 인정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여전히 아름다워야 할 대상인가?
‘My body is an instrument, not an ornament.’
‘나의 몸은 장식이 아닌 도구이다.’
Body Neutrality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대안이다. 그 목표는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이상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형적 요소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의 모든 관행을 수정하는 데 있다. 기능과 능력으로 신체를 바라봄으로써 신체가 전시나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다. 모럴이나 관용구 정도로 느껴지는 문장들이 누군가에겐 필사적인 구호가 된다.
몸을 외부의 수많은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법은 간단하다. 몸을 오직 몸으로서 독립시켜 돌봐주는 것이다. 나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닌 어떤 기능과 일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 Body Neutrality는 육체적 활동을 통해 몸에 대한 주체성과 건강한 태도를 실천하길 권한다. 가령 운동을 할 땐 모양새나 미적 요소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닌 운동 중심적이고 역동적인 종류의 스포츠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앉을 때 다리를 오므리거나 꼬도록 하는 미소지니 문화 속에서 운동과 친해지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릴 적 뛰고 공 차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던 나는 언제부턴가 운동에 돌입할 때면 지금의 내가 운동 자체에 끌리는 것인지, 최근에 찐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헷갈리곤 했다. 하지만 의심을 뒤로하고 우선 운동을 시작하면 숨이 차고 힘이 생성되는 기운에 즐겁다. 처음으로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남이 보면 우악스러울 자태로 이리저리 뛰며 땀을 뻘뻘 흘린다. 그러면 정신은 육체와 한 몸이 되어, 나의 몸은 완전한 내 것이 된 기분이다.
패션은 어느 선을 지나면 더 이상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다.* 머리가 크면서 들어차는 것이 생기니 내가 입는 것과 보이는 것에 좀 더 신중해진다. 우습게도 멋이란, 꾸밈이란 무엇일까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특히 나 자신과 몸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 어떤 주관이 생겨나기도 한다. 되도록 나의 심경이나 가치를 반영하는 옷을 입고 싶어진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은 개인이나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다는 믿음을 여전히 품고 있기도 하다. *정세랑의 소설에서
그렇다면 입는 사람의 주체성을 고민하는 옷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나는 그것이 자연을 반영하는 편이여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살과 피부를 존중하는 재료와 디자인, 그리고 환경과 문화에 무해한 옷의 생산. 그것이 가장 기능주의적이고 미래적인 패션이 아닐까. 여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친화적인 디자인들이 있다. 이들은 자연이 그렇듯 포용적이며 조화롭고, 다채로우며 솔직하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진중하기에 오래 바라보아야 할 것들이다.
BASERANGE
Baserange는 부드럽고, 섬세하며 편안한 실루엣을 추구하는 브랜드다. 스포츠 웨어와 란제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언더웨어 제품들로 시작해서, 이제 평상복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바위와 풀의 색을 닮은 부드러운 색조와 몸을 에워싸며 흐르는 옷감의 이미지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몸소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Baserange는 실크나 리넨, 울과 같은 자연 섬유만을 사용하며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리적인 노력을 지속한다.
MOZHDEH MATIN
디자이너 Mozhdeh Matin의 브랜드 MOZHDEH MATIN은 페루 원주민 마을의 여성 장인들과 협업함으로써 오래된 섬유 전통과 기술을 보존하고 부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천천히, 손으로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MOZHDEH MATIN은 늘 색채로 가득하고 하나하나 독보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의 제품들을 선보이는데, 어떠한 유행이나 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주체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옷감 또한 페루 지역 내에서 윤리적으로 생산된 소재들로만 이루어진다.
MAISON CLEO
Maison Cléo의 옷들은 버려지는 옷감들로 만들어지며, 주문 후에 맞춤 제작된다. 몸에 걸친 듯한, 감각적인 컷의 시어 블라우스는 도심 곳곳이든 집안에서든 빛난다. 프랑스의 두 모녀가 운영하는 이 브랜드는 딸 Marie Dewet과 재봉사인 어머니, Cléo의 손으로부터 탄생했다. 이들이 이러한 유일무이한 방식을 선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공식 사이트에서 Marie는 할머니와, 그녀의 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패션의 계보를 이야기한다. 이 브랜드의 공고한 직업 정신과 미적 감각은 대대손손 자식에게 입힐 옷을 지어온 여성들과, 그들이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로부터 설명된다. 특히 Maison Cléo는 소비와 선택을 무디게 만드는 패스트패션에 대항해 무엇보다 투명성을 내세우고, 그로써 환경과 인간성을 존중하는 패션을 보여준다.
종종 내가 입고 두르는 것들이 내 피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옷의 색이 나의 감정을, 질감은 나의 체온을, 실루엣은 나의 ‘타고난’ 신체를 반영함으로써.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때면 이렇게 발가벗은 듯한 자유를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