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UXUS: Carol Christian Poell
WEBZINE
WEDITOR   이승현

해당 사진은 단테의 인페르노에 나온 지옥의 단계를 패러디한 밈이다. 지옥의 저 밑에는 캐롤 크리스찬 포엘이 자리잡고 있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캐롤 크리스찬 포엘’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테일러드 남성복의 실루엣과 실험적인 디자인 기법의 교차점을 가진 디자이너, 캐롤 크리스찬 포엘을 소개한다.

그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들은 차고 넘쳤다. 90년대 헬무트 랭, 넘버 나인, M.A+, 현재는 R13도 한 자리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상업적이지 않고 컬트적인 요소를 가득 담고 있는 브랜드는 캐롤 크리스찬 포엘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캐롤 크리스찬 포엘은 1966년 오스트리아 린츠 출생으로, ‘거버레그레’라는 가죽 제조업을 하는 환경 아래 성장했다. 그렇기에 그의 정교한 가죽 기술은 현재 그의 브랜드에서도 많이 묻어난다. 그는 패션 스쿨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세르지오 시몬과 함께 레이블을 설립했다.

그는 첫 컬렉션을 출시한 1995년부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실험적인 섬유 사용, 오브젝트 다잉, 독특한 재단법 등 당대 브랜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기법과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들을 통해 옷의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옷이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때문에 그의 옷은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반미학적인 옷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FLUXUS, 즉 플럭서스라는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플럭서스는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해, 1960년대 초반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이다. 이들의 가장 큰 가치는 ‘삶과 예술의 조화’였다. 그리고 유명한 플럭서스 운동가로는 백남준이 있다. 플럭서스 운동가들은 탈장르주의를 지향하고, 예술의 통합을 중시한다. 캐롤 크리스찬 포엘의 프레젠테이션은 플럭서스 운동의 정석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플럭서스와 닮아 있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서 패션을 대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줬던 그의 2000년 F/W 컬렉션의 프레젠테이션은 영안실에서 진행되었다. 해당 컬렉션에서 포엘은 가죽의 투명도를 높이기 위해 고대 가죽 태닝 기법을 적용하였다.



2005년에는 가죽 안쪽에 동물의 피를 발라 피의 화학적 성분이 가죽을 안정적으로 변화시키도록 제품을 제작했고, 그는 이 방법이 가죽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기괴한 작업 방식들로 탄생한 컬렉션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03년 밀라노 나발리오 운하에서 진행된 <Mainstream-Downstream>이다.


해당 컬렉션은 유행에 편승하는 주류 패션(Mainstream)이 무비판적으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경고로, 모델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운하의 수류를 따라 떠내려 가는 퍼포먼스를 연출함으로써 패션계의 엘리트주의와 무비판적 순응성을 비판했다. 이러한 점에서, 포엘의 작품은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새로운 미감을 제시하며 비판적 기능을 수행했고, 이는 앞서 언급한 아방가르드 예술 집단인 플럭서스와 큰 공통점을 지닌다.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으나, 플럭서스의 지향점과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의류를 매개체로 사용한 포엘의 지향점은 일맥상통했다. 그의 얼굴은 밝혀진 바 없으며, 현재도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간헐적으로 컬렉션을 내놓는다. 그의 컬렉션은 오랜 시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