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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WEDITOR 이시은
She’s overboard, and self-assured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물에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올려다봤고, 시야는 곧 물결로 흐릿해졌다.
© tate collection
가장 아름다운 사망 선고라고도 불리는 『햄릿』 중 오필리아의 죽음. 이 비극조차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낸 존 에버렛 밀레이의 회화 작품 <오필리아>에는 그 죽음의 장면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있다. 오필리아의 주위로 안개처럼 퍼지는 반투명한 하얀 드레스 자락이다. 「햄릿」에서 그 장면을 목도한 왕비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입은 옷이 쫙 퍼져 인어처럼 물에 뜬’ 오필리아의 모습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오필리아의 눈빛과 어우러져 광기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처음 그림을 보았던 아주 어릴 적부터 그 서늘한 하얀빛은 기묘하게도 마음을 잡아끄는 데가 있어서 다른 어떤 드레스를 입은 명화보다도 <오필리아>를 좋아하게 해 주었다.
늘 풍성하게 퍼지고 반투명하게 비치는 겹겹의 옷자락을 좋아해 왔다. 그 이유는 명확한데, 나는 어릴 적부터 판타지와 환상에 미쳐 있던 사람으로서, 늘 책 속 공주들이 입던 아름다운 드레스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주라 해서 항상 자유롭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해피엔딩의 로맨스보다 이해관계와 광기가 섞여 만들어지는 어딘가 뒤틀린 작품들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 취향에도 약간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튤, 시스루, 레이스, 로맨틱한 피스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단순히 보기에 아름답고 잘 만들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 있는 서늘하고 비정한 감각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그 옷자락을 보고 꽃잎이라 할 테지만 나는 그 일련의 피스들을 보며 안개처럼 물에 녹아드는 드레스, 그리고 죽음을 떠올렸다.
죽음은 오래전부터 인간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역사를 건너오며 누군가는 죽음을 거부했고 어떤 집단들은 죽음을 숭배했다.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절망하거나, 그것을 삶의 기회로 삼거나,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아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죽음에 슬퍼했지만,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삶을 앗아가는 것에 큰 쾌락을 느끼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나 견해가 다르고 죽음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이미지가 더 우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것은 인간은 죽음의 이미지에 끌린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죽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착해 왔다. 눈에 보이고 종이에 쓰인, 손에 잡히는 죽음은 대부분의 경우 더 큰 공포, 절망, 슬픔 따위를 가져다주지만 (이러한 점에서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므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그 역을 생각해 볼 때는 상당히 잘 들어맞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 현실에 남은 사람들의 공동체적 경험인 추모를 통해 형성하는 유대, 죽음을 자각하며 피어나는 삶에 대한 성찰 등은 죽음의 부정성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긍정의 산물이다.
이렇듯 죽음은 부정과 긍정의 속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추하면서 동시에 아름답기도 하다. 그리고 죽음의 이런 아름다움, 그중에서도 물에 퍼지는 드레스 같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브랜드가 있다. 디자이너 시몬 로샤가 전개하는 동명의 브랜드 시몬 로샤Simone Rocha다.
© simonerocha
디자이너 시몬 로샤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디자이너다. 그녀의 아버지인 존 로샤 역시 패션 디자이너였는데,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크로셰와 공예를 배운 그녀는 쇼 피스에서 유독 눈특유의 섬세한 수공예와 자수 디테일을 선보인다. 시몬 로샤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출신지인 아일랜드의 문화와 역사다. 아일랜드를 “스토리텔링과 공예에 깊은 역사를 지닌 곳”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아일랜드의 문화적 요소들을 비롯한 예술 작품, 니팅, 공예 기법 등을 컬렉션의 다양한 곳에 활용한다.
그녀가 특히 주목한 것은 아일랜드 여성들이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겪는 개인적 경험들이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패션쇼에서 선보였던 컬렉션에서 시몬 로샤는 아일랜드 애런의 여성들이 추도의 과정에서 입는 의상을 다뤘다. 여성들은 페티코트를 붉은색으로 물들이지만, 그것을 본래의 목적으로 착용하는 대신 머리에 뒤집어쓴다. 일종의 베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높이 솟은 비정형적 모양의 붉은 베일을 머리에 드리운 모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쇼장을 누빈다.
© simonerocha(시몬로샤 AW20)
이로부터 약 10년 뒤, AW20 런던 패션 위크에서 시몬 로샤는 다시 한번 아일랜드 여성의 죽음에 대한 경험을 컬렉션에 녹여냈다. 해당 컬렉션에 영감을 준 작품은 남편과 아들 다섯 명을 바다에 잃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아일랜드 극작가 존 미링턴 싱의 『바다로 간 사람들』이다. 전체 컬렉션에는 죽은 자-어부였던 남편과 아들들-를 상징하는 굵은 짜임의 니트웨어, 네트 백 등의 아이템과 이를 추도하는 장례식의 이미지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주인공은 성수를 아들의 몸과 유품에 뿌리며 절규하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가톨릭적 색채는 풍성한 러플과 비숍 슬리브, 쇼의 메인 컬러인 검은색과 하얀색을 통해 시각화된다. 피날레의 착장에서 얼굴을 가리며 떨어지는 플라워 엠브로이더리 베일과 두 겹의 레이스가 트리밍된 깨끗한 백색의 원피스는 죽음에 대한 가장 깊은 형태의 추모, 동시에 새로 태어나는 순간에서 느껴지는 삶의 영속성을 볼 수 있게 한다.
창작자 본인의 의도를 구태여 해석하지 않더라도, 시몬 로샤의 많은 의상들과 화보들에는 한결같이 불안정하고 기괴한 데가 있다. 퍼프 소매, 티어드 스커트, 레이스, 진주 등이 주로 포함된 시몬 로샤의 스타일 탓에 혹자는 해당 브랜드를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브랜드로 생각하기도 한다. 틀린 것은 아니다. 시몬 로샤는 분명히 낭만주의 시대라 불리는 19세기 여성복의 많은 부분을 닮았다. 하지만 의복의 영역을 벗어나 예술 사조로서의 로맨티시즘이 개인의 자아로 침잠해 때로는 그 내면의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모습에 가닿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시몬 로샤만의 기괴한, 죽음을 연상시키는, 때로는 광기 어린 듯 보이기까지 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한결 잘 와닿을 것이다.
© simonerocha(시몬로샤 AW22 / 시몬로샤 SS19)
시몬 로샤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색은 블랙, 화이트, 레드다. 이 세 색은 어쩐지 장례, 뼈, 피를 연상시킨다. (스킨 톤 역시 시몬 로샤의 컬렉션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컬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점은 더욱 묘하다. 뼈와 피와 살이 모두 존재하는 것 아닌가) AW22 컬렉션에서 수많은 러플로 부푼 드레스 자락, 반투명한 하얀색 원단, 붉은색 레이스 트리밍, 상체를 붉게 물들인 에나멜 자켓 등을 입고 굳은 표정으로 워킹하는 모델들을 보고 있으면 유령들과 붉게 흐른 피가 공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후 세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SS19 컬렉션에서는 시즌 프린팅과 함께 모자 아래로 떨어지는 검은색과 하얀색 베일, 어깨를 덮은 시스루 케이프가 눈에 띈다.
©@atmos/@thevioletbook/@teethmag/@unpolishedmagazine
화보, 캠페인, 룩북 사진 역시 대체로 불안정하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한낮의 평원 위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원을 이뤄 누워 있는 모델들은 있어서는 안 될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며 <미드 소마>의 그것과 같이 아름다우면서 섬뜩한 느낌을 준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손을 배 위에 포갠 채 누워 있는 모습이나, 마찬가지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물로 걸어가는 뒷모습,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춘 가운데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 있는 모델 등 시몬 로샤의 비주얼 작업들은 하나같이 죽음의 문턱,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아름다움은 때로 위태로움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팔이 떨어진 밀로의 비너스상과 얼굴 반쪽이 깨진 수막새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고통에 울부짖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며 알 수 없는 황홀함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정형과 비정형 중에서는 비정형이 언제나 더 많은 것을 함의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불완전한 삶은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비정형과 죽음을 담은 시몬로샤의 옷은 동시대의 어떤 옷들보다도 특별하다. 이제 여러 겹의 티어드 스커트, 붉은 레이스 트리밍, 새하얀 시스루 드레스를 보면-무엇이 떠오르는가? 수면 위에 떠 있는 인영과 안개처럼 퍼진 드레스가 떠오른다면, 그 안으로 뛰어들어 죽음만이 줄 수 있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해보라.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물에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올려다봤고, 시야는 곧 물결로 흐릿해졌다.
© tate collection
가장 아름다운 사망 선고라고도 불리는 『햄릿』 중 오필리아의 죽음. 이 비극조차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낸 존 에버렛 밀레이의 회화 작품 <오필리아>에는 그 죽음의 장면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있다. 오필리아의 주위로 안개처럼 퍼지는 반투명한 하얀 드레스 자락이다. 「햄릿」에서 그 장면을 목도한 왕비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입은 옷이 쫙 퍼져 인어처럼 물에 뜬’ 오필리아의 모습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오필리아의 눈빛과 어우러져 광기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처음 그림을 보았던 아주 어릴 적부터 그 서늘한 하얀빛은 기묘하게도 마음을 잡아끄는 데가 있어서 다른 어떤 드레스를 입은 명화보다도 <오필리아>를 좋아하게 해 주었다.
늘 풍성하게 퍼지고 반투명하게 비치는 겹겹의 옷자락을 좋아해 왔다. 그 이유는 명확한데, 나는 어릴 적부터 판타지와 환상에 미쳐 있던 사람으로서, 늘 책 속 공주들이 입던 아름다운 드레스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주라 해서 항상 자유롭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해피엔딩의 로맨스보다 이해관계와 광기가 섞여 만들어지는 어딘가 뒤틀린 작품들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 취향에도 약간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튤, 시스루, 레이스, 로맨틱한 피스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단순히 보기에 아름답고 잘 만들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 있는 서늘하고 비정한 감각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그 옷자락을 보고 꽃잎이라 할 테지만 나는 그 일련의 피스들을 보며 안개처럼 물에 녹아드는 드레스, 그리고 죽음을 떠올렸다.
죽음은 오래전부터 인간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역사를 건너오며 누군가는 죽음을 거부했고 어떤 집단들은 죽음을 숭배했다.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절망하거나, 그것을 삶의 기회로 삼거나,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아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죽음에 슬퍼했지만,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삶을 앗아가는 것에 큰 쾌락을 느끼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나 견해가 다르고 죽음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이미지가 더 우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것은 인간은 죽음의 이미지에 끌린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죽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착해 왔다. 눈에 보이고 종이에 쓰인, 손에 잡히는 죽음은 대부분의 경우 더 큰 공포, 절망, 슬픔 따위를 가져다주지만 (이러한 점에서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므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그 역을 생각해 볼 때는 상당히 잘 들어맞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 현실에 남은 사람들의 공동체적 경험인 추모를 통해 형성하는 유대, 죽음을 자각하며 피어나는 삶에 대한 성찰 등은 죽음의 부정성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긍정의 산물이다.
이렇듯 죽음은 부정과 긍정의 속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추하면서 동시에 아름답기도 하다. 그리고 죽음의 이런 아름다움, 그중에서도 물에 퍼지는 드레스 같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브랜드가 있다. 디자이너 시몬 로샤가 전개하는 동명의 브랜드 시몬 로샤Simone Rocha다.
디자이너 시몬 로샤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디자이너다. 그녀의 아버지인 존 로샤 역시 패션 디자이너였는데,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크로셰와 공예를 배운 그녀는 쇼 피스에서 유독 눈특유의 섬세한 수공예와 자수 디테일을 선보인다. 시몬 로샤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출신지인 아일랜드의 문화와 역사다. 아일랜드를 “스토리텔링과 공예에 깊은 역사를 지닌 곳”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아일랜드의 문화적 요소들을 비롯한 예술 작품, 니팅, 공예 기법 등을 컬렉션의 다양한 곳에 활용한다.
그녀가 특히 주목한 것은 아일랜드 여성들이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겪는 개인적 경험들이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패션쇼에서 선보였던 컬렉션에서 시몬 로샤는 아일랜드 애런의 여성들이 추도의 과정에서 입는 의상을 다뤘다. 여성들은 페티코트를 붉은색으로 물들이지만, 그것을 본래의 목적으로 착용하는 대신 머리에 뒤집어쓴다. 일종의 베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높이 솟은 비정형적 모양의 붉은 베일을 머리에 드리운 모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쇼장을 누빈다.
이로부터 약 10년 뒤, AW20 런던 패션 위크에서 시몬 로샤는 다시 한번 아일랜드 여성의 죽음에 대한 경험을 컬렉션에 녹여냈다. 해당 컬렉션에 영감을 준 작품은 남편과 아들 다섯 명을 바다에 잃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아일랜드 극작가 존 미링턴 싱의 『바다로 간 사람들』이다. 전체 컬렉션에는 죽은 자-어부였던 남편과 아들들-를 상징하는 굵은 짜임의 니트웨어, 네트 백 등의 아이템과 이를 추도하는 장례식의 이미지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주인공은 성수를 아들의 몸과 유품에 뿌리며 절규하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가톨릭적 색채는 풍성한 러플과 비숍 슬리브, 쇼의 메인 컬러인 검은색과 하얀색을 통해 시각화된다. 피날레의 착장에서 얼굴을 가리며 떨어지는 플라워 엠브로이더리 베일과 두 겹의 레이스가 트리밍된 깨끗한 백색의 원피스는 죽음에 대한 가장 깊은 형태의 추모, 동시에 새로 태어나는 순간에서 느껴지는 삶의 영속성을 볼 수 있게 한다.
창작자 본인의 의도를 구태여 해석하지 않더라도, 시몬 로샤의 많은 의상들과 화보들에는 한결같이 불안정하고 기괴한 데가 있다. 퍼프 소매, 티어드 스커트, 레이스, 진주 등이 주로 포함된 시몬 로샤의 스타일 탓에 혹자는 해당 브랜드를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브랜드로 생각하기도 한다. 틀린 것은 아니다. 시몬 로샤는 분명히 낭만주의 시대라 불리는 19세기 여성복의 많은 부분을 닮았다. 하지만 의복의 영역을 벗어나 예술 사조로서의 로맨티시즘이 개인의 자아로 침잠해 때로는 그 내면의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모습에 가닿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시몬 로샤만의 기괴한, 죽음을 연상시키는, 때로는 광기 어린 듯 보이기까지 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한결 잘 와닿을 것이다.
시몬 로샤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색은 블랙, 화이트, 레드다. 이 세 색은 어쩐지 장례, 뼈, 피를 연상시킨다. (스킨 톤 역시 시몬 로샤의 컬렉션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컬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점은 더욱 묘하다. 뼈와 피와 살이 모두 존재하는 것 아닌가) AW22 컬렉션에서 수많은 러플로 부푼 드레스 자락, 반투명한 하얀색 원단, 붉은색 레이스 트리밍, 상체를 붉게 물들인 에나멜 자켓 등을 입고 굳은 표정으로 워킹하는 모델들을 보고 있으면 유령들과 붉게 흐른 피가 공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후 세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SS19 컬렉션에서는 시즌 프린팅과 함께 모자 아래로 떨어지는 검은색과 하얀색 베일, 어깨를 덮은 시스루 케이프가 눈에 띈다.
화보, 캠페인, 룩북 사진 역시 대체로 불안정하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한낮의 평원 위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원을 이뤄 누워 있는 모델들은 있어서는 안 될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며 <미드 소마>의 그것과 같이 아름다우면서 섬뜩한 느낌을 준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손을 배 위에 포갠 채 누워 있는 모습이나, 마찬가지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물로 걸어가는 뒷모습,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춘 가운데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 있는 모델 등 시몬 로샤의 비주얼 작업들은 하나같이 죽음의 문턱,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아름다움은 때로 위태로움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팔이 떨어진 밀로의 비너스상과 얼굴 반쪽이 깨진 수막새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고통에 울부짖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며 알 수 없는 황홀함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정형과 비정형 중에서는 비정형이 언제나 더 많은 것을 함의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불완전한 삶은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비정형과 죽음을 담은 시몬로샤의 옷은 동시대의 어떤 옷들보다도 특별하다. 이제 여러 겹의 티어드 스커트, 붉은 레이스 트리밍, 새하얀 시스루 드레스를 보면-무엇이 떠오르는가? 수면 위에 떠 있는 인영과 안개처럼 퍼진 드레스가 떠오른다면, 그 안으로 뛰어들어 죽음만이 줄 수 있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해보라.